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보고 싶은데
김 국 자
종암경찰서 절류장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행여나 눈에 띌까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을 기웃거린다. 지금은 고층 주상복합 상가가 들어섰지만, 약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 자리에 종암 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시장 입구에 있던 옷가게, 과일가게, 신발가게, 옹기전은 사라지고 말끔하게 단장한 피자집이며 고급브랜드전문점이 들어섰다.
시장 입구에서 옷가게를 하던 중년부부가 보고 싶다. 그 분들이 운영하던 가게 상호는 신흥상회였다. 이 부부를 알게 된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강북구 번동까지 운행하는 29번 버스를 타고 오는데, 퇴근시간과 맞물려서 그런지 좌석은 물론 통로까지 승객이 가득 찼다. 비좁은 공간에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서있는데, 내 바로 옆에 있는 중년 남자가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렸다.
이 남자는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앞좌석에 앉아있는 젊은 아기엄마 앞으로 쓰러졌다. 아기엄마가 그 남자에게 “아저씨, 여기 앉으세요.” 자리를 양보하면 그 남자는 아기엄마의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아요! 괜찮아!” 했다. 아기엄마는 그 남자의 손이 자기 몸에 닿을 적마다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맨발에 땟국으로 절어버린 고무신을 신고, 헝클어진 머리와 검게 그을린 손과 얼굴의 주름만 보더라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자기 앞으로 쓰러질 때마다 아기를 끌어안으며 몸을 움츠리던 아기엄마가 견디기 어렵다는 듯 벌떡 일어서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그 남자가 앉았다. 그 남자의 상의주머니에 만 원권 지폐가 두둑이들어있는 게 보였다. 꾀죄죄한남방에 굵은 실로 삐뚤빼뚤 꿰맨 솜씨만 보더라도 홀아비신세가 역력했다. 허리만 살짝 구부려도 돈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그 버스는 시골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언제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소매치기가 많기로 소문난 버스다. 허름한 주머니의 돈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버스에서 소매치기 당하는 현장을 여러 번 목격했기에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 돈을 이렇게 보이는 곳에 넣고 다니면 어떡해요. 튼튼한 바지주머니에 넣으세요.” 나직이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폐뭉치를 꺼내어 “이 까짓 돈, 육십만 원 밖에 안 되는걸 뭘!” 하며 허풍을 떨더니 상의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나는 남들 들을까봐 조용히 말했는데, 그 남자는 돈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호기 있게 돈 뭉치를 흔들었다.
남자의 행동에 “저러다가 남 좋은 일 시키겠구먼!” 앞자리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쯧쯧쯧 혀를 차며 그 남자더러 “좀 일어나 보구려.” 했다. 바지주머니는 멀쩡하겠거니 여겼는데 더 엉망이었다. 도저히 불안하여 내 가방에서 옷핀을 꺼내 상의주머니에 꽂아주며 물었다. “누구랑 사세요? 무얼 하세요? 어디 가세요?‘ 혼자 살고 고물 줍고 아들 생일이라 의정부 아들네 집에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하고 가면 며느리가 싫어해요. 그리고 힘들게 번 돈 함부로 쓰지 마세요.” 했더니 “꼭 우리 딸 같은 말만 하네.” 싱글거리며 대꾸했다. 아주머니께서 “아들 생일에 무얼 하러 가느냐? 가지 마라” 하니 “안 가면 기다린다.”고 했다.
의정부까지 가는 동안 저 돈이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버스가 종암경찰서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앞자리의 아주머니께서 내릴 준비를 할 때,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자에게 신사복은 아니라도 주머니가 튼튼한 옷 한 벌 선물하고 싶었다. 다른 승객들이 보면 돈을 탐낸 사기꾼으로 오해 할까 두려워 아주머니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아주머니의 설득으로 그 남자도 함께 내렸다. 그 동네 산다는 아주머니를 따라 도로변에 있는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 입구에 있는 옷가게 주인부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바지와 남방셔츠를 샀다. 바지와 남방셔츠는 돈을 받고, 팬티와 양말과 러닝셔츠는 선물이라며 안에 가서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신발가게 아저씨가 고무신을 한 켤레 주셨다. 맨발로 다닌 발등부분은 까맣게 그을었고, 발바닥은 하얗게 불어있었다. 의정부로 가는 버스를 태워주며 고생해서 번 돈 함부로 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보다 새 옷에 새 신을 신고 좋아하는 남자를 보며 기뻐하던 신흥상회 주인부부가 보고 싶다. 그 곳을 여러 번 찾아갔지만, 그 분들을 만날 수 없었다. 주상복합 상가를 신축할 때 가게를 그만 두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기꾼도 많은데, 규모가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아낌없이 베풀어 준 주인부부의 사랑에 감동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드릴 때, 행복해하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