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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처럼 세차게 한글을 짓밟는 한자파
한자파들은 그 때 언론 황제라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같은 보수언론을 말할 거없고 집권당인 민정당 실세들(김영삼 대통령, 김종필 당 대표)과 관료들의 지원속에 태풍같은 기세로 한글을 몰아 부친다. 1992년 2월에는 유정기, 임원택, 안병욱 외 4인(대리인 변호사 홍은표)이 ‘한글전용 초등 교과서 편찬 지시처분에 대한 헌법수원’을 내고,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유정기, 김인식, 이상돈,서영훈, 장을병,김상구, 신국주 들이 1993년 3월 29일자로 ‘한글, 漢字混用에 관한 法律制定등에 관한 請願’을 김길홍(민자:경북 안동), 황윤기,장영철의원이 소개해 국회에 냈다. 1994년엔 조선일보를 앞세워 한자복권운동을 하고, 또 1997년 9월 1일에 ‘初․中․高 『국어』 교과서 國定解除 建議書’를 정부에 내고 ,한자조기교육과 한자교육을 강화하자면서 한자혼용 교과서를 쓰게 하려고 획책한다.
학술원(원장 권이혁 :한자 혼용파)는 한자파 선봉장인 이기문, 임원택, 남광우 교수들에 학술원상을 해마다 끈달아 주어서 한글단체가 반대운동도 한다. 그 때 분위기를 보여주는 글과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조선일보가 벌인 한자복권운동 막기
한글날을 공휴일에 빼면서 한자파들은 더욱 더 세게 한글과 한글단체를 억누른다. 김영삼, 김종필 같은 정치인의 지원을 받고 경제단체가 돕는데다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들까지 나서서 한글을 쓸어버릴 기세로 나왔다. 그 때 조선일보가 벌인 ‘한자복권운동’은 여론까지 일으켜 한자세상으로 만들 기세였다.
조선일보는 1994년 2월에 ‘亞太시대 우리들의 국쩨문자 漢字를 배웁시다’라는 제목으로 한자가 중요한 국제화 시대라면서 왜정시대 말글살이로 되돌리려는 이른바 '한자복권'운동을 했다. 한글만 쓰기는 잘못된 것이고 일본과 중국이 한자를 쓰니 우리도 한자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써야한다는 주장 등을 조선일보 1쪽에 17회 째 연재하던 날, 한글단체는 동숭동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그 규탄대회를 열었다. 조선일보의 잘못을 꾸짓는 말씀을 하는 강사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김동길 연세대교수 , 백기완 민주운동가, 이진우 변호사가 나서고, 강연을 마친 뒤 아래 결의문을 내가 읽었다.
2월 25일 저녁에 한글운동 별동대인 '바로모임'은 한글회관에 모여 조선일보의 못된 짓을 막기 위해 대책회의를 하고 있을 때 조선일보에 근무하는 신향식 기자로부터 "조선일보 노조회보에 전태수기자가 한자복권운동은 잘못이라는 글을 전면에 썼다"는 소식이 와서 반대 활동에 활기를 찾게 된다. 그날 밤에 인쇄소에 찾아가 수천 장을 복사해 이튼날 거리에서 뿌리고 김두루한 선생과 국어교사 여러분이 조선일보 앞에서 시위도 한다.
그결과 조선일보는 그 뒤 바로 한자복권 연재 기사를 끝낸 일이 있다. 조선일보 노조와 전태수, 신향식기자, 그리고 그 때 한글을 지키는 데 힘쓴 모든 분들께 고마운 생각을 하면서 ‘바로모임’ 소개와 그 때 동숭동 문예진흥원 행사장에서 내가 읽은 결의문, 상명대학보에 이대로와 허재영이 쓴 조선일보의 한자복권 운동 비판 글을 옮긴다.
한글 지키기 별동대 ‘바로모임’
한자파들은 친일 정치인인 김종필, 김영삼 들의 도움 속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데 한글학회나 한글단체는 그에 밀리고 있었다. 시민모임으로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을 만들었으나 전국에서 여러사람이 모이다보니 일을 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느렸다. 정부와 국립국어연구원까지 한자쪽 편이 되어 한글을 옥죄는데 그에 대응하려면 좀더 빠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데 그 모임은 기동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 때 국회에서 활동하는 원광호의원과 한글문화단체를 보이지 않게 돕는 지하행동대를 만들기로 하고 각 단체 실무자와 4-50대 활동가 30여명이 바로모임(대표 최기호, 총무 이대로)을 만들었다.
그리고 활발하게 많은 일을 했다. 다달이 모이고 철 따라 숙박을 하며 토론회도 하고 한자파가 추진하는 한자혼용과 한자조기교육을 반대하는 공격활동을 했다. 전에는 한자단체가 하는 일을 막는데 바빴지만 이제 먼저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이름패 만들어주기, 조선일보 한자복권운동 막기, 초등학교 한자교육 헌법소원에 맛서 싸우기, 한국은행 한자현판 한글로 바꾸기, 한자파인 이희승 문화인물 반대, 이기문 교수 학술원상 수여 반대, 영어 조기교육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나니’ 문집도 내가 편집해서 냈다.
그 때 참석한 이는 최기호(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교수), 이대로(한말글사랑겨레모임 공동대표), 오동춘(국어운동 고등학생회 지도교사), 원광호(국회의원), 이봉원(전국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 밝한샘(한글이름펴기모임 회장), 차재경(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유운상(한글학회 사무국장), 김영환(부경대 교수), 한상운(경기도 의원), 한효석(글쓰기 교사),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김두루한( 국어교사), 김슬옹( 전 국어운동대학생회회장), 허재영(국어교사), 고운맘(대각사 스님), 김한빛나리(한글학회연구원), 김재훈(다살이살판 손침연구가), 손의식(대학강사) 들이 주축이 되어 30여명이 모여서 한글문화단체를 도우며 많은 일을 했다.
결의문
한글은 민중의 글자이며, 민주사회의 밑바탕 힘이며, 배달겨레의 가장 뚜렷한 보람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서 이제 한글은 우리 겨레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한자 중독에 걸린 일부 세력이 민족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우리 사회를 중세 한문시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중대한 사태로 보고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우리는 한자복권 운동을 민족사에 대한 도전으로 단정하고, 그러한 움직임을 막는 데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1. 우리는 한자 애용론을 펴는 개인과 단체를 반민주 사대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주장과 논거가 모두 반 이성행위이며 거짓임을 온 겨레에 알린다.
1. 우리는 한글이 우리겨레의 오늘과 앞날을 밝게 하는 데 가장 강력한 추진도구임을 굳게 믿고, 이를 갈고 닦고 펼치는 데 더욱 힘쓴다.
1.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가 우리 겨레의 자존과 번영을 한 것이어야지, 우리 것을 다 버리는 쓸개빠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으며, 우리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에 힘쓴다.
1994. 2. 26
한글을 사랑하는 배달겨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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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대주의를 이끄는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추태, 한글전용 대세를 막지 못해
한말글사랑겨레모임 대표 이대로
한글발전을 가로막는데 앞장 선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지난 1994년 2월 7일부터 2월 28일까지 17회에 걸쳐 “亞太시대 우리들의 국제문자, 漢字를 배웁시다.”라는 제목으로, 지나치게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글을 특집으로 냈다. 이는 국제화시대에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평소 수없이 떠들어 온 한자주의자들의 주장을 떠벌려 늘어 논 것이었다.
더욱이 언론의 본분과 품위까지 저버리고 한자 쪽에 기울고 비뚤어 진 보도만 일삼아서 자기회사 노동조합 직원들로부터도 호되게 비판을 받았다.
왜 조선일보가 한자 복권운동에 앞장섰을까?
조선일보는 과연 국제화 시대에 한자교육이 최선이어서 한자복권운동을 발벗고 나섰을까? 조선일보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자교육을 강조하는가?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조선일보는 첫째: 한글전용을 가로막으려고 총대를 메었다. 국제화에 대비한다는 말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화를 핑계로 한자파들과 짜고 언론으로서 한 책임을 분담한 것이다.
둘째: 자신들 돈을 벌려는 장삿속에서다. 이번 조선일보가 날뛰는 것을 보고 한글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조선일보를 끊겠다고 항의 전화를 하니 “아직 국민들 가운데 한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늘어날 것이다.”라며 자신들도 장사꾼이라고 말하더란다.
셋째: 일본 세력과 그 추종 보수 사대주의 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힘을 뽐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왜정 때 일본의 식민 정책에 협조한 일이 있고, 오늘날 또한 일반 민중보다 친일 재벌과 권력을 위하는 데 앞장서서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다. 나라의 앞날이나 온 겨레의 이익보다 재벌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나 학생들이 고통받아도 괜찮다는 오만한 논리가 그들 속마음이다.
넷째: 우리말과 한글의 훌륭함과 중요함, 한글시대라는 시대흐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제시대 정신에 사로잡혀있다.
조선일보 추태가 사회에 끼칠 영향
요즘 조선일보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란 것은 모두 인정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믿고 있다. 대통령도 자신들 마음대로 뽑고 조종할 수 있고, 국민들도 자신들이 주무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믿음에서 한글전용도 자신들이 발벗고 나서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한글이 그렇게 허약하고 못난 글자가 아니며, 머지않아 많은 국민이 조선일보의 주장이 거짓이고 추태를 부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추태는 국민과 국어생활에 여러 가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한자교육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국민이 한자가 한글보다 못한 글자이고 덜 중요한 글자란 것을 안다. 그러나 재벌과 서울대가 한 통속으로 한자를 시험과목에 넣고 중요하게 여기니 어쩔 수 없이 한자에 끌려갈 것이다. 취직과 진학이 당장 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자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둘째: 학교교육이 비뚤어지고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특히 국어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한자 사교육이 성행할 것이다. 한자 공부에 매달리다 삶에 필요한 생활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무능한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란 먼 뒷날 국어생활과 나라꼴이 힘들어 질 것이다.
셋째: 한자혼용파가 더 날뛰게 되고 한글사랑정신이 식어 여러 곳에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정부는 일본 관광객을 위해 도로 표지판에 한자를 함께 쓴다고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학교에선 수십 년 동안 한글로 쓰던 이름표를 한자로 바꾸고 있다. 우리말과 한글을 우습게 보는 풍토가 일어 외국말 간판과 영문 창씨개명도 함께 일어날 것이다.
넷째: 한자혼용을 더 하게 되고 문맹률이 높아지고 피어나려는 민족자주문화가 시들게 될 것이다. 중국은 문맹률이 60%라고 한다. 한자를 더 쓰고 한자 배우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게 되어 문맹률도 높아지고 국어실력과 국민 지식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누구를 위한 한자복권운동인가?
오늘날 깨어있는 학생과 국민은 한자가 국제문자라고 억지 부리는 조선일보의 여론조작 추태를 잘 알고 있다. 오늘날 한글은 외세에 조종당하는 무리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음모에 한글이 죽게 되면 단순히 한 글자가 죽는 데 그치지 않고 민족자주문화와 우리나라와 겨레까지 죽는 것이다.
한자복권론, 일제 식민지배자 논리와 같아
허재영 건국대 국문과 박사과정
한자 교육론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제도권 일간지에서는 ‘국제화’를 내걸면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운동에 열성이다. 이들의 논리는 ‘국제화 시대, 한자는 동양문화권의 공통글자’라는 주장에 바탕을 둔다. 왠지 모르게 이러한 주장 속에는 ‘대동아 공영을 위해 동양문화권이 단결하자’라는 일제 말기 친일파들의 글과 비슷한 면이 나타난다.
한글과 한자의 싸움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는 꽤나 오랜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도권 언론이 어떤 대상을 보도할 때 그러듯이, 마치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식의 보도를 한다. 아니 심지어 조선일보는 아예 드러내놓고 한자를 쓰자는 특집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기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문제인지, 그리고 어느 때부터 시작된 문제인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한자 교육론,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자는 것과, 한자를 조기에 가르치자는 내용의 역사상 성격을 살펴보고자 쓴 글이다. 이 문제는 한자가 없이도 우리의 말글살이에는 어려움이 없고, 한자를 배우고 쓰는 것이 매우 불편하며, 한자가 정보시대의 글자살이로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끊임없이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점에 비추어 지금까지의 접근 방식과는 다른 태도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자문제의 출발점.
우리 겨레가 한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뒤로는 우리 겨레의 글이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옮겨오게 되었다. 훈민정음 보급정책은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기 이전인 19세기 까지는 평민들 대부분이 한자를 섞어 쓰지 않고 한글로만 글자살이를 했다. 이 시기의 글자살이는 지배자들을 위한 한문(중국식 문장이라는 점에서 낱말만을 뜻하는 한자와 구분해야 함)과 평민들의 한글, 두 가지뿐이었다.
그렇다면 한자를 드러내고 한글로 토를 나타낸 오늘날의 신문 글자살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섞어쓰기는 1885년 12월 21일 ‘한성주보’(한성순보가 바뀐 것)에 처음 나타난다. 이 신문에 쓰인 섞어쓰기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이 신문을 만든 데에는 일본 근대화의 일등 공신이라 일컬어지는 ‘후꾸자와 이끼지’의 제자였던 이노우에(井上角五郞‘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이 신문을 만들면서 일본글과 같은 꼴인 조선글을 만들어서 일본의 문화와 언어동화를 꾀하고자 섞어 쓰기를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곧 섞어쓰기는 일제의 말글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에서 나타난 글자살이임을 알 수 있다.
한자를 통한 일어 보급.
한자를 우리 겨레의 글자살이에 강요한 세력은 일본인들이었다. 일제는 강제침탈이전부터 겨레의 글자살이를 일본의 글자살이와 비슷하게 만들고자 애썼다. 이러한 노력은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이후에는 교육령 변천 역사와 함께 변모한다. 일제의 우리말글 말살 정책은 첫 번째 단계로서 한자에 한글을 보태쓰는 단계, 두 번째 단계로서 한글 완전히 없애기, 세 번째 단계로서 한자를 일본말글 형식으로 바꾸기라는 단계를 거쳤다.
이후 몇차례에 걸친 교육령 개정은 일본의 말글동화 정책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결과는 1938년이후 “일본어는 잘 하는데 조선어는 못하는 조선인이 몇 만명씩이나 만들어 냈다”라고 한다. 이미 친일파 연구 서적에서도 밝혀졌듯이, 이런 조선어를 모르는 친일분자들은 “조선어는 문화의 폐스트병이다”(현영섭: 신생 조선의 출발 1939)라는 말까지도 서슴없이 나왔다.
한글과 한자 싸움은 일제 강점기부터 끋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운동은 일제 말기에는 ‘조선어 말살과 일어상용 정책’에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일제의 말글정책은 광복이후의 우리말글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자를 매개로 한 식민 언어학과 사전 편찬 작업 따위는 우리말글 쓰임에 악 영향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 한자 섞어쓰기를 주장한 사람들이 경성제대 출신자나 친일반민족자들 사이에서 많았음도 주목할 만하다.
경성제대는 우리 겨레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일제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낸 총본산이었다. 광복 이후 친일 반민족자를 청산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들에 의해 우리 사회가 이끌려 왔음을 세상이 널리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말글살이의 문제도 사정은 같다. 과거 식민지배자들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이 경성제대에서 식민지배의 합리화를 꾀하려 만든 언어 이론을 극복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화는 일본화.
‘동양 문화권’의 논리가 일제 시대 만들어진 허구이듯이, 오늘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자 복권론자들이 주장하는 ‘국제화’논리도 허구에 가득차 있다. 지난날 한자 섞어쓰기를 주장한 사람들은 한글이 한자 없이는 완전한 글자살이를 할 수 없는 글자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자 이들은 논리를 바꾸었다. 우리말에 한자말이 70%나 된다는 주장과 함께 국제화를 위해 동양의 공통문자인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인들이 세웠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한자말이 70%라는 주장은 과거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의 낱말 비율을 경성제대 출신 학자들이 만든 사전이 답습한 결과로 나타난 결과이다. 이는 이희승의 ‘국어대사전’과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을 비교 분석해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학회 사전이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은 한자말의 비중이 이희승 사전에 비해 현저히 낮다.
동양 공통글자론도 중국의 간체자와 견주어 볼 때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다. ‘한겨레신문(94.3.18)에서도 밝혔듯이 현재 중국에서 쓰는 한자를 다시 배우지 않고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국제화는 일본화가 될 따름이다. 역사 흐름이나 현실 문제를 모두 고려해 볼 때, 한자 복권론은 일제 말기 식민 지배자들의 의도가 교육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50년에서 100년을 내다본다. 교육 받은 세대가 교육 받는 당시에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한자 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겨레의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