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의 발전과정은 물질과 정신(관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선차적인가 하는 논쟁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의 화두 ‘존재와 의식’ 또한 ‘물질과 정신’에 관한 이슈와 맥을 같이 한다.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서문과 마르크스/엥겔스의 [독일이데올로기]에도 나오는 이 말의 정확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It is not the consciousness of men that determines their existence, but their social existence that determines their consciousness.
여기서 ‘사회적 존재’란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이루는 생산관계의 총체를 말하는데, 다른 의미로는 개인이 점하고 있는 사회적 포지션 혹은 거시적 차원에서 개인 및 집단이 속한 사회적 환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글에서 내가 이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사는 아파트 평수를 예로 든 것이 불찰이었다. 내가 그 예를 통해 하고자 한 말은, 경제적으로(= 존재양식) 넉넉한 사람들이 심적으로도(= 의식) 넉넉하다는 것,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마저 궁핍할 수밖에 없다는.... 즉, 이것은 개인의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조건의 문제라는 것이다.
존재양식이 개인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이 명제를 이해하는 것은 (특히 교육자에게) 정말 중요하다. 이게 중요한 이유를 들라면, (내게 시간을 준다면) 수 백 가지의 의미있는 사례를 들 수 있다.
#1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줄 때 그들은 나를 ‘성자’라 불렀지만,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가”라고 물을 때 그들은 나를 ‘빨갱이’라 불렀다.
브라질의 진보적인 신부 둠 헬더 까마라 주교의 말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함을 알게 되면, 가난한 사람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잘못된 사회구조의 희생자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 뭔지에 관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학생의 낮은 학업성취의 이유는 흑인에게 내재된 인종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헛소리’를 하는 연구결과가 많았다. 그러나 1965년 콜먼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통해 학생의 학업성취에 결정적인 변인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SES)이라는 게 밝혀졌다.
사실, 이건 존재(=가정배경)가 의식(=정신적인 부분, 이 맥락에선 지능 혹은 학습능력)을 결정함을 생각하면 너무나 자명한 이야기인데, 이 결론을 내리기 위해 그리 거창한 연구가 필요 있을까?
# 3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아이들은 다른 학교의 아이들에게서 잘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교실 책상 위에 지갑을 두고 점심 식사를 하고 와도 돈이 없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가방을 뒤져 돈이나 물건을 슬쩍 하는 일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리고 욕설 구사 빈도가 다른 학교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반면, 전임지의 학교에선 도난 사고가 잦고 아이들의 일상이 욕설로 도배가 되었다.
두 학교의 차이는 가정 배경(=존재 조건)의 차이가 전부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사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아이들이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존재 양식이 나빠서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아이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아가, 건강한 자에겐 의원이 필요 없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할 때, 정작 우리가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아이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 진보란......
도둑질 하다 딱 걸려 고개 숙인 현행범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한다.<<
이거 오늘 아침 내가 건져 올린 멋진 한 문장인데...
진보를 참칭하는 어떤 분은 이 말을 “진보를 도둑놈에 비유한다”고 해석하며 내게 항의해 왔다.
안타깝다.
이런 문해력으로 무슨 진보 운동을 한단 말인가?
...................................
진보는 의식의 진보다.
깡다구의 진보도
입장의 진보도 아니다.
이 마지막 말은 본문 전체의 내 기조를 뒤엎는 중대한 반전이다.
즉,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역주행 시켜, 의식이 존재의 규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존재와 의식’ 시리즈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논할 것이나......
한 가지 이슈만 미리 티저로 제시하자면...
노동계급의 존재(=존재양식) 자체가 진보적 의식(=의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구시대의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망상과 달리, 진보는 입장의 진보가 아니라 의식의 진보다. 진보적인 입장이 저절로 진보적인 의식을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싸움만 잘 하면 그건 동네 양아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