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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pa(Sukho Mun) (andy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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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베드로 사제(Kepa, Peter)를 본받는 삶을 살고 싶어 블로그명을 Kepa로
바꾸었습니다. 블로그 벗님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삶입니다. 이곳 우리집 가까이에 있는 Saint Cecilia 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미사 봉헌에 참례할 때가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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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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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2007/06/13
03:42 |
추천 1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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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andychun/217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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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소록도봉사후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나 오스트리아 국적의 수녀님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문둥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님은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수술을 해 주고 한센환자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적절한 시기이므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소록도가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님(왼쪽)와
마리안 수녀님(오른쪽에서 두 번째).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수녀님들은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수녀님을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를 수천 문둥병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헌신적
봉사를 베푸셨던 수녀님들은 포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사양하셨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님은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치유가
되어 섬을 떠나는 환자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님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소록도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하고 치유해준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이제 고향 오스트리아가 오히려 낯선 땅이 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수녀원의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수녀님들은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밤에 잠을 자면서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수녀님들의 방문 앞에는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우리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가 살던 소록도의 집 그리고 봉사했던 병원이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 옮겨온 글 ~ 하느님오른편에 앉아계신 주(Qui Sedes ad Dexteram)You who sit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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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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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밀접하게 따르는 분들을 생각하면, 우리와 같이 개인적인 삶이 마냥 부끄러워집니다..ㅠ. 2007/06/13 07:5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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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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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수 애향원 에
교우들과 순례를 했지요,, 사랑의 원자탄 손양운목사님이 순교하셨던 나환자교회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념관에
나환자의 의료기관을 둘러보고, 현기증이나고 구역질이나서 그곳을 바져나와 커피 좌판기롤 걸어가다가 40여년만에 중학교 일학년 내옆의
짝지를 마주쳤습니다. 지가 먼저 알아봤어요,어쩜 어릴적 얼굴이 그대로인지,, 친구가 다니는 전주교회에서 순례오던 길목에서
만났습니다. 그 친구를 만난게 아무래도 주님의 섭리라 생각되어지더군요. 고흐은 가보았으나 소록도는 아직 가보진 못했지요,,
고흥의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더군요, 그렇게 아름다운 별무리는 첨 봤습니다.
마지막 글 "착하고 겸손하라" 2007/06/13 10:2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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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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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찡 합니다 ,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를 위한 것에도 버겁다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누구의 도움을 바라고 한말인가! 내 고향 (전남
장흥)옆 소록도 나는 무서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 지금도 가보려 하지 않은 곳, 음악이 더욱 나의 나야함을 채칙 하는 듯 합니다. 감사
합니다 2007/06/13 12: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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召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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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육신은 사람으로
왔지만 분명 천사임에 틀림없습니다.ㅎ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편한 여생되소서.ㅎㅎ 2007/06/13 19:3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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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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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에 소록도에
오셔서 나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하며 일생을 사신 두분 수녀님, 육안으로 보인 천사님이셨어요.
그 누가 그리도 힘든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감사한 맘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부디 건강 하시라고,,, 2007/06/15 08:5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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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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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잠시머문적있지요
마음이찡하네여 2007/08/09 18:57:46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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