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아래의 이야기는 소설 <파체> 속에서 얻은 용머리바위의 전설에 살을 더하고 내 나름대로 치장을 하여 다시 구성해보았다.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후대로 이어지나 보다.
옛날부터 이 연못에는 용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천년이나 가까이 견디며 이제 승천하는 날 만 기다렸다. 어느 누구도 이 연못에 천년의 이무기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연못가 마을에는 예쁘장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종종 혼자서 연못 가까이에 와서 놀았다. 어느 날 꽃을 찾아 나는 나비를 쫓아 따르던 소녀가 그만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허우적대며 물에 가라앉을 때 연못 속의 이무기가 소녀를 살포시 안아 연못가로 건져 주었다. 소녀는 물 한 방울 젖지 않았다. 깊은 잠을 자다 깨어났기에 물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무기를 본 적도 없고, 누가 구해주었는지도 더더욱 모른다. 다만 용이 되어야 할 이무기만이 그 소녀를 잊지 못하였다. 깊은 연못 속보다 더 차가운 몸으로 소녀의 따뜻한 몸살을 품었으니 그 체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그리움이 되었고 그리움은 상사병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어느듯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이무기는 승천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사랑하는 소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인가? 아니면 천년의 세월을 포기하고 소녀를 사랑하며 이 세상에 남을 것인가?’
간절한 기도 끝에 이무기는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소녀에 대한 사랑은 한 때의 감정이며, 인간 세상의 삶도 아침 이슬같이 부질없는 것이다. 천년의 용은 결국 승천을 결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삶이라는 결심을 굳혔다. 드디어 승천하는 날. 하늘을 오르던 용은 잠시나마 미련과 추억을 떨쳐버리고자 연못가로 눈길을 내렸다. 그 순간 사랑했던 여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아, 저 여인도 나를 사랑했나보다’ 그리하여 마음이 흔들렸고 사랑하는 여인을 자세히 바라보고자 머리를 돌렸다. 앗! 바로 그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고 그만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움으로 눈이 멀어버린 용의 머리가 곤두박질로 떨어진 곳이 바로 용머리바위이며, 짝사랑했던 용의 마음이 깊이 가라앉아 버린 곳이 바로 지금의 용연이다. 연못가의 아름다운 여인은 아무것도 모르며 밤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용을 볼 수 없다. 아무도 용의 사랑하는 마음을 모른다. 하물며 그 소녀, 그 여인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렇게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용연에
깊이 묻혀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은 슬픈 사랑의 용머리가 되어 바위 위에 걸터 앉아있다. 용연의 배수구에는 입을 벌리고 화홍문으로 물을 내려 보내고 있는 용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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