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나의인생 나의철학》라인홀드 메스너 저
. 김영도 옮김. 2016년. 하루재
글. 이용대
자아의식이 강한 메스너의 인간성을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쌀쌀맞고 오만’한 사람이다. 2016년 방한 때 나는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적어도 몇 날 동안 접해보고 얻은 결과다. 평소 그가 남긴 여러 저서들을 보면 미소 짖는 온화한 모습은 전혀 볼 수 없고 거부감을 주는 굳은 표정이 그의 트레드 마크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조금 다르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면 독자를 향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온화한 모습이다. 그도 이제 고희(古稀)를 맞았으니 무언가 인생관이 조금은 변한 듯싶다.
《나의 인생 나의 철학》은 세계최고의 등산가 라인홀드 메스너가 70세를 맞이하면서 70개의 주제를 설정하고 자신의 인생과 철학에 대해 소회를 밝힌 책이다. 그동안 그가 저술한 책은 50여권에 이르지만 대개는 극한등반가로서 한계상황을 극복한 등반기록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펴낸『나의 인생 나의 철학』은 종전에 펴낸 책들과는 영역을 달리하는 인생론이다. 이 책은 70개의 단상을 묶어 인생문제를 풀어낸 단상 모음집 내지는 유년 시절과 성장기로부터 위대한 산악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의 인생역정(歷程)을 조명한 자서전 성격의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경험. 생존. 인생. 세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70개의 단상을 주제에 걸맞게 풀이하고 있다.
여러 주제들 중 유독 우리의 시선을 끄는 주제는 ‘자기 성찰’ ‘자기 신뢰’ ‘자기결정’ ‘자기책임’과 같이 철저하게 ‘자기’를 내세우는 주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을 한계에 도전하며 살아왔던 메스너가 생사를 가르는 경계에서 혼자 싸울 때 믿고 의지할 것은 오직 ‘자기’뿐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를 믿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찍이 극한의 자연에서 겪은 체험과 산에서 죽음과 맞서 싸웠던 일들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그는 “공포”라는 주제에서 1975년 로체남벽원정에서 두 번의 눈사태가 베이스캠프를 휩쓸었을 때의 일을 중요체험이라고 말하며 모험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지옥으로 돌변했던 그때의 기억이 15년 동안 따라 다녔다고했다. 그는 수많은 원정에서 자기생존의 시험대에 올라있으면서 자기 스스로가 생존하는 기술을 체험해왔다. 나는 늘 이런 기분으로 또 다른 생의 단계를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아남는 것이 나의 기술이 됐다”고 말했다.
“등반스타일”은 알피니즘의 정체성을 규명할 때 전제가 되는 명제다.
이 주제에 대해 메스너는 스타일이란 ‘가능한가, 불가능한 가’라는 의문 외에 그 방법과 환경까지 고려할 때의 이야기이며, 나는 등반가를 스타일로 판단하지 결코 명성이나 기록, 또는 등반횟수 등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스타일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1960년대 요세미테에서 클린클라이밍을 등반유산으로 남긴 로열 로빈슨과 이본 취나드가 만든 독특한 등반스타일은 그것이 세계 산악 계에 알려지자 효과가 컸다. 그들은 하켄과 볼트는 물론 프렌드까지도 등반스타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상적인 등반루트를 찾는 것은 창조적인 행위이며 무엇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이것은 한 발 더 성장하는 산악계의 철학이며, 창조적인 업적이었다. 오늘날에는 요세미테 스타일이 고산원정등반 스타일이 되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현대등반의 사조가 되었다. 그들이 해낸 모험의 종류와 내용은 훗날 등산역사에서 평가 받는다. 나는 과거에 ‘정당한 방법by fair means'으로라는 철학에서 영향을 받고 현재도 이런 사상을 갖고 있다.
“스캔들”이란 주제에선 한국여성등반가 오은선의 경우를 예시(例示)했다. 메스너의 다른 저서『정상에서. ON TOP』에서도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녀의 여성최초 14좌 완등레이스를 인정치 않으려드는 태도는 공정치 못한 모략이라고 언급했다. 그 배경에는 유럽인들의 인종주의가 숨어있다고 했다. 유럽언론이 유럽출신경쟁자의 명성을 위해 비방을 일삼는 것은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려는 싸구려 포플리즘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수적으로 우세한 집단을 상대로 횡포와 부당한 일에 대항하는 능력은 경탄할 일이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도발자의 승리로 끝나며, 자기의 신조를 공개하는 용기는 실패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스스로 극복하는 것 이다.라고 했다.
“자일 파티”란 주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한 번도 등반이나 모험에서 파트너와 싸운 적이 없다. 목표를 달성했어도, 혹은 실패했어도 그랬다’고했다. 또한 “신뢰”라는 주제에서 그는 파트너에 대해 관대해지는 법을 배웠다 고했다.
하지만 메스너의 이런 말은 실제로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가 1978년 페터 하벨러와 에베레스트에서 세계최초로 상식을 초월한 무 산소등반을 이룩한 뒤 둘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간일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메스너는 무엇이라고 답변을 할지 궁금하다.
등반이 끝난 뒤 하벨러는 ‘고독한 승리(Der einsame Sieg)’ 라는 등반기를 펴낸다. 그들이 헤어진 원인은 이 등반기에 기록된 하산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메스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상에 오른 메스너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고글을 벗은 것이 원인이 되어 설맹에 걸렸고,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메스너는 하벨러의 옷자락을 잡고 날 버리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는 내용이 메스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세계 산악계의 최강자임을 자처하던 그에게 하벨러의 등반기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충격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식”이란 주제에서는 경구가 될 만한 말들을 남겼다.
산악인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특히 젊은 등반가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위험에 대해서 사건이 구체적일수록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많다. 위험은 제대로 알아서 불필요한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나는 아마도 선배들의 경험을 배우지 못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선배들의 충고에는 절대로 패닉(panic)에 빠지지 말라는 당부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등산의 발전역사는 산에서 체험한 것의 총화라고 했다.
1965년 발터 보나티가 마터호른을 동계에 단독으로 직등하여 전통적인 알피니즘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모범은 산에서는 무한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 체험으로 나도 새로운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내가 살아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등산만큼 자유로운 직업도 없다고 하지만, 뛰어난 알피니스트의 절반이 쉰 살을 넘기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험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선구자로서 스스로 남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졌던 사람들은 제대로의 생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운도 따라야한다. ‘지식’의 주제를 요약하면 ‘경험공유’와 등산가의 요절(夭折)이다. 이는 산악인들의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신뢰’라는 주제에서 메스너는 ‘나는 단독 등반가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단독 등반가가 됐으며, 고독했고 독단적이었으며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점은 어떤 동기에서건 남의 말을 듣거나 믿지 않던 그의 선배산악인이기도한 발터 보나티의 생각과 유사한 점이 있다. 보나티는 배신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단독등반을 했다.
K2초등 팀에 최연소대원으로 참가했던 보나티는 동료의 배신으로 고통과 좌절을 맞본 후. 조직적인 팀 등반에 환멸을 느낀 이 후 자신만 믿기로 했다. 그 결과 단독등반이라는 개인적인형식을 택한 것이 드류 남 서 필라와 마터호른 북벽 동계 단독 행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공통점은 독선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고희를 맞은 메스너가 또 한권의 저술을 하였으니 이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저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20세기 현존하는 가장 위대했던 알피니스트가 매 순간 목숨을 걸었던 모험을 바탕으로 했던 인생을 정리하면서 펴낸 회고록이니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댓글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인종주의가 팽배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