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돈돈. 세상 웬만한 것은 돈 주고 사야 한다. 재화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뭐 자급자족하지 않는 한, 많은 것들을 화폐를 주고 살 수 밖에 없다.
직접 집을 지을 수 없기에 아파트도 사야하고
쌀을 지어먹을 수 없기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10킬로짜리를 마트에서 사다 먹는다.
옷과 컴퓨터 신발 책 위장약에서 무좀약까지, 뭐 이런 것 다 사는 거다. 그런데
서비스를 통해 재화를 만들어가는 내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것 사야하지만
때론 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잘 매지도 않는 넥타이나 혹은 허리띠 또 남성용 로션 같은 것도 직접 사서 쓰기는 좀 그렇다, 고 생각하는 편이다.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이다. 봄에 로션이 떨어져서 사긴 샀는데 좀 그랬다. 얼마지 않아서 곧 선물을 받았고 그건 다른 사람에게 곧바로 주었다.
꿀이나 복분자 담긴 술 이런 것은 거의 사지 않는다. 다 선물 받아서 때운다.
그리고 나 역시 복분자를 담아서 선물하기도 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잘 챙겨두었다가 남에게 주는 편이다. 외국에 나가면 면세점에서 친구들 위해 마일드 세븐을 몇 보루 사는 것이나 또 옛 애인을 위해 아이크림(엘리자베스 아덴이었을까. 이런 것 부피도 작은 편이다)을 사서 가방 저 깊은 곳에 감추는 것 또한 즐거운 일 아닌가.
큰 아들로 커서 명절이나 소풍 때 엄마는 꼭 새 옷을 사주셨고 지금도 그런 선물을 받는다. 내 오래된 옷을 동생들이 물려받았을 것이다. 복 받은 편이다. 뭐 받기 좋아하는 놈 혹은 복 많은 놈 아니면 공짜 좋아하는 놈이라 할지 모르지만 사서 주는 것 말고 또 선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내 정서가 그렇다는 말이다. 누가 그렇다고 좀 말좀 해주라.
내가 받는 선물이라는 게 주로 학부형들 혹은 제자들 혹은 생일 선물로 가족들에게 받는 편인데 누가 뇌물에 가까운 선물은 주지 않는다. 파워맨이 아니고 관리도 아니니 당연한 일. 참고로 나도 애들 스승의 날, 담임샘께 선물하는 것이나 친지 자녀들 졸업 입학 때 선물은 반드시 하는 편이다. 음 쓸데 없는 말로 아내는 선물 할 때 그릇 선물을 좋아한다. 주로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선물한다.
잔소리가 길었다.
선물을 받았다.
무얼 받았냐고? 지갑과 허리띠.
누가 주었냐고? 나보다 나이가 한 20은 더 잡순 양반한테. 전에 결투신청도 했었는데. 오른 뺨을 우너하면 왼뺨도 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라는 지서스님의 실천인지, 참
받아야 할 이유는 뭐냐고? 글쎄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사실 왜 없겠는가).
그냥 그 때, 체 게바라 얼굴이 든 3페소 쿠바 돈을 드렸을 뿐. 지갑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드렸는데 혁명은 나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
선물이라는 게 그렇다. 받았는데 솔직히 맘에 안 들 수도 있다.
신발은 클라크, 비누는 아이보리, 치약은 죽염, 이발은 옛동네(함부로 미장원에 들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잘 안 바뀌는 것들이 있다. 의류나 액서서리는 취향이나 사이즈와 관계가 깊어서 바꾸는 불편이나 오래 묵히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근데, 이거이 타임리 히트고, 믹스 앤 매취라.
사실 지갑을 잃어버린 상태다. 근데 이 양반 지갑에다가 허리띠까지 선물로 보냈다.
아 참, 다큐 찍는 이감독하고 오래도록 술을 마시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술 마시고 택시에 내려놓은 것 같다. 카드 여러 장, 주민등록증, 가끔 써먹던 기자증 그리고 돈 한 오만원(그날 지갑에 넣지 않고 주머니에 넣은 현금 15만원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사진 등. 카드정지 시키고 며칠 후면 빈 지갑이라도 올 줄 알았다. 안 왔다. 보름을 지갑이나 카드도 없이 지전 몇 장 넣어두고 다녔다.
반지갑은 명품 로고가 박혔다. 허리띠도 마찬가지다.
내 허영과 사치를 만족해주는 만큼 미안한 마음이 팍 든다.
무두질이 잘 된 검정색 지갑은 손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니은 자로 아랫부분을 파서 쥐기에 편리하게 생겼다. 박음질도 정확하고 태국산 가오리지갑처럼 뻑뻑하지 않고 전에 쓰던 금강 지갑처럼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입술이 단정한 옛 애인처럼 생겼다.
음, 허리띠는 길이가 길어서 적당히 잘랐다.
핸드백이 없는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술상에 앉게 되면 핸폰과 키 그리고 지갑과 수첩에 시계까지 이런 것들을 상위에 죽 늘어놓게 된다.
핸폰 블랙, 시계 블랙, 지갑 블랙, 면도를 안 할 때는 옷도 블랙이다. 역을 볼 줄 아는 사람이 그랬다. 검정이 당신을 잘 지켜 줄 것이라고 가방도 가능하면 검정을 들고 다니라고.
이거 잘생긴 지갑 가죽 프레임이 휘어질까봐 바지 앞주머니에다만 넣어야겠다.
값나가는 시계를 차게 되면 확실히 긴장감이 더해서 잘 잃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지갑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술 마실 때 주의해야지.
이너넷을 찾아보았더니 이 제품들이 대를 물려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명품이라는 말씀. 혼자 약속해 본다. 대를 물릴 만큼 오래도록 사용하겠다는 것.
구태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서 박스에 박힌 브랜드명은 ‘굳 파일’이라는 것, 흐흐 찾아 보시라.
엊그제 ‘홍도주막’과 ‘꽃’에서 꽤 많이 마셨다. 3차로 서신동 가다가 곧 바로 집으로 고했다. 택시비 3만 5천원. 취한 정신에 집에 오자마자 지갑이 있는가 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잘생기고 단정한 지갑은 안녕했다.
거저 얻는 선물보다 비싼 것은 없다는 몽테뉴의 말이 생각난다. 비싼 마음을 받은 것 비싼 걸로 갚아야 할 일. 선물은 곧 그 사람이다. 그러면 선물을 준 사람이 명품이란 말인데, 허참 부정할 수가 없다. 명품지갑을 받은 나는 이 영감님에게 결투를 하자고 했던 것을 거둘 수밖에 없다.
그나 저나 뭘 드린다냐? 참. 아이크림 두개는 진즉 떨어지고 없는데....
첫댓글 두분의 오고가는 정...읽는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선물받으신거 축하드리고... 결투철회야 실력으로도 당연 일찍 하셨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이크림 다 쓰셨다는 건 옛 애인 닮은 사람이라도 만나셨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내참 윗분들 노시는것을 뭐라고 표현해야하나. 귀엽다고 허면 싸가지가 없을 거이고. 백귀신형님 난 거의 형님이 부러울때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