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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xter Gordon - Saxophonist
밥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대디란 애칭으로 불렸던 덱스터 고든은 1923년 2월 27일 로스앤젤레스 태생이다. 부친이 의사였던 탓에 당시 혹인으로서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13세 경부터 클라리넷과 음악 이론을 배우며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후 알토 색소폰까지 다루다 테너로 전향한 것은 17세 경이었다. 테너를 손에 잡은지 얼마 후 라이오넬 햄튼 악단에 발탁되어 40-44년까지 재적하였고 44년 루이 암스트롱, 45년 빌리 엑스타인 악단등 밥 뮤지션 대부분이 거치게 되는 스욍 밴드일원으로 초기 음악 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빌리 엑스타인 밴드 재적 당시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만나 밥 무브먼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45년에는 사보이에서 자신의 최초의 리더 작들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모든 세션은 SP판으로 후에 45-47년 세션을 모은 앨범 (Dexter Rides Again)과 (Long Tall Dexter) 등 두매의 앨범으로 나뉘어 발매되었다. LP시대 이전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녹음이 상당히 양호한 편이며, 이미 당시부터 두터운 음색과 풍부한 장식음으로 자신의 스타일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있다. 47년 다이알에서 행한 일련의 녹음 중 밥 테너 배들의 효시가 등장했는데 워델 그레이와의(Chase)와 테디 에드워즈와의 (The Duet)이 그것이다. 이 두 매의 SP판은 다이알 음반사의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콘서트와 음반에서 팬들을 사로잡는 테너 배틀의 기폭제가 되었다. 물론 스윙 시대 전설로 언급되는 레스터 영 과 콜맨 호킨스간의 유명한 대결을 비롯한 전례가 몇몇 있었지만 이러한 캄보 팀으로 이루어진 예는 거의 없었다. 이후 소니 스티트와 진 아몬즈, 알콘과 주트심즈, 또한 미완성의 팀 소니롤린스와 존 콜트레인(Tenor Madness) 그리고 50년 다시 워델 그레이와 짝을 이루고 활동하던 와중 탄생한 52년의 명반 (The Chase and the Steeplechase)의 원점이 47년 다이알 녹음이란 점을 생각해 본다면 초기 텍스터 고든은 음악성, 영향력, 인기 등을 두루 갖춘 중요한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유망한 뮤지션들이 마약에 빠져 연주 기복이 심하거나 은퇴 흑은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드문 편이 아니었다. 덱스터 고든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으며 음악적 영감을 위한 휴지기가 아니라 마약으로 인해 공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52-54년 사이이며, 이후 찰리 파커와 자신의 동료 워델 그레이가 사망하고 난 후 비장한 마음으로 55년 중반 잠시 복귀하여 마이너 레이블에서 3매의 리더작을 취입 하였다 베들레햄에서의 (Daddy Plays Horn), (This Time on Me), 그리고 둠툰에서 (Hotandcool)이 그 세 작품으로 고향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당시의 앨범들이다.
아직은 30대 초반이었지만 발라드 연주에서 무척 성숙한 감을 주고 당시 최고 촉망받던 소니 롤린스에서 영향을 다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멜로디로 연결되는 프레이즈가 두드러졌다. 또한 덱스터 고든은 같은 해 개봉된 B급 영화 'Unchained'에도 출연하여 숨겨진 배우로서의 재능을 과시하였는데, 이후 60년 연극 'Connection'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디 레드가 동 타이틀 영화에 출연하여 이미 화제가 된 작품)에도 열연하여 그가 'Round Midnights'에서 펼친 연기가 우연이 아닌 이전부터 닦여진 실력임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다시 56년 이후 재즈 계에선 은퇴하였지만 완전한 잠적이라기 보다는 리듬앤 블루스 그룹이나 록큰를 밴드 등에 세션하거나 몇몇 뮤지션과 교류하였다고 한다. 60년에 본격적으로 복귀하여 같은 해 Jazzland에서 복귀 첫 작을 취입하고 61년에 대망의 블루 노트와 계약을 맺으며 (Doing All Right)를 녹음하여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1년 반사이 블루 노트에서 (Dexter Calling), (Landslide), (Go!), (Swingin' Affair) 등의 앨범을 발표하고 매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으며, 하드 밥 테너 연주자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사이 알토 색소포니스트 포니 포인트 덱스터의 (Pony's Express)와 허비 행콕의 데뷔 음반 (Takin'off)등에도 세션하였으며, 같은 해 영국 최고의 재즈 클럽 (Ronniescott')에서 첫 해외 공연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영국 공연은 덱스터 고든의 유럽 체류 결심이란 생애 큰 의미를 가진 전환점이 되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찰리 파커도 유럽 공연시 강력히 체제 유혹을 받은적이 있으나, 여유로운 삶보다는 잔인한 환경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하는 뉴욕을 선택한 경우이며, 버드 파웰은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진 상태에서 어쩔수 없이 유럽 행을 택한 케이스였다. 그리고 당시 케니 클락, 케니 드류 등 재즈 뮤지션 상당수가 유럽에 거주하거나 순회 공연을 하면서 알버트 망겔스도프, 프랑코 암브로제티, 바네 월랑 등 유럽 신인 뮤지션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보다 먼저 스윙 시대 거장 콜맨 호킨스나 시드니 베쉐 등이 유럽 생활을 통해 동지에서 재즈 붐을 일으킨 바도 있다.
덱스터 고든의 경우 뮤지션으로서의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인기를 가졌으나, 재즈에 새로운 흐름이 밀어닥치고 자신의 연주에 대한 어떤 위기 의식을 느꼈으며, 무엇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 덜한 유럽인들에 대한 호감과 본토 재즈 뮤지션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환호하는 그들에 대한 기대감이 그를 미국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62년 11월 덱스터 고든은 비 미국계와는 처음 으로 유러피언 리듬 섹션인 안틀리 좌른트리오와 (Cry Me a River)를 취입하면서 14년간의 코펜하겐 생활에 들어갔다. 63년 케니 클락 버드파웰 등 유럽 거주 과에 자신이 가장 경애하던 프랑스 출신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셀롯과 함께 생애 최고 명반이라 일전는 (Our Man in Paris)를 파리에서 녹음하였다. 원혼 쿼텟으로 첫 곡 'Scrapple from the Apple' 에서 상숭 하강의 천편일률적인 곡선을 그리지 않고 멜로디를 리프로 변주하며 도처에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솔로 구성은 아마 소니 롤린스의 (Blue Seven)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60년대 최고의 연주와 정력적인 활동으로 50년대 중반 이후의 공백을 만회하고 블루 노트와 스티플 체이스 등에서 많은 리더 작을 발표하였다. 30년 지기 케니 드류와 닐스 페데르센이 첫 상봉을 한 64년 블루 노트작 (One Flight Up), 스페인 출신 맹인 피아니스트 테테 몬테리우를 이끌고 스티플 체이스에서의 일련의 앨범 들 (Cheese Cake), (King Neptune), (I Want More), (Love for Sale), (It's Youer Go), (Billie's bounce)등을 취입하며 (스티플 체이스에서 레코딩된 것이 아니라 스티플 체이스가 음원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 바쁜 일정을 보내었다. 그는 76년에 미국으로 완전 돌아오기 이전 잠시동안이지만65, 69, 70, 72 년 4차례 본국 체류를 하였는데 그 첫 번째 기간인 65년 미국서 녹음한 (Clubhouse), (Gettin'Around)가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블루노트와 멀어지게 되었다. 당시 덱스터 고든의 음악은 유럽에서 명성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퇴조 기미를 보인 하드 밥으로 승부하기엔 벅찬감이 있었다. 이 점에서 보면 프리, 모달, 퓨전의 거센 풍랑에 갈곳을 잃은 하드 밥이 오히려 숨을 더 크게 쉴 수 있는 공간이된 유럽을 발판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결론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으로 다시 돌아온 덱스터 고든은 65년 말부터 67년 봄까지 다시 침묵 기간에 들어갔다. 67년 7월 21일 벤 웹스터의 출연으로도 유명한 코펜하겐의 몽마르트 재즈 클럽에서 다시 나래를 편 텍스터 고든의 명 라이브 음반이 탄생하였다. (Montmartre Collection)이란 제목의 2장 짜리 이 실황 앨범에는 'Doxy', 'Sonny Moon for Two'란 소니 롤린스의 오리지널 곡이 있음에도 불구 그의 영향이 엷어진 대신 탁 하고 깊어진 음색으로 더욱 여유롭고 음 하나 하나의 의미가 심화되어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발라드 곡 'Body and Soul' 을 들어보면 콜맨 호킨스 블루 버드 판에 필적할 만한 묵직하고 깊이를 재기 힘든 심연 같은 감정이 담긴 명연이란 감탄이 나온다.
67, 68년 사이에는 벤 웹스터, 슬라이드 햄튼 외 유럽 연주인들과의 공연과 음반에 참여한 후, 69년 의미 깊은 두 번째 귀국이 이루어졌다. 여 기서 덱스터 고든은 프레스티지와 계약을 맺고 (Tower of Power)를 발표한 것이다. 제임스 무디와 테너 배틀을 펼친 이 음반은 개인적으로 제임스 무디와 배리 해리스의 연주에 다소 불만 이 있지만 텍스터 고든과 알버트 히스가 연출한 열기는 너무도 진한 것이었으며, 하드 밥이 잊혀져 갈 시기에 탄생한 짙은 향수를 간직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운 비트지 편집장 댄 모겐스턴이 '덱스터 고든은 장인이라'라고 찬사를 보내며 (Tower of Power)에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완벽한 음반이란 평을 내렸다.
이후 69-75년 6년 사이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계속 연주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활동을 간략히 살펴보면 찰리 파괴 메모리얼 콘서트나 72 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참여, 자니 그리핀, 진 아몬즈, 소니 그레이, 케린 크록등과의 공동리더작, 찰스밍거스, 조지 그룬츠와 협연, 정규, 비정규를 합쳐 30여 매의 리더작 취입 등이다. 76년 피아노리스 트리오 앨범 (Lullaby for a Monster)를 마지막으로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완전 귀국하여 그해 10월 뉴욕 재즈 신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블루 미첼 그룹에 잠시 가입한 후 스티플 체이스에서의 마지막 작품이자 14년만의 뉴욕 녹음 (Biting the Apple)을 취입하고 뒤이어 메이저 레이블 CBS와 계약을 맺고 스피리츄얼한 연주로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실황(Homecoming)을 발표하였다. 덱스터 고든은 75년 경부터 소프라노 색소폰을 가끔씩 연주하곤 했는데 콜트레인의 사망 8년이 지난 시점부터 그의 영향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약간은 의아스러우며, 75년 재즈 신에 복귀한 아트 페퍼도 77년 빌리지 뱅가드 실황에서 콜트레인 증의 프레이즈를 다용하는 공통적인 아이러니를 보여 주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덱스터 고든의 활동은 예전처럼 활발한 것은 아니었고 파워와 테크닉의 퇴조 기미까지 보여졌다. 78년 키스톤 실황이나 80년 (Gotham City) 등 몇몇 수작이 있고, 여러 재즈페스티벌에 출연하였지만 이 역시 노쇠함은 숨길 수가 없었으며, 녹슬지 않은 것은 경륜에서 나오는 음의 생명감, 진부함이 없는 솔로 구성 정도였다. 83년 건강상 이후로 재즈와는 거리를 두고 지냈으며, 서두에 언급한 영화 「Round Midnights을 위해 86년 다시 일선에 나섰으나, 이듬해 토니 베넷의 음반에 참여한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90년 4월 25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이상 덱스터 고든의 연주 생애를 살펴보면 그리 특별난 점은 없다. 드라마틱한 인생도 아니고 (재즈 뮤지션의 삶이 보편적이지 않기에 이 표현은 어폐가 있지만 자극적인 몇몇 타 뮤지션에 비해서) . 재즈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시도도 없었으며 복잡한 구조에는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허비 행콕이 버드파웰의 유럽 활동 시절 연주를 담은 숨겨진 녹음테입까지 입수해 가며 혼신을 다해 만든 Round Midnights의 사운드 트랙 편곡이 복잡하다고 맘에 들지 않는다며 삐에르 미겔롯을 요구하였겠는가!
하지만 순간을 위해 이 정도 최선을 다하는 뮤지션을 보기 힘들 것이며, 방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감동을 위해 연주 속에서 무궁 무진한 멜로디로 감상자를 무아지경으로 몰고 간 그였기에 충분히 위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Dexter Rides Again)에서 (Round Midnight)까지 초지일관한 연주로 수많은 명반을 탄생시킨 그는 가장 재즈적인 플레이어였으며 하드 밥의 진정한 구도자였다 .
앨범 리스트 :
[DEXTER GORDON QUARTET ]
BILLIE`S BOUNCE (제작사: STEEPLE CHASE)
BOUNCING WITH DEX (제작사: STEEPLE CHASE)
CHEESE CAKE (제작사: STEEPLE CHASE)
IT`S YOU OR NO ONE (제작사: STEEPLE CHASE)
THE APARTMENT (제작사: STEEPLE CHASE)
STABLE MABLE (제작사: STEEPLE CHASE)
BITING THE APPLE (제작사: STEEPLE CH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