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3
시골살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풀이다. 약해 보이지만 정말 강하다. 어떤 방법을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 예초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한 풀과의 사투는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다. 무성한 풀을 짧게 잘라 놓으면 일주일 정도 간다. 그러나 한숨 돌리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풀은 다시 자라 있다.
제초제를 뿌리면 시들시들 말라 죽는다. 죽은 풀은 정말 보기 싫다. 풀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시간만 더 걸릴 뿐이다. 땅도 상한다. 풀은 제초제도 이기고 다시 무성해진다. 효과가 가장 좋은 것은 호미로 뿌리까지 캐내는 것이다.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려야 하지만 캐내면 풀은 사라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날라 온 풀씨가 다시 자라거나 땅속에 있던 다른 풀씨가 또 머리를 내민다.
그렇게 풀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런 싸움이 반복되면 결국 힘에 부친다. 최후의 방법은 시멘트를 바르는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하면 풀은 자라지 않는다. 더불어 시골살이도 막을 내린다. 자연 속에 살고 싶다며 시작한 시골살이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 때문에 끝난다.
시골살이 여섯 해를 넘기면서도 풀과의 싸움은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진다. 예초기로 풀을 아무리 잘라도 ‘마당 정원 예원’은 유지되지 않는다. 자르는 것으로 캐내는 것으로만 예원을 만들 수 없다. 풀과 잡초가 사라진 자리에 무언가를 반드시 심어야 한다. 보고 싶은 꽃과 원하는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 감국이 가득한 서쪽 화단에는 풀들이 자라지 않는다. 층층이꽃이 촘촘하게 자리 잡은 앞쪽 화단도 풀의 기세가 꺾였다. 여러 종류의 수국이 자리 잡은 동쪽 화단도 풀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백리향과 화설초가 튼튼히 자리 잡은 데크 앞 화단에도 풀이 보이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풀을 캐내는 일과 원하는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이 함께 필요하다.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심는 일을 함께해야만 마당 정원 예원이 자태를 드러낸다. 예초기를 들고 풀을 자르는 내 일과 호미로 꽃을 심는 안젤라의 수고가 함께 할 때 마당 정원 예원이 자리를 잡는다. 꽃들이 자라나 튼튼히 뿌리를 내리면 다른 풀의 기세가 잡힌다. 틈을 비집고 나오는 풀만 뽑아주면 마당은 잔디와 꽃으로 가득한 정원이 된다. 마당의 형질이 바뀐 것이다.
우리 마음 밭에도 수많은 번뇌와 욕망의 풀들이 자란다. 뽑아주지 않으면 잡초로 가득해진다. 욕심을 버리고 걱정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마음 밭의 풀은 살아 있는 한 반드시 다시 자란다. 악한 습관을 없앴다면 선한 습관을 그 자리에 채워야 한다. ‘선한 습관이 자라고 뿌리 내려 마음 밭을 가득 채워야 악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행복하고 싶다면 마음 밭의 형질을 바꿔야 한다.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심는 하루의 수고가 모여 행복 정원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