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에도 연등 안 단다.
봉암사 2차 결사(한국 불교의 본래 모습과 수행 전통 회복을 위한 정화 운동)를
주도했던 선승(禪僧)인 고우 스님이 경북 문경 봉암사 동방장실에서 노환으로 입적했다.
세수 84세, 법납 60세.
고인은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군 복무를 하다가 폐결핵에 걸렸다.
제대 후에 방황하다가 한 생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26살에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불교 공부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폐결핵약도 버렸는데 병이 저절로 나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대의 강백인 고봉 스님과 관응 스님 등으로부터 불교의 뼈대를 배웠다.
고우 스님이 각화사 태백선원장을 맡자
전국의 수좌들 사이에서 태백선원은 가장 인기있는 선방 중의 하나가 됐다. [중앙포토]
이후 고인은 당대의 선지식 향곡 스님이 주석한 묘관음사 길상선원을 찾아가 참선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제방선원을 찾아다니며 평생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1980년 신군부가 정화를 명분으로 불교 지도부를 모두 축출했다.
주요 사찰의 주지도 다 쫓겨 났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좌회의 결의로 고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 공백이 정비되자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고우 스님은 각화사 태백선원장,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조계종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생전에 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2리의 금봉암에서
고우 스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부처님 오신날이 코앞이었지만, 금봉암에는 연등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고인은 “형식을 통해 본질로 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바로 본질로 들라’고 말하는 쪽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금봉암에는 제사도, 기도 불공도, 연등 접수도 받지 않고 있었다.
고우 스님은 금봉암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구별 없이 대했다.
가까이서, 멀리서 오는 이들에게 선뜻 차를 건넸다.
그리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문이 따로 있나. 이게 법문이지.”
고우 스님은 상좌의 시봉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다.
고우 스님은 "석가모니도 깨닫기 전에는 고뇌하는 인간이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라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고우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진짜 부처님이 오신 날은 육신이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깨달은 날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결코 부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도 깨닫기 전에는 고뇌하는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깨달은 후에는 달라집니다.
자유자재한 존재, 그 자체로 있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고우 스님은
“형상만 본다면 부처가 아닙니다.
본질만 봐도 부처가 아닙니다.
형상과 본질을 함께 봐야 비로소 부처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에
인도의 한 요가 수행자가 “한국의 선불교를 알고 싶다”며
금봉암을 찾아왔다고 했다.
고우 스님이 “인도에는 요가 수행의 고수들이 많지요?”라고 물었더니,
요가 수행자는
“몇 달씩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꼼짝도 안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단한 분들이죠”라고 답했다.
이에 고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눈을 감았을 때만 찾아오는 평화는 진짜가 아닙니다.
눈 뜨고 생활하는 이 자리에서 고요하고,
이 자리에서 평화로워야 합니다.
눈을 감았을 때만 고요하다면, 그게 바로 공(空)에 떨어진 자리죠.”
일상 속에서 통하고,
생활 속에서 통해야 진짜 선(禪)이라는 지적이다.
고우 스님은 선원의 선방만 수행처가 아니라고 했다.
“지지고 볶는 일상보다 더 훌륭한 법당은 없습니다.
형상을 붙들고 있는 나를 매 순간 볼 수 있으니까요.
그 나를 비우면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본질을 보면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신분이 높은 이도, 낮은 이도, 지혜가 많은 이도, 적은 이도
모두가 평등함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고우 스님은 경북 문경의 금봉암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차를 건넸다. [중앙포토]
이말 끝에 고우 스님은 ‘똥 푸는 사람’ 일화를 꺼냈다.
부처님 당시에 똥을 푸는 사람은 인도에서 천민 계급이었다.
부처님이 지나가면 똥 푸는 사람은 늘 도망쳤다.
하루는 부처님이 불러서 물었다.
“왜 도망가느냐?” “황송해서요”
“무엇이 황송한가?” “제가 천민이라서요.”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이 말했다.
“신분이라는 건 많이 가지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뿐이다.
거기에 속지 마라.”
이 말에 똥 푸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되물었다.
“신분에 높낮이가 없음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제 직업은 천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이 말했다.
“국왕이나 대신도 국민을 괴롭히면 천한 놈이고,
남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면 누구라도 고귀한 사람이다.”
고우 스님은 이 일화에 담긴 의미를 짚었다.
“평등함을 알면 열등의식도 풀립니다. 주위를 보세요.
지금 우리 사회에
직업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가 평등함을 깨치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건 굉장한 것입니다.”
“그게 왜 대단하냐?”고 물었더니
고우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자기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될 때,
그 일을 정말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럼 부와 명예는 물론 인격까지 절로 따라옵니다.
그게 순리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돈만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겁니다.”
고우 스님은 "불교의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움이다. 자기를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마지막으로 고우 스님은 마음공부에 대해서 짚었다.
“불교의 수행은 고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즐거움이죠.
갈수록 자기를 알고, 안 만큼 자유로워지는데 왜 고행입니까.
진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하려고 하니 고행이 되는 겁니다.
수행은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고우 스님은 조계종 원로이면서도 대중과 소통을 마다치 않았다.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고, 늘 마음공부의 즐거움을 일깨우려 했다.
그 연배에는 드문 분이었다.
“깨달음이 멀다”고 물으면 고우 스님은 항상
“설사 깨닫지 못한다 해도 이 이치를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하곤 했다.
[백성호의 현문우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