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사람들은 1976년에 창립된 장애인 단체이다. 장애인 선교의 열정에서 시작하여 인권과 복지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1978년에 광주무진교회가 설립되었다. 2년 후 광주민주항쟁을 거치면서 광주의 십자가를 짊어진 교회가 되었다.
1983년 장애여성 공동체인 실로암재활원(현 이팝너머)이 세워지면서 무진교회와의 관계가 깊어졌다. 무진교회 청년회에서는 매월 1회 정기적으로 재활원에 방문하여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특히 식사를 준비하여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실로암사람들은 설립 초기에 후원이사회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는데 강신석 목사님이 참여하였다. 이후 1991년 이사회를 조직할 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20년을 이사장으로 실로암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다.
1992년은 실로암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해였다. 그동안 실로암재활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에 지역사회 중심의 재가장애인 사역으로 전환하였다. 또 한 가지는 5명의 풀타임 사역자를 처음으로 세웠는데, 나도 그때 간사로 입사하였다. 당시 실로암사람들은 사무실을 얻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동에 있던 무진교회도 한옥을 개조한 작은 규모의 교회로 주방 옆의 작은 공간을 사무실로 내어 주었다.
사무실에 손님이라도 방문하는 날이면 일하던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고 나가야 했지만 감사한 날들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무진교회와 함께하면서 시작했던 목요모임(채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부목사로 계셨던 주승민 목사님(현 화순읍교회 시무) 부부께서 실로암사람들을 묵묵히 도와주셨다.
2005년 실로암사람들이 장애인장학회를 설립하면서 강신석 목사님의 아호(雅號)를 따라 이름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강 목사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강 목사님이 목회하는 무진교회의 이름을 따서 무진으로 명명했다. 무진장애인장학회는 강신석 목사님의 정신을 기리고 장애학생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무진장애인장학회를 통해 2억 5천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강 목사님은 실로암센터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무진교회에서 은퇴하고 나서는 실로암센터를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셨다. 실로암센터는 아직도 마련하지 못했다. 언젠가 실로암센터가 세워지는 날 강신석 목사님과 곽정숙 의원님의 기념실을 만들 것이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02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