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연인지맥 종주기1
*지맥구간:890봉-명지3봉-아재비고개
*산행일자:2010. 5. 16일(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명지3봉1,199m/귀목봉1,036m
*산행코스:무리울삼거리-오뚜기고개-890봉-귀목봉-귀목고개
-명지3봉-아재비고개-상판리버스종점
*산행시간:8시45분-17시30분(8시간4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9명
(24회 김주홍, 서중원, 우명길, 29회오창환, 유한준, 정병기
43회 서석범, 김동희, 초대손님 박현출님)
한북정맥의 오뚜기고개 남쪽 위 봉우리인 890봉에서 분기되어 조평천의 동쪽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한북연인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890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한북연인지맥은 귀목봉, 명지3봉, 연인산 등 해발고도가 천m를 넘는 고봉들과 9백m대의 매봉, 깃대봉, 7백m대의 대금산, 6백m대의 불기산과 호명산을 차례로 일궈 세운 후 청평대교 앞에서 북한강으로 침잠하는 전장 43Km의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여덟 개 지맥 중 6번째로 종주하는 한북연인지맥은 모교인 경동고 동문들과 함께 하게 되어 한 여름에 치러 내야하는 종주산행이지만 저 혼자서 할 때보다 힘이 덜 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전8시45분에 무리울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아침7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 일동에서 하차해 택시로 이번 종주산행의 들머리인 무리울삼거리로 이동했습니다. 한북정맥과 만나는 오뚜기고개까지 약6Km의 길이 차가 다닐 만큼 넓은데다 길가에 햇빛을 가릴 나무들이 별로 없어 산길을 걷든 것보다 훨씬 더 짜증스러웠습니다. 산행시작 1시간이 다 되어 “횃불”이라 적힌 절개면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가자 모래 보관용으로 지은 듯한 시멘트 가 건물이 보였습니다. 동쪽으로 계속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시간 반을 조금 못 걸어 넓은 공터의 오뚜기고개에 이르렀습니다. 2008년 1월 한북정맥차 지난 이 고개 한 가운데 “오뚜기령”이라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먼저 온 일행들은 그늘진 이정표 한 쪽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11시 정각 890봉에서 한북연인지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대학동창인 이상훈 교수와 함께 오뚜기고개를 출발해 890봉에 올랐을 때는 새로 내린 눈이 무릎을 넘게 쌓여 그 위에 길을 내고 올라가느라 시간 반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눈 대신 붓꽃, 양지꽃 등의 야생화와 진달래 및 벚꽃이 활짝 피어 그 반도 안 되는 4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친구와의 연인지맥 종주를 포기하고 청계산으로 행로를 바꿨던 890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연인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귀목봉으로 올라가는 능선 길 양 옆으로 줄기가 굵은 싸리나무가 도열해 있어 덥다고 반팔차림으로 산행을 했다면 싸리나무들이 귀찮을 뻔 했습니다. 얼레지 꽃이 다 졌다 했는데 고도를 높여가자 아직 지지 않은 꽃이 치마를 치켜 올리고 귀목봉을 오르는 저희들을 반겼습니다. 나무널판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몇 걸음을 더 올라가 다다른 해발1,036m의 귀목봉은 사방이 막힘없이 보이는 최고의 전망지여서 한북정맥과 연인지맥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12시26분 귀목고개로 내려섰습니다. 귀목봉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귀목고개로 향했습니다. 진노랑 꽃 피나물은 같은 노랑색의 양지꽃보다 송이 수는 적었지만 꽃이 커 훨씬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상판리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자 내림 길의 경사가 제법 급했습니다. 귀목봉에서 4백m 가까이 고도를 낮추어 내려선 귀목고개는 깊숙한 안부로 바람의 통로여서 땀 흘린 등이 금세 서늘해졌습니다. 언제고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김주홍동문이 싸온 밥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40분 넘게 점심을 들면서 푹 쉰 후 13시10분경에 오른 쪽 아래로 상판리 길이 갈리는 귀목고개를 출발해 명지3봉으로 향했습니다. 1,200m에서 1m가 빠지는 해발1,299m의 명지3봉을 오르려면 귀목고개에서 표고를 450m가량 높여야 해 오름 길이 쉽지 않겠다싶어 긴장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각점이 박혀 있는 794.9봉을 지났고 귀목고개 출발 1시간 가까이 걸어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활짝 핀 양지꽃과 얼레지 꽃들이 웃음으로 반기지 않았다면 산 오름이 꽤 힘들었을 것입니다.
14시38분 해발1,199m의 명지3봉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뚱뚱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양 바위 사이를 지났습니다. 끝이 뾰족한 바위가 비스듬히 서 있는 암봉을 비껴가 만난 나무계단에 앉아 후미를 기다리는 산행대장을 보고 제가 산행을 맡아 진행한 한북정맥 종주를 떠올렸습니다. 그 때보다 인원은 조금 줄었지만 산행능력이 향상되어 별 문제없이 종주산행을 진행하고 있지만 산행이 완전 종료되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산행대장은 그때나 이때나 홀로 외롭게 산행을 이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통나무계단과 널판 계단 길이 몇 번이나 교차되는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연인지맥은 오른쪽으로 분기되고 봉정산으로도 불리는 명지3봉은 왼쪽으로 십 수 걸음 비껴서 있었습니다. 암반이 꽤 넓은 명지3봉 암봉에서 바지춤을 잠간 동안 내리고 올 들어 처음으로 거풍을 즐겼습니다. 오름길에 숨죽였던 바람이 명지3봉 정상에 선 저희들을 시원하게 휘감아 웃통을 벗고 바람을 맞는 대원들이 꽤 많았습니다. 반시간 넘게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연인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종주에 다시 나섰습니다. 아재비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했지만 암릉 길이 아니어서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불에 탄 듯 가지와 줄기가 시꺼먼 활엽수만 보면 아직도 봄이 멀었다 싶은 데 이 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섭씨 27도였다니 해발고도가 천m를 넘는다는 것이 보통 높이가 아니다 했습니다.
15시49분 아재비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아재비고개가 가까워질수록 활엽수 가지에서 돋아난 연초록 잎이 많아지고 야생화들도 그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꽃대가 외대여서 홀아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홀아비촛대와 홀아비바람꽃이 반가웠고 군락을 이룬 피나물 밭은 화사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백둔리 길이 갈리는 아재비고개에서 지맥종주를 마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상판리길로 내려섰습니다. 초반 흙길은 이내 끝났고 길이 희미한 돌 가닥 길이 나타나 긴장했는데 까다로운 그 길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해발고도가 600m대로 낮아지자 계곡에서 물이 흐리기 시작했고 나뭇잎이 많아 해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돌탑이 세워진 낮은 고개를 넘어 명지3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과 합류되는 합수점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발을 발을 닦으며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17시30분 상판리 버스종점에 도착했습니다. 합수점에서 버스종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중간에 계곡에서 다시 한 번 쉬었습니다. 지난 3월 상판리-명지3봉-명지산-익근리로 산행코스를 잡았다가 합수점에서 길을 잘 못 들어 눈 덮인 계곡을 따라 명지3봉으로 바로 오르느라 기진맥진했고 결국 명지산을 포기하고 귀목고개를 거쳐 상판리로 하산한 산행이야기를 당시 산행대장 오창환 동문이 들려주었습니다. 산악회의 발전은 이런 알바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경동동문산악회에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상판리 버스종점에서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친 후 20분가량 기다려 버스를 타고 현리로 나가 다리가 아파 다섯 달을 거른 서중원동문이 낸 저녁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서둘렀다면 해떨어지기 전에 우정고개까지 진출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리 했으면 총 산행거리가 20Km를 넘어 몇 몇 대원들에는 상당히 무리였을 것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으니 욕심내지 않고 아재비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것은 대장이 잘 결정한 것입니다. 천천히 걷는다고 지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닌데 무리해서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바꾼 것은 용화산 산행에서 사고를 당하고 나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1970년대 산행을 시작할 때 가슴 속에 새긴 산행모토가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였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나이 60이 훌쩍 지나 그 소중한 산행모토를 다시 일깨웠습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첫댓글 현출군도 참석못해 형님하고 날짜를 맞추워 볼려고 했는데 먼저 하셨네요....좋은 솔로산행 하심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