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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RPG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일절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 RPG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국가, 회사 또는 단체, 그 밖에 모든 명칭,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유사한 예가 있더라도 이는 해당 사건이나 인물 등을 비하하거나 정치적으로 가치판단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 RPG는 허구적 창작물로서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체제, 인권 탄압과 폭압적 정치질서를 옹호,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어렸을 때 겪은 일이지만 난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6.25가 터지고 나서 우리 고향에는 한동안 우리 경찰대와 지방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마을을 찾아드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경찰인지 공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또 마을을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 집까지 찾아 들어와 어머니하고 내가 잠들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지독한 복수를 당할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정체를 모른 채 대답을 해야 할 사정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절망적인 순간의 기억을,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가려 버린 전짓불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 이청준, 『소문의 벽』 (1972)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자신있게 읽어내려가던 그는 난데없이 날아온 총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북쪽의 박헌영 괴뢰집단에게서, 그리고 내부의 ‘암흑세력’들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던 철권 통치자의 안타까운 죽음이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죄없는 이를 죽음으로 내몬 악인의 초라한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정말로 휴전선 이남의 ‘인민을 해방’하겠노라고 공언하며 급속도의 경제발전을 구가하고 있는 북한의 박헌영 정권에게서 자유 대한을 지키려면, 어떤 식으로든 공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여년 전 휴전협정 이래 한반도를 옥죄어 왔던, 이제는 그 모순이 극에 달해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던 대한민국을 파시즘의 돌풍에 밀어넣은 북한과의 적대적 공생체제와 그것이 주는 각종 폐해들을 완전히 혁파하는 것 역시 반드시 지켜져야 할 목표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공산전체주의와 파쇼군국주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될 뿐이며, 이는 위정자가 시민에게 범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일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1. 세계관 설명
앞에서 박헌영이 어쩌고 파시즘이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본작은 실제 1970년대 중반 대한민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대체역사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변화는 RPG의 진행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이나, 최대한 혼동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안배하고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된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유럽 파시즘의 잔존
1940년 파리 함락 이후 영국이 독일과 짧은 종전기간을 가지면서 드골의 항전세력은 비시 정부에 합류했고, 비시 정부의 수반인 페탱은 150년간 이어진 공화국파와 반공화국파의 갈등을 ‘강제로’ 통합한 뒤 1942년 아틸라 작전 직후 연합국에 합류, 종전 후에는 서유럽에서 유사 파시즘 연합을 공고히 합니다. 즉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는 19세기부터 이어져온 “제3의 위치”의 악랄한 변종일 뿐이며, 오직 국민통합주의(intergrisme)만이 자유주의의 방종과 공산주의의 억압 속에서 유럽 인민을 구원할 것이라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2) 한국의 파시스트 세력 발흥
프랑스와 서유럽이 유사 파시즘의 대열을 주도하고 “제3세계 운동”의 지도자가 되면서, 신생 독립국인 한국에서도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발흥하였습니다. 5.16 군사정변 이래 박정희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애썼고, 유신 선포 또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캐릭터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조직이 될 것입니다.
3) 북한의 박헌영 정권 수립
1946년 김일성이 폭탄테러로 사망하면서, 박헌영이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전쟁은 원역사대로 일어났습니다만, 본래 남쪽에서 활동하며 공작정치에 대한 이해도도 훨씬 높았던 박헌영은 1950년대 대한민국을 강하게 핀치에 몰아넣었습니다. 즉, 북한의 적화통일 위협은 상존하며, 실제로 위험합니다. 두 번째 목표인 ‘남북 간 적대적 공생체제의 혁파’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2. 규칙
1) 이 RPG는 진행자인 제가 주관하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벤트의 주제는 다양하며, 여러분은 적극적인 롤플레잉과 행동을 통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해진 것은 아니나, RPG 전반의 목표를 항상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RPG의 전체 목표와 합치되는 캐릭터 개인의 신념을 얼마나 플레이에 잘 녹여내는가가 특히 큰 재미 요소가 될 것입니다.
2) 캐릭터가 하는 행동의 성패는 주사위로 결정됩니다. 6면체 주사위 3개를 사용하며, 주사위 눈에 따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추럴 3(1/1/1) : 대실패
~5: 상당한 실패
6~8: 실패
9~12: 복합적 결과(또는, 부분적 성공)
13~15: 깔끔한 성공
16~17: 상당한 성공
18~: 대성공
내추럴 18(6/6/6): 크리티컬
각 캐릭터의 능력치에 따라 버프(+) 또는 너프(-)가 붙을 수 있으며, 트레잇 역시 적용됩니다.
3) 능력치는 캐릭터들이 가진 능력을 표현한 수치입니다. 총 3개 영역의 12개 능력이 존재하고, 각 능력은 최대 5레벨까지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판정 시 해당 능력치의 레벨만큼 버프가 부여됩니다. 능력치의 일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력
1) 통솔: 다수의 대상을 지휘해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2) 선전: 대상을 비이성적으로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따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3) 강압: 대상의 의지에 반하여 무언가를 하게끔 만드는 능력입니다.
4) 조직: 비교적 소규모의 인원을 움직여 원하는 정보를 취하는 능력입니다.
#기술
5) 호신: 자기 자신을 물리적으로 보호하고 운신하는 능력입니다.
6) 탐지: 자신에게 해가 될 요소를 감지하는 능력입니다.
7) 경영: 경제활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입니다.
8) 공작: 대상에게 해를 가할 것을 목표로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지식
9) 인사: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능력입니다.
10) 위조: 각종 매체를 조작해 대상을 현혹하는 능력입니다.
11) 모색: 자신에게 득이 될 요소를 감지하는 능력입니다.
12) 논변: 대상을 이성적으로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따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경험치는 이상 3개 분류에 따라 주어지며, 이벤트 진행 중이 아닐 때 언제든 사용 가능합니다.
4) 트레잇은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특수한 장치입니다. 가령, 선거운동에 관련된 행위에 일괄적으로 +2의 버프를 주는 트레잇을 가진 캐릭터는 해당 행위 시 능력치와 별개로 +2의 추가 버프를 얻게 됩니다.
3. 게임의 목표
1.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 및 공고화
2. 남북간 적대적 공생체제 및 그 폐해의 완전한 혁파
이 목표는 모든 캐릭터의 공통목표이므로, 언제나 명심해두시기 바랍니다. RPG의 공통 목표와 어긋나는 캐릭터는 예고없이 리타이어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면 안되는데요?” -> 개별 상황에 따라 판단이 어려운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질문하면 (진행에 지나친 힌트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언제든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캐릭터를 만들어봅시다
- 이름: 조상현(曺相鉉)
- 플레이어: E.E.샤츠슈나이더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39년 9월 10일
- 출신지: 일본제국령 조선 평양부
- 모국어: 한국어
-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영어
- 배경:
1.4. 후퇴 때 가족을 모두 잃고 부산 땅에서 실업가로 자수성가한 조상현은.. (하략)
위 양식에 맞춰 작성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주의할 점은, 위의 “목표”에 부합하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TRPG/ORPG는 캐릭터 간 대립요소와 별개로, 기본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파티가 협력하는 게임입니다. 설정 자체가 목표 달성에 어긋나는 경우 수정을 요청받거나 반려될 수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5. 기타 규칙?
0) 일부러 짧게 썼으니, 공지는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비슷한 공지를 많이 보셨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번은 쭉 읽어주세요.
1) 다른 캐릭터에 대한 공격행위는 따로 금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사적 감정이 개입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의 공격적 행동은 반영되지 않을 수 있으며, 그에 따른 페널티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 캐릭터를 ‘담그려는’ 의도로 진행되는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2) RPG는 목표가 완전히 달성되거나, 반대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는 경우 종료됩니다.
3) 여러분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민주화와 남북 체제경쟁의 극복을 바라는 캐릭터이며, 따라서 매우 극단적인 사상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예: 빨갱이를 몽땅 총살하고 그 가족들은 전부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려야 한다)
4) 여러분의 캐릭터는 그리 큰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사 가능 언어가 지나칠 정도로 많으면 임의 수정될 수 있습니다.
5) 캐릭터의 나이는 1934년생~1940년생 사이입니다. 즉 시작시점 기준으로 만 34-40세 사이입니다.
6) 시작 날짜는 대통령 암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입니다.
FAQ
Q. 다른 RPG에 나오는 캐릭터의 가족이나 후손 등을 해도 되나요?
A. 실존인물과의 법적 분쟁 회피를 위해 악역으로 최대한 이전 RPG 등장인물들을 활용할 생각이라,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외적으로 직전작인 “북쪽으로 붓과 칼을 휘두르라”의 등장인물의 후손인 경우 기타 RPG 등장인물과 아무런 연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가능합니다.
Q. 세계관이 원역사와 너무 달라서 걱정돼요.
A. 곧 세계관의 로어들을 한 곳에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현실과 다른 부분은 최대한 설명할 예정이고, 질문하신다면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Q. 민주주의 공고화는 대충 알겠는데, 적대적 남북공생 혁파는 무슨 소리인가요?
A. 북한이랑 평화통일을 하든, 조약을 맺고 서로 따로 살자고 합의를 보든, 아니면 북한을 침공해 멸망시키든 더 이상 국내정치가 북한이라는 요소에 ‘주된’ 영향을 받지 않게끔 하는 것을 뜻합니다.
+) 여러 번 강조했지만, RPG는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취미입니다. 단순한 흥미나 화풀이 등 개인적 이유로 진행에 차질을 빚을 정도의 돌발행위를 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즉시/예고없이 캐릭터를 엔딩 처리할 수 있습니다.
추가) 세계관(로어)
첫 번째 로어 : 프랑스국(État Français)
펠리시테 드 라므네와 마담 잔 드 술리의 세속적 가톨릭 통합주의(integrisme) 전통 하에서 보불전쟁 이래 지속적으로 그 세를 보존해온 ‘제3세력’은 전간기의 좌우 극한 대립 속에서 공화국파와 반공화국파의 강제적 통합을 주장하며 엄청난 세를 자랑해갔습니다. 1934년 2월 6일 파리 시가행진에서 무려 수십만명을 동원한 프랑수아 드 라 로크의 ‘불의 십자가단’과 그 후신인 ‘프랑스 사회당’을 막기 위한 시도는 공화국 좌우파가 인민전선을, 온건 오를레앙파가 국가보위동맹을 만들어내고 각각 한 번씩 실패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나치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했을 때 사분오열되어 제각기 독일군에 항복하려던 각 계파의 정치인들을 보다못한 필리프 페탱 원수가 이들을 체포하고 독일과의 강화협상을 ‘직접’ 진행하면서 세워진 비시 정부는 졸지에 짓밟힌 프랑스인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페탱은 보나파르트나 부르봉을 왕으로 세우지도, 그렇다고 공화국을 수호하지도 않았지만, 라로크를 총리로 세우고 드골 등 소장파 장교집단을 친위세력으로 삼으면서 잠깐의 굴욕을 참아 프랑스를 재건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습니다.
재앙적인 노르웨이 침공 이후 영국 총리가 된 3대 핼리팩스 자작 에드워드 우드가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와 ‘인버네스 조약’을 맺고 전열에서 이탈했다가, 소련에 대규모 물자원조를 제공하는 미-영에 분노한 히틀러가 일본의 진주만 습격 직후 다시 이들에게 선전포고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동안, 비시 정부는 국제공산주의자, 극우 왕당파 모험주의자, 유대 시온주의자들을 축출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마다가스카르로 보내버리거나, 정 싫으면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던져’버리는 조치는 독일이 ”최종해결책“을 인준하기 전까지 유대인 문제의 주된 해결방안으로 여겨졌죠.
여전히 전력을 온존하고 있던 프랑스 해군의 활용방안을 두고 연합국과 독일이 갖은 회유를 펼치다가 참지 못한 히틀러가 아틸라 작전 실행을 명령하자, 페탱 정권은 즉시 모든 가능한 전력을 이끌고 알제리로 향해 본격적으로 연합국에 가담했습니다. “나는 3년 내에 돌아올 것”이라는 드골 장군의 말처럼, 나치 독일은 소련의 처절한 저항에 갈기갈기 찢긴 끝에 노르망디에 일격을 맞아 1945년 5월 최종적으로 패전하였습니다.
파리로 귀환한 ‘프랑스국’ 정부는 의회-정당정치를 150년간 국가를 좀먹은 극한 갈등의 제1원인으로 지목하고, “모든 정치인은 정당의 소속원이기 이전에 [프랑스인 연합(Rassemblement du peuple français)]의 회원이라는 대원칙을 세웠습니다. 1946년 라로크가, 1949년 페탱이 사망하고 난 뒤 대권을 잡은 드골은 이 대원칙을 끝까지 수호해냈죠. ’나치에게 저항했으면서 공산주의자도 아닌‘ 프랑스국은 서유럽의 유일무이한 패자가 되었고, 유럽재건부장관 르네 플레방의 [유럽방위공동체(CED)]는 서유럽의 정치경제안보적 통합을, 국제부흥부장관 장 루아예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민족독립기구(OINA)]는 독재와 발전은 하고 싶지만 공산당에게 양보하기는 싫었던 신생국 지도자들의 대안이 되었습니다.
1968년 학생반란을 계기로 돌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며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강력한 역풍을 선사한 드골이 1970년 사망하자, 프랑스에서는 자크 샤방델마스, 장 루아예, 프랑수아 미테랑 등이 각자 지분을 주장하는 집단지도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강력한 자리라는 프랑스의 지도자 직위를 누가 가져가게 될 지는 아직 미정이겠군요.
두 번째 로어 : 개진동우회(改進同友會)
이승만을 ”조선의 페탱“으로 만들기 위한 친위조직을 만들기 위해 각종 우익조직들을 통합해 만든 ‘대한청년단’은 50년대 한국의 중추세력이었습니다. 단장에 이범석 부통령, 부단장에 장택상 국무총리, 최고지도위원에 지청천, 전진한, 노태준, 유진산, 송면수 등 기라성같은 인사들을 두고 김대중, 이철승 등 우익 청년정치인들까지 흡수한 청년단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제3세계 비동맹운동]에 편승해 적극적 친불정책을 추동했습니다. 1954년 미국의 묵인으로 2,000여명의 ’승공의용군‘을 월남에 파병하고, 같은 해 제네바 외교회의에서는 마치 북한이야 뭐라고 말하든 베트남국과 대한민국의 운명을 동치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도 그들의 영향력이었습니다.
4.19 혁명과 뒤이은 5.16 정변으로 세상이 바뀐 뒤 이 우익 파시스트들은 자취를 감춘듯 했습니다. 하지만 ‘한청’의 세포조직원들이 혁명군부의 이름으로 서서히 한국의 파쑈화를 부추기고 있었다는 것은, 차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순 반란 직후 전향해 빨치산 사냥꾼으로 맹활약했던 이석주, 역시 일찌감치 전향해 박정희의 밑으로 들어간 김시형, 족청 때부터 이범석을 따랐던 박철환과 이화영 부부, 박정희의 육사 동기인 정원상, 경제관료로 이범석의 참모였던 이하준…
이들은 [혁명세력]이라는 허울로 오히려 자신들이 두각을 보이지 못하던 대한청년단을 뒤엎고 [개진동우회]를 세워 새 시대의 주도세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 이석주 소장이 주도한 ”순풍사업“은 전국 부랑자 및 깡패들을 모아 프랑스 외인부대에 강제입대, 알제리에 파병하는 사업이었죠. 미국이 “왕년의 빨갱이들”로 구성된 신정권을 탐탁잖게 여긴 까닭이었습니다.
이 유사파시스트들이 급기야 4대의혹 사건을 폭로해 김종필까지 숙청하려 들자, 박정희는 김형욱, 이후락, 신직수, 박종규 등 자신만의 측근세력을 만들어 어떻게든 이들이 선을 넘지 않게끔 지속적으로 견제했습니다. 실제로 김동하, 박창암, 박임항 등이 실각하는 등 효과는 있었습니다만, 1974년 광복절의 총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 번째 로어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김일성은 1946년 삼일절 경축행사에서 백의사의 지원을 받은 김형집의 수류탄 투척으로 처참하게 사망했습니다. 조만식의 체포에 분기탱천한 우익 청년들은 3월 7일 최용건을, 9일 김책을, 12일 강량욱을 암살하려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미수에 그치고 말았죠.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치인들이 38선 남쪽에서 활동하던 시기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시티코프 이하 소군정에게 재앙같은 일이었고, 평안도에서 인망이 높았던 현준혁까지 사망한 마당에 임시로 평남인민위원장직을 맡은 최용건은 연신 군정청에 SOS를 쳤습니다.
미군정이 정판사 위폐사건을 일으키기도 전에 스탈린은 [모든 좌익제정당의 즉각적인 거국일치 및 월북]을 주문했고, 이는 남한 내 인민위원회를 즉시 두쪽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박헌영에게 정치적 강간을 당했다”는 극언을 내뱉던 여운형은 곧바로 암살당했고, 월북한 박헌영은 소군정 하 북조선을 ‘어떻게든’ 안정화시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관술 등 월북에 실패한 남로당 인사들이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미군정에 유린당하는 동안, 박헌영은 남은 인사들을 모두 끌어들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창설, 국토완정을 위한 총단결을 주문했습니다.
”우리가 문을 걷어차는 순간 10만에 달하는 남쪽의 해방세력이 호응할 것“이라는 호언장담 하에 남침을 개시한 박헌영의 꿈은 춘천-홍천 전투의 참패와 함께 일장춘몽이 되었고 국토는 완정은 커녕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박헌영에게 완전히 붙은 소련 검찰 출신의 방학세가 김일성의 만주파 동료들과 갑산파를 패배의 원흉으로 몰아 제거한 끝에, 정권은 그나마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죠.
처참한 실패 뒤에도 국토완정을 향한 박헌영의 의지는 식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통일전선부와 국가보위부라는 두 도구를 이용한 북한의 기만전술과 공작전, 온갖 공비들을 내려보내 ‘해방구’ 건설 작전을 실시하고는 좌익맹동주의자의 짓이었다고 변명하는 행태 등에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박헌영은 이대로라면 조선의 완전한 사회주의화가 가능할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남로당의 공작 기법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이제는 [다른 방안]을 모색하던 이들이 요직에 기용되어 옛 지도부의 배신에 복수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네 번째 로어 : 겨울 공화국
1969년 6월 20일 서울 상도동에서 울린 총성 두 발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뒤 기적적으로 생존했지만, 척추에 탄환이 박혀 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영구입국금지 처분이 내려졌죠. 이것이 중정차장 박철환의 ‘과잉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정희는 대노하여 그를 경질했지만, 그렇다고 김영삼의 입국을 허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박철환의 경질에 분노한 ‘악의 조직’은 2년 뒤 박정희에게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1971년 대선에서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던 유진산에게마저 질 뻔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유진산이 개조동우회의 전신인 한청의 최고지도위원이었다는 점, 유진산을 지지했던 이철승과 김대중 역시 옛 한청의 단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는 확실했던 셈이었죠.
물론 박통은 참지 않았습니다. 유신 선포 후 모든 정당을 해산 및 재창당하는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빅텐트 우익정당 민주공화당, 반공주의 기독교 우익정당 기독민주당, 자유주의 정당 민주한국당, 노동자와 농민의 어용정당 사회노농당을 창당해 사실상 국회를 마비시킨 박정희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윤필용 사건 이후 핀치에 몰린 이후락이 일본에서 김대중을 강제송환한 뒤 국내에서 한번 더 암살하려 하는 것 역시 묵인했습니다. 김대중이 1973년 8월부터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긴급조치 4호로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해 야당 세력의 씨를 말려갈 무렵, 의문의 총탄이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 로어 : 그 날의 총성
1974년 광복절, 박정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충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틈만 나면 기어오르려 드는 그 파쑈주의자들에게 한 방 먹이고서 야권세력까지 겸사겸사 박살내 놓았다는 기쁨이 감돌았습니다. 정권을 안정화시켜 놓았으니 아마 박헌영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6.23 선언을 받아들여 유엔 동시가입안을 수용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소보다 활기찬 목소리로 광복절 경축사를 읽어나가던 박정희가 말을 끝마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전 10시 23분,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왠 남성이 복도로 나와 앞으로 뛰어나오며 연단을 향해 리볼버를 난사했습니다. 첫 번째 총탄은 오발로 남성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 두 번째는 박정희가 연설 중이던 연단에 박혔고, 세 번째 탄은 급히 연단 아래로 몸을 숨기던 박정희의 두부에 명중했습니다. 뒤늦게 기지를 발휘한 독립유공자 이대산이 암살범 문세광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경호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경호실장 박종규가 ‘무모하게도’ 총격전을 벌이려 들다 애꿎은 여학생이 총탄에 맞아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는 동안 박통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중앙청에 있던 국무총리 김종필이 대통령 권한을 인수받아 즉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문세광이 체포되어 중정 지하실로 끌려가며, 휴일을 맞아 골프를 즐기던 계엄사령관 노재현이 부랴부랴 군복을 챙겨입어야 한다며 늑장대응을 하는 혼란상 속에서, 합동수사본부장인 보안사령관 강창성은 곧바로 중정으로 달려가 범인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다행인 점은 문세광이 ‘악의 조직’과는 연관이 없는 자라는 점이었고, 불행인 점은 그가 조총련 소속의 공작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냉각된 시기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최악의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긴급조치와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의 엄혹한 시기 속에서도 “감히 쪽바리-빨갱이 놈들이” 각하를 시해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국민들은 분명 벌떼같이 들고 일어설 것이었습니다. 국가를 지켜야 할 군이나 정보기관에서 ‘독자행동’을 감행할 위험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서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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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좌익색채를 대부분 지우거나 모호하게 하고 “반제반파쇼민족주의혁명”만을 강조하던 통일혁명당은 중정에게 발각되어 지도부가 일망타진되기 전까지 지하조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대놓고 ”남조선 정권을 난도질하자“는 50년대의 대남기조를 대체할 새 이론의 가능성을 심어주었습니다. 김유리가 조공 선전선동부장 겸 공화국 문화예술상에 임명되고 나서, [일단 통일기구를 발족하고서 체제를 논의하자]는 논리가 횡행하게 된 것과도 일맥상통했습니다.
이 대남급진파들의 목적이 정말로 ’순진한 평화통일론‘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합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요?
@렌지파일 김성주가 뭘 해보기도 전에 폭사하는 바람에 그냥 “보천보의 전설”이라는 실체없는 위명만 남은 셈입니다 ㅋㅋ
@E.E.샤츠슈나이더 김성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전설적인 영웅이 된건가요?
@로콘 심지어 기독교 공산주의자 취급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오... 남산에서 나왔습니다(?)
+ 아니 근데 무궁화와 목란화쪽은 싹 다 버프를 받네요 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북한 기독교의 영웅(?)
@E.E.샤츠슈나이더 뭘 해보기도 전에 죽었으니 공산주의자 취급조차 안받을수도 있겠네요 ㄷㄷ
슬슬 1화를 써야 하는데… 일단 퇴근은 했으니 좀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포인트 배분은 다음화에서?
보상.
1) 정연제
: 지식 2.
2) 육성민
: 매력 2.
3) 연재환
: 지식 2.
4) 화현인
: 기술 2.
*지난번에 사용하신 포인트들은 저번 이벤트 전에 선반영되었는데, 캐릭터시트 글에는 안 올라와있었네요. 이것도 같이 수정했습니다.
진짜로 당명이 공화진보당이 됬군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