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뒹굴거리다 3월 오는 것 보고 더는 미룰 수 없어 눈도 다 녹지 않았는데 마산동 산성을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삼일절 자전거타기 행사 첫 꼭지에 딱 걸렸다.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뵈지 않는다.
세상에 끝이 없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잊는다.
고통도 끝이 없을 것 같고,사랑도 끝이 없을 것 같고,아둥바둥 사는 우리 인생도 끝없을 것 같아 내가 남보다 한 십 년,한 이십 년 적게 사는 것 같음 받아 들이기가 참으로 힘겹다.
요즘은 길이 화두고 재미다.온 산천에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대청호 오백리 길은 언제가도 좋다. 산을 끼고 물을 끼고 걷는 길이 왜 안좋겠는가.
사람살던 마을이 잠기고 사람다니던 길도 잠기고.
인걸도 간데 없지만 산천도 의구하지 않다.
봄이 올 것 같지도 않게 추운데 정신 잠깐 놓고 한 이 주 지내고 나면 어느 새 봄이 와있다.
미륵원 지나 관동묘려 보고 이정표 보고 산성을 찾아간다. 길을 모르고 가니 걱정도 된다.
산성이정표를 봤는데 눈길 오르고 싶지 않는 동행자가 한사코 아스팔트 포장길로 가라는 거라며 우긴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좀 더 가거나 적게 가나의 차이지 산성 나오겠지 하고 포장길을 선택했다.
제법 걷고 나니 산 속에 외딴 집이 번듯이 서 있다.
어~?
이 집 기억이 난다. 걸어 온 길은 기억에도 없었는데 이 집이 기억에 남아 있다.청풍도사 집이다.십여년 전에 왔던 곳이다.
집이 기억 나면서 길도 기억난다. 비석 탁본하러 왔던 길이다.그 비석은 또 어디에 있는 지 기억에 없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한 십 년 돌아댕기다 보니, 나라면 저쯤에 성 쌓겠다 싶은 곳을 찾아 낸다. 오는 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그 곳으로 올라가면 대전에는 어김없이 성이 있다. 대전과 그 인근에 백여 개도 훨씬 넘는 성이 있으니 봉우리 마다 성이 있는 격이다.대전은 산성의 도시다.산성 만큼 슬픈 유적이 또 있을까 싶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적과 아는 사라지고 죽인 사람과 죽이는 사람,지켜내려는 사람과 빼앗으러 오는 사람이 무너진 성터에서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잠들어 있을 뿐이다. 전쟁은 야망을 지닌 자가 일으키고 싸움은 부모형제,처자식 지키려는 자가 한다.
불이 났었나 보다.
땅에 깊은 내상을 줄 만큼도 아니고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산불이 났고 주변 나무들은 홀랑 다 타 버렸다.
소나무는 양지식물이다.불이 나고 경쟁자가 사라지고 나면 씨를 틔운다.방커스소나무는 송진에 감싸인체 딱딱하게 십 년이고 오십 년이고 기다리다 불이 나면 비로서 송진을 녹여내고 씨를 틔운다.
씨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난 30분도 기다리지 못한다.자전거 끝이 뵈지 않는다고 십여 분 지나고 부터 갑갑해 하고 중간에 한 번 끊어서 차량 보내줘야지 하고 투덜거린다.
불이 나고 홀랑 다 타버렸는데 살아 남았다.
살아가다 보면 다시 순이 돋는다.
순이 돋듯,살아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맺힌 것들도 풀리고 사람에게 진 빚도 조금씩 갚아가게 된다.
결이와 단이가 예쁜 소년과 소녀가 되어 찾아오기도 한다.단이는 자기 엄마를 쏙 빼 닮았다. 성격도 닮았다.내 친구는 딸의 유전인자 속에 자기 자신을 그대로 다 담아두고 갔다. 태어나자 마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은 그 기록대로 자라났다.
몸을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죽을 맛을 한 번 본 나무는 놀라서 씨부터 맺는다.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싶을 때 펄럭이는 작은 깃발은 기쁨이다.
사람없는 산 길에서는 내 발소리에 내가 놀란다.
혼자 가기가 영 내키지 않아 부탁해서 바쁜 사람을 델꼬 갔다.
올라 갈 때도 모습이 안보이게 성큼성큼 혼자 가 버리고 내려 갈 때도 혼자 성큼성큼 가 버렸지만 그래도 천군만마다. 저기 쯤 있을테지 싶음 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귀신도 무섭고 호랑이도 무섭다.
"외간 남자와 남편의 차이점을 알았어."
"뭔데?"
"외간 남자는 한 걸음 이상 절대 안 떨어지는데 남편은 저 혼자 가 버려."
칼국수 사준다고 꼬셔 데려 왔는데
내가 밥을 얻어 먹었다.대청호 길을 가다보면 한식요리전문가가 하는 밥집이 있다.
첫댓글 아~~ 혜영샘 글 맛깔난다~
저 흐트러진 산들의 속살에 내린 하얀 눈들이 떠나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겠지~ 그때 혜영노래 한가락 눈 감고 들으리~~
오케바리.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된다는데.뭔 노래를 못하겠어요.
정말 맛갈나게 잘 음미했슴다...
좋아요~~
같이 따라 나선다 할껄 ^^
뒤늦은 후회가 들만큼요 ㅎ~~
사진은 겨울이지만 마음은 봄이군요 ~~
사진이 빛나요. 빛이 환하기에 그렇겠죠. 대청호 물빛이 보고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