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보는 할머니에게 월 40만원 지급’, ‘군 복무에 소요된 시간과 노력 보상…’.
최근 여성가족부발(發)로 나온 보도들이다. 이런 새로운 바람과 논란 뒤엔 11일 취임한 조윤선(47·사진) 장관이 있다. 첫 여성 대통령의 초대 여성부 장관이자 최연소 장관이다. 로펌 ‘김앤장’의 변호사,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거쳐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그는 대선과 인수위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변인으로 일하며 지근거리에서 박 대통령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했다.
21일 중앙SUNDAY 편집국을 찾은 조 장관은 “여성 대통령을 맞아 ‘이만큼 좋아졌다’는 걸 5년 뒤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부가 인력은 적은데 업무 스펙트럼은 넓다. 앞으로 일로써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된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나.
“대통령께서 국무회의 때 이런 말씀을 했다. ‘국무위원 한 분 한 분 제가 굉장히 오래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실까, 잘하실 거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했다. 저한테 전화했을 땐 ‘나랑 오래 같이 다녔으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여성과 가족정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지 않나’라고 했다. 전날 (인수위) 여성분과 업무보고가 있었는데 대통령께서 어떻게 봤느냐고 물어서 ‘여성 정책이 그렇게 전 부처에 흩어져 있는지 몰랐다. 모든 부처를 잘 코디네이트(조율)해야 하는 업무인 것 같다’고 했더니 ‘잘 봤다. 관성적으로 일하지 말고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라 생각하고 적극 일해달라’고 했다.”
-여성 정책 경험이 적지 않나.
“(내가) 여성 정책에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은 맞다. 전적으로 (여성 정책에 대한) 수요자 입장으로만 있었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편견 없이 정책을 만들고, 탁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환영받는 정책을 내놓을 생각이다.”
-취임 간담회 때 ‘군 복무에 소요된 시간을 보상해주는 제도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전 딸만 둔 엄마지만 아들 가진 엄마 입장에선, 아들이 한창 공부할 때 군대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여성가족부는 양성이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하려 한다. 군 복무한 남성을 예우하는 건 출산이나 육아로 직장생활에서 뒤처질 수 있는 여성을 예우해줘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성부가 계속 취해온 입장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주무 부처(국방부)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군 복무 시 정년 연장은) 대선 당시 박 대통령께서 의정부 유세에서 한 말씀이다. (군 복무 기간) 경력 인정 같은 건 개인 의견으로 제시한 거다. 인수위 때도 논의는 있었다. 정년 (연장)은 약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것 같고, 나머지는 적극 논의해볼 수 있다고 들었다.”
-손주 돌보는 할머니에게 40만원을 지급할 건가.
“초안만 나온 상황에서 언론 보도가 앞서 나갔다. 아이 돌보미 사업을 확장하는데 보육교사를 파견하고 가사도 도와주는 혼합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현장 수요여서 인수위가 논의했다. 조부모로 돌보미를 확장하는 것도 광주광역시와 서울 서초구에서 실시하고 있고, 많은 이가 호응한다. 하지만 부정수급 방지는 어떻게 할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언제 (시행)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셧다운제(청소년 심야 게임 접속 금지)도 그대로 하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셧다운 제도가 알려지면서 심야 시간에 게임을 하지 않는 청소년이 늘어났다. 모바일게임에 관해선 아직 중독성이 심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데, 2년마다 어떤 (모바일)게임에 대해 (금지)할지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 같다.”
-일부 남성은 역차별을 받는다며 양성평등부를 주장하는데.
“젊은 여성들이 약진해 산기슭에는 봄이 왔는데, 산 정상에는 아직도 만년설이 있다. 산 전체에 봄이 올 때까지 여성부는 할 일이 있다.”
-더 하고 싶은 일은.
“유연근무, 단축근무, 육아휴직, 재택근무를 기업들이 채택하도록 어떤 혜택과 결부시킬지 논의해봐야 한다. 정책수요자에게 어떤 혜택이 중복되고 비는지 초기에 면밀히 볼 거다.”
-내각 18명 중 2명만 여성이고 청와대의 실장·수석 12명 중엔 여성이 없는데.
“(대통령께서) 차차 여성 비율을 늘려갈 거라 믿는다. 워낙 여성 인재를 발탁하는 데 의지가 있는 분이다. (지난해 4월 총선) 여성 비례 의원을 공천할 때 전문성 있는 분들을 획기적으로 발탁했다. 인수위 때 ‘정부위원회 여성 비율을 40%로 하라고 하는데 왜 자꾸 (수치가) 떨어지느냐’고 두 차례 이상 말씀했다. 이제 조직되는 위원회는 여성 비율을 그 정도로 맞추려 노력한다고 듣고 있다. 추천도 활발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 공공기관이 여성 인재를 발탁할 때 쓰는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현재 여성이 3만 명밖에 안 돼 7만 명을 추가 발굴하려 한다.”
-남성들이 ‘여성 대통령 모시기 어렵다’고 한다.
“소통 방법이 남성 위주로 돼 있다는 방증이다. 저도 남성이 많은 곳에서 소수자인 여성으로 일하면서 부자연스럽게 느끼면서도 맞춰간 것들이 상당히 있다. 남성들이 여성 부하에게 어떻게 대해주면 편안해할까 하는 생각은 안 했을 것 같은데, 여성 대통령이 나오니 (소통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다. 진통 과정이자 변화의 시작이다. 제 경험으론 남성 보스들과 일할 때 불편했던 반면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을 수행하면서부터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되고, 말을 안 해도 통하는 걸 느꼈다. 다른 여성 의원과 인수위에서 일했던 여성들도 그런 걸 느낀다. 5년 뒤엔 남성과 여성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이 도처에 자리 잡았으면 한다.”
-박 대통령의 어떤 점이 편했나.
“남성 당 대표는 뭘 상의하러 가면 어렵거나 애매한 문제일수록 ‘알아서 하라’고 한다. 반면 박 대통령에게 어렵거나 애매한 걸 물어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뉘앙스가 중요하다’면서 자상하게 상의해준다. 제가 편했던 게, 문장을 만들어 보고하면 ‘이런 부분은 이렇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니 국민이 듣기에 불편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바꾸자’고 하더라.”
-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사소한 것까지 챙겨 ‘만기친람형’이란 지적을 받는데.
“장·차관 가운데 박 대통령과 오래 같이 일했던 사람이 별로 없다. 정부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니 얘기를 소소하게 하는 것 아니겠나. 팀워크가 짜여지면 큰 방향만 신경 쓸 것 같다.”
-변호사, 국회의원 등을 거쳐 여성가족부 장관에 올랐는데 생활을 비교한다면.
“변호사 할 때는 ‘처음 보는 여자 변호사’란 말을 많이 들었다. 똑같은 나이인 남자 변호사의 신뢰성엔 의문을 갖지 않기에, 어떻게 하면 의뢰인한테 신뢰감을 줄까 노력을 많이 했다. 국회는 남성 중심 문화다. 미국·영국 의원들은 정책 간담회와 타운홀 미팅으로 바쁜데 한국 의원들은 행사와 회식이 많다. 여성부는 여성 직원들이 많고, 정부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차관이 동시에 나왔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나.
“딸이 1994, 97년생인데 온라인에서 여성부에 대해 안티가 얼마나 많은지 여론을 전달해준다. 세상에서 제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게 친정 엄마와 딸들인 것 같다. 친정 엄마도 ‘넌 예쁜 게 아니라 인상이 좋은 거다’ 하신다.”
-전 세계 여성 지도자 중 닮고 싶은 모델이 있나. 장기적인 꿈은 뭔가.
“주변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을 박 대통령 취임식 날 만났는데 강단 있고, 섬세하고, 따뜻하더라. 대통령으로 일하고 난 다음에도 여성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 본받을 만하다. 나는 전공(국제정치학)도 그렇고, 변호사 때도 외국 일을 많이 했고, 의원 때도 의원 외교를 많이 했다. 앞으로 여성부 일에 충실하면서 여성들이 더 해외로 나가고, 해외에 있는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