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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울산대체의학봉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천부쥬신
1700여년 전 당시 고대 한국 국가들의 영토확장, 타지정벌 및 진출로
한글 지명
영문 지명
부여가 완전히 고구려로 통합되기 전까지 부여는 오늘날의 러시아 땅 중남부에서 그 세력이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쓸만한 땅은 그 당시 한창 약탈경제에 의존하던 고구려에 의해 모두 빼앗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로 인해서 만주일대에서 존재하던 왕국 및 부족국가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거나 고구려로 병합, 식민통치를 받았는지 모르나 고구려의 지배정책은 굉장히 포용적인 것으로 "현지인 등용"체제를 도입하여 피지배민들에게 환영받는 식민통치 제도를 실시하였다.
고구려가 영토확장을 위해 타국을 침공하여 그들에게 항복을 요구할 경우 이러한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순응하는 한 고구려에 먹힌 국가유민들은 비록 피지배민(노예, 종, 하급 관리) 신분이지만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었고 고구려가 방위를 책임졌기에 고구려를 제외한 외세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국가들의 말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고구려군의 창칼 아래 모두 무참히 쓰러져 죽어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국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만주일대와 중국 서부, 몽골 일대를 장악한 고구려는 대륙에서 쓸만한 땅은 모두 손에 넣었으니 이제는 고구려 주변의 모든 바다를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구려인들과 같은 민족이 세운 나라인 신라와 가야가 자리잡은 한반도 남부에 때로는 침공해 오기도 하고 때로는 무역하러 오기도 하는 왜인(일본인)들의 열도를 정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구려군은 대규모 수군을 파견하고 함선 한척 한척마다 중장기병과 개마무사단, 보병 이외에 추가로 투석기와 궁수부대를 배치시켰는데, 이것은 왜열도에 상륙하기 전에 그들이 반격해올 것을 염두에 두고 바다에서 먼저 육지로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문명이 미개했던 왜인들은 "수탉을 무찌르자"며 반수탉 결사대를 조직해 열심히 고구려군들의 침공에 대항하였지만 끝내 고구려가 노린 북부의 열도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고구려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게 된 왜인들은 왜 열도 중남부의 자치구로 이주하여 살았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침공해오기 전부터 왜열도의 중북부와 중부, 남부는 거의 다 백제의 지배하 아래 있었다.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왜열도에 식민지를 개척한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의 경우, 왜인들에게 선진문화를 전파해주겠다는 구실로 국방을 해지할 것을 요구했다. 손쉽게 "문화 전파"를 명분으로 파견한 백제 수군이 손쉽게 왜열도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게하기 위한 계략이었는데 왜인들은 순진하여 백제에게 꼼짝없이 속아 이미 땅의 반을 빼앗겨 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일본의 대부분을 식민통치하게 된 백제는 상당히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펼쳤다. 백제인만이 고관직에 올라 한 지역의 태수나 영주가 되어 왜인들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대륙백제와 한반도 백제의 수많은 백제인들을 왜로 불러와 왜인들을 다스리게 했다.
그 과정에서 백제인들과 왜인들은 공통점을 늘려가며 지배민과 피지배민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함께 어우러져 사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고 그러면서 백제의 선진문화가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의 왜인들의 군사력이 강해진 것도 백제군에 징병되어 훈련받고 배우게 되면서부터인데 일본의 사무라이, 칼잡이들은 백제의 싸울아비와 무사(백제말로 "부샤", 후에 일본인들이 자국어로 순화시켜 부시라고 한다)들로부터 백제인들의 뛰어난 검술과 검제조술을 전수받은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백제가 왜인들에게 온건적이고 자율적인 평화정책을 허락했던 것은 아니었다. 저항하는 왜인들을 상대로 백제인들은 고구려인들보다 한 수 더 잔혹하고 무서운 군사력으로 베어나가며 살육했던 것이다.
왜열도 지배권을 놓고 싸우면서 초창기에 백제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흉폭하게 탄압하는지를 보고 고구려인들이 질려하며 백제를 오죽하면 "백잔"이라고 불렀겠는가.
이로 인해 일본 열도의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고구려군과 백제군의 싸움이 매우 잦아졌는데 이 틈을 노린 신라 또한 해상권 장악을 목표삼아 우산국, 독도, 그리고 왜열도의 중남부 반도 몇 곳을 찬탈했다.
이렇게 삼국이 대륙에만 영토확장을 하지않고 섬나라도 하나씩 점령하고 있을 즈음, 한반도 중남부에서 백제와 신라 양국의 간섭과 침략에 자주 시달리던 가야국은 자신들과 마찬가지 상황에 있는 "형제국"인 왜와 손잡고 그나마 아직 빼앗기지 않은 땅을 함께 지키기로 동맹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또다른 "가야연맹"이다.
출처: "삼국기" -고무영- (북한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