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11 부산광역시 답사자료
* 일 시 : 2018.12.26. (넷째 수요일) 08:00 ~ 18:00
* 일 정 : 현지 사정에 의하여 일부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마산박물관 –
청사포 해운대구이식당
– 마산박물관 =
* * * 해 설 : 회 장 : 고 명 천 010-3889-1288 * * *
* * 인 솔 : 상임이사 : 김 인 국 010-3863-7570 * *
*** 부산광역시
* 부산의 유래 ;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1월 28일 『태종실록』에 富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며, 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자의 『성종실록』 에 釜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4월 남제(南悌)가 그린「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富山이라 쓰고 있어 이 시기는 富山과 釜山을 혼용하여 쓰여졌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부산포(釜山浦)로 기록하고 있다.
* 부산의 역사
- 구석기시대 ; 부산지역에서도 해운대 청사포와 좌동 신시가지에서 사냥돌, 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들이 채집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 구석기시대(기원전 18,000년경)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산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주로 신석기시대 이후의 것이 많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았음은 분명하다.
-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
- 부산지역의 삼국시대 문화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다
현재 삼국시대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고분군이 동래 부근인 복천동·연산동·반여동 일대에 밀집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부산지방의 삼국시대 문화가 동래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 신라 – 고려 – 조선 – 일제강점기 – 광복 – 미군정기 – 대한민국
국가지정문화재 현황 (93)
• 전체 (93)
• 국보 (6)
• 보물 (46)
• 사적 (5)
• 천연기념물 (7)
• 명승 (2)
• 국가무형문화재 (6)
• 중요민속문화재 (2)
• 등록문화재 (19)
부산시지정문화재 현황 (381)
• 전체 (382)
• 유형문화재 (184)
• 무형문화재 (25)
• 기념물 (52)
• 민속문화재 (18)
• 문화재자료 (102)
* 부산의 문화재
* * 부산박물관 [ Busan Museum , 釜山博物館 ] -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에 있는 시립박물관.
설립일 ; 1978년 7월 11일
주요소장품 ; 선사시대 유물, 삼국시대 유물
부산박물관은 1975년에 착공되어 1978년 7월 11일에 개관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개칭되었고 2002년 5월 3일에는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부산박물관으로 새단장되어 개관되었다.
- 현황 소장유물(所藏遺物)은 1만 1300점에 이른다. 대표적인 전시 유물로는 국보 제200호인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보살입상과 국보 제233호인 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 등 국보 2점 및 보물·기념물 등이 있다. 소장 유물은 주로 부산 및 경상남도 지역의 덕천동·노포동 고분군, 김해읍성 유적 등지에서 발굴한 매장문화재 6,000여 점을 비롯하여 구입품 730여 점, 기증품 3,870여점, 수집품 350여 점 등이다. 전시실에는 부산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이래의 각종 유물 56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외부의 야외전시장에는 탑·불상·비석 등 50여 점의 석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 금동보살입상[ 金銅菩薩立像 ]
국보 제200호( 1979년 4월 30일 )
높이는 34cm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금동보살입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관능미에 치우치지 않고 자비와 품위를 갖춘 상으로, 8세기 중엽 이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 영태이년명납석제호[ 永泰二年銘蠟石製壺 ]
국보 제233호(1986.10.15.)
전체 높이 14.5cm, 단지 입지름 9cm, 단지 밑지름 8.4cm
통일신라시대의 곱돌 단지.
단지 표면에는 세로 15행으로 된 글이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木造阿彌陀如來坐像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1호(2015.07.15.)
크기 ; 높이 53.4㎝, 어깨너비 22.8㎝,
무릎너비 35.7㎝, 무릎높이(좌) 10.7㎝, (우)11.6㎝.
-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예술적·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일 뿐만 아니라 18세기 전반기의 불교조각 양식 흐름과 조각승의 계보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 * 유엔조각공원
부산시 남구 대연4동779에 있는 유엔기념공원 옆에 조성된 조각공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21개국의 조각품을 기증 받아 조성되었다.
-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에 참전하여 산화한 유엔군의 영령이 안치한 곳으로 세계에서 하나뿐인 곳이다. 이 공원을 세계평화와 자유의 상징이 되는 국제적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해, 공원 옆에 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한국전쟁50주년 특별기획 유엔기념공원 국제조각 심포지엄에 참여한 6.25참전 21개국의 조각가들이 제작한 34점의 조각품을 기증받아 조성되었다.
* * 유엔기념공원
[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 , ─記念公園 ]
건립시기·연도
1951년(유엔기념묘지), 2001년(유엔기념공원)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대연4동 779-1)
관리자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
문화재 지정번호
등록문화재 제359호
문화재 지정일
2007년 10월 24일
유엔기념공원(UNMCK)은 1951년 유엔군(United Nations Forces:국제연합군) 사령부가 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되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하여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조성한 유엔군 묘지이다.- 유엔군 사령부는 개성, 인천, 대전, 마산 등지에 흩어져 있던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하여 안치하였다. 처음에는 미국, 벨기에, 프랑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인도, 필리핀, 타이 등의 11,000위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자국으로 송환되고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터키, 미국, 영국 등 11개국의 2,300여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 195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기념묘지’로 지명한 세계 유일의 묘지로서,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협력정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유적이다. 1974년 2월 16일 이후 이곳에 전사자의 유해를 봉안한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 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가 관리하고 있다. 사무소는 묘지공원 안에 있으며 건물은 UN이 관장하여 1968년에 건축하였다.
* * 평화 공원[ 平和公園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677
평화 공원은 UN 기념 공원 근처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평화 공원이라는 이름도 UN 기념 공원과 연계하여 지어진 것이다. 공원은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며, 주변의 부산 문화 회관, 부산광역시박물관, UN 기념 공원, UN 조각 공원 등과 연계되어 문화 공간의 벨트화를 이루고 있다.
* * * 유엔평화기념관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홍곡로320번길 106 (대연동)
유엔평화기념관은 전쟁의 실상을 체험하지 못한 후손에게 전쟁의 참상과 정전협정의 무게를 각인시킬 수 있는 교육적 공간으로, 참전자들의 희생을 올 곧게 전달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기념관 내 3개의 상설전시관(UN한국전쟁기념관, UN참전기념관,UN국제평화관)을 통해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고 평화유지를 위한 희생과 의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규모 ; 부지 6,810㎡, 연면적 7,999㎡, 지상 5층
* *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國立日帝强制動員歷史館]
설립일
2015년 12월 10일(국립박물관 등록 2016년 7월 11일)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홍곡로320번길 100(대연동 산 204-1)
규모
건축 총면적 12,062㎡, 부지면적 75,465㎡
주요소장품
일제 강제동원 수기, 사진, 박물류
부산시 남구 홍곡로에 있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다루는 국립박물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규명해 성숙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강제동원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족을 위무하며, 인권과 세계 평화에 대한 국민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자 2015년 12월 10일 개관하였다.
부산항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주된 출발지였고, 강제동원자의 22%가량이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부산에 건립되었다.
- 주요 소장품 ; 대일항쟁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청년들의 결의의 징표인 〈결의형제서약서〉, 대일배상청구의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던 〈왜정시피징용자명부 倭政時被徵用者名簿〉(1957~1958)를 비롯해 각종 조선인 징용자 명부, 사진, 편지 등 일제 강제동원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 * 부산 오륙도[ 釜山 五六島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龍湖洞)에 딸린 섬.
명승 제24호(2007.10.01.)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936
크기; 면적 0.02㎢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 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이었다. 영도구(影島區)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송곳섬은 작고 모양이 뾰족하며, 굴섬은 가장 크고 커다란 굴이 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 * 오륙도 스카이 워크[ 五六島- ] ==== 시 워크?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관광 조망 시설.
오륙도 스카이 워크는 오륙도와 이기대가 결합된 부산의 해안 관광지에 해안 경관 조망이 결합된 관광 상품으로, 2012년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조성에 들어가 2013년 10월 18일 준공식을 하고 개장하였다.
* * 청사포[ 靑沙浦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에는 일찍부터 작은 어촌 마을인 청사포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지방 어항이 발달해 있다. 이곳에서는 미역이 생산되고,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은 일찍부터 맛 좋기로 이름난 청사포 회 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횟집 및 장어구이, 조개 구이 집 등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일출로도 유명하여 매년 12월 31일이면 일출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동해 남부선의 옛 철로가 통과하며, 해운대구에서는 미포에서 청사포, 구덕포까지 연결되는 길을 걷는 해운대 삼포 길 걷기 행사를 3~4월과 11월에 개최하고 있다.
*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해수면에서 20m 높이에 건립된 전망대는 72.5m 길이로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습니다. 다릿돌은 '개울을 건너려고 띄엄띄엄 놓은 돌'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 청사포 등대
* * 복천박물관[ 福泉博物館 ]
설립일 ; 1996년 10월 5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에 위치한 가야시대 역사․ 고분박물관.
- 복천동고분군(사적 제273호)에서 출토된 자료를 중심으로 가야권 및 일본을 포함한 인접 국가들의 유물과 비교 전시하고 다양한 사회교육을 통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복천동고분군 및 복천박물관의 특성을 살펴보면, 복천동고분군은 6세기 이전 부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무덤구조와 유물이 다량 매장되어 있어 당시 국제관계 및 문화, 정치, 군사, 경제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 부산복천동고분군[ 釜山福泉洞古墳群 ]
사적 제273호(1981.06.09.)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
시대 ; 가야시대, 3∼7세기대
규모 ; 4만 5,576㎡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복천동고분군은 우리나라 고대사 해명에 필요한 여러가지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는 유적이다. 묘제상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새로운 묘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어 이 지역 묘제의 변천과 그 계보연구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 동래읍성지[ 東萊邑城址 ]
부산기념물 제5호 (1972년 06월 26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안락동·명륜동·칠산동·명장동 일대에 있는 읍성.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 일부를 포함한다.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모두 갖춘 읍성이다. - 성의 둘레는 1,962m, 높이 0.5~3m이며, 넓이는 103,647㎡이다. 삼한시대에 건립되었으나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수축(修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동래읍성 역사관[ 東萊邑城歷史館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역사관길 18[복천동 1-2]
2007년 3월 동래읍성 역사관을 건립하였다.
- 현황 동래읍성 역사관은 동래의 역사, 풍경, 동래읍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물을 마련해 놓았다. 특히 조선 후기 동래읍성의 축소 모형은 현재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동래읍성의 옛 모습을 짐작케 한다.
* * 장영실 과학 동산[ 蔣英實科學- ]
조선 세종 대 과학 기기를 복원·전시하고 있는 과학 체험장.
- 건립 경위 2009년 11월 4일 동래 출신의 조선 세종 대 과학자인 장영실(蔣英實)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 구성 장영실 과학 동산의 총면적은 1,177㎡이며, 장영실의 발명품을 포함하여 조선 시대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을 전시하고 있다.
* * * 범어사[ 梵魚寺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金井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25개본사)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金色)에다 물 속에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고 하였다.
범어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동계(東溪)가 편찬, 간행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事蹟)』이 현존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 * 범어삼기(梵魚三奇)와 금정팔경(金井八景)
금정산과 범어사의 경치를 이르는 말로 범어삼기와 금정팔경이 있다.
범어삼기는 원효석대(元曉石臺)와 자웅석계(雌雄石鷄), 암상금정(岩上金井)으로 원효암 뒤편의 바위 봉우리, 계명암의 암수 한 쌍의 닭모양 바위, 깎아지른 바위봉우리 위에 있는 금샘이 세 개의 기이한 풍경이란 뜻으로 범어삼기라 불렸다.
* * 범어사 등나무군락
천연기념물 제176호(1966년 1월 13일) 지정
범어사 입구 계곡에 있는 등나무 군락.
- 현황 범어사 등나무군락은 금정산 중턱에 있는 범어사 앞 계곡에 있다. 개천에는 집채 같은 큰 바위가 곳곳에 널려 있고 그러한 바위 밭에 등나무가 나서 소나무, 팽나무 등의 큰 나무의 줄기를 감고 올라가고 있다. 등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라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은 학술적 가치가 높아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면적은 6만 5502㎡이고 현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등나무 꽃이 한창 필 때면 그 꽃이 구름처럼 보인다고 하여 등운곡(藤雲谷)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금정산 절경의 하나로 꼽힌다.
* 범어사 대웅전 (梵魚寺 大雄殿)
보물 제434호(1966년 2월 28일)
범어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 대웅전은 조선 선조 35년(1602)에 다시 지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는 한 차례 보수 공사가 있었다.
* 범어사 성보박물관[ 梵魚寺聖寶博物館 ]
범어사 내에 산재된 불교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종합적으로 연구·전시하기 위하여 1999년 12월 20일 박물관 건립을 시작하여 2003년 3월 26일 개관하였다.
- 범어사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많은 종류의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현존하는 범어사의 불상, 불화, 영정, 전적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1,000여 종의 불교 서적과 책판류를 소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고전적만 660종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범어사 의상대사 영정」[ 梵魚寺義湘大師影幀 ]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5호(2003년 9월 16일)
범어사 의상대사 영정(梵魚寺義湘大師影幀)」은 신라 시대의 승려인 의상 대사[625~702]의 초상화이다. 화면 향좌측 아랫부분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건륭 32년, 즉 1767년(영조 43)에 양공(良工) 수일(守一)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 범어사 대웅전 수미단: 비천비천(飛天)이란 천의(天衣)를 걸치고 공중을 나는 천인(天人)을 말한다. 서양의 천사가 날개를 단 나체의 모습이라면 동양의 비천은 날개가 없고 장식적인 천의를 걸친 것이 특징적이다.우리나라에 비천상은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유입되었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에 비천무늬를 그리기 시작하여 통일신라 때에는 매우 사실적이며 화려하고 세련된 양식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 범어사 대웅전 수미단: 기린
*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梵魚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526호 (2007년 9월 18일)
중앙의 본존불은 항마상의 석가여래이며,
좌우에는 양손으로 연꽃 가지를 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다.
시대 조선/조선후기
제작시기·일시 1661년
수량 3구
재질 목조
크기 (높이,길이,두께,너비)
높이: 본존상 1.3m,
좌협시보살상 1.2m, 우협시보살상 1.2m
범어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전각 내의 거대한 수미단 위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항마상의 석가여래이며, 좌우협시상은 보관과 영락을 착용하고 양손에 연꽃 가지를 대칭으로 각각 쥔 보살상이다.
범어사 대웅전의 주불인 목조삼존불상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고격의 법당 건물, 그리고 아름다운 불단 등과 함께 그 격조를 같이 하고 있는 불상으로 판단된다. 불신은 비례가 적당한 가운데 양감도 풍만한 편이어서 균형잡힌 형태를 보이며 엷은 미소에서 풍기는 부드럽고 자비스러운 인상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단정 우아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범어사 대웅전의 삼존불상은 원래의 봉안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또한 제작연대와 조각승 등 조성 내용을 알 수 있는 17세기 중반의 귀중한 불상이다.
* 범어사 대웅전 삼장보살도[ 釜山梵魚寺大雄殿三藏菩薩圖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8호.(2006년 11월 25일)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57㎝, 가로 267.2㎝.
천상과 지상, 지하의 교주로 신앙되는 세 보살인 천장·지지·지장보살을 그린 불화이다.
화기를 통해 1882년(고종 19)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이 불화는 대웅전의 좌측 벽면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로, 1882년에 수화승 수룡당 기전(繡龍堂 琪銓)이 대웅전의 영산회상도, 신장도와 함께 제작한 삼장보살도이다.
* 대웅전 제석신중도」[大雄殿帝釋神衆圖 ]
「범어사 대웅전 제석신중도(梵魚寺大雄殿帝釋神衆圖)」는 범어사 대웅전 우측 벽에 봉안된 불화이다. 수화승(首畵僧) 기전(琪銓)이 1882년(고종 19) 「범어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梵魚寺大雄殿釋迦靈山會上圖)」, 「범어사 대웅전 삼장보살도(梵魚寺大雄殿三藏菩薩圖)」와 함께 제작한 불화이다.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 형태 및 구성 ;「범어사 대웅전 제석신중도」는 세로 230.5㎝, 가로 231.8㎝ 크기의 비단에 채색을 베푼 것으로, 일곱 폭의 비단을 잇대어 한 화면을 구성하였다.
*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大雄殿釋迦靈山會上圖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7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355.2㎝, 가로 401.2㎝.
범어사에 소장된 19세기 말 영산회상도.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불화이다.
본존인 석가와 협시인 문수·보현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권속들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화기를 통해 1882년(고종 19)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화면 상태는 양호하다.
* 범어사 대웅전 청동북(梵魚寺 大雄殿 靑銅金鼓)
범어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청동북이다. 청동북은 절에서 사용하는 도구로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하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이다.
1999년 9월 3일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금고는 지름 90cm, 두께 15cm의 대형 금고이다.
옆면은 뒷면을 향해 안으로 기울어진 좁은 입구를 가진다. 앞면에 동심원이 새겨 있을 뿐 전체적으로 무늬가 없다. 옆면에는 3개의 고리가 달려있으며, 만들어진 때와 금고에 대한 기록이 새겨 있다. 이 글로 보아 동치(同治) 원년인 조선 철종 13년(1862)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금고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형 금고인 동시에 만든 시기가 명확한 중요한 자료이다.
* 범어사 종루
종루는 아침 저녁 예불과 의식이나 행사 때 쓰이는 사물(四物) 즉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가 설치된 건물이다.범어사 종루는 원래 심검당 오른쪽 전방 삼층석탑 맞은편 중정에 있었다. 당시의 건물은 숙종 25년(1669)에 명학 스님이 중창했다고 전하는데 일제 초기에 지금의 자리에 그대로 옮겨 세웠다. 건축 양식이 미륵전과 흡사하여 1889년경에 크게 손질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 범어사조계문 梵魚寺曹溪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 2월 7일 보물 제146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일렬로 장주형(長柱形) 초석들을 네개 세우고, 이 초석 위에 높이가 낮고 굵은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사이를 창방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다시 평방을 놓아 장방형의 틀을 짠 뒤 공포(栱包)를 놓아 다포식 건축을 이루고 있다.
* 일주문 화반
범어사 일주문은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한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화면에 보이는 화병과 화려한 꽃들은 일주문 안의 장식부재에 그려진 것으로, 파란선으로 묘사된 화병 속에서 뻗어나온 꽃들이 화려하다. 뻗어나온 가지는 하늘색 계열이지만 그 속에 핀 꽃들은 빨강·파랑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화병은 평안을 상징하며, 그 안에 꽂힌 꽃들에 의해 길상적 의미가 변한다.
* 범어사 천왕문[ 梵魚寺天王門 ]
범어사 천왕문(梵魚寺天王門)은 삼문(三門) 가운데 두 번째 문으로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며, 13단의 높은 석계를 오르는 축대 위에 4구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봉안한 건물이다. 사천왕은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하늘의 동서남북 사방을 담당하여, 인간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범어사 천왕문은 범어사(梵魚寺)라는 성역에 이르기 위해 속세의 티끌을 걸러내는 중요한 통과 의례 장치에 해당한다.
- 범어사 천왕문은 1699년(숙종 25)에 승려 자수가 처음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며, 그 뒤로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을 것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2010년 12월 15일 방화범의 방화에 의해 전소(全燒)되었으며, 2012년에 시민들과 불자들의 정성으로 복원되었다.
* 범어사 불이문
시대 ; 조선/조선 후기
범어사 불이문(梵魚寺不二門)은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으로 오르는 축선상의 삼문 가운데 세 번째 문으로, 범어사 보제루(梵魚寺普濟樓)와 연결된다.
범어사 불이문은 1699년(숙종 25)에 승려 자수가 범어사 천왕문(梵魚寺天王門)과 함께 창건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에 정면 기둥의 초석을 교체하였다.
* 범어사 보제루 梵魚寺普濟樓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형식의 건물.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 담긴 보제루(普濟樓))에서는 예불(禮佛)과 법요식(法要式)이 거행된다.
- 범어사 보제루는 1699년(숙종 25)에 승려 자수의 주관으로 창건되었다. 사적기(事績記)에 의하면 1813년(순조 13)에 승려 신정의 주관으로 중건되었으며, 이후 1827년(순조 27)에 다시 중건된 기록이 있다. 새로운 보제루 중수를 위해 2010년 철거하였으며 철거되기 전의 건물은 1813년 또는 1827년에 중건한 것으로 추측되며 2014년 증축 완공되었다
* 부산 범어사 동종 (釜山 梵魚寺 銅鍾)
부산광역시 범어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구리 종이다.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27센티미터, 종구(鐘口) 지름 92.5센티미터이다. 종신에 만든 시기, 무게, 주로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의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범어사 동종은 1728년에 김성원(金成元)과 김선봉(金善奉)이 만들었다.
* 범어사 삼층석탑[ 釜山 梵魚寺 三層石塔 ]
보물 제250호.(1963년 01월 21일)
건립시기 ; 830년 경
높이 ; 4m.
2층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의 삼층석탑으로서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상하기단의 면석(面石)에 탱주(撑柱 : 받침기둥) 대신 안상(眼象)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 범어사 석등[ 梵魚寺石燈 ]
부산 유형문화재 제16호(1972년 06월 26일)
크기 ; 높이 2.62m
신라 때의 승려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250)을 건립한 지 3년 뒤인 678년(문무왕18)에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범어사 삼층석탑과 같이 9세기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있던 종루를 옮기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 범어사 당간지주[ 梵魚寺幢竿支柱 ]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5호(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경내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 범어사 비로전
시도유형문화재 제155호(2015.07.15.)범어사 비로전(梵魚寺毘盧殿)에는 본존불로서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봉안되어 있다. 『화엄경(華嚴經)』의 교주(敎主)인 비로자나불을 단독으로 봉안한 불전을 ‘화엄전(華嚴殿)’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범어사의 경우와 같이 ‘비로전’이라고 한다.
범어사 비로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미륵전과의 사이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아 뒤쪽의 범어사 금어선원(梵魚寺金魚禪院)으로 통하게 하였다.
범어사 비로전 내부에는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범어사 비로전 목조 비로자나 삼존불 좌상(梵魚寺毘盧殿木造毘盧遮那三尊佛坐像)이 봉안되어 있다.
*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梵魚寺 毘盧殿 木造毘盧遮那三尊佛坐像]
부산유형문화재 제71호(2006년 11월 25일 )
본존불은 높이 약 125㎝, 좌·우협시불은 높이 약 100㎝이다.
불상은 사각형 수미단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본존불은 등을 곧추세우고 얼굴을 다소 앞으로 숙여 아래를 굽어보고 있으며 수인(水印)은 지권인(智拳印)이다. 좌·우협시불은 본존불보다 작은 편이고 전체적인 조각양식은 본존불과 비슷하다.
* 범어사 미륵전 [ 梵魚寺彌勒殿 ]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56호(2015년 7월 15일)
미륵전(彌勒殿)은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미륵불이나 미륵보살을 모신 불전인데, 다음 세상에 구세주로 강림하는 미륵불을 모실 때는 용화전이라 하고, 도솔천에 있는 미륵존을 모실 때는 미륵전이라고 부르는데, 대개 미륵전이라고 한다.
* 범어사 미륵전 목조여래좌상 [ 梵魚寺 彌勒殿 木造如來坐像 ]
부산유형문화재 제72호(2006년 11월 25일)
미륵전 안 불단 뒤쪽의 3단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대좌의 하대석은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석조대좌로 추정된다. 불상의 높이는 약 169㎝이다.
* 범어사 금어선원[ 梵魚寺金魚禪院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범어사(梵魚寺)의 개항기 수행 선원.
선원이란 선(禪)을 교육하고 실수(實修)하는 불교의 전문 교육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선원은 통일 신라 말에 선종(禪宗)이 전래된 이후 설치되어, 승려 양성의 중요한 수행 기관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 범어사 강원[ 梵魚寺講院 ]
근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의 범어사에 설치되었던 승려 교육 기관.
개항기에 일본 불교가 본격적으로 침투하자 사찰별로 전통 불교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범어사는 경허 대사(鏡虛大師)를 초청하여 각 암자에 선원(禪院)을 두고 선풍을 진작하였고, 1900년에 승려 혼해(混海)를 강백(講伯)으로 하여 청풍당, 금당, 범어사 청련암, 범어사 대성암(梵魚寺大聖庵) 등 4곳에 범어사 강원(梵魚寺講院)을 개설하였다.
* 범어사 관음전[ 梵魚寺觀音殿 ]
관음전(觀音殿)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하는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의 서원이 철저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神力)으로 중생을 돕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찰에 많이 세워져 있다.
* 범어사 관음전 백의관음보살도[ 梵魚寺 觀音殿 白衣觀音菩薩圖 ]
부산유형문화재 제53호(2003년 09월 16일)
조선시대의 백의관음보살도이다. 관음전의 관음불상 뒤에 있다. 자애로움을 나타내는 관음보살도로서 자연을 배경으로 암좌에 앉아 인간 세상의 온갖 번뇌의 소리를 들어주는 모습을 나타낸다.
*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梵魚寺 觀音殿 木造觀音菩薩坐像 ]
부산유형문화재 제70호(2006년 11월 25일)
불상의 높이는 약 102.8㎝이다.
불상은 팔각대좌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팔각대좌 위 연화대좌 윗면에는 묵서(墨書)가 있는데 이를 통해 제작시기가 1722년이고 진열(進悅), 청우(淸雨), 청휘(淸徽), 관성(貫性), 옥홀(玉)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9년에 개금(改金)하였다.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을 연구하는 데 이용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 범어사 지장전[ 梵魚寺地藏殿 ]
지장전(地藏殿)은 명부전(冥府殿) 혹은 시왕전(十王殿),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하는데, 당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저승 세계를 상징하는 법당이다.
* 범어사 명부전(釜山 梵魚寺 冥府殿)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에 있던 건축물이다. 1986년 5월 29일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988년 11월 1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 범어사 일로향각[ 梵魚寺一爐香閣 ]
범어사 일로향각은 원래 범어사 관음전(梵魚寺觀音殿) 자리에 있던 범어사 금어선원(梵魚寺金魚禪院)에 딸린 염화실(拈花室)[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머무는 방]이었다. 현존 건물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창건 이후 중건과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범어사 심검당[ 梵魚寺尋劍堂 ]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방.
심검’이란 당호에서 보듯 수도를 위한 승려들의 선방이었는데, 사찰의 규모가 커지면서 선방의 기능을 범어사 금어선원(梵魚寺金魚禪院)으로 옮기고 지금은 강학을 위한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범어사 함홍당[ 梵魚寺含弘堂 ]
조선 후기의 선방.
범어사의 7대방 중 하나로 조성되어 선방(禪房)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1925년 이후부터는 건물의 활용 성격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범어사 해행당[ 梵魚寺解行堂 ]
조선 후기의 선방. .
정면 10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범어사 해행당은 현재 속가 대중(俗家大衆)을 위한 교육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범어사 해행당은 당호에서 유추되듯이 원래 선방(禪房)으로 보인다. 창건 당시의 기능을 현재 그대로 계승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대에 맞게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범어사 원응방[ 梵魚寺圓鷹房 ]
조선 후기의 강당.
범어사 원응방은 일찍이 강당(講堂)과 강원(講院)으로 활용되던 공간으로, 초대 강주가 승려 혼해(混海) 찬원(讚元)이었고 이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 등 당대 유명한 대강백들이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쓴 곳이다. 현재는 승가 대학으로서 그 맥을 이어 가고 있다.
* 범어사 안심료[ 梵魚寺安心寮 ]
조선 후기의 선방.
범어사의 7대방 중 하나로 조성되었으며, 이후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선원과 선회(禪會)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강학과 수행하는 승려들의 공간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63호(2006년 7월 3일)
조선시대의 건축물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인 본 건물은 현재 범어사 대웅전 서쪽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 불전의 하나로, 적어도 1706년 이래로 존속했던 위치에서 변함없이 존속해 온 건물이다.
* 범어사 나한전 불상[ 梵魚寺羅漢殿佛像 ]
조선 후기의 불상 25구.
범어사 나한전에서 보이는 새로운 요소의 등장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근대 불상의 시발점을 알려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범어사 나한전의 불상들은 이러한 특징들을 잘 반영하고 있어 근․현대 불교 조각을 연구하는데 자료적인 자치가 크다 하겠다.
*「범어사 나한전 나한 탱화」[ 梵魚寺羅漢殿羅漢幀畵 ]
나한전에 봉안된 개항기의 나한 탱화.
「범어사 나한전 나한 탱화(梵魚寺羅漢殿羅漢幀畵)」는 총 6폭으로 석가 후불도의 왼쪽에 제1폭을, 오른쪽에 제2폭을 배치하고, 좌측 벽에 제3·5폭을, 우측 벽에 제4·6폭을 배치하였다. 그림 6폭의 화면 크기는 평균 세로 160.0㎝, 가로 220.0㎝로 세로축에 비해 가로축이 넓은 편이다.
1905년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십육 나한을 모두 6폭에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전반적으로 서양 화법을 응용한 화풍이 돋보이며 나한상의 착의를 중심으로 한 음영 처리가 주목된다
* 범어사 나한전 십육나한도(梵魚寺 羅漢殿 十六羅漢圖)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05호(2018년 10월 3일)
범어사 나한도는 나한전의 내부 석가설법도의 양측면으로 나누어 십육나한도를 배치하고 있는데, 모두 여섯 폭이다. 석가설법도의 왼쪽부터 제1, 3, 5폭을, 오른쪽에는 제 2, 4, 6폭을 각각 배치하였다.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 [ 梵魚寺羅漢殿釋迦牟尼後佛幀畵 ]
나한전에 봉안된 개항기의 석가모니 후불탱화.
나한전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으로 1905년에 제작되었다. 제작에는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1846~1928]의 주관 하에 보응당(普應堂) 문성(文性)이 출초(出草)를 맡고 혜암당(慧庵堂) 정상(正祥), 관허당(觀虛堂) 종인(宗仁), 축연(竺演) 등 총 16인의 화승이 참여하여 제작한 그림이다.
충청도 지역과 금강산,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의 화승들이 모여 작업한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梵魚寺 羅漢殿 釋迦牟尼佛會圖)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4호(2018.07.25.)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에 있는 불화이다.
나한전의 석가여래삼존불좌상 뒤쪽 벽면에 석가모니불회도가 봉안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 항마인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연화가지를 든 문수보살, 오른쪽에 여의를 든 보현보살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합장형 보살 2위,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제자상, 사천왕상이 외호하고 있다.
범어사 원응방[ 梵魚寺圓鷹房 ]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강당.
정면 10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규모만으로는 범어사에서 큰 건물 중 하나이다.
현재 범어사 원응방은 승가 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 범어사 산령각[ 梵魚寺山靈閣 ]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산령각.
범어사 산령각이 처음 건립된 시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05년(고종 42)에 개축되었다.
* 범어사기·범어사창건사적·범어사고적판 [梵魚寺紀梵魚寺創建史蹟梵魚寺古蹟板]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28호(1999년 9월 3일)
조선시대의 목판각.
1700년(숙종 26)에 제작되었으며 6판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목판본에는 금정산 아래 이중전을 창건하였고 미륵전, 비로전, 대장전 등을 세우고, 《고려대장경》과 《화엄경》, 석가여래상을 모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범어사 석조연화대좌하대석[梵魚寺石造蓮花臺座下臺石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3호.(2006년 11월 25일)
전체 높이 88㎝, 너비 147㎝. 범어사 미륵전의 목조여래좌상이 앉아 있는 석조연화대좌로, 모서리와 측면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대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석조대좌는 현재 삼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하대석(下臺石)만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하대석은 너비가 147㎝의 큰 규격이며 상·중·하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 범어사 연[ 梵魚寺輦 ]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5호9(2003년 9월 16일)
사찰에서 불교 의식이나 불상을 이운(移運)할 때 사용하는 가마 형태의 연(輦)은 장엄(莊嚴)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범어사에 소장되어 있다.
* 범어사 유제 대발(梵魚寺 鍮製 大鉢)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4호( 1999년 9월 3일)
조선시대의 공양구로, 절에서 공양할 때 밥통으로 사용하던 식기의 일종이다.
사찰에서 바루 공양을 할 때 밥통으로 사용하던 식기의 일종으로, 몸체 좌우 대칭되는 곳에 2개의 손잡이 고리가 달려 있으며, 길이가 17.6cm, 너비가 40.5cm인 대형 발우이다.
* 범어사 사적비[ 梵魚寺事蹟碑 ]
일제 강점기 범어사에 세운 비.
1923년 당시 범어사 주지인 승려 담해(湛海)가 범어사의 연혁과 선찰 본산(禪刹本山)으로서의 사격(寺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세웠다.
전체 높이는 356㎝이고, 비신은 높이 204.2㎝, 너비 85㎝, 두께 43㎝이다.
* 범어사 바라[ 梵魚寺哱囉 ]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6호(2003년 9월 16일)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한 쌍의 바라.
바라는 불교 의식구(佛敎儀式具) 중의 하나로 자바라, 발자(鉢子), 요발(饒鈸), 동발(銅鈸)이라고 한다.
* 범어사 목조팔각불감[ 梵魚寺 木造八角佛龕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ㅖ176호(2016년 11월 23일)
범어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나무로 만든 불감(佛龕).
「범어사 목조팔각불감(梵魚寺 木造八角佛龕)」은 개인의 호신불 또는 원불(願佛)을 모시거나 인법당(因法堂)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는 궤(櫃) 형태의 불감이다.
「범어사 목조팔각불감」은 불감의 형태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는 불감으로서 현존하는 예가 드문 작품이므로 조선 후기 불감의 양식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범어사 팔상전: 꽃살문 - 매화
매화는 겨울에 죽은 듯이 보이다가 이른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속성 때문에 회춘(回春)을 의미하고, 대나무와 함께 부부(夫婦)를 뜻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새해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하여 신년(新年)의 의미로 그려지거나, 쾌락.행복.장수.순리.절개의 오덕(五德)을 지닌 꽃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 범어사 팔상전 삼존불 좌상[ 梵魚寺八相殿三尊佛坐像 ]
조선 후기의 삼존불 좌상.
범어사 팔상전 중앙 수미단에 봉안된 석조 삼존불 좌상(三尊佛坐像)은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협시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두었다.
* 범어사 팔상전 팔상도[ 梵魚寺捌相殿捌相圖 ]
「범어사 팔상전 팔상도(梵魚寺捌相殿捌相圖)」는 범어사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도이다. 화기에는 1978년에 제작되었으며, 화공 우일(又日)이 담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 범어사 고려삼층석탑[ 梵魚寺高麗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7호(2011년 3월 26일)
시대 ; 고려전기
범어사 고려삼층석탑(梵魚寺高麗三層石塔)은 이중 기단에 옥개 받침을 지닌 옥개석 등 통일 신라 시대 전형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석탑의 전체적인 규모와 하층 기단 면석에 하대 저석(下臺底石)을 조출한 것과 3단 각형으로 얕게 표현된 옥개 받침의 양식 등을 고려할 때 고려 초에 조성된 석탑으로 판단된다.
* 범어사 3·1 운동[ 梵魚寺三一運動 ]
1919년3월 범어사 승려와 학생들이 주도하여 동래 일원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
1919년 3·1 운동을 앞둔 2월 하순경 불교계를 대표하는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오성월(吳惺月)을 비롯하여 이담해(李湛海), 오이산(吳梨山)을 만나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범어사 승려와 명정학교 및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 7명을 범어사의 대표로 서울의 3·1 운동에 참가하게 하였다. 범어사 관계자들이 3월 8일 동래 장날에 맞추어 만세 시위를 시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들은 새로운 거사일을 역시 동래 장날인 3월 18일로 잡고 동래 장터 일대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시위 후 주동자 35명은 대부분은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 대구복심법원에서 재판을 거쳐, 부산감옥소와 대구감옥소 등에서 징역 6월~3년의 옥고를 치렀다. 일제는 이 의거가 있은 후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해체시켰다.
* 범어사를 노래한 고전 문학[ 梵魚寺-古典文學 ]
조선 시대 부산의 범어사를 대상으로 지은 한시 작품.
* 범어사 갑계보사비[ 梵魚寺甲契補寺碑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범어사 경내에 세운 14기의 비석군.
조선 후기 범어사의 갑계
조선 후기 사원에는 각종 계(契)가 조직되어, 사원 경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범어사에도 다양한 계가 조직되어 각종 불사(佛事)의 경비를 충당하여 보사(補寺)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