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0 – 6. 15 조선일보미술관 (T.02-724-6322, 태평로1가)
임경숙 개인전 임경숙의 아이콘은 엘리트의 언어다
글 : 박용숙 (미술평론가, 인문학자)
임경숙의 아이콘 눈과 눈썹, 그리고 손과 손가락의 인용은 그의 회화를
참신하게 만드는 발명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캔버스에서는 조형의 추상적인 혼란을 조율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물고기를 모자로 쓰고, 90.9×72.7cm, Acrylic
모더니즘은 있어도 모더니스트는 없다. 한국현대미술의 현주소이다. 모더니즘이란 엘리트(천재)의 언어이므로 이 말은 우리의 현대미술에 엘리트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다. 그럼에도 아직도 난해한 이 엘리트의 언어관습은 끈질기게 답습되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경숙과의 만남은 하나의 사건이다.
축복, 400호, 아크릴
그는 엘리트의 언어를 직접 구사하는 모더니스트이지만 모더니즘의 열기가 사라진 오늘의 현실에서 그는 불우한 미아처럼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의 언어가 파리의 본거지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의 미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임경숙의 존재의의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사라진 엘리트의 언어가 다시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엘리트의 언어가 부활한다면 그것은 모더니즘이 우리에게서 다시 부활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엘리트의 언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는 세상을 소통시키는 언어이다. 임경숙의 회화가 시도하는 조형언어를 엘리트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두 개의 대상(의미)이 하나의 공간을 동시적으로 공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엘리트의 언어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한다. 모더니즘의 언어가 3차원의 울타리를 넘어서며 추상화로 전개되었던 이유이다.
거리의 신호등은 ‘이다’와 ‘아니다’의 2분법적인 코드의 체계다. 우리는 이 코드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하면서 만족한다. 하지만 엘리트의 코드는 이 2분법의 선택을 거부함과 동시에 긍정하는 추상적인 코드다. 우리는 메리그라운드의 목마를 타고 빙빙 도는 아이가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의 시점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대상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의 시점은 언제나 대상과 한편이다. 동시에 이동하고 동시에 멈춘다. 엘리트의 언어가 초현실주의로 전개되었던 것은 단순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의 산물이 있었던 이유만이 아니다. 시점을 고정시킨 기독교 문명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임경숙의 캔버스에서 샤갈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것도 시점의 자유이동이 가져오는 조형효과다. 화가는 그의 시에서 이 효과를 <소유가 아닌 존재>의 획득이라고 말한다. 소유가 되지 않는 존재가 무엇일까. 소유가 될 수 없는 존재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그 확신을 부정하는 의식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벗어남’의 존재론이다. 임경숙은 그의 자작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비밀이 없는데도
비밀의 열쇠를 채워둡니다.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도둑맞지 않고
냉차게 거절당하지 않고
그리움 따위로 매달리지 않게
오늘은 더 깊숙이 보관합니다.“
비밀이 없음에도 비밀의 열쇠로 채워둔다는 말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행위로 동어반복의 논리다. 아라비아 수 동그라미(O)는 ‘없다’이면서 동시에 ‘있다’는 의미로 부정긍정을 함께 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반복할 때처럼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래도 듣는 자가 있다. 이것이 모더니즘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해프닝과 이벤트의 퍼포먼스였다. 임경숙이 캔버스에서 만족하지 않고 해프닝 이벤트와 글쓰기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경숙의 회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하는 아이콘의 세계를 산책할 필요가 있다. 아이콘은 엘리트의 언어다. 딱히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못하는 기표로 만국 공통의 소통언어이다. 임경숙의 캔버스에서 우리를 반기는 아이콘은 백마와 꽃과 비둘기, 오리, 그리고 다소 거칠게 보이는 눈썹과 팔뚝과 손가락이다.
잘 알라져 있듯이 모더니스트의 소통수단이 아이콘으로 바뀌었던 것은 의미소통의 층위가 4차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콘의 공유를 통해 소유되지 않는 존재의 만남을 시도한다.
사랑으로, 30호, 아크릴
그들에게 있어서 아이콘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는 속내의 말을 소통시키는 요긴한 방편이다. 방편으로서의 아이콘을 흔들어대거나 변장술로 그 속내를 긴장케 만드는 의도는 가면놀이와 다르지 않다. 먼 옛날의 이야기다. 마르셀 뒤샹은 소변 변기를 화랑에다 옮겨놓고 여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손님을 당황케 만드는 언어의 가면놀이다. 화랑을 벗어나 기표의 가면을 벗으면 <샘>은 다시 변기로 돌아오고 손님은 ‘변기야 반갑다’라고 한다. 동어반복의 가면놀이도 즐거운 것일까. 임경숙은 이 놀이를 ‘창의성’이라고 말하며 시를 통해 이렇게 주장한다.
“기존의 있는 것을 이용하여 낯설게 하기, 익숙하게 보이기,
충격을 주기, 재미나게 하기,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상황을
배가 향해 하듯이 로 표현할 수도 있지.“
내영혼에서 노래하는새, 116.8×91.0cm, Acrylic
그의 아이콘 백마는 인류의 오랜 신화로 전해지고 있는 날개를 단 페가수스의 부활이다. 페가수스는 허공을 나르며 때로는 스핑크스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을 가지기도 한다. 무거운 중력의 속박을 단숨에 걷어차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자유는 승천이고 ‘벗어남’이다. 시베리아나 우리네 샤먼 굿에서는 샤먼이 말머리를 새긴 지팡이를 가랑이에 끼고 하늘로 나는 흉내를 낸다. 이승에서 저승의 자유로운 왕래를 시위하는 굿거리다.
임경숙의 말들에는 누드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탄다. 한 마리의 말에 누드가 된 한 쌍의 남녀가 타는 것은 최상의 구원이라고 화가가 말하는 것 같다.
그리움으로, 100×80.3cm, Acrylic
임경숙의 아이콘 눈과 눈썹, 그리고 손과 손가락의 인용은 그의 회화를 참신하게 만드는 발명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눈썹은 동화의 아이콘이기도 하지만 그의 캔버스에서는 조형의 추상적인 혼란을 조율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눈썹은 눈에 소속되지만 그의 캔버스에서는 그 자체가 독립적인 기표로 활동한다. 눈썹이 둥글게 배열되면 활짝 열린 눈이 되고 한 줄로 나열되면 눈은 숨고 간단한 줄만 남는다. 열린 눈썹은 긍정이고 한 줄이 되는 눈썹은 부정의 메시지이다. 눈썹이 여기저기로 이동하고 변형되는 것도 언어의 가면놀이를 돕는 이벤트이다. 눈썹이 아이콘이 되듯이 거대한 팔뚝과 손가락의 등장도 그렇다. 손과 손가락의 이미지를 신체에서 독립시키면 메시아의 예언이나 점성술, 혹은 불상의 수인처럼 우리의 일상을 긴장시킨다. 가면놀이의 하이라이트는 낯선 시선의 긴장감이다.
연인, 116.8×91.0cm, Acrylic
아이콘의 역사에서 꽃처럼 사랑받는 아이콘은 없을 것이다. 영혼의 구원과 사랑이라는 불멸의 이 아이콘은 이집트 벽화에서는 연꽃으로 태양이고 그리스신화에서는 아네모네 꽃으로 사랑과 영혼과 부활이다. 우리에게는 연꽃이 이심전심과 파안미소이고 용궁에서 부활하는 심청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꽃이 아이콘으로 쓰이는 것은 위험하다. 꽃의 속내를 활용하기에는 꽃은 이미 너무나 낡고 덤덤해져있기 때문이다.
봄을 느끼며..., 72.7×60.6cm, Acrylic
뛰어난 변장술이 없이는 꽃이 의미하고 있는 속내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임경숙은 그의 캔버스에 많은 꽃들을 불러들이고 그 속내의 혼을 불러내는 굿판을 만든다. 그의 꽃은 눈썹을 가진 얼굴이기도 하고 태양이기도 하고 하늘에 가득한 별의 가면이기도 한다. 능숙한 변장술은 샤갈이나 뒤샹의 변장술을 연상케 한다. 변장술의 효시는 뒤샹의 <샘>이다. <샘>은 가면이고 속내는 소변기다. 전시라는 가면무도회가 끝나면 가면은 벗겨지고 그 속내의 변기가 들어난다. 야, 변기야 반갑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손님은 행복하다. 임경숙은 자작 시<무상의 고요>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무상의 고요가 넘나들고
평온한 사유가 반짝이는 충만감
비울수록-작아질수록-감사합니다.“
모더니즘은 이미 죽었으나 아직 모더니스트는 살아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임경숙의 활약에 주목한다.
내 생각으로 날아든 새들, 90.9×72.7cm, Acrylic
전세계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에 과연 예술이 어떤 감동과 무슨 위로를 줄수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듯이 예술이 밥이 되지 못하고 특효약이 될수 없다 하여도 예술만이 줄수있는 순수한 열정과 생명력으로 세상에 외쳐봅니다.
축복하고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감성과 마음을 감사한다고... 그리고 살아있어서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수 있는 배려와 동행으로 반드시 극복해낼 수 있다고요.
어제 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기위하여 불꽃의 노력, 불굴의 노력, 불가능할 정도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 작가노트 -
임경숙 | Im Kyung-Suk
1985년 플레리드라 뻑뜨 뎃생과 의상학교 졸업
코스튭 떼아뜨르 연극의상 학교 수료
죠오즈 샤레르 교수에게 판화 사사
파리 8대학 그룹전
퐁피두센터 아시아여성 최초 두 차례 초대 패션쇼와 행위예술
유럽 아카데미 예술협회에서 동메달 수상
1986년 소금창고 초대, 제 1회 판화 개인전
금호문화재단 초대 제 2회 판화 개인전 및 행위예술
1987 주불 한국 문화원 초대, 판화전
1991 경인 미술관, 제 3회 유화개인전
1993 경인 미술관, 제 4회 유화 개인전
2000 도봉도서관 초대 ‘너, 폐품? 아니, 나 작품’ 제 5회 정크아트전
2005년 평화화랑 초대 제 6회 천연염색아트 개인전
2013 아트스페이스 소사 ‘천연염색과 도예전’ 제 7회 초대개인전
2014 미술세계 주관 ‘아! 대한민국’ 초대 단체전
오사카전, 로마전, 스위스전 은상 및 우수상 수상
2015 대한미협 100인전 올해의 작가상 수상
뉴욕 단체전
LA 제 8회 개인전
2017 올화랑 제 9회 개인전
2018 M화랑 제 10회 개인전
담화랑 제 11회 개인전
라피 미술관 초대 3인전
대한매일 신문 탑리더스 대상
스포츠 동아일보 신지식인 대상
2019 뉴욕플러싱 타운홀 제 12회 개인전
골든튤립 프랑스 호텔 제 13회 초대 개인전
삼천동 Gallery 1 제 14회 초대 개인전
시카고 박물관 초대 단체전
요르단 한국인 초대 6인전
중국 위안시 초대 단체전
시사 신문사 반추상화 대상 수상
2020 조선일보사 제 15회 개인전
저술 : 수필집 5권, 그림시집 2권
시집2권, 영화시나리오 1편
인사동예술가협회 회장
E-mail : dream7155@hanmail.net
Mobile : 010-5627-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