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 운동’은 세계적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깊게는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경, 서 모 검사에 의해 폭로된 검찰청 내부 성추문으로부터 폭발적으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으로 메스컴을 장식했었다. 나 같은 무지랭이들에게는 검찰이라면 무시무시한 곳이었기에 더욱 놀라움이 컸었다.
‘Me Too’란 ‘나도…’라는 뜻이라 본다. 상사에게 성희롱 당한 여직원이 말 못하고 참다가 터트려지자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나도 그랬다’는 뜻으로 들고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때문에 한 번의 욕심을 못 견디고 억지 재미를 봤다가 신세를 망치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남성들도 있었다. 대부분 잘 나가던 사업가나 정치인, 연애인 등 유명 인사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까지는 당한 여성들이 스스로 억울한 분(憤)을 삭이면서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해온 것이 상례였고 또 남성들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워었지만,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여성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힘으로 맺힌 한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미투' 운동의 포스터(빌려온 사진)
이 ‘미투(Me too)’에 비해 ‘투미(To me)’는 내가 만든 말이다. 굳이 의미를 붙인다면 ‘나에게도’하는 것이 될것이다. 요즘은 직업에도 남녀 차별이 없어, 대형 외항선에도 여성 사관(士官)이나 승무원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 선박에서는 전부가 머슴애들 뿐이었으니 ‘미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땅만 밟으면 ‘미투’가 아니고 ‘투미’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연은 이렇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 동안 흔들리는 물 위에서 시달리다 밟는 땅! 그 흙냄새는 안 맡아 본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옛말처럼 나무둥치에 치마만 걸쳐 두어도 그 녀석(?)이 먼저 아는 척 했고 모든 것이 내 꺼 같이 느껴졌다.
가슴에는 싱싱한 바닷바람으로 가득찼지만, 아래 곳간?에는 오래 퍼내지 못한 구정물로 꽉 차 넘치기 직전들이었다. 밧줄 걸어 배 매달고, 일과(日課) 마치기 바쁘게 너나없이 달려들 가는 데가 있다. 짐작이 갈 것이다.
한데 그게 묘하다. 선장(船長)인 내가 시간도 돈도 저들보다 더 있고 말도 더 잘한다고 자부하는데, 막상 가보면 그게 아니다. 언제 왔는지 계급과 나이는 아예 불문이고 젊은 순서대로 선원들이 먼저 와서 제일 요지의 큼직한 테이블에서 가장 젊고 이쁜뇬(?)들을 옆에 터-억 앉히고는 맥주나 위스키잔을 들고는 희죽히죽 웃기만 할 뿐, 선장이 들어가 봐야 거덜떠보지도 않는다. 이 넘들이 언제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래도 대리점 직원들한테 새끼손가락 들어 뵈며 제일 좋은 데가 어디냐고 정식으로 물어서 소개장까지 받아야 했는데….
하기사 그 일에 무슨 계급장이 있고 순서가 필요할까. 먼저 본 넘이 임자지. 그러니 ‘Me too(나도)’가 아닌 ‘To me(나에게도)’였다. “야! 이 사람들아 나 한테도 이쁘고 젊은뇬 하나 넘겨주라”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나 중간 계급의 직원이 하나쯤 보낼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그 옛날 가야산 밑 성주 수륜이라는 곳에서 교직 생활을 할 때 일이 생각난다. 거기서 유명한 합천 해인사(海印寺)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늦가을 찬바람이 시작할 때면 해인사 앞 흥청대는 객주집 아가씨들이 계약일은 남았고 객(客)은 낙엽처럼 떨어져 그 값(?)이 엄청 싸진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은 미리 높은 사람이 아닌 밑 사람들이 대표자를 뽑아 보내 시찰을 겸해 멋진 집을 골라 예약을 해둔다. 토요일, 면 소재지 술도가에서 특별 주문한 막걸리 한 말을 젊은 선생님들이 나누어 짊어지고 오후에 출발하면 해거름에 그곳에 도착한다. 걷기가 불편하거나, 결혼한지가 얼마 안 되거나 처음 가보는 젊은 부부는 미리 호텔이나 여관을 잡아두고 버스로 시간 맞춰 도착하면 된다.
산길이나 달구지 길이 대부분인 시절이라 부옇게 둘러쓴 먼지를 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툭툭 털고 준비해 둔 술상 앞에 앉기 전에 넓직한 홀에 하룻밤 서방님을 기다리는 아가씨 중 맘에 드는 아가씨를 점찍고 앉으면 됐다. 앞에는 산해진미요 옆에는 향기 짙은 아삼삼한 아가씨들의 아양이 철철했다.
해인사를 걸어 갈때(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맨 좌측은 동기 고 이종방 군.
L 교무 선생님, 한창 인생살이에 도가 터진 중반, 초등학교 고학년의 맏아들을 둔 분이다. 시범 삼아 옆의 아가씨와 멋진 뽀뽀를 하다가 갑자기 “이 년이…”하고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어린 우리들이야 알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좋다고들 하더니…. 한 참 뒤에 알려졌다. 한참 재미를 내는데 갑자기 아가씨가 혀를 깨물었단다. 옆에 있던 선생님이 제 것은 두고 L 선생님과 뽀뽀 중인 아가씨의 속옷에다 손을 넣고 꽉 쥐는 바람에 아가씨가 놀라서 응겹결에 물었다고 했다.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시간이 무르익어 가면 자연히 한 쌍씩 사라진다. 남는 것은 어지러진 술판과 버스를 타고 오신 교장 선생님 혼자였다. 미리 하나 골라두지 못한 것은 체면 때문이리라.
누구 하나가 골라 보내드려야 하는데 각자 제 일이 바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한 뇬은 보내주겠지” 하며 방에서 밤새 꼬박 기다리다 지친 그분은 아침에 날이 밝자 “에라 이 빌러물넘들!” 한 마디 던지고는 첫 버스로 귀가 해버렸다. 해가 중천에 걸리자 슬금슬금 모인 선생님들, 서로 눈치만 보다 사태를 알았다. 비상대책(?) 회의가 열렸다. 엎어진 물, 교무주임이 뒤처리를 책임지기로 하고 논의된 대로 각자 확인 사인을 한 뒤 남은 일정을 보냈다. 그날 밤 그 C 교장 선생님의 심정이 아마도 이와 같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도 조심해야지 까딱하다간 그 젊은 넘들의 아랫 동서가 되는 수가 있다. 아무래도 뇨자(?)는 젊고 이쁜 게 우선 보기가 쌩! 하고 마음이 가는 것이 우리 수컷들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쁜뇬들은 그들이 다 차지하고 앉았으니 닭 쫓던 개 뭐 쳐다보듯이 죄 없는 맥주병만 쭉쭉 빨면서 팔리지 않고 뒤에서 빙빙 눈치나 보는 뇬들 중에 그래도 제법 괜찮다 싶어 곁에 앉혀 보면, 어구야~ 덕지덕지 페인트(?) 칠한 얼굴에 한 뼘이나 되는 인조(人造) 눈썹을 단 그런 애들이다.
그래서 요령을 텃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얼굴 이쁜 것들은 곁에 와도 제치고 좀 늙어수리(?) 하면서도 화장끼 없는, 안 팔려서 뒤로 쳐져 있는 뇬들, 히프 한 번 툭 쳐주고 ‘야, 너 마음씨 좋게 생겼다’ 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맥주 한 잔 사주면 그날 밤 쾌피(코피) 터졌다. 그런 뇬들에게 너 예쁘다 하면 그건 모욕이 된다. 재수 좋으면 그 다음날 밤엔 공짜일 수도 있다. 이쁜 뇬들 존심 팍 구겨준 것이다. 선장이것다 뭐니뭐니 해도 저들 좋아하는 머니 있겠다. 짱이었으니….
그렇게들 한 두 곳도 아니고 오대양 육대주 60여개 나라, 130여 항구를 겁도 없이 들쑤셨으니, 원 참, 그만두고 은퇴할 때는 이미 두 십 년이 지난 뒤였다.
어느 날 우연히 부산 시내 선박회사가 밀집한 골목에서 종이조각을 들고 어딘가를 찾고 있는 거무티티 하면서도 건장한 젊은 애가 나를 불러세웠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마치 망치로 한 방 맞은 듯이 멍 했다. 까닥하다간 검지도 누렇지도 않은 뇬넘들이 ‘아부지!’하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난 것이다. 그 때문에 한 3~4년은 안절부절 했다.
뒤늦게 ‘Me Too(나도 당신 자식)’ 이라면 우짜겠나 싶었다. 머리끝이 벌떡 서는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그 젊은이가 찾는 사람은 ‘Me Too’ 때문이 아니고, 잠시 그와 동승했던 모(某) 회사 선장이 워낙 젊은애가 착실하니 ‘한국 오면 일자리를 하나 주선해 주마’ 해서 그 말을 믿고 불원천리 찾아 온 것이었다.
한 때 동기회 같은데 가면 오랜만에 만났다고 ‘애들은 몇이나 되노?’ 하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했다. 몇이나 되는지 나도 알아야 대답을 하지. 그래서 ‘집에 있는 것만 셋’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는 친구에게 ‘물 건너 있는 거는 몇 명이나 될란지 아직 파악이 안 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채고 박장대소 한 적도 있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마침 2018년 초, ‘미투’ 사건이 메스컴에 한창일 때, 재수 없게도 ‘혈액염증수치’가 높아 시립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퇴원을 2~3일 앞두고 마지막 검사를 받기 위해 1층 검사실로 오라는 연락을 간호사로부터 받았다. 6층에서 내려가려는데 간호원 아가씨가 “할아버지, 1층 검사실에 가시지요? 이 할머니 손잡고 데려가 주세요” 했다. 일반적으로는 간호사 저들이 직접 모시고 가야하지만, 시립이 돼서 다소 그런 눈치가 보였다.
얼굴이 복스럽고 살결이 하얀게, 나이도 비슷할 것 같아 물어보니 두 살 위, 누나뻘이었다. 손을 꼭 잡자 따쓰한 느낌이 좋았다. 에레베이터 문을 열기 전에 얼핏 생각이나 할머니에게 얘기 했다. “손 잡았다고 미투 않하실거죠?” 했더니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는데 간호사 모두가 손뼉을 쳐 주었다. 역시 엉큼한 숫넘의 심지였다.
어쩌면 참말 같기도 하고 허황된 얘기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다시없이 귀한 삶의 일부분이었다. 삼류 소설 읽으시는 셈치고 웃어넘기시길…
첫댓글 고독하거나 생활고로 힘겨운 뇨자들을 위로해 주느라 수고 몽땅.^^
그런데 싸가지 없는 선원들이 선장님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가장 까쌈한 뇨자를 바쳐야지 저들이 먼저 뛰어 들다니.....떽. ㅋ
최선을 다하며 살아 온 늑점이님.
노년은 펴~~언안하게 칩거하며 작가활동을 하고 있군요.
작가도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요.
우리 건강해야 수다 떨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요. 건강. 건강. 건강.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세계 방방곡곡에 아들 딸들을 많이 만들어 두셨다니 부럽습니다. 찾아오면 받아주고 키워주면 좋겠습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