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외로운 바람의 사나이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
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
“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또는 몽고 평원의 게르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화려한 유럽 여행은 제쳐두고 남미 같은 야생의 문명을 보러 다녔다.
물론 동행자 없이 항상 홀로 다닌다. 이번에도 한국 가면 일본 여행이나 오래간만에 가야겠다고 했다. 온천이 나오는 지방 도시에서 자신의 말로 거지처럼 여행한다고 한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고 몇 끼씩 굶다가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자는 건 제일 싼 여인숙에서 딱 하루씩만 잔다고 한다.
여행을 하자는 건지 고행을 하자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여행이다. 그것이 그가 사는 삶의 스타일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인생이 바로 ‘방랑’이라고 했다. 방랑 같은 인생 속에서 그는 매일을 방랑하며 사는 셈이다.
한국에서 음식점을 하며 돈도 어지간히 벌었는데 이혼하는 바람에 거의 다 주고 자기는 빈 주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살아가는 데 돈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움직이면 돈이 생기고 있는 만큼 쓰면서 사는데 돈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어찌 어찌 하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밴쿠버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시집에서 일을 하다가 직접 스시집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오래 못하고 그만 두었다. 다음에는 작은 트럭을 하나 사서 잔디를 깎고 정원을 손질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단골이 생기고 잘 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그는 그 일을 오래도록 했다. 일당이 쏠쏠하다고 자랑도 했다. 어느 날 집으로 초대해서 갔더니 조그만 마당이 딸린 이층 목조집인데 전부 세를 주고 자신은 1층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람 하나 누우면 다 찰만한 작은 방 한 가운데 둥근 상 위에 양주 한 병과 치즈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집에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서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더러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가 쓰는 시는 난해하다. 그 만큼 외로운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야 겨우 이해가 가는 시였다. 가끔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일이 끝나고 나면 거의 매일 마신다고 한다. 마시다 취하면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다. 다음 날 일이 있으니 늦게까지는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은 언제나 붉은 빛으로 까맣게 타 있고 닳아 빠진 모자를 쓰고 앞에 앉으면 별로 말이 없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이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일가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다. 몇 년 전 집값이 많이 올랐다며 집을 팔아서 한국에 텃밭이 있는 작은 집을 사겠다고 했다. 집을 사면 정주를 해야 하는데 떠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아파트를 샀고 집에서 살 날자가 일 년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아 관리가 쉬운 아파트에 살기로 했다고 한다.
코비드 기간 동안 영 소식이 없더니 나를 핏 메도우 블루베리 농장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밴쿠버 병원에서 간경화가 많이 진행되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국으로 가서 죽을 준비를 했는데 정밀 검진 후 오진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했다. 어쨌든 죽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으로 한 동안 술도 안 마셨는데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술도 안 마시고 살겠느냐는 생각에 조금씩 다시 마시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오느냐‘고 내가 불쑥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씨-익 웃더니 ’지금으로서는 돌아올 기약이 없네요.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려고요.‘ 정원일은 남에게 넘겨주고 은퇴한 셈이라 일도 없고 밴쿠버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전에는 암자를 찾아 며칠씩 머물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깊은 산속 외진 암자를 찾아 전국을 일주해 보겠다고 하였다. 언젠가 스님 한 분이 당신은 중이 될 팔자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가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가에 멍하니 홀로 서있는 왜가리는 둘이 있는 걸 못 보았다. 그렇다고 홀로 서 있는 왜가리는 외로움을 느낄까? 보는 사람은 왜가리를 외롭게 여기겠지만 왜가리 자신은 지나가는 물고기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긴장하느라 외로울 사이가 없다.
“한국에 가도 외롭긴 마찬가질 텐데 어떻게 지내려고?”
걱정스럽게 내가 물었다.
“일을 계속 하면 외로움을 느낄 사이가 없는데 일을 안 하니까 힘이 들어요.
그래서 그동안 해오던 그림 작업을 더 열심히 하고. 시 쓰기도 부지런히 하면서 시집도 출판하고, 한두 가지 일들을 더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역시 여행 다니는 게 제일 좋지요.“
은퇴자의 삶에서 이럴 때 ‘바람의 사나이’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한국 가면 누님들도 찾아보고 친구들도 만날 터이니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한국에 있을 때나 캐나다에 와서나 누님들은 서로 보지 않는 사이에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큰 누님은 미스코리아 나갈 만큼 미인인데 지금도 예쁘다고 한다. 누나들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컸는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외톨이가 되었다. 자세한 가정사는 알 길이 없고 누님들은 다 잘 산다고 한다. 한번은 제주도에 놀러가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 으리으리한 신라호텔에 방을 잡아 ’나는 이런 방에서는 잠을 잘 수 없다‘고 호텔을 뛰쳐나와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들어가니 누나가 한숨을 쉬면서 “너는 정말 어찌 할 수가 없구나”하더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동생을 생각해서 좋은 호텔을 잡았는데 도저히 잘 수 없다며 뛰쳐나간 그런 동생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누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자기 취향이 아니라도 하룻밤 못 잘게 뭐냐고 내가 말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단호했다.
“아니오, 잘 수 없어요.”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왜 느끼는 것인가?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것인가.
혼자 있다는 것과 외로움은 같은 것인가.
외로움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사랑의 목마름이다.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상태이다.
사랑 밖에 있을 때 외로워진다.
사랑 결핍상태이다.
산다는 것은 함께 혼자 가는 것이다.
사람은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이다.
삶의 주체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홀로 태어나 외로울 때
따뜻한 어머니의 젖가슴이 가까이 다가옴으로써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나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이도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못하고
같이 가지도 못한다.
태어날 때처럼 홀로 가는 길이 죽음이다.
간다고 해서 정말 어딘가 간다고 생각하지 마라.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불어야 바람이 된다.
멈춰 있는 바람은 존재감을 잃어버린다.
멈춰 선 삶은 생명력을 잃는다.
삶은 부단한 움직임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한힘 단상>
「외로움은 주관적 현상이다. 인간관계가 희박하거나, 아니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친밀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에드먼드 버크는 완전한 고독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으로 보았다. 평생을 고독하게 사는 삶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외로움이 자연에 어긋난 인간의 상태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동족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게끔 창조했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철학> 노르웨이의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
긴 이야기로 커피 한 잔이 부족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내년 봄에 온양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역 앞에 있는 김시인의 단골 소머리국밥집으로 가서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다.
---------------------------------------------------Nov.10,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