(3)생의 영원을 위한 미술
3)크레타 미술..
앞서 언급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는 시점에 유럽은 여전히 선사 시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계지점에 있던 크레타섬의 크로노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이들의 영향으로 BC 2천년경 미노스라는 왕이 중앙집권화를 만들어내며 동부지중해를 장악하였고 크레타 문명이 유럽을 역사시대에 등장시킨다.
크레타섬은 중계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미노스왕으로 부터 시작된 "미노아 문명"을 창출하였으니 그리스 최초이자 유럽 문명의 기원입니다!
미노스 문명은 미노아왕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신화로 알고 있는 "미노타우루스" 전설의 등장인물이기도 합니다.
크레타(미노스) 미술은 지정학적인 위치와 힘의 역학 관계상 앞서 언급한 두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나 크레타만의 뚜렷한 특징이 살아 있습니다.
두 왕조는 강성한 절대왕조의 강력한 통치권으로 왕의 통치하에 거대한 신전, 궁전, 무덤등을 중심으로 엄격한 통제와 규율하에 예술이 발전을 했으나, 거대한 신전이나 통치권의 수단이 되는 신으로 대표되는 정통성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역동성으로 발현되었다.
예술의 가장 큰 주제가 주변에 흔한 황소, 문어, 돌고래등 이었으며 신분의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 특히 여성의 등장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인물의 표현에는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면성의 원리"를 추종한 크레타 미술은 고대 그리스 문명 중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로,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을 보여줍니다.
크레타 섬은 고대 그리스의 중심지 중 하나로, 그곳에서 발전한 미술은 그리스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크레타 미술의 특징, 주요 작품,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정리한 표를 옮겨봅니다.
1. 미노아 문명과 크레타 미술의 배경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1450년경까지 번성했던 고대 문명으로,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문명은 해양 무역과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번영하였고, 그로 인해 예술과 건축에서도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미노아 문명은 평화롭고 번영한 사회였으며, 그들의 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했습니다. 또한, 종교적 요소와 일상생활,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 한 다양한 표현이 특징적입니다.
2. 크레타 미술의 특징
크레타 미술은 여러 가지 매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1. 색채의 사용
크레타 미술은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채가 두드러집니다. 벽화와 도자기에서 사용되는 색상은 주로 자연에서 얻은 색소를 이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조가 조화를 이루며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2.2. 자연과 인간의 조화
크레타 미술은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해양 생물, 식물, 동물 등의 요소가 자주 등장하며, 이들은 미노아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돌고래와 같은 해양 생물은 크레타 미술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2.3. 인체 표현
크레타 미술에서 인체 표현은 매우 유연하고 생동감 있게 나타납니다. 인물들은 종종 동적인 자세로 그려지며, 자연스럽고 우아한 형태로 묘사됩니다. 이는 미노아 사람들의 삶의 역동성을 잘 반영합니다.
3. 주요 작품과 유적
크레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과 유적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3.1. 크노소스 궁전
크노소스 궁전은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로, 거대한 규모와 복잡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궁전 내부는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특히 '돌고래 벽화'는 미노아 미술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발굴된 크노소스 궁전..
크노소스 궁전 복원도..
복원 조감도
크레타 섬에 있는 크노소스에서 발견한 고대 미노스 문명의 궁전. 에게문명 전기의 지배자 미노스가 기거하던 궁전이다. 기원전 2000년 정도에 지어졌으며, 가로세로 길이가 160~170m에 육박해 고대의 궁전 중 가장 거대한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방이 배치된 정방형 구조로, 복잡한 설계로 예로부터 미궁이라 불리었다.
기원전 17~16세기에 에게 해를 휩쓴 산토리니섬 화산 폭발로 크레타 섬들의 건축물과 함께 파괴되었다고 알려졌으나, 현재 고고학계에서는 화산 폭발설보다는 아르골리스에서 온 미케네인들이 침공해서 파괴되었다는 설을 가장 유력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1900년, 영국 고고학자 A. 에번스가 수많은 유물과 함께 궁전을 발굴하였다. 1903년 발굴이 끝나자마자 1905년에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에번스 자신은 미노스 문명 연구에 일생을 바쳤으며 그리스 고대사를 재정립하는 데 큰 업적을 세웠지만, 복원에 관해서는 날림복원으로 비판이 많다..
에번스는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위스의 예술가 루이 에밀 에마뉘엘 길리에론(Louis Émile Emmanuel Gilliéron) 등을 초빙하여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벽화 채색을 주문했으나, 길리에론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몇 가지 단편적인 구도나 묘사를 기반으로 창작에 가까운 복원을 시도했다. 또한 사업에 관심이 많아 크레타섬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유물의 복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유물 위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복원 문제 때문에 유럽 문명의 요람이며 미노스 문명의 정수가 담겼다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에 실패했다. 급한 복원의 이면에는 궁전이 당장이라도 붕괴될 듯 위험했기 때문에 충실한 재현보다는 현장 보존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는 옹호가 있다. 발굴 당시에도 많은 구조물이 무너져 있었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당시 가지고 있던 재료로 봉합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노소스 궁전 외에도 당대의 많은 문화재들은 보존을 우선시하여 철근과 시멘트로 복원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지지력을 높이기 위해 현대적 재료를 복원에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복원인지 건축인지 아리송한 유적이 대다수입니다!
3.2. 벽화
크레타의 벽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 종교 의식, 그리고 자연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냥하는 장면'과 '꽃과 나비'를 주제로 한 벽화는 미노아 미술의 뛰어난 기술과 미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백합의 왕자..
앞서 기술한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이며 박물관에 원본, 궁전에 복원도가 있는데 둘다 복원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 벽화의 영향을 받은 크레타의
채색 벽화~~
이 역시 복원도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황소타는 사람
프레스코화~~
불사신 아킬레스도 "아킬레스의 약점" 에 파리스의 화살을 맞고 결국 죽는다.
아이아스(AIAS : 그림의 오른편 상단 글자.그리스의 장수지만 아킬레스의 투구가 오딧세이에 넘겨지는게 분해서 자살.. 헥토르와 나누었던 단검으로.. )가 아킬레스의 시신을 거두어 간다.
AXILEYS(AKILEUS)라는 글자는 거꾸로 쓰여 있는데 그 의미는 사망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
미케네의 장례가면 BC1500 (하인리히 슐리만은 미노스왕(아가멤논)의 가면이라고 주장했지만 연구 결과 훨씬 이전의 것이다.
3.3. 도자기
미노아 도자기는 그들의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도자기는 주로 해양 생물, 식물, 그리고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섬세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법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크레타의 황소(그리스어: ταύρος της Κρήτης)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황소는 에우로페를 크레타로 데려오기 위해 제우스가 보낸 황소라고도 하고,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에게 욕정을 품고 황소와 교접하여 몸은 인간이며 머리와 꼬리는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되었다고도 한다.
4. 크레타 미술의 영향
크레타 미술은 고대 그리스 미술뿐만 아니라, 후대의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고전적 미술 양식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로마 미술에도 유산이 전해졌습니다. 크레타 미술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5. 결론
크레타 미술은 고대 미노아 문명의 문화적 유산을 대표하는 중요한 예술 분야입니다. 풍부한 색채,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1717~1768)은 〈그리스의 회화와 조각에 대한 의견>이란 자신의 논문에서 “우리가 위대하게 되거나 적어도 독특한 무엇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인을 흉내 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다시 고대 그리스의 예술 이데아로 돌아가 그리스를 모방한 예술을 원본으로 하자고 했을 정도로 크레타 문명으로 시작된 그리스 문명은 현대미술의 진정한 시작점으로 보아야합니다.
저는 그래도 서양역사를 배우면서 접한 내용이라 별 어려움없이 적었다고 생각하는데 갑갑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대부분일듯~~
새털같이 많은 시간 유용하게 보내자는 차원에서 적어보는 것이니 관심없는 분은 휘리릭~~
패쉬하시면 됩니당..ㅎ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13~14세기경 테라의 화산 폭발에 따른 기후 변화로 급격하고 몰락하였으며 미케네 문명이 그리스와 에게 문명을 선도하였으나 곰브리치의 목차에서는 미케네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3단원 위대한 각성으로 BC7세기~5세기의 그리스를 소개함으로 크레타이후 약 5백년간이 사라집니다?
기원전 1,200년은 후기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로 진행되는 시대로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에게해 인근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케네, 히타이트, 트로이, 키프로스의 알라시아등이 사라지는데 역사학자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라고 명명하고 아래와 같은 3가지 요인을 지적합니다.
소빙하기 북유럽/인도계 민족의 남하, 바다민족의 침략, 지진 기후변화 화산폭발등 자연재해..
모두들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어 상기 요인의 복합으로 고대사회를 연결하던 네트워크가 몰락하면서 그리스 문명이 부흥하기까지 암흑기가 5백여년 지속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시대에 에게해 인근에 살지 않은 것이 축복인가요?
유럽 미술사에서 발원지가 사라지며 전역이 암흑기에 접어들었으니 그렇지도 않은 듯~~
저는 사우디 출장이라는 핑계로 출장후 터키~키프로스~~크레타~그리스로 여행겸 문화 탐험을 떠나보려고 간 보는중~~
이것으로 유럽 미술의 발상지를 간략하게 돌아보고 에너지 재충전을 위하여 잠시 휴식~~
큰 전문지식도 없이 장문의 미술사를 적으려니 글 재주도 없고 머리속에 그다지 든 것도 없어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