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한국경제 - 민족경제론의 시각과 대안
2008. 9.17
정태인(경제평론가)
한미 FTA와 민족경제론
FTA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좋든 싫든 대한민국 앞에 놓인 길이 하나 뿐임을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큰 틀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발전전략을 수용하고 협력하는 결단을 내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박현채 선생도, 만약 살아 계시다면 그리하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박현채 선생은 추상적 공리공담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현실을 천착했던 지식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유시민(2007). "대한민국개조론", 돌베개, 42쪽)
세월이 빠르다. 작년 초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진보세력을 비난하면서 낡은 이론의 대표격으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거론했다. 그리고 후계자 유시민은 한미 FTA를 앞에 세운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를 결합하여 대한민국을 개조하자고 초여름에 위 책을 내 놓았다. "한미 FTA 반대파의 아이콘이 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물론 박현채 선생을 최고로 존경하는 제자"(36쪽)를 슬쩍 끼워 넣은 것은 노무현의 글에 대해 '선무당 사람잡는 식의 얘리를 하지 말라'는 비판을 내가 했기 때문이리라.
언론은 신이 나서 논평을 요구했고 나는 거부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부러 논쟁을 일으키려는 얄팍한 상술도 싫었지만 단지 박현채의 현실주의에 기대서 그가 한미 FTA에 찬성할 것이라고 눙치는 유시민의 재기에 맞장구를 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박현채를 만나 보기나 했어? 박현채는 내가 더 잘 알아, 분명히 반대했을거야" 이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유시민은 포퍼식으로 말하면 반증불가능한 명제를 내 놓고 그 증명 게임을 즐기려 했던 것이다. 논쟁이 어찌 진행되든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하는 예비후보로서는 남는 장사였다.
한미 FTA를 지지하는 그의 논거는 간단하다. 70년대 한국에는 두 개의 발전 전략이 있었다.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전략' 과 박현채의 '민족경제론'(내포적 공업화에 입각한 발전전략'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승리했다. 그러므로 한미 FTA는 이 때 이미 내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두 노선의 대립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후 국가사회주의 모델과 국가자본주의 모델, 균형성장 모델과 불균형 성장 모델, 내포적 공업화와 외연적 공업화 등등1)이 그것이다. 그것은 신생독립국들이 자립경제를 목표로 선택할 수 있었던 두 개의 노선이었다. 그래서 양우진은 이 둘을 자립적 국민경제를 지향하는 쌍생아처럼 취급하기도 했다2).
1) 각각의 대립에서 전자는 전자끼리, 후자는 후자끼리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실 사회주의는 내포적 공업화를 택했지만 동시에 중공업 우선론으로 대표되는 불균형 성장론을 채용했다.
2) 여기서 논의할 여유는 없지만 그것은 곧 역사적 제약이었다. 양우진의 주장에 대해서는 13년 전 박현채선생 회갑기념논문집, "민족경제론과 한국경제"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대립이 무려 3-40년을 지나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뼛속까지 박정희를 반대하던 자가, 이제는 국민들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어떻게든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스스로 박정희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것이 못내 서글프고 오직 그 때문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말끔하게 다리미질해버리는 단순한 용감성에는 그저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말하자면, 장기의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도 '경로의존성'을 간단하게 적용한 것이다. 그렇게 불을 보듯 뻔한 이야기라면 6년 전 선거 때부터 대표 공약으로 '동북아 대통령' 대신 '한미 FTA'를 맨 앞에 내세웠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시민식의 논법을 조금 확장하면 안병직 등 뉴라이트 역사학파의 주장처럼 박정희의 성공은 일제시대에 이미 예비되었으므로 이제 민족경제론자를 포함한 모든 진보세력은 일제의 후계자임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인가.3)
3) 노무현과 유시민의 논법에는 아주 유치한 함정이 하나 있다. 한미 FTA를 반대하면 쇄국론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유시민이 벌써 잊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주의 사상을 뿌리로 하는 진보세력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국제주의를 표방한다. 다만 시장만능의 개방이 아닌 상호협력의 개방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대립하고 있는 발전전략은 한미 FTA로 정점에 이를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노선(시장국가)와 공공성 확대를 자연까지 연장하는 생태사회주의 노선(사회국가)이다. 물론 박현채의 후계자는 후자이다.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의 의도야 여러 가지로 추정되는데4) 이를 드라마로 합리화 한 것이 유시민의 국가개조론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미 FTA와 사회투자국가의 결합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형용 모순이며 두 정책기조는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5). 이명박 정부가 재현하고 있는 온전한 박정희 노선이 지난 10년 동안 도입한 그 나마의 사회투자국가적 요소, 한국사회의 공공성을 여지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이 역사의 실증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4)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큰 건 하나를 해야 했고,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할 일을 못한다고 판단한 나머지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들어줌으로써 사실상의 대연정을 하려 했으며, 전교조나 보건노조 등 공공부문 등의 '내부 개혁'을 위해 IMF 위기와 같은 '외부 쇼크'를 도입해야 했다.
5) 여러 현실적 조건 속에서 적극적으로 개방을 해야 한다면 한미 FTA 식 극단적 개방이 아닌 EU식 공동체 형성을 추진할 수 있으며(이것이야말로 동북아위원회의 과제였다) 개방이 불가피하게 불러 일으키는 변화와 조정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국내 정책이 우선해야 한다. 즉 '사회투자국가'는 절실한 중단기 과제이며 개방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뜬금없이 튀어 나온 한미 FTA가 가치를 잡탕으로 만들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뒤바꿔 놓았을 뿐이다.
나는 유시민이 박현채를 진정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박현채를 현실주의 지식인이라고 전제한 것도 실은 박현채의 진면모를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6).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박현채가 어떤 정책에 대해 판단할 때 내세운 제1의 기준은 그것이 "민중의 삶의 요구에 복무하느냐, 아닌가'였다. 즉 민중의 삶의 질 향상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그것은 곧 진보의 판단 기준이다. 나는 유시민이, 한미 FTA가 6% 이상의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고 따라서 거의 자동적으로 양극화 문제도 해결한다는 참여정부의 강변을 믿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는 반영구적으로 시장만능의 세계를 만들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극단으로 밀고 가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그래서 사회투자국가도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6) 박현채의 현실주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92년 대선 전까지, 특히 초기에 김대중의 경제이론을 뒷받침했다는 것도 그런 면모 중 하나이다. 그는 1990년대에도 사회민주주의라는 목표가 한국사회에서 이룰 수 없는 과한 목표라고 했고, 심지어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학술단체협의회에 들어가는 것도 반대했다. 여전히 남아 있던 반공주의로 인한 조직의 문제를 우려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는 노선 상의 좌편향도 끊임없이 경계했다.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얘기는 유시민보다는 그럴듯 할지는 몰라도 어떠한 의미의 증명도 될 수 없다. 박현채 전집을 천착한 문헌학적 고증이나 역사적 사실에 의한 증명, 모두 내 능력과 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여기서는 60-80년대의 역사에 제약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때 그 때 실천 상의 요구에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즉각 써낸 박현채 민족경제론의 한마디, 한마디를 따르지는 않는다. '박현채라면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라는 내 경험과 느낌, 더 정확히 얘기해서 박현채를 따르고 있(다고 믿)는 정태인의 생각을 아이디어 수준에서 정리할 뿐이다7). 당연히 박현채의 사상은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7) 박현채의 학문적 후계는 아무래도 한국사회과학연구소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80년대말 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연구소와 한 몸이었다. 2000년대부터는 내 스스로 통상적인 학자의 길을 걷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상당히 소원한 관계에 이르렀고 지금도 활발하게 학문활동을 하고 있는 한사연 그룹의 견해에 지엽말단까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근에 발간된 "한반도 경제론"이 그러하다. 민족경제론이 동아시아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데 물론 동의하지만(80년대말부터의 내 주장이기도 하다) 한미 FTA에 대한 미온적 태도라든가, 나아가서 심지어 남북 FTA를 주장하는 등 FTA에 관한 피상적 이해까지 동조할 수는 없다. 또 기관지격인 "동향과 전망"에 실린 글들도 다른 어떤 학술 그룹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고 정책적 함의를 풍부하게 담고 있지만 가끔 제출되는 발전전략에 관한 글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컨대 별 근거없는 '중도주의'를 내세운다든가 기든스류의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그것은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와 거의 일치한다). 굳이 한마디로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그룹은 정책현실에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현재의 관료나 정부기구보다 더 현실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내 놓고 있지만 정책의 환경과 실현 여부를 결정하는 실천으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갔다. 말하자면 현실을 이루는 중요한 절반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책에 관한 고투도 현실과 유리된, 학자들의 소일거리가 될 수도 있다.
민족경제론의 확장(1) - 생명, "민중의 생활 상의 요구"의 확장
아무도 모른다. 5월 2일 촛불을 들고 나선 그 소녀들도 정확히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그 아이들이 거리에 섰고 석달 가까이 촛불의 파도는 이어지고 있다. 그 기세에 놀란 이명박 정권은 (적어도 겉으로는) 대운하를 포기했고, 물,개스,전기의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그러나 '공기업 선진화'는 하겠다고 한다), 의료민영화는 괴담일 뿐이므로 역시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혹시 이 소녀들이 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27-28세라는 걸 알았을까?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고려한다면 사망자들이 쇠고기를 먹은 시점은 정확히 이 아이들의 나이와 겹친다. 아직도 그 날 아이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이 기억난다. "나이 15세 *** 난 살고 싶어요. 애도 낳고 싶어요"
광우병은 80년대 대처 정권 시절에 만든 새로운 사료정책에서 비롯됐다. 육골분 사료(MBM)이 그 원흉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소가 소를 먹는 것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반생태적인 먹을 거리 사슬은 완전히 새로운 병을 낳았고 그것이 인간의 먹을거리에까지 침범하면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했다.
어디 이 뿐이랴. 신자유주의는 세상을 모두 바꿔버렸다.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 워싱턴 컨세서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금융화였다. 모든 것이 금융상품이 되었다. 기업을 주식이라는 의사상품으로 거래하는 것을 모델로 에너지도, 식량도 모두 금융상품, 즉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자유주의의 모국이 위기에 빠지자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에 모여 있던 돈들은 일단 금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곤 곧바로 석유로 향했고 또 식량으로 몰려 갔다.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한 전후 경제성장은 이제 막을 내렸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러시아와 같은 어마어마한 인구의 저개발국이 한국형 경제성장을 추구하자, 세계경제는 완전히 모습을 바꾸었다. 값싼 노동력이 대규모로 공급되는 한편, 세계의 에너지는 수요초과에 시달렸다. 급기야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식량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투기의 이윤을 넘어서는 투자처를 발견할 수 없는 과잉 유동성, 세계를 하루에 한바퀴 이상 돌아다니는 신속무비의 금융자본의 움직임이 겹쳐져서 현재의 에너지-식량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촛불은 쇠고기 우려 광우병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위험 때문에 켜지기 시작했지만 남녀노소와 계층을 불문하고 의제가 확대된 배경에는 이렇게 거대한 세계적 흐름이 있었다. 촛불을 나이어린 소녀들이 들고 나온 것은 이런 흐름을 몸으로 예민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민족경제론은 경제적 요구, 즉 60-70년대 민중의 일차적 생활 상의 요구와 함께, 또 그것을 넘어서 온전한 생명에 대한 요구를 진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우선적으로 민중의 사회적 삶을 파괴하고(사회 양극화의 극단적 진행), 초국적 기업의 요구에 따라 생물학적 삶인 건강을 위협하고(광우병 쇠고기나 LMO, 의료민영화, 제약부문 지적 재산권의 강화),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의 생명을 유린하기 때문(대운하, 원자력 에너지 의존, 각종 건설사업에 따른 자연파괴)에 이제 각 차원의 생명을 민족경제론의 근본적 가치로 삼는 것은 필연이다8).
8) 생명이라는 생활 상의 원초적 요구는 신자유주의의 통상원리와 정면으로 맞부딪힌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환경과 건강 정책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최우선의 원리로 삼는다. 문제는 이 원칙이 미국 고유의 통상 논리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부정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쇠고기 수입의 예를 들자면 미국은 한국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려면 그 과학적 증거를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주장은 '필요불가결 증명'(necessity test=미국 통상의 원리)의 응용이다. 즉 30개월을 기준으로 수입규제를 하려면 그 규제가 필요불가결함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사전예방의 원칙'에 대비해서 '사전증명의 원칙'이라고 부를 만하다. 쉽게 말해서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아직 확증할 수는 없지만 생명이나 자연에 치명적일 위험이 존재한다면 우선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인 반면, 사전증명의 원칙은 그 위험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즉 생명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기업 이윤을 먼저 보호할 것인가의 대립인 것이다.
민족경제론의 확장(2) - 국내 산업연관과 중소기업론("자립적 재생산 구조")의 재해석9)
대처-레이건 정권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호는 이제 침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파산하는 배에 올라타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한미 FTA로 본격화한 이 흐름은 이명박 정부의 자발적 민영화/개방, 그리고 수출 지향 환율정책, 규제완화를 통한 건설 경기 부양으로 극점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6-70년대의 박정희식 성장전략인 수출지상주의와 건설붐을 경기대책으로, 그리고 전형적 신자유주의 정책인 감세,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를 구조적 대책으로 결합한다10). 이것은 후술하듯 최악의 조합이다.
이명박정부의 이런 구조 정책은 2000년대 8년간 부시정부의 정책과 정확히 일치하며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 워싱턴 컨센서스이기도 하다. 과연 이런 정책기조가 경제적 성공을 가져올 것인가. 지금 진행 중인 금융위기가 바로 그 답이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이름 붙인 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아닌 "서브 프라임 체제의 위기"(subpirme system crisis)로 불려 마땅한 현재의 금융위기는 80년대 이래 금융자유화를 축으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근본적 위기로 판명날 것이다. 즉 그것은 세계정부에 준하는 국제적 규제를 만들지 않고서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더 큰 규모로 재현될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국내 정책은 도대체 뭐가 있을까? 월스트리트와 재무성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적극 추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미국의 민중에게도 빚에 기초한 소비라는 마약으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쌍둥이 적자라는 거시 불균형, 사회공공성의 파괴와 양극화라는 대내 불균형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만 등 세계의 석학들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가운데 다만 한마디 처방만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최신의 문제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처방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9) 업 분야는 현재의 국제분업구조 속에서 고려해야 하는데, 이 글의 성격상 생략한다. 단 한미 FTA는 참여정부나 이명박정부가 추구하는 산업전략 상으로도 모순이라는 점만 지적해 둔다. 자유무역의 논리를 따른다면 미국 서비스업 특화, 한국 제조업 특화가 일어나야 한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첨단부문의 미국 특화, 범용 부문의 한국 특화가 자연스럽다. 특히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일반기계나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양국의 경쟁력 격차가 크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결과는 한국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와 정반대다. 제조업에서 중국이 쫓아 오기 때문에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우리 내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쇼크까지 필요하다는 것이 저간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나라가 범용 제조업으로 특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바로 코 밑까지 쫓아온 분야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숙원인 동시에 중국을 결정적으로 따돌릴 수 있는 분야인 기계 및 부품소재 산업은 한미 FTA로 오히려 구조조정 당하게 된 것이다.
10) 그리고 한미 FTA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경쟁적 자유화'라는 미국의 새로운 FTA 전략을 만든 로버트 죌릭(전 USTR 대표, 현 세계은행 총재)은 미국 FTA의 목적이 상대 국가의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즉 워싱턴 컨센서스-한미 FTA-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는 삼위일체의 관계인 것이다. 한미 FTA가 비준되면 폐기하지 않는 한, 사실상 한국의 헌법 위에 서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시장만능의 정책기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투자를 늘리는 방법 - 중소기업론의 중요성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 법인세 등을 낮추고 ‘비지니스 프렌들리’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종부세 인하를 잊을만 하면 제기하는 등 부자들의 소비를 부추겨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서민경제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물이 넘쳐야 아래쪽도 적신다는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요, 강물이 불어나면 모든 배가 솟아오른다는 박정희시대의 믿음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현재 1000대기업의 사내유보가 364조원이다. 법인세를 5%포인트 인하해서 8조원 가량 보태주면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날까?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를 고려해 보면, 특히 대기업들의 전체 투자는 여전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작년 국내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가 267억 달러(신고기준)를 넘어섰으니 총고정자본형성의 10% 정도는 해외로 빠져 나간 셈이다. 이 수치를 줄이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내의 제조업 수익성을 높이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이 수치를 어떻게 하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다. 문제는 사내유보이다. 금융화의 환경에서 이 돈은 주식투자나 부동산투자, 즉 고용을 늘리는 제조업보다 훨씬 단기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된다. 수도권 규제완화, 수도권 광역 클러스터 육성, 금산분리 완화, 한반도 대운하는 어마어마한 현금이 곧 부동산과 건설에 투입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부자들의 수입증가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2006년 개인의 대외거래수지 적자규모가 180억 달러이다. 즉 GDP의 2%에 가까운 돈이 해외 여행경비, 유행연수비, 조기유학 등을 위한 증여성 송금, 해외이주비로 쓰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외국에서 수입한 사치재를 포함하면 이 수치는 훨씬 더 불어날 것이다. 강부자 내각이나 국회의원들의 대외거래수지와 소비양태를 조사해 보면 더 적나라하게 이들 수치의 실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대기업과 부자의 부를 늘리는 감세 및 규제완화정책은 국내의 일자리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많은 부분이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물이 넘쳐도 외부로 빠져 나가버리고 강물이 불었는데 오히려 수많은 배들이 침몰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답은 확실하다. 투자와 소비를 늘리고 위해선 중소기업의 수익과 서민들의 소비를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11)
더욱이 과거에
비교해서 수출의 고용흡수력은 형편없이 낮아졌다11). 이것은 뒤에서 보듯 중국 쇼크 등 세계화의 영향, 그리고 대기업의 근시안적 하청기업 수탈로 국내 산업연관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대외의존도가 70%가 넘으니 더욱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이다12).
11) 한은의 계산에 따르면 90년대 10억원의 수출이 20명의 고용을 증가시킨 반면 이제는 10명에 불과하다.
12) 한은의 계산에 따르면 90년대 10억원의 수출이 20명의 고용을 증가시킨 반면 이제는 10명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투자와 영세자영업을 살리는 방법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고 기업들에게 ‘핫라인’을 개설한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자 마자 중소기업인들이 데모를 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일자리의 90%를 담당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야 일자리도 증가한다.
중소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것은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데모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국제적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납품 단가에 반영해 주기는 커녕, 해외공장이전 위협 등을 무기로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마당에 신규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불공정거래를 단속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노동자의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한 그냥 현상유지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관건이다.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복지소득연대), 고용보험기금 지원에 의한 최저임금 인상(임금소득연대), 연 20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와 일자리 나누기(노동시간-일자리연대)는 중소기업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생산성 향상에 획기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재교육이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98%에 이르는 50인 이하 기업은 사회연대전략의 도움을 받아 노동자들의 삶을 안정시키더라도 재교육 등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어렵다. 지역별, 산업별 재교육 프로그램에 지역대학이 참여하고 지역공동체가 나서야 한다. 또한 지역재투자법과 마이크로크레딧에 의해 형성된 지역의 서민금융이 자금 지원과 컨설팅의 핵심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중소기업의 클러스터화와 재교육에의해서 네트워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산업공동화 문제와 일자리 문제, 거시 투자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다13).
매년 50만개가 창업하고 40만개가 폐업하는 분야, 26.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2003년부터는 임금노동자보다 실질소득이 낮아진 분야가 자영업이다.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영업의 활로 역시 중대형 마트 규제부터 찾아야 한다. 유럽이나 일본은 물론 월스트리트에서도 월마트를 규제한다. 월스트리트-월마트형 자본주의는 소비자혜택을 늘린다고 하지만 중소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 임시 비정규직 노동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일자리와 소비를 축소시켜서 결국 과소소비-과소투자 사회를 만드는 주범이다14).
13) 대외교역액(수출+수입)을 GDP로 나눈 대외의존도는 절대 수치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GDP의 순위와 비슷하게 세계 10위 정도이다. 그러나 상위의 나라들은 대부분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 인구 1000만명 미만의 도시국가와 같은 소규모 경제이다. 이들 나라는 인구 때문에 애초에 내수의 확대가 제한되어 있다. 인구 5000만명 정도이면서 대외의존도가 70%가 넘는 나라는 없다. 이것은 우리 경제가 얼마나 기형적인가를 보여준다. 상식적인 경제학자라면 내수를 확대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해야 할텐데 거꾸로 더 많은 개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집단최면, 또는 신앙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4) 이것은 민족경제론의 구성에서 클러스터 정책이 중요한 정책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클러스터 정책은 또한 수출지향형 성장전략의 다음 단계로 제시된 외국인직접투자유치 성장전략(FDI-led development)에 관한 비판적 수용을 포함한다. 이 점은 과거 민족경제론이 외국자본을 매판자본이라고 규정하여 거의 전적으로 배척한 것의 수정을 요구하는데 여기서는 자세한 논의를 생략한다. 요는 외국인 자본을 각종 혜택을 주어 유치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 내에 형성된 클러스터의 네트워크 외부성에 따라 자발적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특히 취약한 기계 및 화학산업, 그리고 부품소재산업의 클러스터에서 외국인 기업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족경제론의 확장(3) - 국내 소비와 공공성의 연관(민중의 생활 상의 요구의 확장)
1990년대 중반 이래 국내 소비 증가율은 답보상태이다. 그 이유는 시장만능의 정책이 서민들의 삶을 규정하는 의교주(醫敎住)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교육시장화, 공급 위주의 주택 정책이 이런 경향을 극단으로 밀고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5분위 소득통계에서 하위 1,2,3분위(즉 서민)의 소비가 줄어들거나 아주 미약하게 증가하는 이유는 애초에 가처분소득 증가가 거북이 걸음이기도 했지만 그 소득도 마음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어렵게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서 집을 구입한 사람이라면 대출이자 갚는 데 허덕일 것이고 전세로 사는 사람은 전세값 인상에 전전긍긍해야 한다. 교육물가는 일반 물가의 두세배 올랐고 사교육비는 연 20조원을 넘나든다. 이 둘만으로도 소비를 위한 여윳돈은 커녕 갓난애를 가진 주부들도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아직 건강보험은 건재하지만 곧 민영보험이 확대되고, 병원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의료비는 가계 파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점점 더 서민들의 소비는 축소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믿을 수만 있다면 지금 집을 파는 것이 유리하다. 당장 대출을 다 갚고 열심히 일만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집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야 소비도 증가할 수 있다. 공급이 아무리 증가해도 한가구가 서너채, 심지어 수십, 수백채를 소유한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보유세(현재의 종부세)를 대폭강화해야 한다(앞으로 4년간 보유세를 1%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현실적인데 만일 현재의 지대를 전부 흡수할 수 있을 정도까지 토지보유세가 증가한다면 땅값이 0가 되며 이 수준이 상한선이다). 1가구 1주택 원칙을 법제화하고 영구 채권으로 과다 보유분 택지를 사들인다면 훨씬 더 빨리 부동산 가격은 안정될 것이다. 보유세 수입으로 공공주택을 늘려야 한다. 이런 원칙 하에서 비로소 계층별 세부정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극심한 학력사회에서, 더구나 1-2점으로 당락을 가르는 입시제도로는 사교육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학부모들은 자신들 능력 이상으로 사교육에 투자를 한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성격을 가졌는데 결국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 진보의 대안은 국공립대학 통폐합부터 시작하는 사실상 대학입시철폐(자격고사)이며, 대학에서 아이들이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수많은 과목과 전문적인 수준을 사교육이 대신할 수는 없다. 거의 100% 공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의 학력이 세계수준인 핀란드나 노르웨이가 우리의 모델이다15). 과도기적으로 대학의 등록금을 법인세 증세로 충당하고 사교육에 중과세를 하는 동시에 학원비 상한선을 두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교육에 관한 한 적어도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의료비문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해결된다. 아이들의 진료, 암 등 가계의 파산을 불러오는 중병부터 보장성을 확대해서 전체적으로 9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진보신당의 중간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가 아니라 공공 의료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예컨대 맹장수술을 할 수 있는 지역거점병원을 군단위마다 만들어야 한다. 공공의료의 효율성은 이미 증명돼 있다. 이명박정부가 추구하는 미국식 의료제도의 비효율성이 그 반증이다.
우리 삶의 필수재의 공공성을 강화할 때 비로소 서민들은 일반 재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에 대한 효율적 투자가 사회의 생산성을 가장 확실하게 높이는 수단이라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증명됐다. 그런 의미에서 의교주(醫敎住)의 공공성 강화는 사람에 대한 가장 중요한 투자이기도 하다. 바로 현재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이다.
특히 1,2분위의 서민에게는 공공요금도 큰 부담이다. 이명박 정부는 철도, 전기, 개스, 수도, 우편등 네트워크산업의 민영화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섰지만 이 역시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특히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감세로 인해 재정적자가 심각해지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엄청난 자산을 가진 공기업의 민영화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네트워크 산업 민영화는 독점으로 인한 전반적인 가격 상승, 교차보조금 폐지에 의한 지역 서비스의 중단 등 부작용을 낳는다. 이 점은 이미 선진국에서도 반복적으로 증명됐다. 공기업의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공기업 지배구조에 노동자와 소비자가 참여하고 사회공공회계를 도입하는 것이 진보의 대안이다.
요컨대 대기업과 부자들의 손에 쌓인채 경제의 거품을 늘리는 쪽으로만 사용되는 돈을 공교육, 공공의료, 공공주거, 공공서비스로 돌릴 때 비로소 투자와 소비, 그리고 장기 생산성 향상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16)
한미 FTA는 이런 전략에도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미 FTA는 한번 민영화되거나 규제가 완화된 분야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라도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서비스 분야 현재 유보에 적용되는 래칫 조항(역진불가능 조항)이나 투자자국가제소권은 재국유화라든가 공적 규제의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17)
15) 지역 풀뿌리 공동체의 환경 속에서 자영업은 되살아나야 한다. 지역 특성화와 주변 환경 개선, 그리고 안전한 먹을거리 운동 등 공동체의 네트워크 속에서 자영업은 비로소 안정을 찾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절을 바꿔서 다시 기술할 것이다.
16) 매년 20조원을 쏟아 붓는 사교육 덕택인지 한국의 초중고생들은 국제학력비교(PISA)에서 매년 4위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에만 가면 55개 비교 대상국가 중 거의 꼴찌로 급전직하한다. 짐작컨대 초중고 12년간의 살인적 주입식 교육이 당연히 상상력과 창조력을 고갈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핀란드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매년 1등이다. 극단적인 평준화와 개별교육을 특징으로 하는 핀란드는 매년 GDP의 7%를 교육에 지출한다. 한국이 이 모델을 따른다면 GDP의 3%를 추가로 공교육에 투자해야 하니 대략 30조원 가량 더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매년 사교육비 20조원, 대학등록금 10조원을 공교육에 투자한다면 얼추 어슷비슷해진다. 과연 자기 아이를 위한 지출을 세금으로 내서 공교육에 투자할 수 있을까? 아이들도 행복하게 만들고, 이른바 국가경쟁력까지 최고로 키울 수 있는 이 정책이 채택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죄수의 딜레마, 또는 집단행동의 문제 때문이다.
17) 이러한 정책은 자산경제로 전환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산재분배(asset redistribution) 이론에 기초한다. 케인즈주의적 소득재분배를 넘어선 자산재분배 이론의 정립이야말로 현 단계 거시경제학의 핵심 내용이 될 것이다. 국민의 부의 압도적 부분을 구성하는 부동산, 교육등이 시장에 맡겨질 때 고급시장에 돈과 인력 등 자원이 몰릴 수 밖에 없다. 이 사적 영역을 제어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원리가 곧 자산재분배의 이론이다.
민족경제론의 확장 (4) - 민족적 생활양식의 재해석과 풀뿌리 지역공동체의 복원18)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농업 정책에 관한 구상으로부터 출발했다. 물론 이것은 60년대 한국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거의 모든 사회적 비용을 농민이 부담했기 때문이다. 박현채는 협업농과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농업이 GDP의 3%를 차지하는 현재에 이르러 이 주장은 새로운 차원에서 귀기울일 만하다. 한마디로 지역의 풀뿌리 공동체야말로 경제성장과 복지, 일거리, 미래산업의 요람이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료시설, 요양시설, 공공도서관 등 지역 인프라의 구축은, 동시에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세심한 돌봄노동을 필요로 한다. 공공의료의 30%에 달하는 지역거점 공공의료시설, 공공보육시설, 공공도서관 및 문화센터, 재래시장 공영개발, 소규모 도심지 공원 등의 설립과 운영을 주민 스스로 해 나가는 것은 복지-교육-문화 서비스의 수급을 맞추는 최선의 방법이다.
풀뿌리 공동체는 또한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근거지이다. 2020년까지 에너지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한 20% 감축하고 에너지 공급을 생태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 시스템의 개혁, 환경규제의 강화로 재생에너지산업과 친환경산업을 미래의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이다.
농촌의 풀뿌리 공동체는 안전한 먹을 거리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1차산업으로서의 농업 없애기에 맞서 대농, 기계농, 화학농 육성을 폐기하고 2020년까지 가족농의 협업에 의해 유기농업 비중을 40%까지 늘릴 것이다. 농업생산, 농협과 생협에 의한 유통 개혁, 공공급식개혁으로 풀뿌리 공동체부터 먹을거리 지역체계(로컬푸드시스템)를 구축한다. 생태마을은 도시민의 농업 체험과 지역 역사문화유적, 지역 자연환경의 보존을 통해서 ‘정겨운 관광’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호텔, 골프장, 카지노라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파괴적 관광과는 정반대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풀뿌리 공동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풀뿌리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social economy)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지역 주민이다. 농민과 노동자, 서민금융 대표, 지역 상인, 지역의 기업인 등이 지역공동체의 지배구조를 구성하여, 건설회사, 지역언론, 지역관료로 구성된 토호연합을 대체해야 한다. 지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지역의 여러 경제활동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여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복지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18)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타결 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서비스 분야가 별로 개방되지 않은 데 대해서 아쉬움을 거듭 표했다. 정부 발표로 보면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 그리고 철도, 수도, 전기, 개스 등 네트워크 산업은 ‘포괄적으로’ 유보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 미국기업이 이익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흥미를 보이지 않았을 것라는 점, 둘째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미진한 부분은 우리 스스로 개방하겠다”) 한국 정부가 ‘자발적 개방’(unilateral opening), 즉 민영화 및 규제완화를 시행할 것이므로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민영화 정책은 바로 이 ‘자발적 개방’이다. 예컨대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미국의 병원이나 대학교는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에 앉아서도 돈 잘 버는데 힘들여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해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법인화, 이윤송금, 한국 환자 진료, 건강보험 환자 제외 등 각종 특혜를 제시했다. 이 시범 사업은 언젠가 전국으로 확대할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인천은 곧 한국의 미래이다. 결국 한미 FTA는 한국 재경부의 계획을 시행할 훌륭한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될 것이다. 마치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가 IMF 요구 이상으로 민영화, 규제완화를 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비스 분야의 양극화이며, 불행하게도 서민들은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로부터도 배제될 것이다. 협정문 검토 결과 정부는 국내 원거리 택배의 개방을 약속한 것으로 보이며(미국 자문위원회는 우편 부문 민영화를 약속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상하수도의 경우 ‘물산업 육성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자발적 민영화=개방을 이미 시도하고 있다.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그 특성상 적어도 지역독점과 교차보조의 폐지를 초래한다. 이는 십중팔구 교차보조 폐지로 인한 기존 서비스의 중단 (단수, 단전, 기존 철로의 폐기 등), 독점으로 인한 서비스 가격의 급등, 장기 투자기피로 인한 서비스 질의 저하를 가져온다.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를 약속한 헌법의 사회권이 사실상 폐기되는 것이다.
민족경제론의 확장 (5) - 국제규제시스템의 도입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는 금융세계화가 얼마나 직접적이고 심각하게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다. 민족경제론이 탄생하고 발전한 시대에 대외문제는 주로 종속성의 문제로 다뤄졌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의 급진전은 세계 각국의 경제변동성(vulnerability)을 가파르게 증가시켰다. 똑같은 평균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경제변수가 급변한다면 대응 능력이 적을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훨씬 더 심각해진다.
변동환율제의 전면적 도입, 자본시장 완전 자유화, 파생상품등 금융시장의 개방 등으로 한국경제는 특히 심한 변동성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등 대표적 자산시장의 거품을 증가시킨다면 미증유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미 FTA 등을 통해 선진제도를 도입하면 해결된다고 하지만 종주국인 미국 또한 그다지 나을 것이 없다. 80년대 이후 S&L(저축대부조합) 사건, LTCM(Long Term Capital Management)사건, 엔론스캔들, 현재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연이어서 자산시장과 연관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모두는 잘못된 인센티브의 부여, 위험 관리 제도의 부실, 이해상충의 해결을 위한 규제등 제도적 오류 때문이다. 즉 규제만 완화하면 시장이 모두 해결할 것이라는 시장만능론자들의 예언과는 정반대로 적절한 규제 없는 금융화, 세계화는 곧 세계적 금융위기를 가져 오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방의 조절과 적절한 규제의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거의 완전한 개방과 미국식 자유화를 정책기조로 삼고, 동시에 그 기조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한미 FTA부터 폐기해야 한다.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를 금지하고, 순환출자를 통한 현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은 개방과 규제완화는 한국사회와 경제를 언제든지 다시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 나라 홀로 모든 규제를 도입할 수는 없다. 이른바 국가 차원의 집단행동의 원리가 작동한다. 따라서 현재 가능한 것은 국제적 움직임이며 스티글리츠가 제안한대로, 일방적으로 월트스리트와 미 재무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IMF 및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를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는 이러한 움직임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80년대의 플라자 협정과 같이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에 조정의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미봉한다면 금융위기는 더 큰 차원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토빈세와 외화가변유치제 등의 제도 등 위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고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치앙마이 협정은 AMF로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서 북한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후진국에 더 유리한 새로운 경제연대협정을 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민족경제론의 확장 (6) - '자연경제'의 재해석과 동아시아공동체19), 그리고 외교안보적 측면
민족경제론은 한반도 내의 재생산구조를 민족이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것은 냉전 시대에 그 이상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원론적으로 국제연대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은 그야말로 이상론일 따름이었다. 민족경제론이 국제 측면에서가질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한계이다. 또한 민족경제론이 자립적 재생산구조를 한반도, 현실적으로 남한에 한정했던 근거는 자연경제(natural economy)론이었다. 그러나 원래의 자연경제 개념에 기댄다면 이미 '재생산구조'의 범위는 한반도를 넘어서서 한중일의 동북아, 나아가서 동남아를 포함한 동아시아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한미 FTA와 관련하여 두가지 직접적 질문과 관련이 있다. 첫째로 중국과 일본이 먼저 맺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즉자적 질문(노무현의 ‘전가의 보도’), 그리고 둘째로 미국을 도외시 하는 생존 전략이 가능한가라는, 조금 더 장기적인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쓸 데 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과의 FTA는 미국도 원하지 않는다. 현재의 제조업 관세를 없애면 미국의 범용 부문, 특히 섬유, 기계, 전자(장차 자동차도) 중 중저가 부문은 완전히 구축되고 농산물에서의 이익도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80년대부터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해서 역내 생산체계가 완성됐고 나프타 이후 멕시코와 미국에 대공장을 이전시킨 일본의 경우 FTA의 이익은 별로 없다. 반면 한국보다도 경쟁력이 없는 일본 농업은 초토화되기 십상이다. 제조업의 이익이 농업의 손해를 만회할 수 없다. 그래서 2005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가 미일 FTA는 시기상조라는 선언을 했고 아베 총리가 그 기조를 바꿀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은 사실 외교안보적 측면이 포함된 역내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FTA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두 측면을 들여다 봐야 한다. 첫째는 모든 FTA는 산업구조조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것이 지역 내 역학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첫 번째가 다분히 경제적 측면이라면 두 번째는 외교안보적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은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는 두 번째 측면을 주로 들여다 보자. 2월에 발표된 아미티지 리포트가 명확하게 보여 줬듯이 한미 FTA는 미일동맹의 보완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FTA의 속성 중 하나인 MFN의 존재로 인해 한국은 이제 역내 국가와도 한미 FTA에 버금가는 FTA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은 한국을 지렛대로 경쟁적 자유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다른 나라가 뒤이어 미국과 FTA를 맺는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도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s) 전략을 관철시키게 된다.20) 그렇게 된다면 역내의 국가가 전부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원래 미국의 전략인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는 사명을 달성하게 된다.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미국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으로선 최선의 그림이다.
19) 이론적으로는 근접외부성, 네트워크 외부성, 사회적 경제론(social economy) 등을 근거로 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지역금융(지역재투자법과 마이크로 크레딧, 농협 금융부문과 우체국 예금의 통합), 공동체 자산형성프로그램에 의한 지역기금의 형성, 이에 기초한 사회서비스와 사회적 기업, 지역재교육 프로그램, 재생에너지산업 지원 정책, 농촌 문화공동체의 형성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20) 민족경제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통일과정의 문제와 통일 후 경제상에 관해서는 능력과 지면 관계 상 생략한다. 단 첫째로, 이제 남북통일의 문제는 현재의 6자회담이 실마리를 보여 주듯 동아시아의 집단 안보, 나아가서 동아시아 평화체제 속에서 고려해야 하며 둘째로, 경제협력은 앞에서 논의한 풀뿌리 지역공동체 차원의 협력과 제2층위인 전국 네트워크의 형성 차원부터 접근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이제 동아시아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꿈은 사라진다. 적어도 아시아가 독자의 사회경제체제를 형성하여 미국 및 EU와 3자 정립함으로써 최대의 이익과 동시에 세계의 안정을 도모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한미 FTA는 동아시아의 자체 지역주의를 무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대안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방법에 FTA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FTA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 한다면 역내 국가가 모두 모여 미래의 모습에 최소한의 합의를 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역내의 각종 격차를 줄이는 다자간 FTA 형태가 유일하다. EU모델이 이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형 FTA와 같이 대단히 세밀하게 항목이 나뉘어져 있는 형식으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지극히 어렵다. 마치 미지수에 비해 식의 개수가 부족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미국과 같은 강력한 힘이 이를 강요한다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연전에 무산된 FTAA가 그 예이다.
그렇다면 무슨 길이 있을까? EU의 경험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역내의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사업을 다자가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신뢰를 쌓고 여기에 기초해서 점진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길이다. 동아시아라면 역내 철도, 역내 에너지망, 역내 IT 망, 친환경인프라, 나아가 IT 표준 등을 공동으로 건설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내 국가간 경제력 격차, 사회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FTA 방식은 약한 나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물론 공동의 위기라든가(외환위기 때 맺은 치앙마이 협정이 그 예이다), 아니면 커다란 공동의 이익이 생길 때(북한 연안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든가^^) 합의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예외적이라면, 공공재일 수 밖에 없는 네트워크 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간의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아시아형 FTA 논의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이 새로운 FTA 유형은 철저히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며 동시에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내용이 확보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물론 한미 FTA는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한국경제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공동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무산시킨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뿐 아니라 아시아의 대중을 위해서도 한미 FTA는 중지해야 한다. 현 정권은 역사에서 한국 민중의 삶을 파괴한 주범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장 서 가로막은 무지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내 인프라의 건설, 역내 미개발 지구의 공동 개발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또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될 일은 너무나 많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경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유명무실하지 않고 실제로 굴러갈 다자간 체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야말로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이 체제가 성립될 최소 조건은 간단하다. 이 체제를 받아 들여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중국 또한 미국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국내 사정 때문에 극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고 또 어떤 계기에 의해 좌절될 수도 있지만 최근 6자 회담이 결국 ‘북핵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과정도 이러한 관점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아세안을 시작으로 동북아 3국,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그리고 인도를 이으려 하고 있다. 미국은 에이펙(APEC)을 통해 아시아 중심의 공동체를 소극적으로 견제하고 다자간 협의를 ASEAN+3(한중일)+3(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인도)로 확대하는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일본에게 이러한 다자간 틀은 다분히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양자간 FTA가 적극적 아시아 점령 전략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견제하는 다자간 틀을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양국의 패권을 모두 원하지 않는 나라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위로부터 러시아, 아세안, 인도가 바로 그들이고 상대적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는 한국이 이들과 할 수 있는 협력사업은 대단히 많다. 즉 아시아의 종축을 먼저 형성하고 강대국들과는 아시아의 인프라망을 건설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중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FTA를 설계하여 전체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FTA를 중지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시작하지 않아야 했을 일을 시작했고 또 타결까지 됐다. 그래도 중단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잠긴 비용이 아까워서 잘못된 결정을 고집하면 더 큰 손해를 볼 뿐이라는 것이 경제학이 가르치는 바이다.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한미 FTA를 한일 FTA처럼 중단시키면 된다.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상정하지 않거나 국회에서 무기한 심의를 보류하여 사실상 중단시키는 방안, 그리고 비준동의안을 부결시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 일본, 중국, EU, 캐나다와 동시에 FTA를 추진하는 상태가 된다.
한국이 그리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 나라는 한국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미국과 먼저 맺으면 MFN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FTA도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되므로 미국은 원래 계획대로 맨 마지막으로 미뤄야 한다. 현 정부의 원래 계획, 즉 한일 FTA를 높은 수준으로 맺고 이후 중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도 포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전략으로 공동체 형성 보다는 대 중국 압박 전략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중-일 FTA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각국의 격차, 각국 내 지역별, 계층별 격차를 줄이고, 사회문화적 협력을 증대하며 역내 개발 및 표준화를 명시하는 아시아형 FTA(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언어의 혼란을 피하는 길이겠지만 현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를 정립하는 사전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미국의 압박이 거세져서 공동체 형성에 절대적인 방해가 된다면, 한중일이 동시에 미국이나 EU와 협상을 한다면 현재와 같은 독소조항은 대부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한중일 FTA가 역내 국가간 격차를 줄이고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진보학계부터 시작해서 국가 간에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