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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한국불교 영역의 현황 문제점과 향후 방향 (3)
한강작가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본
한국불교 영어번역의 실태와 전망
글 전 옥 배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 원장, 111nirvana@hanmail.net)
1. 머리말
2024년 가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에서 우리 문학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작가 한강은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문학가의 반열에 올랐다. K-문학의 도약은 작가의 문학적 역량뿐 아니라, 작품을 소개한 번역자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벨문학상과 같은 해외 문학상은 심사위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면 원본 그대로 심사하지만, 한국어 같은 소수 언어의 경우는 반드시 번역본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되어 있는 영어와 같은 번역의 옷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번역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언어의 하나로 꼽힌다. 주어가 자주 생략되고 높임말과 다양한 용어, 어미의 발달 등 섬세한 표현들이 많아서 다른 언어로 재현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원작자의 고유한 톤(tone)과 감수성 살리기, 영어권 독자의 이해를 고려하기, 두 언어 사이에 줄타기는 아슬아슬할 수 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둘 다 놓칠 수도 있을 만큼 번역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므로 모든 번역의 과정은 작가와의 긴밀한 협의와 피드백의 과정이 필수적이며 반드시 필요하다. 이 부분이 모든 번역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학술 번역과 같은 전문 분야인 불교에서는 그러하다.
한강 작가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 수상 이후 2년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100여 군데의 오역 시비가 있었다. 그 결과물로 수상 작품 ‘채식주의자(Vegetarian)’의 초벌 번역에 한강 작가 스스로가 인정한 60여 곳의 오역 수정 작업이 없었더라면 과연 2024년 노벨상 수상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8-9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맨부커상 수상이 후 2년 간 ‘채식주의자’의 영역판을 두고 국내외 학계와 문단에서 야기된 오역 시비는 번역계에서 전통적으로 논란이 되어 온 “직역(直譯)이냐 오역(誤譯)이냐?”와 “번역이 과연 창작(創作)이 될 수 있느냐?” 등의 논란을 방불케 하였다. 이 ‘채식주의자’의 영역은 원작과는 다른 톤(tone)과 의미의 영어로 번역이 되었기 때문에 이 영어 번역본은 원본 작가인 한강의 작품이 아니라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 개인의 창작 작품이라는 주장의 비판까지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번역가 스미스의 학력을 보면 캠브리지 대학 영문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사 졸업 이후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영국에는 한국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2009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며 스미스는 한국어 독학 기간 6개월 이후부터 한국 작품 번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에 한국 책을 읽어본 경험이 없으며 문화적 배경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으나 한국의 경제력과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여 향후 한국문학도 한류와 더불어 활성화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번역자 스미스는 한국 작품 번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6개월 독학으로 시작된 한국어 실력으로 그 난해한 시적(詩的)이고도 서정성을 갖춘 새로운 장르의 한국 소설(노벨문학상 수상위원회의 한강 작품 수상 평)을 번역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번역을 했다고 의구심을 갖는 평론가도 있었다.
번역자는 기본적으로 양 쪽 국가의 문화와 언어 구사가 가능한 Bi-linguist(이중 언어사용자)가 되어야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이 번역이 온전한 원작자의 의도가 영어로 전달되었을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데보라 스미스의 한강 작품 번역의 경우는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본인의 영어 구사력이 이 영어로 번역된 작품에서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미스의 영역이 그 녀의 창작(創作)이라는 비판까지 나온 것이다.
본 기고에서는 한강의 노벨상 자체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 기고문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한강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이고 노벨 문학상을 받을 충분한 역량이 있는 작가임에 틀림이 없고 그야말로 K-literature로 국격을 높인 자랑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이 기고를 통해 한국불교의 역경(譯經)을 위해 번역의 일반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구조와 그 메카니즘을 국내외에서 제기된 오역 시비를 통해 그 문제점을 살펴봄으로서 보다 나은 번역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하는데 있다. 한 마디로 번역은 번역자의 단독 작품이 될 수가 없고 원작자를 비롯한 많은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업과 상호 피드백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 오역 사태를 통하여 인식하는 것이 바로 번역의 요체에 대한 바른 이해가 된다는 것을 본 기고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번 3월호에서는 부제에서 보는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2016년 맨부커상 이후 벌어진 본 국내외에서 제기된 수상작품 채식주의자 위주로 각종 오역 시비를 정리해 봄으로서 향후 한국불교 영역에 좋은 교훈을 삼고자하며, 특히 요즘 대세가 되어가는 AI 인공지능 기계번역으로부터 제기되는 현재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한강 작품 영어번역을 통해 검토해 보고 향후 인공지능 번역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번역계의 전망과 대책도 같이 논의 해 보고자 한다.
2. 국내외에서 쏟아진 오역 시비의 논란과 문제점
국내외 여러 언론과 학자들과 평론가에 의하여 지적된 수많은 오역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지자 2010년대 등장하여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었던 인공지능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을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 본인의 켐브리지 영문학 학사의 유려한 영어와 상상력으로 창작된 번역 창작품이라는 혹평이 나오기 조차 했다.
맨부커문학상 수상 이후 2018년 19~22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대회 국제인문포럼’에 초청된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는 20일 ‘언어와 문화다양성’ 섹션에서 ‘우리가 번역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문학평론가인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지난해 계간 문학동네 봄 호에 실은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한국어에서 생략된 주어를 틀리게 옮기는 등 많은 오역이 있다고 비판했으며, 김번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도 학술 논문에서 스미스가 소설 속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번역하는 등 숱한 오역을 양산했다는 지적한 바 있다.
국내에서 맴돌던 오역 논쟁은 2018년 9월 찰스 윤 이화여대 교수가 LA타임스에 ‘한강 원작의 베스트셀러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한국에서 논란을 일으켰나’(How the bestseller ‘The Vegetarian’, translated from Han Kang’s original, caused an uproar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면서 해외로까지 확산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채식주의자 번역에 대한 지적은 두 방향에서 이뤄졌다. 우선 ‘팔’(pal, arm)과 ‘발’(bal, foot)에 대한 혼동, ‘식욕’(a good appetite)을 ‘유능한 요리사 이상의 존재’(a more than competent cook) 등으로 착각하고 옮긴 것, 한국어 대화나 설명에서 생략된 주어를 엉뚱하게 붙이는 것 등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실수들이 오역의 예로 지적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쉽게 수정 가능한 그런 실수들보다도 톤(tone, 전체적인 분위기)과 목소리의 변화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찰스 윤 교수는 “톤과 목소리에서 채식주의자 영역본은 원본과 다른 작품이 되었다”면서 “담백한 현대식 문체의 ‘레이먼드 카버’를 공들인 언어로 꾸민 ‘찰스 디킨스’로 만든 셈”이라고 밝혔다.
‘채식주의자’의 번역은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 스스로도 “책에 쓰인 거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면서 번역하는 작업은 너무나 힘들었고 번역 과정에서 자주 좌절감과 낙담을 느끼기도 했다.”(looking up practically every word in the dictionary was laborious and often disheartening)고 밝혔을 정도로 처음 번역 당시 스미스의 객관적인 한국어 실력은 번역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노벨상 수상 위원회에서 극찬한 한강작가의 서정적 시적 뉘앙스로 쓰인 한국적 표현들이 번역자의 영문으로 번역이 가능한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대표적 예로서 초판에서 ‘처형’을 이름이 ‘처’라는 이름의 형이라고 해석해 남자인 he 라는 오역이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너무 달라져서 거의 재창작 수준의 번역이라는 비판도 나온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번역이란 것은 데보라 스미스와 같이 번역자 개인의 한 사람의 단독 번역으로는 완성되기가 어렵고 번역의 근본적 구조를 이해하여 필자나 해당 전문가와 피드백을 해야만 완성도가 높은 번역이 나올 수 있다. 반드시 필자의 확인과 피드백이 있어야만 하며, 필자의 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해당 분야 Bi-linguist인 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 번 오역 사태가 일어난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데보라 스미스가 처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훌륭한 번역이라는 극찬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이를 검토해 본 국내 번역계와 번역학계에서는 스미스의 The Vegetarian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훌륭한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그 번역 또한 훌륭한 영문학 작품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원문에 대한 충실성보다 원문과 같은 문학성 전달에 치중한 스미스의 새로운 번역을 환영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 반면, 번역가와 번역학자들은 스미스의 오역을 지적하며 그 번역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고려대 조재룡교수는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을 불어판 번역본과 비교하고 영어를 한국어로 다시 번역하는 등 텍스트를 면밀히 분석한 후, 그는 스미스가 The Vegetarian에서 원문의 내용 첨가와 삭제 및 길이조정을 자유자재로 임의로 번역한 본인의 창작수준의 영문 번역을 했다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김 욱동 교수 외에도 많은 영문학자, 문학 평론가, 번역 전문가들에 의해 오역 문제가 제기되어 지속적인 논란이 맨부커 상 수상이후 계속된바가 있다. 김 교수는 미국 텍사스대학 번역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 ‘번역 리뷰(Translation Review)’ 100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오역(誤譯)과 졸역(拙譯)이 많은 부적절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3. 유형별 오역 사례와 문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이름 높은 원로교수 김욱동(77세) 서강대 명예교수·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가 소설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맨부커 문학상 수상 즉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과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2016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김 교수 외에도 많은 영문학자, 문학 평론가, 번역 전문가들에 의해 오역 문제가 제기되어 지속적인 논란이 맨부커 상 수상이후 계속되었다. 김 교수는 미국 텍사스대학 번역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 ‘번역 리뷰(Translation Review)’ 100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오역(誤譯)”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번역자 스미스는 한국어의 기본 어휘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기본적인 어휘인 ‘팔’과 ‘다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arms’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feet’로 번역하고, ‘feet’로 번역해야 할 것을 ‘arms’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은 한국어를 독학하여 배웠다는 번역자 스미스가 기본 한국어 어휘에서도 부족함이 있는 것을 지적한 부분이다. 원어민 번역자는 기본적으로 2개국에 능통한 Bi-linguist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또 ‘고가도로’의 고가(高架)를 높은 가격이란 뜻의 고가(高價)로 오해해 ‘expensive’로 번역하고, 아파트의 '앞 동(棟)'을 동쪽을 뜻하는 ‘out east’로 번역하는 등 동음(同音) 이의(異意) 잘못 번역한 사례들을 열거했다. 위 오역들은 전혀 의미가 다른 동문서답(東問西答)식 번역이며 인공지능 기계 번역이 의미와 문맥(文脈 context)을 읽지 못하여 나오는 전형적인 오역 사례이다. 이것은 번역자가 직접 번역했다고 볼 수가 없고 AI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기계적 번역을 했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오역이다. 번역 모두 한자의 동음(同音) 이어(異語)와 관련된 케이스로 한자어의 특색이기도 하므로 이 경우는 기계 번역할 때 국문에 한자 병기가 되어야 자동번역이 해당 한자를 인식하게 된다.
아울러 주어를 착각해 번역한 문장들과 한국어나 한국문화 고유의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한정식’을 ‘Korean-Chinese restaurant’로 번역한 사례, 한국의 친족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처형(妻兄)’과 ‘처남(妻男)’을 혼동해 잘못 번역한 사례 등을 지적했다. 이 오역은 번역자가 사전에서 ‘한정식’이란 단어를 찾지 못하거나, 문화적 차이를 몰이해하여 일어난 오역이다. 이런 경우 번역자와 필자의 피드백교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인데 이 역시 필자와 마지막 편집 책임자가 수정을 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의 구어나 속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아르바이트하는 애가 또 펑크를 냈어요”란 문장을 번역하면서 약속을 어겨 오지 않았다는 뜻인 “펑크를 냈어요”를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는 뜻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애’를 ‘baby sitter(유아 도우미)’로 혼동해 “The baby sitter’s car got a flat tire”로 번역한 문장도 심각한 오역 사례로 꼽았다. 번역자가 원저자의 나라의 구어(口語)나 속어(俗語)를 이해할지 못할 때 나오는 오역인데, 이 역시 번역자가 원저자와 피드백을 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AI 자동번역에서도 기계적 번역에서 자주 나오는 오역 유형이다.
김 교수는 “번역자 스미스는 그동안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여러 번 자신의 번역이 ‘창조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구(字句)에 얽혀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번역에서 말하는 ‘창조성’이란 원문에 충실한 뒤 목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할 때만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즉 원저자가 암시적으로 표현할 것을 독자의 이해를 위해 좀 더 명시적으로 옮기는 것이 창조적 번역이다. 번역의 창조성은 오역이나 졸역(拙譯)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면죄부가 결코 될 수 없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필자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다만 맨부커상이 창작과 번역 두 분야에 동시 같은 비중을 두고 공동 수여하는 상이기 때문에 번역을 문제 삼은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는 오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에 관한 논란은 2016년 맨부커 수상 이후 국내에서 문학평론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는 글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계속 이어져왔다. 그러므로 원작자인 한 강 작가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미스의 오역 실수를 60여 개 수정 목록으로 정리해 해외 출판사들에 전달한 사실을 전하며 이런 실수가 자신의 작품 내용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1일 연합뉴스에 “ ‘채식주의자’는 번역 오류가 너무 많아 60여 개를 수정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개정하는 식으론 어림없고 완전히 새로 번역해야 한다. 번역자 스미스의 영어 문체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원작과 이렇게 멀어져서는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에서 상을 받은 직후 영어판을 읽어봤더니 번역이 엉망이어서 곧 바로 이 해외 기고 논문을 썼다. 이후 영국 학술지에 발표하려 했지만, 영국에서는 맨부커상 위원회나 출판사 입장에서 오역 사실을 인지하여 대외적 신인도를 우려해서 그런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미국 학술지에 처음으로 보내봤는데 좋은 논문이라며 단번에 실어줬다’고 논문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맨부커상 위원회나 출판사는 최소한 김 교수의 오역 문제의 제기에 대해서 한 마디의 comment가 있는 것이 공적 기관으로서 정상적인 것이며 당연히 그렇게 했었어야 김 교수는 주장했다.
시간이 흘러 수상 소식의 기쁨과 흥분이 가시고 국내번역학계에서 스미스(Smith)의 번역과 한강의 원작을 차분히 대조하고 검토할 여유를 갖게 되면서, 여기저기에서 스미스(Smith)의 번역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강선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자국화 번역전략을 택한 스미스가 영어권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려는 노력으로 오리지널 텍스트에 심각할 정도로 개입해 번역함으로써 두 권의 서로 다른 채식주의자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김 대중 강원대학교 교수는 스미스의 번역에 있는 상당히 많은 오역 혹은 과도한 의역 사례들을 자세히 열거하면서 이로 인해 “영미권 독자들이 한국 독자들과 전혀 다르게 작품을 이해할 소지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미학적 완성도도 훼손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스미스(Smith)의 번역에 비판적인 학계의 연구가 계속되자, 중앙일보는 2017년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학계의 비판에 주목하는 기사를 싣는다. 첫 번째 기사는 스미스의 영어번역이 원작을 훼손한 작품 창작 수준의 번역이라는 연세대에서 한강 작가를 지도했던 정 과리 교수의 비판을 전하고 있다.
두 번째 기사는 계간지 문학동네 봄 호에 실린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이다.
고려대 불문과 조 재룡 교수는 해당 기사에서 스미스의 한국어 능력 부족과 그와 관련된 잘못된 번역 사례들을 세밀히 짚었다. 조 교수는 스미스(Smith)에 대해 “이미지에서 제 번역의 단초를 얻어내, 이미지의 근사치를 연상해내고, 그렇게 낱말을 이 연상의 결과물과 조합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감(感)’에 의지해, 한국어 원문을 유려하고 화려한 영어로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스미스가 한국 문화의 흔적을 과감히 지우고 자신의 주관적인 문학관을 덧씌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여기서 나아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스미스(Smith)를 한국문학 세계화의 기수인양 칭송하며 문학을 국가대표 운동경기처럼 여기는 경박한 문화를 꼬집었다.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 번역은 ‘수상’으로, 아니 ‘수상’ 콤플렉스로 승리한다. 번역은 과도한 열정, 한국사회가 번역에 대해 걸고 있는 막연한 기대치로 승리한다. 번역은 국가가 이끄는 사업의 일환으로 승리를 점친다. 번역은 무모한 기대와 콤플렉스의 역설을 먹고 승리한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정 과리교수와 고려대 조 재룡교수의 경우 스미스의 번역이 낳은 작품 내용의 변질과 왜곡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조 재룡은 한국어의 특징인 생략된 주어를 잘못 파악하는 데서 나타나는 스미스의 “한국어 구사력, 이해력, 장악력 부족”으로, 그 녀의 창작적 재능을 십분 살려 원문에 번역가의 주관과 감정을 덧씌우면서 “임의로 첨가하고 자의적으로 삭제하는” 그녀의 번역 방식에 대한 강한 비판의 어조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번역이 창작인가인가, 반역인가 하는 논의는 국내 번역가 사이에도 끝없이 논의 되는 화두이기도 하다.
조 재룡교수의 이런 평가와 앞서 언급된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해외 및 국내 초기의 언론의 극찬은 너무도 상이하다. 두 주장 중 무엇이 타당한가? 물론 답은 이미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긍정적 평가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 영어 번역본만 읽을 수 있었을 해외 평자의 의례적 칭찬과 원작과 제대로 비교도 하지 않은 채 흥분에 겨워 맹목적으로 토해낸 국내 언론의 추종적 찬사들로부터 왔다. 반면 조 재룡 교수는 원작과 번역본을 주의 깊게 비교하고 검토한 뒤에 평가를 내린 것이다.
“채식주의자” 번역물은 한국문학의 존립에 있어 상당한 위협적인 존재라고 본다. 문학작품의 번역물은 창작물과 구분되어져야 하는 제한사항들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민 바른 번역이 될 것이다. 번역의 역할은 한 언어로 쓰여진 원문의 내용이 다른 언어로도 그 의미가 동일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작업이다. 즉, 번역물은 창작물로 인정될 수도 없고 창작이 허용될 수도 없다. 번역물에서 원문의 전체가 아닌 일부만 차용하거나 인용되어질 수 없다. 만약 번역물이 원문과 달리 번역자가 작자의 동의하에 일부만 차용 또는 인용하고 나머지는 번역자의 창작에 의해서 쓰여졌다면 그것은 번역이 아니라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제한적으로 번역자가 원문을 내용을 변경할 수 있을 때에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의미가 전달되도록 번역에 있어 두 언어의 문화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동일한 의미의 전달효과가 없어질 때 원문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할 때, 우리 속담에는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속담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Every Jack has his Jill”이라는 영어권 속담으로 변경해야만 그 뜻이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원문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두 언어 간의 문화차이를 알고 바르게 의미가 상통되도록 하는 번역자의 기본적인 자질이자 역할이고 실력인 것이다.
또 하나의 번역자가 갖추어야 기본적인 자질은 풍부한 어휘력이다. 한국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할 때, 한자 표기 없이 사용되어진 동음 다의어를 문맥에서 유추해서 적절한 영어어휘를 찾아서 사용하여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종종 사전적 의미와 달리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관용어구에서 사용되어지는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번역자의 원문언어에 내포된 문화적 지식과 이해의 깊이에 따라 명역(名譯)과 오역(誤譯)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기본 자질은 사실 번역자가 원문언어에 그 문학에 대해 갖추어야 할 예의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국어로 같은 단어로 “냄새”로 문장을 만들 때라도 문맥에서 유추해서 적절한 영어 어휘를 찾아내서 번역하는 것도 명역(名譯)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고 본다. 한국어 문장에서 냄새라고 쓰여 있을 때에도 문맥의 뜻에 맞게 냄새라는 단어를 영어 어휘 “smell” “scent,” “odour,” 또는 “fragrance” 중에서 가장 적절한 단어로 번역되어진다면 명역(名譯)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결론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야말로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인 금자탑이 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본 기고문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10년 전에 국내외를 통해 일어난 그 영역 과정에 대한 많은 시비들은 우리가 이 시점에서 번역의 측면에서 냉철하게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향후 세계화 될 우리 문학작품과 한류와 더불어 소개될 많은 한국학, 한류가 어떻게 바른 번역으로 바르게 우리 문화를 소개할 것인가? 과연 그 번역들을 번역자에게 혼자에게 맡겨서 오역이나, ‘제 2의 창작’이란 시비가 일어나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작가나 관련 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상호 피드백 함으로서 번역의 오류를 줄이고 완성도를 높일 것인지 이 번 한강 작품의 오역시비를 통해 그 실상과 문제점을 검토함으로서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번 노벨상 수상은 멘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학계, 언론계, 문학 평론, 번역계 등에서 여러 분야에서 오역에 관한 문제 제기를 거쳐 그 이후 한강 번역 작품들이 80여종과 10개 국어로 그 영어본을 근간으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됨으로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번역계를 보더라도 번역은 번역가 한 사람에게 일임하고 원저자는 거의 관여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관례이다. 예컨대 불교계에서는 한국불교 대장경번역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정부주도로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30여년 공동 작업을 해온 한글대장경 역경사업이 실패로 돌아가, 재번역 사업 10년을 연장했지만 여전히 한글대장경 번역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다음 연속 기고에서는 한강 작품의 오역 유형별 오역 사례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할 것이다.
-계속-
필자 전옥배는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 일하다 퇴직하고 50대 중반인
2,000년에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
2005년에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
(KIBET)을 설립하였다. 2014년에 한영불교대
사전을 발행하면서 한국불교 영역화 작업을 선도하고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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