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듀! 알코올
김종혁
식료품을 사러 대형 마트에 가면 나는 반드시 주류코너를 들러야 직성이 풀린다. 소주부터 시작하여 민주, 와인, 위스키를 두루 살펴본다. 자물쇠가 채워진 유리 상자 속의 최고급 위스키나 와인을 보면서 얼마나 즐거운 상상을 하는지 모른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어느새 다가온 아내의 레이저 같은 눈초리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서곤 한다.
술은 항상 내 근처에 충분히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해마다 오월 말이 되면 청매실로 매실주를 담근다. 술 항아리를 밀봉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날짜를 표시한다. 십 년 후 뚜껑을 열면 호박빛을 띠며 깊은 향을 품은 매실주가 되어 있는데 브랜디에 못지않다. 친구와 마주앉아 그것을 한 잔씩 나누면 묵힌 세월이 꿈처럼 되살아난다. 십여 년 전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매실주는 이십 년이 넘은 거였다. 애주가 친구를 식당으로 불러냈다. 병마개를 열자 이십 년 숙성 매실주의 오묘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잠시 후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친구가 되었다.
술은 나에게 연인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녹색 혹은 갈색 유리병 속에서 수줍게 나를 부른다. 겉은 차가우면서도 속에는 마그마가 흐르는 그녀의 유혹을 외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뚜껑을 딸 때의 경쾌한 파열음, 컵에 흘러드는 투명한 액체, 첫 모금을 넘기는 순간 온몸에 퍼지는 알싸함은 연인의 다정한 키스, 바로 그것이다.
술은 밤마다 찾아오는 귀녀다. 온몸을 뜨겁게 안아주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황홀감을 주다가, 이튿날 아침이면 쓰린 속과 두통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항상 우아하게 취해서 말끔하게 깨고 싶지만 구두선에 그친다.
갖가지 핑계로 퇴근 후 각자 한 병은 필수였다. 시작할 때야 한 병씩만 마시고 얼른 귀가하자고 약속한다. 처음에는 소주를 한 잔씩 털어넣다가 소맥으로 바뀌고, 곧 두세 종류의 술을 섞은 혼합주를 마주하게 된다. 그 때 쯤이면 조기 귀가 약속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모두 알코올의 쾌락 속으로 돌진한다. 곧 이름도 해괴한 폭탄주를 단숨에 들이키는 인물을 추앙하면서 술자리는 음주놀이터로 변한다. 급기야 누군가 주동이 되어 - 주동자는 대개는 나였다 - 좀더 많이 마시기 게임을 한다. 우승자를 가리고 그의 신체적 변화를 관찰하는 어처구니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폭음을 정당화하려는 억지 같지만 폭탄주는 나름의 비즈니스적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 팀이라는 유대감도 만들고 효율적으로 술자리를 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야근이 많은 금융업에서 1, 2차를 길게 끄는 것은 부담이었다. 폭탄주는 짧은 시간에 취기를 끌어올리고 자리를 일찍 끝낼 수 있었다.
내 기준에서 폭탄주의 지존은 진도홍주와 막걸리의 혼합주다. 홍주는 알코올 도수가 40도다. 붉은 홍주를 막걸리에 섞으면 연분홍색으로 변하면서 칵테일 '핑크 레이디'와 비슷해진다. 고량주 같은 꼬릿한 맛도 달착지근하게 바뀐다. 그 맛에 이끌려 한두 컵 들이켜면 사람들은 말이 많아지거나 별 이유도 없이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윽고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혼잣말을 웅얼거리다가 곧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인사불성으로 잠들어버린다.
IMF 태풍이 지나간 몇 년 후였다. 새 회계 연도 들어 임원 업무분장을 했는데 내가 맡게 된 부서 중에 콜센터가 있었다. 직원들이 대략 600명 정도 근무하는 큰 조직이었다. 이 부서는 늘 적자를 내서 회사의 골칫거리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흑자를 내면 특별보너스를 지급하겠다, 목표를 달성하여 전 직원이 함께 회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곧 실적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그해 말 드디어 흑자를 냈다. 약속대로 회식을 준비했는데 술은 막걸리와 홍주를 5:1로 혼합해서 예쁜 유리병에 담아 내놨다. 절대과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많은 직원들이 그날 밤 귀가하지 못하고 근처 호텔 신세를 졌다. 이튿날 여직원 부모님들의 항의전화를 받고 백배사죄를 해야 했다. 새벽이 되도록 딸과 연락이 닿지 않았으니 부모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하지만 함께 거사를 치른 동료의식이 생겨서 직원들과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교환하는 사이가 됐다.
은퇴 이후 절주를 했는데도 폭음 기록은 내 몸에 남았던 모양이다. 말술에 장사없다는 말은 내게 에누리 없이 들어맞았다. 건강 검진에서 뜻밖에 위암 판정이 나와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가족의 청구에 입도 뻥끗 못했다. 며칠 전, 두 번째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는 수술 부위가 잘 아물었고 예후도 좋다고 했다. 그는 보호자의 간호와 환자분의 노력 덕분이라고 추켜세워줬다. 내 옆에 앉은 보호자, 아내는 어깨가 으쓱한 눈치였다. 의사는 곧이어 나에게 술을 끊으라고 했다. 다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환자주위에서 술은 물론, 술 관련 소품들을 치워서 술의 유혹을 차단하는게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의 보호자는 그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옷장 속 값비싼 양주들은 자식들에게 분양해서 진즉 사라졌다. 와인과 위스키 책들, 샴페인 잔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와인 잔과 와인 디캔터, 애지중지했던 글렌캐런 위스키잔 하이볼 잔, 겨울 골프에 필요한 위스키 플라스크... 아내는 나의 애장품들을 모조리 분리수거함에 버릴 것이다. 아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제는 버릴 때도 됐다.
1년 넘게 금주를 했다. 일상이 맹숭맹숭하고 삶이 늘 정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완치 판정을 받으면 가끔 알코올 그녀와의 짧은 데이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김종혁
2019년 수필과비평> 수필, 2021년 《인간과문학》 소설 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 인간과문학, 아침문학 회원
단편소설집 《비전꽃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