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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酉谷 (닭실) (4341년 7월 13일 답사, 대구 흥사단 주관)
영남대 이창기 교수를 모시기 봉화쪽 답사를 하였다.
네번 째 청암정을 찾아도 새로웠다.
봉화군청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5리 지점에 위치 동북으로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줄기가 서남으로 뻗어내려 백설령이 되어 암탉이 알을 품은 듯 艮座 坤向으로 자리잡고 동남으로 신선이 옥퉁소를 불었다는 玉笛峯, 수탉이 활개치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金鷄抱卵의 형국인데. 닭실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풍수지리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경주 양동, 안동 천전, 풍산 하회와 함께 삼남(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4길지로 칭해진다. 충재 권벌을 중심으로 일가를 이룬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500년을 이어 온 마을이다. ★. 안동권씨는 본래 신라김씨로부터 시작된다. 신라김씨는 신라의 종성으로 경주김씨로 불리기도 한다. 서기 65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의 수풀속에서 닭울음 소리를 듣고서 금함속의 사내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이다. 당시 아이가 금함에 있었기 때문에 성을 金으로 하였다고 한다. 안동 권씨는 신라말기의 호족이었던 태사공 김행으로부터 시작 된다. 본디 신라김씨였던 김행은 신라말기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지대한 도움을 주게 된다 .고려태조 왕건은 혼란에 빠진 신라말기 후고구려를 세우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견훤과 대립하였다. 이 때 고창(지금의 안동)지역의 김행은 김선평, 장길과 함께 지역을 지키고 있던 호족이었다. 견훤의 군대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침입하여 왕을 자살케하고 왕비를 능욕하는 등의 폐륜행위를 하자 왕건의 군대는 신라의 구원을 명분으로 견훤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견훤의 군대를 맞아 연전연패하게 되고 결국 고창까지 밀리게 된다 이 때 김행은 김선평,장길과 함께 일신상의 利를 버리고 義를 쫓아 수세에 몰린 왕건의 편에 서서 견훤의 군대에 대항키로 결정한다. 병산에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어 생사를 기약할 길 없던 왕건은 김행과 김선평 장길의 군대로 인해 목숨을 구하였을 뿐 아니라 전투 또한 역전되어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전투는 왕건측에서 견훤측을 멸망할 수 있었던 기점이 되었고 결국 왕건은 한반도를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있다. 利를 버리고 義를 택하였던 김행에 대하여 고려태조 왕건은 “행은 기미에 밝고 권도에 능하다” (幸能炳幾達權)라 하며 권이라는 성을 내리고 고창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식읍을 주었다. 이 때 김행은 권행으로 성이 바뀌게 되고 함께 태사의 직을 받게 되어 태사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안동에 가면 태사묘가 있다. 작년 봄에 갔을 때는 종택 안에 유물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청암정 밖에 박물관을 건축하여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보물 428점과 기타 유물등 총 5000여점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보물 261호 충제일기 벼슬에 있으면서의 생활실태와 중앙 정부의 일상생사가 소상히 적힌 일기로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정원일기가 남아 있어 그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 것으로는 미암 유희춘의 이망일기,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와 함께 귀중한 자료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 보물 262호 근사록 송의 유학자 葉采가 주돈이의 태극도설, 張載의 西銘 등에서 골라 편찬한 성리학의 중요한 독본인 것이다. 충재선생의 袖珍本인 이 책은 그 板式과 字體로 보아 元나라 板을 復刻한 듯 제 14권 15장 끝에 星山李氏刊于晉陽이라고 篆書로 새겼고 그 왼편에 洪武3년이란 鍾形印 李魯叔 鼎形印을 각각 새겨서 그 年代와 刊行者. 刊行處를 밝혔으며 끝에 庚戌己丑朔 星山 李魯叔 謹識라고 한 刊記가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庚戌(공민왕 19년) 봄 李仁敏이 진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이 책을 이노숙에게 선사했던 바, 이노숙이 진주에서 곧 이를 간행했다 이는 휘귀한 고려본이며 正祖의 序文이 더욱 빛을 더한다. (충재박물관 책자 46 쪽.) ★. 보물 896호 총 5000여종이 있는데 그 중 우향계축, 사마방목,무놔잡과방목,광국원종공신록권,을사정난기등 15종 184책이 일괄 지정 되었다. 고문서 보물 901호 분재기 명문 교서 등 15종 274점이 일괄 지정 ★. 유묵보물 902호 조선전기 4대명필의 한 분인 김구(金絿)의 소서족자 퇴계이황의 서첩, 미수 허목의 전서등 8종 14점 ★. 청암정 거북바위위에 건립한 정자로서 건축양식이 뛰어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이라고 한다. 주위에는 연못으로 둘러져있고 뜰에서 정자로 들어가는 돌다리를 놓았으며 고송과 향나무, 버드나무 등이 있고 정자의 거북바위틈으로 철쭉과 단풍이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전에 복원을 할 때 팔작지붕의 처마선을 일직션으로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차종손에게 물어보았더니 군담당자와 건축을 한 사람에게 항의를 하였으나 고쳐주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고쳤다고 하는데 선의 곡선이 살작 되어 있었다. 사당을 가르키면서 처마선이 직선이 아니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사당은 맞배지붕임) 이것이 우리문화재 담당자들이 하는 말이니 문화재가 어떻게 잘 보존 되겠는가? 주위에 석천정사와 한수정 추원재, 삼계서원이 있으나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다.
★. 충재가의 박물관 (작년 4340년에 건립했다고 함 4340년 봄에 갔을 때는 종택 안의
유물관에 보관 박물관을 짓고 유물관은 헐었다. 빈 터만 있음)
★. 중국 명나라 태조의 글씨 (충새선생이 명나라로 사신 갔다가 오면서 받아 온 글씨)
★. 퇴계선생의 서첩
★. 청암정의 처마선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 재작년 내가 처음에 왔을 때는 직선이었다.)
★. 지붕선을 고치기 전의 청암정 사진 (지붕선이 직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2005년 봄 친구와 답사 했을 때 친구가 찍은 사진 나에게는 없어서
지금의 사진과 비교하기 위하여 퍼 왔음 )
★. 사당인데 덧기둥을 댄 곳은 드물다고 한다.
★.가로등도 닭실이라고 작년에 닭의 모양으로 하였다.
★. 충재의 사랑방 바로 앞 돌다리를 건너 청암정이 있다.
★. 내 질문( 이 돌이 혹시 정료대가 아니었을까요?)
충재 사랑방 앞에 있는 돌을 설명하고 있는 차종손
(내 생각대로 불을 밝현던 것이라고 한다.)
★. 금계포란형의 마을 뒷산 아래는 인삼 밭
(요즈음은 어디라도 인삼이 되는 모양이다.)
★. 酉谷 (닭실) (4341년 7월 13일 답사, 대구 흥사단 주관)
봉화군청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5리 지점에 위치 동북으로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줄기가 서남으로 뻗어내려 백설령이 되어 암탉이 알을 품은 듯 艮座 坤向으로 자리잡고 동남으로 신선이 옥퉁소를 불었다는 玉笛峯, 수탉이 활개치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金鷄抱卵의 형국인데. 닭실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풍수지리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경주 양동, 안동 천전, 풍산 하회와 함께 삼남(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4길지로 칭해진다. 충재 권벌을 중심으로 일가를 이룬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500년을 이어 온 마을이다. ★. 안동권씨는 본래 신라김씨로부터 시작된다. 신라김씨는 신라의 종성으로 경주김씨로 불리기도 한다. 서기 65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의 수풀속에서 닭울음 소리를 듣고서 금함속의 사내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이다. 당시 아이가 금함에 있었기 때문에 성을 金으로 하였다고 한다. 안동 권씨는 신라말기의 호족이었던 태사공 김행으로부터 시작 된다. 본디 신라김씨였던 김행은 신라말기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지대한 도움을 주게 된다 .고려태조 왕건은 혼란에 빠진 신라말기 후고구려를 세우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견훤과 대립하였다. 이 때 고창(지금의 안동)지역의 김행은 김선평, 장길과 함께 지역을 지키고 있던 호족이었다. 견훤의 군대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침입하여 왕을 자살케하고 왕비를 능욕하는 등의 폐륜행위를 하자 왕건의 군대는 신라의 구원을 명분으로 견훤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견훤의 군대를 맞아 연전연패하게 되고 결국 고창까지 밀리게 된다 이 때 김행은 김선평,장길과 함께 일신상의 利를 버리고 義를 쫓아 수세에 몰린 왕건의 편에 서서 견훤의 군대에 대항키로 결정한다. 병산에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어 생사를 기약할 길 없던 왕건은 김행과 김선평 장길의 군대로 인해 목숨을 구하였을 뿐 아니라 전투 또한 역전되어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전투는 왕건측에서 견훤측을 멸망할 수 있었던 기점이 되었고 결국 왕건은 한반도를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있다. 利를 버리고 義를 택하였던 김행에 대하여 고려태조 왕건은 “행은 기미에 밝고 권도에 능하다” (幸能炳幾達權)라 하며 권이라는 성을 내리고 고창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식읍을 주었다. 이 때 김행은 권행으로 성이 바뀌게 되고 함께 태사의 직을 받게 되어 태사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안동에 가면 태사묘가 있다. 작년 봄에 갔을 때는 종택 안에 유물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청암정 밖에 박물관을 건축하여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보물 428점과 기타 유물등 총 5000여점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보물 261호 충제일기 벼슬에 있으면서의 생활실태와 중앙 정부의 일상생사가 소상히 적힌 일기로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정원일기가 남아 있어 그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 것으로는 미암 유희춘의 이망일기,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와 함께 귀중한 자료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 보물 262호 근사록 송의 유학자 葉采가 주돈이의 태극도설, 張載의 西銘 등에서 골라 편찬한 성리학의 중요한 독본인 것이다. 충재선생의 袖珍本인 이 책은 그 板式과 字體로 보아 元나라 板을 復刻한 듯 제 14권 15장 끝에 星山李氏刊于晉陽이라고 篆書로 새겼고 그 왼편에 洪武3년이란 鍾形印 李魯叔 鼎形印을 각각 새겨서 그 年代와 刊行者. 刊行處를 밝혔으며 끝에 庚戌己丑朔 星山 李魯叔 謹識라고 한 刊記가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庚戌(공민왕 19년) 봄 李仁敏이 진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이 책을 이노숙에게 선사했던 바, 이노숙이 진주에서 곧 이를 간행했다 이는 휘귀한 고려본이며 正祖의 序文이 더욱 빛을 더한다. (충재박물관 책자 46 쪽.) ★. 보물 896호 총 5000여종이 있는데 그 중 우향계축, 사마방목,무놔잡과방목,광국원종공신록권,을사정난기등 15종 184책이 일괄 지정 되었다. 고문서 보물 901호 분재기 명문 교서 등 15종 274점이 일괄 지정 ★. 유묵보물 902호 조선전기 4대명필의 한 분인 김구(金絿)의 소서족자 퇴계이황의 서첩, 미수 허목의 전서등 8종 14점 ★. 청암정 거북바위위에 건립한 정자로서 건축양식이 뛰어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이라고 한다. 주위에는 연못으로 둘러져있고 뜰에서 정자로 들어가는 돌다리를 놓았으며 고송과 향나무, 버드나무 등이 있고 정자의 거북바위틈으로 철쭉과 단풍이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전에 복원을 할 때 팔작지붕의 처마선을 일직션으로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차종손에게 물어보았더니 군담당자와 건축을 한 사람에게 항의를 하였으나 고쳐주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고쳤다고 하는데 선의 곡선이 살작 되어 있었다. 사당을 가르키면서 처마선이 직선이 아니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사당은 맞배지붕임) 이것이 우리문화재 담당자들이 하는 말이니 문화재가 어떻게 잘 보존 되겠는가? 주위에 석천정사와 한수정 추원재, 삼계서원이 있으나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다.
★. 충재가의 박물관 (작년 4340년에 건립했다고 함 4340년 봄에 갔을 때는 종택 안의
유물관에 보관 박물관을 짓고 유물관은 헐었다. 빈 터만 있음)
★. 중국 명나라 태조의 글씨 (충새선생이 명나라로 사신 갔다가 오면서 받아 온 글씨)
★. 퇴계선생의 서첩
★. 청암정의 처마선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 재작년 내가 처음에 왔을 때는 직선이었다.)
★. 지붕선을 고치기 전의 청암정 사진 (지붕선이 직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2005년 봄 친구와 답사 했을 때 친구가 찍은 사진 나에게는 없어서
지금의 사진과 비교하기 위하여 퍼 왔음 )
★. 사당인데 덧기둥을 댄 곳은 드물다고 한다.
★.가로등도 닭실이라고 작년에 닭의 모양으로 하였다.
★. 충재의 사랑방 바로 앞 돌다리를 건너 청암정이 있다.
★. 내 질문( 이 돌이 혹시 정료대가 아니었을까요?)
충재 사랑방 앞에 있는 돌을 설명하고 있는 차종손
(내 생각대로 불을 밝현던 것이라고 한다.)
★. 금계포란형의 마을 뒷산 아래는 인삼 밭
(요즈음은 어디라도 인삼이 되는 모양이다.)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봉성 솔잎고기는 먹어도 소주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만 맛보고왔네.
건강은 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