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와 종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인간은 자신의 의사를 단지 표정이나 동작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얼굴 표정이나 손짓ㆍ몸놀림 등 신체 동작으로 표현하는 바디 랭귀지, 소리를 내어 남에게 전달하는 구두 언어, 문자나 실제 사물을 조합하여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언어와 문자는 이 세 가지 전달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데, 특히 이 중에 문자가 기록 형태로 남는다. 종이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나무, 암석, 도자기 파편, 토기, 석기, 거북 등과 청동기ㆍ철로 된 그릇, 대나무를 쪼개 만든 죽편, 나무쪽인 목책, 양의 껍질로 만든 양피지(parchment), 나무 껍질로 만든 피지(皮紙; vellum), 명주실로 짠 비단인 깁 등에 문자를 표기하였다. 초기 서사(書寫) 재료 대부분은 무겁고 부피가 크며 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값이 비싸서 쉽게 사용하기 어려웠다. 종이를 개발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종이 발명 이후 본격적으로 지식이 전파되어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종이의 어원은 파피루스(papyrus)라고 전해진다. 약 5,000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풀의 줄기 안쪽을 얇게 벗겨 가로, 세로로 겹쳐 놓고 위에서 압력을 가해 섬유질을 납작하게 맞붙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새겼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지료(紙料; pulp)를 이용하거나 종이를 뜬[浮; 뜰 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식물의 내피를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후세에 발명된 종이 제지 기술과 관련이 없으므로 일반적인 종이의 기원으로 볼 수는 없다.
파피루스
파피루스 재배지
파피루스(실내 관상용)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의 기원은 『후한서(後漢書)』의 채륜(蔡倫)에 대한 기록에서 볼 수 있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때에 채륜이 나무 껍질, 마, 창포, 어망 등 식물 섬유를 원료로 하여 종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채륜의 제지 방법은 분명하지 않으나 각종 섬유[수피(樹皮)ㆍ황포(黃布)]를 돌절구에 찧어서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채륜지는 발명 후 수세기 만에 중국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진(晉)나라 때 산동성의 좌백[자(字)는 자읍(子邑)]이란 사람이 이 제지술을 한층 발전시켰고, 이후에도 제지술이 계속 발전하여 한대 말기에는 정교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진나라 남쪽 지방은 기후가 비교적 따뜻하여 섬유 식물이 많았는데, 이 원료를 발효시킨 후 섬유를 뽑아 내어 만든 종이가 화선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측리지(側理紙)다. 2세기 후반경에는 종이 품질이 많이 개량되고 제작 비용도 아주 낮아져 일반 서사 재료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예술적인 용도에까지 다양하게 쓰여졌다.
최근 중국에서는 채륜 이전에 이미 종이가 있었다는 주장이 일고 있으며,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도 발굴되고 있다. 1943년에 중국의 고고학자 노간(勞幹)과 석장여(石璋如)가 감숙성(甘肅省) 하반(河畔)의 보루(保壘)에서 발굴한 종이 뭉치는 후한의 화제 영원(永元) 원년부터 6년(서기 93~98년)까지 연호(年號)를 기록한 목간과 동시에 출토되었는데, 목간보다도 깊은 출토층(出土層)에서 나왔으므로 채륜의 종이보다 더 옛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957년에는 섬서성(陝西省) 안시(安市) 교외에서 파교지(昏橋紙)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 140~87년) 시대의 마 원료로 만들어 식물성 섬유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방마탄지, 중안지(中顔紙) 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종이들은 글씨를 쓰는 용도가 아니라 거울 같은 귀중품을 보존하기 위한 포장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종이는 필사용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채륜이 제지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라기보다는 앞사람들의 경험을 잘 정리해 놓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채륜의 업적은 자원이 풍부하고 가격이 싼 식물 섬유를 이용하여 종이를 만드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인류 사회에 아주 유용한 현재의 종이가 생겨난 것이다.
종이는 대개 ‘식물성 섬유를 재료로 만든 얇은 것’, ‘섬유 물질을 개개의 섬유로 분리시킨 다음, 그것을 물 속에 담그고 다시 모아 습지(mat)를 만든 후에 이를 건조시켜 만드는 섬유 물질의 얇은 층(sheet)’이라고 정의한다. 현재 쓰고 있는 ‘종이’라는 말은 ‘저피(楮皮)’에 어원을 둔다. 저(楮)는 닥나무를 말하며, 저피란 닥나무 껍질을 뜻한다. 저피가 조비 → 조해 → 종이로 변한 것이므로 ‘종이’라는 말 속에 한지의 성격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중국에서는 종이(紙)를 ‘즈 -’라고 발음하며, 문자로는 ‘지(紙)’ 즉 ‘사(絲)’+‘씨(氏)’로 쓴다. 이로써 최초의 종이가 어망의 폐물이나 실을 엮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지(紙)자를 ‘지(帋)’라고 쓰기도 하는데, 낡은 면이나 무명 등을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종이를 ‘가미(かみ)’라고 발음하는데 신(神)도 ‘가미’라고 발음한다. 아마도 신의 몸을 종이로 만들므로 종이와 신을 동일시해서 같은 발음을 하는 듯하다. 종이를 영어로는 페이퍼(paper), 독일어로는 파피에르(papier), 스페인어로는 파펠(papel)이라고 하는데, 모두 그리스어 파푸로스(papuros)와 라틴어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온 말이다. 또한 성경을 영어로는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데 이도 그리스어 비블로스(biblos)나 비블리아(biblia)가 변한 말이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파피루스 줄기 속대를 부블로이(bubloi)라고 불렀던 것도 파피루스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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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미지는 안보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고마워요
다양한 정보가 가득하군요. 잘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