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EBS, 잘못 끼운 첫 단추
지난 3월 10일,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안병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EBS 강의와 교재에서 수능 문제가 얼마나 출제되나요?" 안 장관은 "70%, 또는 그 이상이 반영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배석했던 교과부와 교육과정평가원 일부 인사들은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발언은 주워담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은 EBS 수능 강의와 수능 연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과부·EBS·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류협력 협정서(MOU)'를 체결한 날이었다.
그리고 8개월, 정부는 2011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후의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었을까. 어려웠던 올해 수능이 끝난 후 수험생들은 "속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BS 70% 연계는 수험생들에게 '쉬운 수능'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예상외로 어렵게 출제되자 적잖은 학생들이 당황한 것이다.
사실 이번 수능에서 EBS 교재에서 그대로 나온 문제는 없다. 언어와 외국어 분야에서 지문을 활용한 것이 학생들에게 체감 연계율이 높았을 정도다. 적당히 어려웠던 수능은 오히려 잘 출제한 시험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수험생들에게 잘못된 사인을 줬고,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이 지금 비판을 받는 것이다.
수험생들은 이번 수능 준비를 '변칙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학원도 수능 직전까지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펴들고 교재 문답풀이를 반복했다. 어떤 학생들은 EBS 영어 교재에서 원어 지문은 읽지 않고 한글 번역본만 가지고 공부했다고 한다. 지문 내용만 알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일종의 '편법 학습'이었다.
지난 3월 정부가 EBS 연계 방침을 밝히자 사교육 기관들은 "제발 어렵게 나와야 될 텐데"라고 기대했다. 문제가 어려우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계산이었다. 기대대로 되자 학원 관계자들의 표정이 요즘 밝아졌다고 한다. 올해처럼만 출제되면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앞으로 'EBS 교재 완전분석' 같은 학원 홍보물이 가정마다 배달될 것이다.
이쯤 되면, EBS 연계 출제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사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최상의 강좌를 EBS가 제공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학생들의 부담과 혼란, 그리고 새로운 사교육 시장만 남았다. 억지로 엮어놓은 EBS 연계 출제가 앞으로 우리 교육에 어떤 부작용을 만들지 아무도 예측 못한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수능이 끝난 직후 "EBS 연계 출제는 내년에도 계속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에게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묘안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학생들 앞에 빨리 나서야 한다. 내년에 수험생이 되는 고2 학생들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조선일보 201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