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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가 길목에서
커브 천천히 쫌!~~
낙동강을 지나오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봉화-예천지역을 벗어나니 강폭은 넓어지고
강 양쪽을 모두 못보니 아쉬움이 크다할 수 있다.
오늘 지나는 구간 역시 지난구 간과 같은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워커라인이다.
16년 11월 26일
오늘은 비소식이 있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 새벽 첫차로 지난번 8구간 마지막길인 현풍으로 간다.
현풍에서 직선길을 달리고 시멘트길 오르막 하나 입에 단내 나도록 오르면 다람재다.
다람재에서 본 아침 일출
낙동강 옆으로 자전거길이 보인다.
시멘트길을 지나서 짜잘한 오르막 오르면 넓은 공간에 2층 규모의 정자가 나오고 그곳 다람재에서 본 도동서원(조선 5대 서
원중 하나)이다.
조선 단종과 연산군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설립된 도동서원이 낙동강과 함께
눈에 들어 온다.
도동서원앞 은행나무는 400년 이상된 나무로써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 선생이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을날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은행잎이라고는 한잎도 남기지 않고 나무주위로 땅으로 떨구어 놓았다.
김굉필은 연산군때 갑자사화(연산군 생모 복위 문제)로 한명회 정창손은 부관참시 당하고
윤필상.이세좌.김굉필은 죽었으며 많은 선비들이 귀향을 갔다.
도동서원은 도산서원(안동) ,옥산서원(안강), 병산서원(안동), 소수서원(영주)가 함께 조선 5대 서원의 하나이며
도산서원.병산서원 도동서원은 모두 낙동강가 전망좋은곳에 자리한다.
도동서원을 지키는 대문 수월루 때문에 도동서원의 특징이 잘 안 보이고
먼발치에서 잠시 쳐다보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
그리고 몇번 와본 곳이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 가보기로 하고
조선시대의 서원에 들어 가야하니 양반임네 하고 팔자걸음에 헛기침이 나오려한다.
도동서원(한훤당 김굉필)
영주 소수서원(주세붕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안강의 옥산 서원(이언적을 덕행을 기리는 사당)
도산서원(퇴계 이황)
병산 서원(서애 류성룡)
서원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니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글이라도 읽으면 머리라도 좀 깨우쳐 질까?
조선의 모든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것이 목적이었고
그외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림(유교를 닦는 선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서원의 숫자가 너무 많아 경제적인 폐단이 너무 심각했다
고종때 흥선 대원군이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서원의 모든 특혜를 없애고
1000개중 47개만 남겨 두고 철폐하기에 이르렀다.
용머리
서원 건물 석축에는 4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낙동강물이 이곳까지 올라오는것을 막기 위해 물의신인 용을 조각해 둔것이다.
용이 승천을 하려고 여의주를 입에 물었으나
계단옆의 하나만 오래된것이고 나머지 검무스레한 3개는 새로 만들어 놓은것이다.
다람쥐 모양으로 조각된것도 있고
서원 철폐령
조선시대때 서원이 많아 지면서 자연스레 그 폐단이 이어진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유지하려는 수단과 세력을 확대 형성하려는 의도가 앞서 서원제도는 폐단을 낳기 시작하고
학연으로 맺어진 붕당(정치 집단)은 각자의 서원 중심으로 분활되어, 여론을 형성 하면서 중앙에 진출한 자기세력 관료를
통하여 반영 시켰다.
개인의 명예를 세우는데 급급 하였으며 타당을 배척하고 헐뜯는데 열중하다 보니 선열들의 가르침은 뒷전이고
당쟁만 일삼아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는다.
서원이란 이름은 처음과 다르게 교육에서 붕당의 거점으로 변질 하였고
서원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양반,유생들은 대부분 하는일 없이 서원의 재산을 독식 하거나
백성들은 자진해서 서원의 노비가 되므로써 나라의 구역을 피하거나
어딜가나 있기 마련인 상태 안좋은 팔자걸음의 양반들이 고을을 휩쓸고 다니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은 세금이 없다보니 특권을 남용 하거나 국고를 축내고
유생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붕당에 가담하여 향교의 쇠퇴를 유발하였다.
조선시대나 지금 현시국이나 다른점이라고는 눈꼽많큼도 없을만큼 사람사는곳은 다 같은것 같다.
반대를 하기 위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고
찬성하기 위해서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건물 지으면서 인근 고을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 등록 추진하겠다고 한다.
도동서원을 지키는 수문장격인 400년된 은행나무
나무 둘레 880cm, 높이 25미터
도동서원 앞을 지키는 낙동강 건너편의 개구리 산
개구리를 닮아서 이곳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도산서원.병산서원처럼 그렇게 뛰어난 경치는 아니지만
어쨋거나 낙동강변에 자리하는 전망 좋은곳
낙동강과 멀리 달성의 약산이 뿌옇게 다가온다.
오늘은 경북을 벗어나 경남 창녕군 남지읍까지 가야하는 고된길이 기다리니 도동서원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내 갈길로 간다.
이곳은 도동서원 바로옆 왕령지맥이 끝나는 부분이다.
왕령지맥은 비슬지맥 천왕산에서 분기되어 왕령산-태백산-대니산-진등산까지 31km의 산길중 그맥을 다하는곳이다.
왕령지맥
왕령지맥은 구마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공단 조성으로 대니산 아래까지 마루금은 거의 없어진 상태며
대니산 이후로는 임도길이 잘 나있어 조망이 좋은편이다.
멀리 제석산이 지척이고
날씨가 무척 쌀쌀하다.
가을철 수확이며 겨울을 대비한 준비물의 결과라고 봐야 할듯
살아있는 녀석과 이미 죽은 녀석들
이래나 저래나 밥상위에 올라오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결과물로 탈바꿈한다.
찬바람 앞의 코스모스
날씨가 추워지는데 애들이나 나나 정신 없기는 똑 같고
모든 녀석들이 힘이 없는지 고개를 푹숙이고 땅만 바라보는 모습이 애처롭다.
낙동강 하구둑 164km
남지까지 가야만 낙동강 하구까지 100km가 남을듯한데
길가의 무우 시레기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에 흙먼지가 가득한데
어느집 누구 밥상으로 올라갈지 모르지만 심히 걱정이다.
대구 교육 낙동강 수련원
작은애가 중1때 이곳에 수련을 왔던것 같다
최근 낙동강에 자주 가는걸 아는 녀석이 "아버지 지금 어디쯤이야?"
-"응 낙동강 수련원"
"아!~ 거기 알아"
제가 어딜 돌아 다니던 "낙동강 수련원"이라면 알아듣는 녀석
이곳부터 시멘트길 옆으로 농사용 재료인 보온 천을 깔아두어 달리는데 편하다.
시멘트와 천 그리고 녹색과 억새길
끝없이 펼쳐지는 가야할길
멀리 대니산이 보이지만 저곳 지맥 마루금은 구지면 논공단지 조성으로 완전 끊어지고 거덜난 상태이다.
앞은 자동차 주행 테스트 하는곳이고
낙동강변의 이노정(二老亭)가는길
이곳 모퉁이만 돌아서면 이노정이 있는곳
이노정 앞에서 본 낙동강 풍경
4대강 사업으로 물이 많아지면서 강가에 있던 버드나무 종류는
거의 고사 직전이거나 죽은녀석들만 가득하다.
낙동강변에 자리하는 이노정(二老亭)
이건물은 앞서 지나온 조선 성종때 학자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이 연산군(4년) 무오사화때 화를 입은뒤
이곳에서 서로 만나 풍류를 즐기며 후학들을 강학시키던 곳이다.
무오사화:조선 연산군(4년때) 유자광을 중심으로 훈구파가 김종직 중심의 사림파에 대해 일으킨 일
김종직의 제자 김굉필,정여창, 김일손 등 영날 출신 신진사대부 모두 화를 당함
이노정이란 김굉필,정여창 두분을 칭하여 붙인 이름
기둥위에 2중보를 설치 하였고 서까래는 한줄로 사방 처마끝을 위로 올리는 전통 방식 그대로며 멋지게 지었다
대문이 잠겨있어 담넘어 본 모습
금방이라도 주인장 께서 방문을 열고 나오실듯
지나온 낙동강 풍경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는 모두 고사하고
4대강 후에 새로생긴 땅에 새로운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은 스스로 살아나는듯
아직 점심 무렵이 안되었지만 아침겸 점심으로 식당에 들어가 보니 외국인 여성 두분이 일하고 계시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무척 친절하시다.
이것저것 한접시 잘 퍼담아 먹고 나오려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직 점심전이라 반찬이 별로라고
계란 반숙 하나와 뜨거운 숭늉 한그릇 주시는걸 이렇게 비닐 팩에 담아 나온다.
추운날 이렇게 해서 주머니에 넣으니 얼마나 따뜻한지
식당에서 나와 낙동강가 나무테크길을 우회해서 도로옆에 자리하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 선생
묘역으로 가보기로 한다.
현풍 곽씨 묘역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겠지 그리고 곽재우(郭再祐) 이글자만 찾으면 될것 같지만
묘비에는 再虞(재우) 글자가 없고 忠翼(충익) 두글자만 있을뿐이었다.
묘비마다 再虞란 글자만 찾으면 되겠지하고 한문을 읽어가며 한바퀴 다 돌아 볼때까지 곽재우 장군의 묘를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이묘비는 아니겠지 했던 작고 볼품 없는 무덤이 곽재우 장군의 무덤이었다.
장군의 시호가 충익인줄 알지 못했던게 실수였고 이곳에서 곽재우 장군의 묘를 찾으려면 사전 지식하나를 알고 가면 쉽게
찾을 수 있거나 안내판을 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안내판을 보지 않고 자력으로 장군의 무덤을 찾아보는것도 큰 의미라 하겠고
의병장 곽재우 장군은 생전에 자신의 무덤에 봉분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왜군들이 왕릉을 파헤치고 종묘를 불살랐는데 신하된 자의 무덤을 어찌 번듯하게 꾸밀 수 있겠느냐며...
이 사실을 모르고 가면 장군의 무덤을 쉽게 찾을 수 없을것 같다.가장 낮고 제일 볼품없는 무덤이 바로 장군이 무덤인것이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 묘역 안내도
넓은 주차장에 들어서면 장군의 무덤을 쉽게 찾을 수 있을것 같지만
안내도 보지않고 장군의 무덤을 찾는다는건 쉽지 않다.
혹시라도 여길 지나는 분들 계시다면 자력으로 꼭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장군의 증조로 부터 5대에 걸친 선영
한음 이덕형의 후손인 현풍 현감 이웅인이(영조 7년) 장군의 묘소를 참배한 후에
장군의 후손과 사림을 설득하여 낮으나마 봉분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낙동강을 지나며 꼭 찾아 보고 싶었던 서애 대감과 망우당 곽재우 墓
당대 최고의 정승이었던 서애 대감
그리고 최초의 의병장이셨던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묘
두분의 묘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않아 그래서 더욱 빛나보였던 곳이다
장군의 5대조 선영이 있는곳을 뒤로 하고 다시 낙동강가로 간다.
산소로 오르는 길로 맨뒤의 좌측 가운데 묘
구지면과 고령군 우곡면을 이어주는 다리
가운데 멀리 보이는곳은 고령군 덕곡면 뒷산인 수학산이고
그 앞으로 낮은 산들은 칠봉지맥의 날머리 부분이다.
칠봉지맥?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갈라진 수도지맥 수도산 서봉에서 분기되어 다시 금오지맥으로 넘어 오다가
동쪽으로는 백천을 가르고 서쪽으로는 수도지맥과 함께 회천을 가르다가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서 낙동강을 만나면서 맥을 다하는 58,8km의 산줄기이다.
실거리 63km
가운데 보이는 짜잘한산을 넘어야 하고 그넘어로 덕곡면의 삐끔산과 다남산이 보인다.
4대강 사업으로 물고기 폐사에 이어 물가에 자라던 버드나무가 수만 혹은 수십만 그루가 물에 잠기면서 고사했다.
그동안 강가로 달리며 간혹 한,두그루 정도는 살아 있었는데 최근에 모두 죽은듯 톱으로 베어지고 없었다
생태계를 살린다며 시작해서 하천 정비 이름만 요란하게 시작한 4대강
물고기떼 죽음에 이어 녹조류 번식, 강가의 수십만 그루의 버드나무 죽음을 초래함으로써 실패한 사업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자연은 스스로 복원된다고 하지만 4대강 복원은 시급한 문제로 남고, 4대강 철저한 검증을 한다고 했던
빅근혜 정부는 도대체 무얼하는지...
낙동강가의 무심사로 가는길
작은 절이지만 낙동강을 찾는 분들께 숙식을 공짜로 제공 한다는곳이다.
어디로 가는가
왜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눈오고 비오니 춥고 서글픕니다.
무심사 일주문이라고 해야 하나
커다란 돌이 좌,우로 버티고 서있다.
멀리 금강 역사도 무섭게 서있고
무심사 오르기전의 대나무 숲도 보이고
오래전 TV문학관에 나온곳이라는데
극락보전에는 석조여래 좌상 부처님을 모셨는데
원래는 성주 연화사(현 벽안사)에 있었는데 그곳에 계시던 스님이 이곳으로 모셔 왔다고 한다.
무심사에서 본 지나온 낙동강길
앞은 칠봉 지맥길 날머리 우곡면 객기리
보이는 산중에서 가장 높은곳이 칠봉지맥의 맹주인 칠봉산이다.
지난날 추산 대장님과 야간에 저곳에서 아주 생 고생했고 그날 이후로 추산 대장님은 지맥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빨리 정신을 차린 추대장님이 부러울뿐이고
낙동강과 좌측으로 대니산 정면으로는 비슬산이 보인다.
무심사 뒷편에서 본 덕곡면의 수학산
그리고 낙동강과 회천(31KM)이 합수되는 지점의 덕곡면 사무소 방향
이곳에서 보는 조망도 아주 좋다 저녁무렵에 이곳에서 일몰을 본다면 황금빛으로 물들은 일몰을 볼것 같은데
잠시 앉아서 구경하다가 짜잘한 오르막길로 오른다.
국토종주길
낙동강 하구-상주 상풍교(312km)- 문경 새재길(100km)-남한강길(136km)-인천앞 바다로 가는 아라길(21km)
모두 569.6km 국토 종주길 그중에서 경치가 아름다운곳 20곳중에서 한곳이란다.
자전거 타고 짜잘한 오르막 오름은 그리 쉽지 않을듯 하지만 무심사에는 보던 낙동강과 회천의 합수지점 경치가 아름답기는
해도 낙동강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뛰어난 풍광은 아닌것 같다.
이방면 수구레 국밥은 완전 별로라서 권하고 싶지 않음
무심사에서 감나무밭 자두밭을 넘어와 만나는 소똥 향 가득한 우산 농장
대규모의 소 사육장에서 풍기는 향기야 말로 진짜 숨막힐 정도로 찐하다.
오늘 가야할 남지철교
두뼘정도 되니 금방 갈듯
멀리 합천 창녕보가 보인다.
좌측 높은산은 산토끼의 노래로 유명한 이방면 고장산
산토끼 노래를 작곡을 하신 이일래 선생님께서 이방면 고장산에 뛰어 노는 산토끼를 보고 지으신 노래
초등학교때 부르던 "산토끼 토기야 어디로 가느냐..."
지나가는 자전거 타신분께 부탁해서 인증담고
배낭은 작아도 무게가 좀 나가는편이고...
먹을건 있어도 안 먹어서 언제 사서 넣은건지 ...
합천보 관리 사무실
합천보를 건너가면 조금 쉽지만 돌아 가는길이고
제가 가는길은 낙동강가로 가는길이기에 잠시후에 길은 없어지고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곳이다.
수도지맥 날머리 부분이다.
앞은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이고 그옆으로 삼학리 배수 펌프장이다.
수도지맥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분기되어 수도산-우두산-만대산-솜등산-성산으로 이어지는 실거리 113km의 능선이다.
지나온 합천보
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산으로 가야만 하는곳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제글을 읽고 이길로 가신다면 대략 2KM 가시밭 길이며
고생 좀 해야 한다는것 계산해서 가시기 바랍니다.
초입에서 산소로 오르는 산길이 어지럽게 이어지다가 산능선에 오르면 이후로는 길은 없어진다.
낙동강 옆으로 길은 끊어지고 산으로 무작정 오르면 잡목이 이어지고 우측으로 낙동강이 지척이다.
인적없는 동네 산길이라 덩쿨이 심하고 길이 있건없건 가야하는곳이다.
멀리 산토끼의 배경이던 고장산이 보이고
앞은 지나온 잡목지대
잡목길 돌아 다니다가 어느 한적한곳에 지난 추석때 벌초한 무덤이 보이고 나서야
사람 다니는 길이 희미하게 나온다.
지맥길이나 동네 뒤산의 특징중 하나라면 길없는곳을 지날때 좌,우측으로 무덤이 있는지 확인하면
그 이후로는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감은 적중하고 우측 낙동강가 마을로 내려오는 좋은길을 찾아서
지나온 산은 둔지산이고 앞의 마을은 이방면 현창마을
현창 마을로 내려오면 낙동강옆으로 자갈길이 이어진다.
현창마을에서 이어지는 낙동강 자갈둑방길
적포교
자전거길은 의령군으로 건너가는 적포교를 지나야 한다.
창녕군 유어면으로 진행
지나온 직선길
가야할 길과 앞은 창녕군 유어면
시남리에서 이이목으로 가는 비리길이 새로 생긴듯하다.
낙동강길 중에서 가장 넓은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대략적인 거리는 강넓이 1KM
6,25전쟁때 이곳으로 북한군이 넘어왔던곳이다
전쟁 이야기는 다시 하기로 하고
비는 많이오고 발목 통증은 심하고 이쯤에서 정리하고 집으로 갈까 생각에 유어면 자장면집에 들러
자장면이 하나 시켜놓고 창녕 택시를 불러보니 언제올지 기약도 없고
비는 오지만 갈때까지 가보자 생각에 다시 걷는다.
진창 마을을 지나며 산넘어 낙동강가이다.
고곡리 방향으로
79번 지방도로를 버리고 시멘트 임도길로 오른다.
서글픈곳이지만 이곳은 모두 6,25 전쟁터이며 격전지이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인가
이곳도 벌써 4번째 지나는 곳이며.
6,25전쟁때 미 24사단 19연대가 지키던곳
지난날 이곳 강가 능선에 전사자 유해 발굴지역을 지날때 땅을 파고 작은돌을 축대로 삼아 정성것 쌓아 전사자를 묻어 둔곳
을 지난적이 있는데 분명 서로 친한 전우 였거나 형제가 아니였겠나 그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시남지 저수지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분께 부탁해서 한장 담고
뛰다가 걷다가 잠시 사진한장 찍고나니 추워진다.
남지읍 시남리
북한군이 이이목 나루를 건너와 이곳을 지난곳이다.
비는 추적추적 서글프기만 한데...
이제부터 낙동강 방어선 돌출부 전투(박진전투) 지역을 지나게 된다.
낙동강 방어선 워커라인 왜관 -마산 진동리 구간
자료 참고
창녕군유어면-창녕군 남지읍까지 22km 미군 24사단 방어선
돌출부 전투
어봉리 클로버 고지 전투
시남리로 가는 이이목 고갯마루
앞은 이이목 나루터
이이목 나루터
이이목 나루의 오여정
낙동강 우측으로 모두 6,25 전쟁터
박진나루로 가는 둘레길
경치가 좋은곳이다.
비리길에서 본 낙동강
월평리
월하리 마을
북한군이 이이목 나루뿐만 아니라 강건너 낙서면 전하리 마을에서 이곳 월하마을로 도강 한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화로운 월하리 마을의 단무지 무우 수확
비는 오고 단무지 수확되는날
이런날 밭에서 일하면 신발에 달라붙은 흙 때문에 걸음 걷기가 불편할정도인데
단무지용 무우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무우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생강은 작년에 비해서 가격이 형편 없어 20kg한자루 2만원이라고 인건비도 안나온다고 하시던데
미군들인것 같은데 월하 마을에 봉사 나온듯
웃으며 태권도 겨루기 자세를 잡아 주시니 태권도 몇단쯤 되어 보인다.
이분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미군들이 얼마나 많이 전사 했는지...
see you...를 외쳐주고
이곳에서 박진 전쟁 기념관으로 향한다.
박진전쟁 기념관
6,25전쟁 낙동강 방어전투중 가장 치열했던곳
다부동 전투
여항산 661고지 전투
영천 전투.
안강,기계 전투
박진지구 전투
박진지구 전투 개념도
참고
휴일이라 관람객분들도 보이고
박진 전쟁 기념관 앞
박진지구 전적비
박진교
박진지구 전적지를 보고 나와 오늘 마지막 구간인 개비리길로 간다.
개비리란:개 한마리 겨우 지나간다고 붙여진 이름
앞에 보이는 산줄기는 남강 기맥 능선 넘어로 6,25 당시에 북한군 사령부가 있던곳이다.
남강기맥 137km
백두대간 남덕유산(봉황산)에서 발원한(참샘) 남강은 낙동강 제1의 지류로써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남덕유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며 덕천강 합류하여 다시 진주에서 북동으로 방향을 틀어
함안천과 합류하며 멀리 경남 의령군 성산면과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사이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하는
유역면적 3467.52 km² 강길이 186.3km이다.
기존의 진양기맥(156.8km) 남덕유-한우산까지 107km 우봉지맥길 한우산-남강과 낙동강 합수점까지
30,6km 도상거리 137km 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구진산
전쟁 자료 찾는다며 이곳의 산들은 모두 가본 산인데
구진산에 관하여
남강 기맥 날머리로 가는 능선
비는 그쳐지만 아직도 갈길은 남았고 해지기전에 남지로 가야하는데 ...
잠시 속도를 내본다.
창아리 마을
창아리 마을
영아지 마을
영아지 마을
개비리길 초입의 화장실
지난 겨울 워커라인 340km 할때 정명 대장님과 저곳 푸세식 화장실에 들어가 달콤한 잠을 자긴했지만
아우 냄새...지금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냄새가 워낙 심하니 문을 열어 두었다.
개비리길
개비리길 절벽에서 보는 낙동강은 무척 아름다운곳이다.
그렇게 꾸미지도 않은 좁은 길을 걸어볼 수 있음을 감사 드리며
좁은길따라 이어지는 개비리길과 낙동강
낙동강 전체 구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구간은 얼마되지 않은곳이기에
한번쯤 찾아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초겨울해는 벌써 떨어지고 낙엽만 무성한 길을 홀로 걸으니 무섭기까지 하다.
대나무 숲을 지날때마다 머리가 곤두 서는듯
후다닥 지난다.
개비리길 끝날 무럽에 만나는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안내판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곳 남강기맥이 끝나는곳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을 만나 끝맺음 한다는 산자분수령에 의해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저곳까지
물길 186.3km를 흘러 경남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와 경남함양군 대산면 장암리 사이에서 보다 큰 창녕군 남지에서
낙동강과 만나며 남강 또다른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고 낙남정맥 광려산에서 시작하는 화개지맥 34km
열왕산에서 분기되어 화왕산을 거쳐 지나는 화왕지맥 36.7km
3개의 지맥이 이곳 낙동강과 남강이 합수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한다.
이야기 한토막
40년전 이란다
이곳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점 옆 동네 지정면 사람들이 강건너 창녕군 남지 장날 시장보고 오는길에
나룻배에 정원 20ㅡ30 명이 타야하는데 약 100명이 타고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곳을 지나다
두물머리에 소용돌이치는곳에 이르러 배가 전복되는 사고로 모두 익사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날 교통편 문제로 저곳 낙동강을 헤엄져 건너려고 했는데 지나가던 주민이 죽으려고 환장했냐며 해주신 이야기
화왕지맥 날머리 부분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낙동강가로 좀더 진행해서 남지철교 앞에서 끝맺음한다....
발목 통증으로 좀더 빨리 진행하지 못해서 결국은 밤이 되어서야 한구간을 마치게 되고
이제 남은 거리는 100km 지금까지 진행한 누적거리 435km
아름다운 낙동강 꼭 가봐야 할곳
1.태백 구문소 (천년기념물417호)
2.봉화 적막강산 (재산면 갈산리-명호면 합강3km 인위적인것은 아무것도 없는 구간)
3.청량산 선유교에서 본 병풍대 (신선이 놀다간듯한 모습)
4.안동 쏘두들에서본 외병대(고산정) (한폭의 그림같은곳)
5.안동 병산서원과 병산 (병산서원에서 본 병산)
6.안동 하회마을(부용대에서본 하회마을 풍경)
7.상주 경천대(정기룡 장군과 명마 이야기)
8.상주 중동면 우물리 수암바위(보현지맥 날머리 수암바위에서 본 낙동강)
9.칠곡 호국 평화공원
10.남지 개비리길
그외
안동 "농암종택".
현풍 "도동서원"
이방면 "무심사"
창녕 "박진지구 전쟁 기념관".
첫댓글 발목이 아프면 좀 쉬어가셔야지요.
너무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화장실 얘기를 보니 전에 비파님과 동계 지태한다고 정령치 화장실에서 쉬면서 곶감 먹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아스팔트길 걸으니 불이 나던데 괜찮으신 모양입니다.
가볼일이 있을런지....
수고많으셨습니다.
정령치 화장실은 냄새가 덜나는 편이고 이쪽은 푸세식이라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낙동강도 이제 100km 집에서 가까우니 두번만 더가면 끝날것 같구요
강폭이 넓으니 볼것도 벼로 없더군요
올한해도 이렇게 지나가니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나날 한해 마무리 잘하는 한달 되십시요
방장님 덕분에 조선중기 한국전쟁사 등 아르다운 낙동강을 다양하게 보네요.
낙동강 몇몇 짧은 구간은 급류카약 MTB로 수박 겉만 보았는데 ...
낙동강 10선중 반은 눈에 담지 못한듯 하네요.
초중고 교가에 낙동강을 들었는데 트레킹 카약 MTB로 즐겨보고싶네요.
근 몇주간 제삼리 후기 탐독에 몸은 나태한데 그래도 심장은 요동치네요.
저도 카약으로 4대강 한번 해보는게 꿈입니다.
언젠가 실현이 될것 같기도 하구요
제가 찾은 낙동강 10경 풍경은 아직 남은 구간이 있어 업데이트는 되걸 같으니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고생길~~
6.25 전쟁사 한편을 보는듯 합니다
끝까지 안전한 걸음걸음 하십시요
잘 계시죠
섬진강 1구간 끝나고 영산강으로 가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때 술한잔 해요
글 감사드리며 남은 한달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배병만 예 영산강 때 뵙겠습니다 ^^*
낙동강폭이 1km라니 신기
그리고 그곳을 북힌군이 도하했다니..
그리고
두발로 걷는시간보다 자료정리하고 작성하는게
더 많은시간이소요된듯...ㅋ
방장님은 탁월한 능력자..고생했습니다..
낙동강 강폭이 넓다는건 그만큼 볼것도 없고 평야지대가 나온다는 거랍니다.
산보다 더 많은 역사를 가진 강유역길
언젠가 한번 걸음해보시면 많은 공부가 될것 같습니다.
다음주 지부산행이죠 많은 눈이와서 모두가 즐거운 산행 되시길 바래 봅니다.
또 많은걸 배웁니다.. 조선5대서원이 몽땅 갱북에.. 그것두 안동삐알에 다있넹..ㅎㅎ
이제 쪼까남은 낙동길..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함안창녕보 지나고 임해진 지나고 본포다리 지날 기점에서 연락주세요 짬뽕 대신에 본포횟집에서 잉어찜이나 메기탕으로 엔돌핀 팡팡하게 충전시키드리리다..ㅎㅎ
ㅎㅎㅎ제가 민물고기는 손도 안되는데 짬뽕으로 하시죠
다음주중에 창념함안보 지날것 같은데 가기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올한해도 많이 고마웠구요 감사드립니다.
방장님이 다시 물길을 따라다니는걸 보니 산에 대한 도의 경지에 오를때쯤 다시 물을 찾아봐야
산과 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런 이치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ㅋ
방장님 사진보니 창원에서 자전거타고 안동댐까지 나홀로 밤새워 달렸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리고 몇년전에 호국산행때도 같이가서 구진산도 가고 크로바전투 등등 많은걸 보고 느꼈고요.
방장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힐링하는 여행되시길....
산을 알아가면서 늘 부족한 부분이 강에 대한 자료 였는데
이제 강을 알아가니 그 부족함이 조금이나마 체워 지는것 같습니다.
4대강 끝마치고 다시 100km넘는 강줄기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훗날 좋은 자료로써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구요
글과 언제나 많은 관심 진심 감사드립니다.
대단하시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멋찌시네요
홧팅
감사합니다.
얼마남지 않은 한해 정리 잘하시는 한달 되시구요
영산강으로 갈때 한번 보시죠
방대한 자료 다 읽자니 앞부분 다까먹고
남는건 5대서원,전쟁터와기념관,가볼곳 몇군데 정도밖에 나머지는 현장을 둘러봐야 실감나지 싶네요
후일 낙동강류를 지나갈때 궁금했던곳 한번더
방장님 글을 열람해보지 싶기도 하구요.
좋지못한 날씨에 수고많았습니다.
영남권으로 유교 문화가 자리하다보니 조선시대 5대 서원이 몽땅 자리하구요
양반님네들이 많으니 그양반들 뒷치닥거리하던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이번주 망덕포구에서 기분좋게 뵙도록 하겟습니다.
수고만땅하셨구요, 비오는날도 가시는군요
못말리십니다 몸을 생각해서라도 좀쉬세요
왜 대나무숲은 무서워 하십니까 ? 천하의 방장님께서요
이해 불가입니다 . 대나무가 뭐라하는지, 아님 뭣때문에 ???
몊해전에 개비리길 대나무숲에 오래된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어두운 저녁에 그길을 지날때 기억이...
지금은 대나무만 무성하답니다.
대낮에도 어둠 컴컴한 그 숲길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죠
이번주에 망덕포구에서 뵙겠습니다.
어느 정도 유효거리가 지나면
발목 통증이 온다고 하면서도
자료를 찾고 그길을 발품을 팔아
오래도록 남을 방대한 자료까지
쓰여지는 모든것들이 그져 대단하기만
합니다..
아직 산에서도 다 깨우치지 못한 저로서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이를지..
아님 평생 못해볼줄도 모르겠습니다..
남아있는 소중한 자료들도 좀더 편한 몸 상태로 안전하게
쓰여지길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대간,정맥,지맥을 하면 산을 조금 알아는 가겠지만 어느정도에서 막히는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강을 시작했는데 강따라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4대강 마치고 나면 다시 100km넘는 강을 계속이어 갈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년에면 모두 끝나겠죠
산행은 언제나 조심해서 이어 가시고 내년에 정맥을 통해서 많은 공부가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낙동강 8구간
사진과 상세한 설명
방장님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추천해주신곳중
태백산 구문소를 꼭 한번 가보고 십습니다
발품팔아 많은곳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남은 올한해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낙동강 유역으로 발생한 유교 문화권과
태백에서 안동댐까지 조망좋고 나름대로 4대강 삽질에서 벗어난곳이라 꼭 가볼만 한 곳입니다.
한달 남은 올한해 잘 보내시구요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번구간은 낙동강, 그 강줄기를 따라 흘렀던 역사와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 총집결 된 듯 합니다.
낙동강은 영남권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흐르는 강줄기라 해도 과함이 없는데... 사원문화에 대한 정리와
임진왜란과 6.25전쟁 두루두루 잘 기록하셨군요.
그라고 그 강줄기가 산줄이와 어찌 곁하여 흐르는지도 설명해 주시니...
산과 강을 다 알아야 보이는 안목을 가지신 까닭에 가능하시고,
방장님 강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기록이라 생각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과강은 서로가 하나니 내년에 4대강 중에서 가장 가볼만한곳 몇몇곳 선정해서
한번 가봅시다.
이번주말 섬진강 하구에서 보시죠
아름다운 낙동8구간
400년된 은행나무
5대서원중 하나 도동서원 수월루
멋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낙동강도 이제 2구간 남겨두고
섬진강은 한구간 남겨 두었습니다.
산을 배우고 강을 알아가니 역사공부가 저절로 되는듯 하네요
올해 대대로님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많은 사진과 애환이 서린 낙동강길
이번엔 빗님까지 발목을 잡으셧네요.
가만히 앉아서 공부 잘하고 갑니다요
비가오니 춥고, 갈길은 멀고, 발목 통증이 심하고
걸음하는것 보다 글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니
나름대로 공부는 하고 가지만 늘 부족한 강행기 입니다.
글 감사드리구요 대뽀님도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베낭들고 찍은 사진은 보기 좋습니다
격전지 들어서며 길도 젖고 맘도 젖고 쓸쓸한길
덕분에 알게 모르게 역사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몸 건강생각해 조심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지난날 야간에 걷던 그길
개비리길 초입의 잠자던 그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보니 그냄새 그대로 더군요
시간은 흘러야 추억이란게 쌓이나 봅니다.몸관리 잘하시고 어디든 한번 가봅시다
배방장님~~
글과 사진을 접하면서, 이것은 산행기의 정석이요, 교과서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군요.
참 좋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강따라 ㅈ니행하면서 인문과 역사를 배우죠
훗날 어디가서 이야기 몇마디 나누려면 꼭 필요할 자료라서 공부하는중 이죠
글 감사드립니다.
낙동강을 사이에두고
같은 민족끼리 격려하게
싸우는 모습이 그려 집니다.
하루 빨리 남북 통일이 되여서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꿈꾸며
오늘도 대단히 수고 하심
낙동강 전투지역을 발품 팔면서 자료 찾고 배우다 보니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글 감사드리며 올한해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