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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아들은 대학 때 평생 배필을 만나 칠 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공주를 두었다. 직장이 있는 수도권에서 살림집을 얻고 결혼 이 년여 만에 자식을 낳아 셋이 웃음 가득한 나날을 지낸다.
부부와 함께 생활하는 딸은 그동안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오로지 앞길만 보면서 지내왔다. 이제는 자리를 잡으면서 한가지 걱정은 덜었다. 또다른 염려는 언제쯤이면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이성과 사랑을 나누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나날을 보낼까. 몇 차례 소개받은 남자와 만나는가 싶더니,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마음에 차지 않는단다. 진득하니 만나봐야 상대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한두 번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단다.
딸의 귀가가 늦어진다. 약속이 이어진다 싶더니 요즈음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자정에 가깝다. 괜스레 관심이 커진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 있는 날이 없다. 하루는 아파트 베란다 문밖으로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웬 남자가 내리더니 조수석으로 다가가 자동차 문을 열어 준다. 누군지 상대를 정말 배려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 순간 딸이 그 승용차에서 내린다. 둘이 데이트를 즐기다 집까지 데려다준 모양이다.
현관에 들어선 딸을 보고 옷 갈아입는 틈도 주지 않고, 누구 차를 타고 온 것이냐며 대답을 기다린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에 이야기해 주겠다고 한다. 궁금증이 더해간다. 딸과 잘 어울리는 남자였으면 좋으련만. 드디어 자식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인가. 서른이 넘는 나이까지 생일 때마다 집에서 가족과 축하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이 괜히 안타까웠다. 올 생일에는 남자 친구의 축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보련다.
딸은 남자 친구에 대한 정보를 한 가지 이야기해 줄 때마다 건당 현금 만 원을 요구한다. 내가 왜 ‘말을 해 줘야 하는데’란 다. 아니, 만나는 이성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 주는 것이 이토록 대단한 벼슬인가. 그래도 부부는 돈을 건네며 한 가지씩 캐낸다. 우선은 나이와 하는 일 등이다. 소개받은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서로를 알아 가고 둘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듯, 전화는 아침저녁 빠지지 않는다. 카톡은 말할 것도 없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차를 한잔하는데 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둘이 여행을 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만남을 이어 가면서 처음으로 멀리 추억을 쌓으러 가는 모양이다. 미성년자도 아니기에 딸의 선택에 맡긴다. 자신의 책임으로 나흘간의 외출이 이루어졌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첫날 도착했다는 문자만 날아오고 이후에는 연락도 없다. 가족 단톡방에는 우리가 올린 내용을 읽은 흔적만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가. 여행이 마무리된다고 알려진 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 속에 백사장에 피부를 드러내 놓고 돌아다녔는지 상체는 발갛게 달아올라 익어 가는 홍로 사과를 보는 듯하다, 아내는 딸을 거실에 눕히고 생감자를 갈아 붉게 된 부위에 붙여준다.
딸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엉킨 실타래가 한 올 한 올 정리되듯 그간의 만남을 말한다. 두 사람이 동갑으로 생년월일까지 한 날이란다. 흔하지 않은 만남이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있나. 세상에 많고 많은 남녀 중에 두 사람이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딸이 입을 열 때마다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어. 그래서, 그리고를 연발한다. 딸은 ‘서두르지 마시오’ 적어도 이 사람이 어떠한지는 ‘사계절은 만나봐야 그 사람을 안다.’. 추울 때와 더운 계절 어떻게 반응하는 마음을 갖는지 라는 말과 더불어, 입술을 모으고 검지를 코끝과 턱을 이어 반복해서 갖다 댄다.
부모로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지금껏 부부가 아는 한 이성을 지긋하게 만난 적이 없기에 서로 상대를 알아 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는 사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대 부모에게 인사를 나누고 집도 방문하지 않을까. 딸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와 어울리기보다는 이성의 연애 당사자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 이제 이성과 만나더니 자세한 이야기도 않고 ‘오늘은 집에 없다’라는 문자만 남기고 연락이 끊긴다. 이성에 끌리어 그의 집으로 달려가 함께 있는지 딸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다.
요즈음은 사흘이 멀다고 만나는 약속을 잡는다.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보니 자주 만나는 눈치다. 부모가 자식 연애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서로 나이가 든 상태에서 만났기에 시나브로 진척되어 가정을 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갑자기 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빠,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까지 하느냐며 퉁명스럽다.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성인이 된 자녀가 짝없이 혼자 지내는 걸 보고 있는 것 역시 측은하다. 대학 졸업 후 칠 년 이상을 시험에 매달려 책상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오로지 한가지 결과만 기다려 왔지 않았던가. 몇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력한 결과 이제 정규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남은 일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부모의 한 가지 소망이 이루어졌다. 아니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창문으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듬직한 체구에 딸이 그토록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 자기를 떠받들어 줄 수 있는 인물임을 엿보았다. 둘의 진지한 만남이 지속해서 이어져 머지않아 집 방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 두 집 안 사이에 인사가 오가고, 절차에 따라 딸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간 품 안에 자식으로서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눈물이 나겠지만, 그보다는 자식이 어른으로 태어난다는 기쁨이 더 클 것 같다. 둘이 각자의 집으로 들락날락하면서 가까워지고 한 가족으로 몸을 부대끼는 그 날이 몹시 기다려진다.
오직 혼자만의 상상으로 오늘도 모래성을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계속한다. 자식 둔 부모의 마음은 다를 수가 없다. 나이 들어도 혼자 살거나 결혼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으니, 내 딸은 배우자를 찾는 중이어서 고마울 뿐이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의 수를 늘려 오래 기다리지 않게 손주를 안겨 주는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큰 아픔도 작은 기쁨으로 고통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했다. 10개월 된 손주의 재롱에 잠깐의 시름은 어느새 날아간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현실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늘 즐겁다. 장년을 살아가는 인생 후반에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으뜸이 자식들의 좋은 소식이다. 딸의‘세 가지가 같다’라는 말에 큰 기대를 건다.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데 한시름 놓는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