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강의
반고가 쓴 한서에는 술을 백약의 으뜸이라고 했는가 하면, 왕응린이 지은 삼자경에는, 술은 사람을 늙고 병들게 한다고 하였다.
시세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여 술을 찬미했는가 하면, 잉거솔은, ‘술은 범죄의 아비요 더러운 것들의 어미’라고 하여 술을 비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술은 약도 될 수 있고, 독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음주는 일시적 자살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근심을 없애는 데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술을 적당하게 약으로 마시기가 퍽 어렵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조금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시다가, 마침내는 술이 사람을 마셔버리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라 하여 온 고을의 유생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의례가 있었다. 이를 통하여 술을 대하는 태도와 그에 따른 예법을 함께 익혔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술을 바로 알고 배우는 기회가 전혀 없다. 오다가 가다가 그저 그런 사람과 처음부터 술을 먹기 때문에, 술에 대한 상식이나 예절을 알 턱이 없다. 그야말로 술을 ‘막되게’ 배우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약으로 술을 배우기보다는 독으로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술이 취해서 길가에 자빠져 누워 있거나, 심지어 파출소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술을 잘못 알고 잘못 배운 데서 기인한다.
술은 안 먹는 것이 좋겠지만, 먹게 될 경우에는 옳게 알고 먹어야 되겠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는 졸업 전에 꼭 술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내 보낸다. 내 생각으로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하여 실시해 보았더니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술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 먹을 경우에는 약으로 먹게 하기 위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일 먼저, 술은 어른 밑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술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이지만, 나의 경험에서 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삼부자가 항상 같이 술을 마셨다.
할아버지께 제일 먼저 부어 드리면, 잡수시고 난 후 잔을 아버지에게 돌린다. 그러면 내가 또 술을 부어 드렸다. 아버지께서 잡수시고 나면 내가 잔을 받아 자작하였다. 술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따르며, 또한 두 손으로 받아 고개를 돌려 천천히 마시는 주법을 그때 배웠다.
그렇게 술을 배운 덕분에 60이 넘은 지금까지 술 때문에 실수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술은 알콜 음료로 대하지 말고 좋은 음식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술을 무슨 별난 음식이란 선입관을 가지고 마시거나, 술을 먹으면 무슨 기분풀이를 해야 하고, 무슨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술은 배고플 때 먹는 밥처럼, 필요할 때 적절히 마시는 귀한 음식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없이 마구 마시면, 이른바 술을 마시면 으레 술찌끼 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 술을 권할 때는 잔에 정(情)을 담아 주라는 말을 꼭 한다. 술은 아무나하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정을 서로 나눌 만한 사람과 마셔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단순한 알콜 음료를 잔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곡진한 정을 잔에 담아 권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술은 기분 좋을 때 마시는 것이지, 기분 나쁠 때 마시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술은 남을 축하해 주거나 자기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나누는 소중한 음식이지, 기분이 나빠서 혼자 마신다거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과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기분 나쁠 때 먹으면 화근을 만들기 쉽고, 독으로 마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버릇이 나쁜 사람은 매사에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보통 때 사람들은 각자가 ‘의식’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이것이 벗겨지고 원래의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보통 때는 점잖아 보였는데 술만 먹으면 시비를 걸어온다거나, 묵은 감정을 끄집어내어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그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좋은데 술이 그렇게 해서 그런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속을 모른 채 거죽만 보고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때는 붙임성이 별로 없고 어두운 듯한 사람이었는데, 술을 먹으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몸가짐이 바르다면, 그 사람은 본성이 좋은 사람이다. 술을 먹어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가 이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자리의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과는 속으로 절교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또, 술은 내가 먼저 사고, 대접 받은 술은 반드시 갚으라고 가르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먼저 그에게 술 한 잔을 따뜻이 대접한다면, 틀림없이 그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인상지어질 것이다. 사람을 얻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지만 술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얻어먹기만 하고 자기는 내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예의 바르다고 하겠는가? 전번에는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정으로 답례할 일이다.
이러한 이야기 끝에 나는 술과 결부된 과학적 상식의 말을 덧붙여 준다.
이를테면, 술 먹은 후 최소 3일간은 금주하라, 빈속에 술을 마시지 말라, 음주 중 물을 많이 마셔라, 해장술은 독이다, 술 먹고 노숙하면 저체온증으로 죽기 쉽다, 음주 시 담배를 함께 피우지 말라, 술 먹으면 뇌가 쪼그라든다, 도수가 낮은 술부터 먼저 마셔라 등에 대해 설명을 더하여 술에 대한 육체적 폐해를 줄이는 방법을 참고로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우리 젊은이들이여,
술은 안 먹는 것이 제일 좋다.
부득이 먹으려면 약으로 먹을 일이며
독으로 먹으면 반드시 패가망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