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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자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8년 6월호, 제200호 신인상 수상작] 숨결이 바람이 될 때 - 김성덕
신아출판 추천 0 조회 287 18.06.09 17: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폴처럼, 또는 내 아버지처럼. 결국 우리의 숨결은 바람이 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미래가 유효하지 않을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일 뿐이라는 비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   -   김성덕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는 다급함과 불편함 그리고 왠지 모를 불길함이 숨어 있다. 그날 새벽 전화벨 소리도 그랬다.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떨림과 슬픔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검은색 양복을 꺼내 입었다. 순간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쳤다.
   폴은 유능한 신경외과 의사였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부단히 노력하며 의사로서 성공하기를 꿈꿨다. 이제 곧 그가 꿈꿔왔던 미래가 실현되려는 순간에 불행히도 그는 암 선고를 받는다. 암 선고를 받은 후 그는 자신의 마지막 삶의 여정을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12주 연속 1위, 아마존 종합 1위, 전 세계 38개국에 판권이 수출된, 2016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 폴 칼라니티. 서른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그의 숨결은 책의 제목처럼 바람이 되고 말았다.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의료기기를 통해 울려나오는 아버지의 숨소리만이 병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 소리마저도 정적 속에 묻히고, 아버지의 숨결도 바람이 되고 말았다.
   폴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과연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몸은 하루하루 자꾸만 나빠져 갔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결국 담당 의사로부터 6개월 이상 살기가 힘들 거라는 의학적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아버지의 몸속은 이미 퍼져 버린 암세포로 인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생명에 대한 희망을 쉽게 놓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더 이상의 치료가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체 요법’이란 것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는 정체불명의 대체 식품이란 것을 구입하기 위해 매달 적잖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것을 치료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오줌까지 매일 받아 마시며 치료에 열중하셨기에 우리는 대체 식품을 조달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치료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서 병마와 싸울 힘과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은 후부터 감사하고 행복하단 말씀을 평소보다 더 자주하셨다. 아마 아버지도 책 속의 폴처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무엇인가를 깨달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죽음에 맞섰던 폴은 암 환자가 된 자신을 위해 죽음과 맞섰다. 그런데 죽음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폴에게는 더 이상의 미래가 허락되지 않았다. 이때 폴은 자신에게는 죽음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소중한 한 가지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래서 어린 딸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웠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았던 벚꽃 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봄날,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 병실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 제가 세상에 태어날 때의 기쁨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몫이었는데, 지금 아버지가 떠나시는 이 슬픔은 왜 고스란히 제 몫이어야 합니까? 아버지는 제가 커가는 모습에 웃음 지으셨다는데 저는 왜 아버지가 떠나가시는 모습을 지키며 이렇게 마음 아파야만 합니까? 아버지는 기쁨을, 저는 슬픔을. 아버지, 이것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시던 순간 의식도 없이 가쁜 숨만 몰아쉬는 당신의 손을 잡아 드릴 두 손이 제게 있고, 죽음의 공포에 떨고 계시는 당신께 안심하시라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입술이 제게 있으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안아드릴 체온이 제게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죽음을 앞둔 폴은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의사로서의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병을 얻기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폴은 어쩌면 더 일찍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내와 아이와 함께 오순도순 지내면서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의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다. 폴이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것은 아마도 ‘미래는 더 이상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일 뿐이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폴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인식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 아버지 또한 그러셨다는 생각이 든다. 함경도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 오셨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셨던 것도 단지 죽음이 두렵거나 피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조각까지 최선을 다해 붙들고, 그리고 빛나게 닦아 놓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의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던 폴의 모습을 지켜본 아내의 고백이다. 폴의 아내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 봐주는 목격자로 살아간다. 반면에 또 누군가는 기꺼이 우리 인생의 목격자로 살아 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의 삶의 목격자가 되어 준다는 것은 신이 우리 인생에 숨겨둔 비밀스런 약속이다. 그 약속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욕망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리듯 현재를 살다가는 모든 인생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만들어 둔 축복의 장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듯 미래만 쫓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고, 미래는 지속되는 현재일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선택적인 비밀이기도 하다.
   폴처럼, 또는 내 아버지처럼. 결국 우리의 숨결은 바람이 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미래가 유효하지 않을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일 뿐이라는 비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덕  ---------------------------------------------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쌍용양회(주) 근무.

 


당선소감


   악필을 고쳐보려고 손가락에 힘을 주고 한자 한자 정성껏 글씨를 쓰던 습관 덕분에 낱말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친해진 낱말들로 블록 쌓기를 하며 놀듯 마룻바닥에 베개를 깔고 엎드려 이리저리 옮겨 가며 놀다 보니 어느새 글쓰기가 좋아졌다. 하지만 괜한 열등감 때문에 학창시절 여러 번 문예반 문고리를 잡았다가는 그냥 놓아 버렸다.
   ‘난 아니야. 글은 원래 타고난 놈들이나 쓰는 거지.’
   어느새 그 시절로부터 세월이 삼십 년이나 훌쩍 더 지나버렸는데, 다시 한 번 더 그 문고리를 잡아 보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을 열고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글은 마음을 담고 마음이 담긴 글 속엔 진심 또한 담겨 있어 좋다. 앞으로 작은 바람이 있다면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시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시를 쓰고 싶다. 글쓰기와 글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그 온기 안에서 진심을 나누고 싶다.
   서툰 제자를 성심껏 지도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글도 삶처럼 움켜쥐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는 가르침을 새삼 더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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