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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4월 29일
“허공 찬 정수리를/돌아서 쓸고 가는//손때 없는 젊은 날은/한 세월로 얼비치고//바람결 유년을 불러/시린 몸을 감는다.//덤불 속 벌판 위에/눈시울이 흐르고//인생을 가로 질러/울림장 위에 서면//오선지 하늘이 닿는/마음 둘레 꽃이 핀다.//마파람 멀리 사뤄/줄줄이 너울을 벗는//노을밭 긴긴 노래를/이 자리에 불러 보고//풍만히 넒은 동심을/햇물 풀어 날린다.” -이재창 시인의 「옛동산에 올라」 전문 (시조문학 1978년 봄호 1회 추천작)
*오늘은 골프없는 날 1992년 태국 푸켓에서 열린 제3세계 관광포럼에서 골프장으로 훼손되어가는 지구의 산림 지키자는 취지로 지정
*오늘은 세계 춤의 날
*화학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날
*쇼와의 날: 일본
*아리타 도자기 축제(Arita Ceramic Fair) 시작일: 일본 사가현 아리타정
1358년 [음]공민왕(恭愍王) 7년, 왜구 때문에 연해의 창고를 내륙으로 옮김
ㅡ왜구가 한주(韓州) 및 진성창(鎭城倉)을 노략질하자 전라도진변사(全羅道鎭邊使) 고용현(高用賢)이 연해에 위치한 창고를 내륙으로 옮길 것을 요청하니 왕이 이에 따랐다.
1409년 [윤]태종 9년, 대궐 내에서 점심[晝點心]을 없앰
1413년 [음]태종 13년, 일본 구주 절도사(九州節度使)가 동종(銅鐘)을 요청함
1426년 경신공주 작고
1471년 [음]성종 2년, 각 도의 수세 방식을 공법(貢法)으로 일원화함
1490년 [음]성종 21년, 전라도 회령포(會寧浦)에 높이 13척(尺), 둘레 1,990척의 성을 쌓음
1526년 [음]중종 21년, 함경도에서 여역으로 인한 사망자 100명 발생
1592년 [음]선조 25년, 광해군(光海君)을 세자로 책봉함
1592년 [음]김명원을 도원수, 신각을 부원수로 삼아 한강을 지키게 함
1609년 [음]광해 1년, 임해군(臨海君)이 유배지에서 살해됨
ㅡ임해군(臨海君)을 위소(圍所)에서 죽였다. 임해군이 위장(圍墻) 안에 있을 때 다만 관비(官婢) 한 사람만이 그 곁에 있으면서 구멍으로 음식을 넣어주었는데, 이때 이르러 수장(守將) 이정표(李廷彪)가 핍박하여 독을 마시게 했으나 따르지 않자 드디어 목을 졸라 죽였다. 【임해가 죽은 것을 사람들이 능히 밝히지 못하고 또 죽은 날도 알지 못하였다. 무신년 반정 후 임해군의 가족이 그 관비를 불러 묻고서야 비로소 그 실상을 알았다. 부인 허씨(許氏)가 관을 열고 보니 피부가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그 목에 아직 새끼줄을 감았던 붉은 흔적이 있었다.】
1635년 [음]인조 13년, 전 좌의정 이정귀(李廷龜) 죽음
1636년 [음]인조 14년, 최명길(崔鳴吉)이 병조 판서가 됨
1698년 [음]숙종 24년, 서울에 전염병이 번져 많은 사람이 죽음
1728년 [음]영조 4년, 분무 일등 공신(奮武一等功臣) 오명항(吳命恒)이 우찬성이 됨
1741년 [음]영조 17년, 26년 만에 금군 도시(禁軍都試; 궁궐 호위 부대 선발 시험)가 실시됨
1755년 [음]영조 31년, 부녀자의 역옥(逆獄)을 금지시킴
1782년 [음]정조 6년, 경기 광주(廣州) 백성들이 질 나쁜 평창곡(平倉穀) 지급에 항의함
1790년 [음]정조 14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완성됨
1791년 [음]정조 15년, 《장릉지(莊陵誌)》가 소략하다 하여 수정하게 함
1793년 [음]정조 17년, 황해도 장연(長淵)의 대청도(大靑島)와 소청도(小靑島)에 백성들을 모집하여 농사짓게 함
1800년 [윤]정조 24년, 정창순(鄭昌順)이 편집한 《사략(史略)》 제8권의 판본을 해체함
1801년 [음]순조 1년 , 수원 화령전(華寧殿)이 완성됨
1833년 [음]순조 33년, 도성 안의 거지를 구휼하게 함
1841년 조선의 가톨릭 순교자 김성우 작고
1894년 [음]동학군 진압 위해 청나라 원세개에게 원군 요청
1908년 광무 신문지법 개정
1909년 의병장 심남일 등 150명, 능주·보성 봉치(風峙)에서 일본 헌병대와 교전
1919년 〈독립신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등사판)
1932년 윤봉길 의사, 일본천황생일경축식장(상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의거,
ㅡ일본군 장성7명 사상 “피끓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왜놈이 왜 와서 왜걸대나/피끓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되놈 되와서 되가는데/왜놈은 와서 왜 아니가나”‘청년 제군에게’
ㅡ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 겸 상해사변 전승축하 기념식장에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던져, 참석한 주요인사들을 폭살했다.
참석자중 상해 파견 일본군 시리카와 대장,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이 즉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타, 주중공사 시게미쓰 마모루, 총영사 무라이 등이 중상을 입었다.
거사직후 체포된 윤의사는 5월25일 상해 파견 군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1월 18일 일본 오사카의 한 형무소로 옮겨졌고 12월 1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옮겨져 이튿날 총상형에 처해져 순국했다. 본명은 우의, 아호는 매헌이었다.
1946년 만 7세∼12세 아동, 국민학교에 입학, 서울시내 입학연령 초과아동 2만여명
1947년 북한 비료와 남한 수직 면포 교역 실시
1948년 북한 인민회의 헌법 채택
1950년 국립극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에 창설
ㅡ미군이 오락장으로 사용하던 1천9백97석의 옛 경성부민관(舊 경성부민관 : 현 서울시의회 의사당)건물에 국립극장이 개관됐다. 광복이후 줄기차게 이어진 무대예술인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은 유치진의 `원술랑`. 1주일간 무려 5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국내 최초의 창작 오페라인 현제명의 `춘향전`도 이 시기에 초연됐다. 영화 관람료의 3배나 될 정도로 비싼 관람료에도 공연마다 표를 사려는 인파가 광화문 네거리와 덕수궁까지 뻗칠 정도였다.
그러나 문을 연지 채 두달도 못돼 발발한 6.25와 계속된 공연 실패는 국립극장의 위상을 흔들어 놓았고 국립극장은 문화예술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3년 10월 17일 현재의 장충동으로 자리를 옮겨 장충동시대의 막을 열었다
1953년 휴전회담 재개
1960년 허정 과도정부 수반·매카나기 미국 대사, 〈대한 경제 원조 재개〉 공동 성명
1961년 충주비료공장 준공
ㅡ충주비료공장이 착공 5년8개월 만에 준공됐다. 정부수립 이후 비료공장을 건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난 1955년 5월 13일 미국 맥크로 하이드로 가본회사와 ICA(미국국제협력기구)차관자금 1천9백55만달러와 내자 15억환을 들여 한해에 요소비료 8만5천t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완공하는데 든 건설비는 외자3천1백54만3천달러와 내자 27억5천만환이다.
이는 계약 당시보다 외자 56%, 내자 54%가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도 30개월을 기한으로 한 기술용역 계약체결로 인건비 2백만달러를 포함한 계약상의 경비 5백13만5천달러가 더 들었다. 이 때문에 요소비료 t당 생산비가 시가 7만9천환을 훨씬웃돈 13만2천환으로 올랐다.
1964년 한국-인도 무역협정 조인
1967년 김일, 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 등극
ㅡ전남 고흥의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일(1929~2006)은 젊어서 유명한 씨름꾼이었다. 체구도 183㎝, 90㎏이나 되어 당당했다.
1956년 어느 날, 김일은 여수에서 우연히 본 일본의 한 잡지에서 역도산(1924~1963)과 관련된 기사를 읽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김일이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둔 채 시모노세키로 건너간 것은 1956년 10월이었다.
김일은 역도산 도장 문하생 제1기 제자로 입문했다. 훈련은 온 몸이 매일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힘들었다.
김일은 1958년 5월에 데뷔했다. 초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일찍부터 평양 박치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역도산은 “너는 조선 사람이니 박치기 기술을 익혀라”라며 박치기를 권했다. 야구광이었던 김일은 일본 프로야구의 강타자 왕정치의 외다리 타법을 보고,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한쪽 다리를 들었다가 상대의 머리를 내리찍는 박치기 자세를 완성했다. 기술 종류도 늘려 박치기 외에 헤드시저스와 드롭킥을 익혔고 상대 선수를 만(卍)자로 감는 ‘코브라 트위스트’도 연마했다.
1963년 9월 김일은 역도산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열리는 WWA 세계 태그챔피언대회에 도전장을 냈다. 시합 하루 전인 12월 9일 일본에서 역도산이 칼에 맞았다는 전화가 미국으로 걸려왔으나 다행히 경미하다는 말을 듣고 시합에 나가 일본의 모토와 조를 이뤄 WWA 세계 태그챔피언이 되었다.
김일은 1965년 6월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귀국했다. 8월 11일 장영철, 천규덕 등과 함께 극동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에 출전했다. 국내파 장영철이 2회전에서 패해 그동안 국내에서 쌓아 온 70연승에 제동이 걸린 것과 달리 김일은 챔피언이 되었다. 그것은 한국 레슬링의 맹주가 장영철에서 김일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일은 1966년 12월 도쿄에서 아시아 태그챔피언에 오른 뒤 여세를 몰아 마크 루인 WWA(세계레슬링연맹)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냈다.
루인은 1966년 10월 루 테즈를, 1967년 3월 복면의 디스트로이어를 물리친 세계 최고 선수였지만 김일은 1967년 4월 2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회에서 박치기로 그를 물리쳐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 프로레슬링 사상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김일의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너나 없이 동네에 하나뿐인 흑백TV 앞에 모여들었다. 초반엔 늘 상대편의 잔악무도한 반칙에 당하다가도 꼭 막판 박치기 한방으로 내로라 하는 거구의 서양 선수들을 일거에 거꾸러뜨리는 김일의 모습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김일은 1980년 5월 제주도에서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동안 3,000여 회의 경기를 치르고 세계 타이틀을 20차례나 방어했다. 은퇴 후 김일은 레슬링 후유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2006년 10월 26일 운명했다.
1969년 나시루딘 말레이시아 국왕 내한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공화당 정권이 1백만 표 이상 조작했으며 부정 묵인할 수 없다고 언명
1972년 남북직통전화 비공식개통
1975년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 사이공서 철수
ㅡ1975년 3월 월맹군이 베트남에 대해 총공세를 감행한다. 티우 대통령이 하야(4월21일)하고 베트남 전역이 무법천지로 돌변하면서 주월(駐越) 한국대사관도 철수준비를 서두른다.
4월26일, 한국에서 파견한 2척의 LST함에 교민들을 실려보내 1차 고비는 넘겼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4월28일, 한국 대사관은 전원철수를 결정한다. 국기를 내리고 통신기기와 비밀서류를 소각했다. 100여 명이 탄손누트 공항을 통해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져 희망을 주었으나 곧 공항도 파괴돼 의지할 것이라곤 미군 헬기 뿐이었다.
29일 날이 밝았다. 집결지는 미 대사관 후문 헬기장. 이미 3000여명의 각국 난민들로 통제불능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행히 오후 4시부터 미군 헬기가 난민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것이 목격됐다. 교민탈출을 위해 미국측과 만반의 준비를 다 갖췄다고 판단한 김영관 대사 일행은 오후 6시경, 헬기를 타고 미 대사관을 떠났다.
월남 패망일인 4월30일 새벽 4시15분, 밤샘한 일부 교민이 헬기로 미 대사관을 벗어나고 마지막 남은 9명의 공관원과 165명의 교민들이 마음을 조아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4시30분, 이륙하는 헬기만 보일 뿐 착륙하는 헬기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생명선이 끊긴 것이다. 사이공에 내버려진 교민들은 1년 안에 모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들의 철수를 도왔던 이대용 공사와 서병호ㆍ안희완 영사 세 사람은 현지 감옥에서 5년간을 더 보내야 했다. 이들은 1980년 4월 12일에야 마침내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1978년 영해 12해리 선언
1978년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발전용량 587,000kw) 가동, 21번째 원전보유국 됨, 39년만인 2017.6.19 가동멈춤
ㅡ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부산 기장군 한국전력 고리원자력본부의 고리원전 1호기가 19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고리원전 1호기는 87개월에 걸친 공사끝에 1978년 7월 20일 준공됐으나 당시 심각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준공전인 이날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게 됐다.
외자 8백40억원 등 총 1천5백60억원의 공사비가 든 고리원전 1호기는 발전 시설용량 58만7천kw의 가압경수로형으로서 당시 국내 기술이 전무해 미국의 웰코사가 전반적인 건설책임을 지고 원자로 설비와 연료공급을 맡았고 영국의 제너럴일렉트릭사가 터빈 발전기 공급과 토건공사의 감독을 맡았다.
우리나라는 고리원전 1호기 가동으로 세계에서 22번째 원전보유국이 됐다.
1979년 서울서 제8회 세계여자농구대회 개막
1980년 부산소재 동국제강 종업원 1000여명, 임금. 상여금 인상요구코 농성끝에 방화ㆍ파괴
1980년 동양 최대의 대웅전 `설법보전` 충북 단양 구인사에 세워져 낙성
1980년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중앙정보부장·보안사령관 겸직, 정치 발전 기여 언급
1981년 제1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막
1981년 언론중재위원회 발족
1982년 국립지리원, 5000분의 1 지도를 일반인에게도 판매하기로 결정
1983년 민한당, 내무·문교부장관 해임권고 결의안 제출. 국회 운영위원회 이를 부결
1984년 성수대교가 가장 붐빈다-14개 한강다리 교통량 조사
1985년 태평양경제협력회의 개막(서울)
1985년 전두환 대통령, 방미일정 마치고 귀국
1986년 대학교수 시국선언 전국적으로 확산
1986년 고리 원전4호기 상업운전 개시
1986년 전국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연합 결성
1987년 문학인 193명, 직선제 개헌 촉구 성명
1987년 민중민주당, 당을 해체하고 소속의원들 신민당에 개별입당키로 결정
1987년 시화지구 간척사업 착공(97년까지 5300만평 매립, 농공지 조성키로)
1987년 서강대 교수 28명, 개헌유보철회요구 성명, 이후 전국 대학으로 확산
19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야권통합을 위해 통합 야당 집단 지도체제로-민주당측 주장의 일부를 수용.
1990년 현대중공업 파업현장 공권력 투입 항의, 근로자 80여명 80m의 현대중공업 골리앗 클레인 올라가 농성.
1990년 한국, 금강산과 설악산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평화구역으로 선포
1991년 김일성 북한주석, 국제의회연맹 제85차총회 (평양) 개막연설에서 「연방제」안을 거듭 주장
1991년 신민당 민주당,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관련, 노태우 대통령 사과, 노재붕 내각의 총사퇴, 백골단 해체 촉구.
1991년 강경대 사망 사건 관련, 전국 60여개 대학에서 규탄대회 개최
1991년 남북단일 여자팀(현정화 리분희 유순복)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 지바) 중국 꺾고 우승
ㅡ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를 제패했다. 이날 일본 지바현(千葉縣) 닛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결승전. 최초의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가 7000만 동포의 관심 속에 녹색테이블의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는 대회 9연패를 노리는 중국이었다. `마녀` 덩야핑이 버티는 `철옹성`이었지만 출발은 상큼했다.
제1, 2단식에 나선 유순복과 현정화가 덩야핑과 가오준을 각각 꺾어 2-0으로 앞서 나갔다. 다음은 환상의 복식조 이분희-현정화. 남북 단일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믿었던 현-이 조는 덩야핑-가오준 조에 2-1로 역전패했다. 이어 현정화도 제4단식에서 패해 2-2로 승부는 원점.
마지막 단식에 나선 유순복의 어깨에 `코리아`의 우승여부가 걸렸다. 유순복은 변칙공격의 명수 가오준과의 첫 세트를 과감한 백드라이브로 21-19로 이겼다. 유순복은 2세트도 13-17로 끌려가던 경기를 21-19로 뒤집으며 승리, 코리아팀에 감격적인 우승을 안겼다.
단체전 우승은 1973년 사라예보 승전보 이후 18년 만이었다. 시상식서 한반도를 그린 `단일기`가 오르고, 단일팀 단가인 아리랑이 연주되자 1000여 응원단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코리아팀 우승은 남북이 하나되어 이룩한 쾌거였고, 남북청소년축구 단일팀 출전으로 이어져 한반도 화해무드 조성에 큰 몫을 했다.
1991년 국내 143개탄광 중 48개소가 적자운영 폐광신청
1991년 전남대생 박승희씨(당시 21세.여.식품영양 2년) 강경대 치사 규탄대 회도중 분신. 5월19일 사망.
1992년 91년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수입바나나는 1518억 원어치(11만 7000t) 전체 농산물 거래의 20.2%.
1992년 안기부,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과 관련 중앙상임위원 백태웅씨(30)등 39명 검거 발표.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 거주 흑인들, 코리아타운을 집중적으로 약 탈 방화.
1992년 백태웅 사노맹 중앙상임위원장 구속
1993년 북한-미국 실무접촉, 미국측 전제조건=북한의 원자로연료 교체시 IAEA사찰단 입회, 3월의 핵사찰에서 제외된 핵재처리시설에 대한 사찰, 2개월마다 추가사찰 실시, 북한 전제조건=연료봉 교체작업에 IAEA입회 제의
1993년 국방부 법무관실, 정용순 전공군 참모총장에 뇌물을 준 박종선 준장 등 5명의 장성 구속.
1993년 포항제철 조강 연산 2001만t으로 신일본 제철에 이어 세계2위 회사로 국제철강협회 공인.
1993년 환경처, 환경적합성 시범평가 결과 인천시의 환경실태가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발표.
1994년 한ㆍ러 국방장관, 북한핵저지에 협력키로 하고 `94-95 군사교류양해각서'에 서명
1995년 서울지검, `5.18' 고소.고발사건과 관련 피고발인 전두환ㆍ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해 서면 조사키로
1996년 5공 율곡비리 안현태-성용욱-안무혁-씨등 4명에게 징역 7∼5년 구형9
1996년 해운항만청 독도 접안시설 건설공사 본격 착수
1997년 건설교통부, 국토개발연구원의 용역을 거쳐 마련한 `제2차 수도권정비계획' 발표
1998년 삼성전자 21세기 메모리반도체로 불리는 256메가디렘 세계최초 생산 발표
1999년 여성산악인 지현옥, 안나푸르나봉 등정 후 하산 중 실종
2003년 유시민 의원, 복장 불량 이유로 국회의원 선서 무산
2003년 ‘제2건국위원회’ 4년 6개월 만에 해체
2003년 근무중 얼굴흉터 남녀보상 똑같도록 국무회의 시행령 개정
2004년 박태영 전남지사 투신자살
ㅡ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 인사 및 납품 비리 연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오던 박태영 전남지사가 2004년 4월 29일 낮 12시48분쯤 서울 반포대교 중간 지점에서 한강에 투신, 사망했다.
박 지사는 이날 변호사 등과 검찰 조사에 대비한 회의를 마치고 동부 이촌동 자택으로 가기 위해 반포대교를 건너던 중, 남단에서 북단 방향 630m 지점에서 운전기사 임모씨에게 차를 세우게 한 뒤 한강에 뛰어들었다. 운전사 임씨는 경찰조사에서 “반포대교 중간 지점에서 박 지사가 ‘토할 것 같다.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해 차를 세웠다”며 “난간에 잠깐 기대는가 싶더니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지사는 2000~0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인사·납품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서 지난 이틀간 조사를 받았으며, 이날 오전 11시 사흘째 조사가 예정돼 있었다.
박 지사는 그러나 이날 오전 내내 심한 구토 증세로 검찰 출두를 오후 3시로 연기한 뒤 집을 거쳐 병원에 들를 계획이었다. 박 지사의 자살 소식에 박 지사가 입당을 추진했던 열린우리당은 ‘개인적인 비극’이라는 반응인 반면, 박 지사의 전 소속 정당인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의 분열적, 파괴적 리더십이 낳은 희생양’이라는 반응이었다.
2004년 애국지사 장봉숙 선생 별세
ㅡ애국지사 장봉숙(張鳳塾·84) 선생이 29일 오후 8시 5분 담도암으로 별세했다.
경북 울진 출신인 선생은 1941년 11월 울진에서 독립단체인 창유(暢幽)계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부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다 1943년 12월 일경에게 체포됐다.
1986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04년 윤봉길 의사 의거 72주년 맞아 자작한시(漢詩) 번역서 출간
ㅡ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왕 생일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의거가 72주년을 맞는 2004년 4월 28일 윤 의사가 자작한 한시(漢詩) 번역서가 출간됐다.
윤 의사가 의거 하루 전인 1932년 4월 28일 의거 장소를 사전답사하고 지은 한글시 ‘훙커우 공원을 답청(踏靑)하며’는 그 같은 대사를 앞둔 스물네 살 청년의 놀랍도록 침착한 모습에 더해 서정이 가득하다.
“처처(凄凄)한 방초(芳草)여/ 명년에 춘색(春色)이 이르거든 왕손(王孫)으로 더불어 같이 오세// 청청(靑靑)한 방초여/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금년 4월 29일에/ 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하세.”
‘시인 윤봉길과 지인(知人)의 서정시 340수’(역사공간, 진영미·김승일 역)가 의거 기념일을 맞아 출간돼 서정 시인으로서의 윤 의사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번역서는 보물 568호로 지정돼 충남 예산의 윤 의사 생가인 충의사에 전시 중인 시문집 다섯 편 중 ‘명추(鳴椎)’ ‘임추(壬椎)’ ‘옥타(玉唾)’ ‘한시집(漢詩集)’에 수록된 한문 시들을 처음 우리 말로 번역한 것들이다.
2004년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 본체 핵심부품 국산화 작업에 성공, 세계 최고 수준의 고정밀 관측 가능
2005년 대우그룹, 분식 회계 관련 역대 최고의 23조원 추징금 부과, 임직원 8명 유죄 확정
2005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킨텍스 개관.
200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사 2차명단 4,776명 발표
2008년 MBC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방영, 5월13일에 2편 방영, 6.20 농림수산식품부 피디수첩제작진 명예훼손혐의로 수사의뢰
- 2009.1.7 피디수첩 전담수사팀 팀장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사표제출, 2009.3.3 정운천 전 농식품부장관 피디수첩 제작진 고소, 2009.3.4-5 피디수첩 제작진 전자메일 압수수색, 2009.3.25, 4.15 이춘근 김보슬 피디 체포, 2009.4.27 조능희 송일준 피디와 김은희 이연희 작가 체포, 2009.6.18 피디수첩 수사결과 발표, 제작진5명 불구속기소, 2009.12.21 검찰이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징역2-3년 구형, 2010.1.20 서울중앙지법, 피디수첩 제작진에 무죄선고
2012년 4성장군출신 이한림 前 건설부 장관 별세
ㅡ軍의 정치개입에 반대했던 창군 주역
1961년 5·16 당시 1군 사령관으로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다 강제 예편됐던 이한림(李翰林·91) 전 건설부 장관(예비역 육군 중장)이 29일 0시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함경남도 안변 출신인 이 전 사령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주 신경군관학교,일본 육사 동기생이다. 그는 해방 이후 국방경비대 중대장 등을 역임하며 창군(創軍)에 기여했다.
6·25전쟁 때엔 9사단장으로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퇴, '철의 삼각지대' 확보에 큰 공을 세워 우리 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과 미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9사단장 시절 한 번 결심하면 그대로 밀고 나간다 해서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 6·25 마지막 승전 전투영웅 故 김한준 대위 육군장 별세
ㅡ6·25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승전(勝戰)해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김한준(83) 예비역 대위의 장례가 육군장(葬)으로 엄수된다.
육군은 지난달 29일 노환으로 별세한 김 예비역 대위의 장례를 1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작년 10월 육군장 대상 중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전사(戰死)한 자'를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로 개정했다. 개정 후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육군장을 치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육군 출신은 총 64명으로, 이 중 15명이 생존해 있다.
고 김 예비역 대위는 1947년 자원입대했다. 6·25전쟁 당시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평양입성작전에 참가했고, 1950년 11월 15일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했다. 7사단 8연대 1중대장으로 1953년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강원도 화천(당시 철원) 북방 425고지 전투에 참가했으며, 60㎜ 박격포를 이용해 1개 중대 병력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섬멸하는 대전과를 거뒀다. 이 전투는 6·25전쟁사(史)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 전투로 기록돼 있다. 정전 후 1953년 12월 9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김 예비역 대위를 경무대로 초청해 직접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2013년 검찰 원세훈 전 국정원장 전격소환 조사
2013년 방화로 불탄 국보1호 남대문 복원공사완료, 2008.2.10 불탄지 5년2개월만에 복원, 완공식은 2013.5.4 열림
2015년 중국 상하이 윤봉길기념관 재단장
ㅡ1994년 중국 정부가 65㎡(약 20평) 남짓한 부지를 제공해 설립된 매헌기념관은 그간 전시물이 낡고 자료가 부족해 윤 의사의 정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훈처는 훙커우구 측과 협력해 2014년 말부터 1억5000만원을 들여 개·보수에 나섰다. 공원 입구부터 ‘윤봉길 기념관’이란 한국어 안내판을 걸고, 윤 의사의 업적과 일대기를 다룬 영상물과 옥외 전시물을 제작했다. 중국 정부 역시 기념관 주변 부지를 2500평까지 늘려주었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 겸 상해사변 전승축하 기념식장에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던져, 참석한 주요인사들을 폭살했다.
참석자중 상해 파견 일본군 시리카와 대장,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이 즉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타, 주중공사 시게미쓰 마모루, 총영사 무라이 등이 중상을 입었다.
거사직후 체포된 윤의사는 5월25일 상해 파견 군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1월 18일 일본 오사카의 한 형무소로 옮겨졌고 12월 1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옮겨져 이튿날 총상형에 처해져 순국했다. 본명은 우의, 아호는 매헌이었다
2015년 한국전력공사가 요르단 알 마나커에 세계 최대 57만3000㎾급 IPP3 디젤발전소인 암만아시아 디젤내연 발전소(Amman Asia Power Plant)를 준공
2016년 수원문산고속도로 봉담 나들목 ~ 성채소하 나들목 구간이 개통
2019년 문화재구역 입장료 32년만에 폐지
2020년 이천 물류센터 신축현장 불 사망38명
ㅡ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불이 나 최소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불은 이날 오후 1시 32분께 이천시 모가면의 물류창고 공사현장 지하 2층에서 시작됐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이후 진화작업에 나서 화재 발생 5시간여만인 오후 6시 42분에 불을 모두 껐다.
불이 진화된 뒤 본격적으로 진행된 인명수색을 통해 오후 9시 현재 사망자는 38명으로 파악됐다. 중상자는 8명이며 경상자는 2명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주변에서 우레탄 작업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을 하다가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하 1, 2층과 지상 2, 3, 4층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이 출구로 몰리면서 사망자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이곳에서는 전기, 도장, 설비, 타설 등 분야별로 9개 업체 70여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 등 가연성 소재에 불이 붙어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고 연기가 많이 발생한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발화 직후 폭발적 연소 및 연기 발생으로 근로자들이 탈출 시간을 상실했기 때문에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며 "사망자들의 옷이 모두 탄 사례가 많아 연소가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엄청난 유독가스가 뿜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 일본군성노예피해자 출신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받음
2021년 서울 주요 16개 대학 2023학년도 정시로 신입생 40% 이상 선발
2021년 ‘이건희 상속세’ 역대급 12조, ‘이병철 상속세’의 680배
2022년 대한민국의 MGTV 개국.
1417년 앙주의 공작 루이 2세 작고
1429년 백년전쟁 중 프랑스의 잔 다르크 오를레앙 되찾음
1670년 교황 클레멘스 10세, 239대 로마 교황 취임
1854년 프랑스의 과학자 앙리 푸앵카레 출생
1864년 캐나다 열차 탈선 사고로 60명 사망
1886년 미국-일본 범인인도조약 조인
1899년 빅 밴드 재즈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 출생
1901년 히로히토 일왕 출생
1917년 미국의 심리학자 유리 브론펜브레너.
1937년 나일론 발명(1935년)한 월리스 캐러더스 음독자살(41세), 나일론이라는 이름은 1938년에 붙여짐
1944년 포루투갈의 대통령(1915~1917, 1925~1926) 마샤두 사망
1951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사망
ㅡ논리학과 언어 분석을 통해 난해하고 사변적인 전통 철학을 폐기하고자 한 이단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이면서 이론과 개인적 삶 모든 측면에서 수수께끼와 신비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오스트리아 철강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점, 자신이 설계한 누나의 집이 오늘날 건축사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건축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점, 음악가 집안의 자식답게 음악에도 전문가였던 점, 자신의 연구에 몰두할 때는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등의 시골에 묻혀 은둔자로 보낸 점, 철학에 방해가 된다고 막대한 유산을 형과 누나에게 준 점, 그의 저서 `논리철학 소고`에서 모든 철학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해 직업 철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에 귀향해 6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한 점 등 어느것 하나도 신비롭지 않은 삶이 없었다.
러셀은 철학적 능력에 대해 자신을 갖지 못했던 비트겐슈타인을 철학으로 인도하고 가르친 스승이었지만, 후에는 자신이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음을 고백할 정도로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지성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독특한 철학자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를 떠났다가 두번째이자 마지막 책인 `철학적 탐구`를 통하여 자신의 초기 이론을 비판하면서 영국 케임브리지로 되돌아 올때 경제학자 케인즈는 "신이 도착했다"라고 환영할 정도였다. 단 두권의 책으로 두 철학적 조류, 그것도 상충하는 두 조류를 구성했다. 전통적인 사변철학을 비판하면서도 그의 이론 자체는 어느 철학적 이론보다도 난해했다.
1955년 소비에트 연방 원자로를 중국, 폴란드, 체코, 동독에 제공하는 협정에 서명
1956년 프랑스군, 인도차이나서 완전 철수
1959년 달라이 라마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망명정부 세움
1965년 도미니카의 쿠데타, 내란으로 발전
1968년 미국, 흑인들의 `빈자(貧者)의 행진` 시작
1968년 크로아티아의 외교관, 정치인, 제4대 대통령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 출생
1970년 닉슨 미대통령 캄보디아 군사개입 결정
1971년 중국의 지질학자 리쓰광 작고
1980년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사망
ㅡ히치콕은 독창적 영상기법으로 현대인들의 불안·공포 심리를 세련되게 다뤄온 영상의 마술사다.
몇 가지 점만 유념하면 대번에 그의 영화임을 알 수 있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카메오와 맥거핀)MacGuffin) 기법이 등장하는 서스펜서 스릴러, 게다가 미남배우와 금발의 여배우가 주연을 맡고 흑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100% 히치콕 작(作)이다. 히치콕은 150kg의 거구이면서도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을 즐겼고, 줄거리를 좇는 관객들이 헛다리를 짚도록 속임수를 쓰는 맥거핀 기법도 보편화시켰다.
1899년 영국에서 태어난 히치콕은 1925년 ‘기쁨의 정원’ 으로 데뷔해 1976년 ‘가족의 음모’ 를 찍을 때까지 52년 동안 53편의 장편 극영화를 남겼다.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영화로 20세기 영화계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다. 그는 배우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로도 유명하지만 히치콕 영화에 대한 논문의 제목을 모아놓은 책이 발간될 정도로 영화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21세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1982년 폴란드, 구속자 1천명 석방
1986년 미국 LA중앙도서관 불 책40만권 전소 70만권 훼손, 수전 올리언(「뉴요커」 기자)의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이 이 사건 다룬 책
1988년 보잉 747-400이 첫 비행에 성공
1988년 필리핀 마닐라 큰 불 가옥800채 전소 이재민9천여명
1988년 고르바초프 소련의 종교자유 확대방침 발표
1989년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사망
1991년 방글라데시에 시속235Km 태풍 강타 사상20여만명
1991년 소련 그루지아공화국에 진도7 지진 사망63명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거주 흑인폭동(5월4일까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달아나던 흑인 로드니킹 구타사건 관련 경찰들 무죄판결에 불만품은 흑인들의 폭동, 흑인마을과 백인마을 사이에 낀 한국교민 피해 큼 사망1명 부상46명 상점1779개 약탈방화 피해3억3600만$, LA 전체는 사망53 부상2,116 방화약탈4,591개업소 피해5억5천만$
1997년 화학무기 금지협약(CWC) 발효
2005년 쿠르드족 출신인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에 선출됨
2005년 시리아가 29년간의 점령을 종료함으로써 레바논에서의 철수를 완료
2006년 미국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 세상떠남 『불확실성의 시대』
2011년 영국 왕실 세기의 결혼식
ㅡ4월29일 치러진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빈의 결혼식은 단순한 왕실 결혼 이상이었다.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결혼 이후 30년 만에 세계인의 이목이 영국왕실에 집중된 순간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15분 붉은 군복을 입은 신랑 윌리엄 왕세손이 동생 해리 왕자와 함께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면서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왕족, 세계 50여 개국 정상 등 하객 1900명은 오전 8시 15분부터 식장에 입장해 신랑 신부를 기다렸다. 이들은 이 귀한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휴대폰을 꺼내 결혼식장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전 11시 결혼식이 시작됐다. 캐서린은 주례를 맡은 영국 성공회 수장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 앞에서 "윌리엄을 사랑하고 위로하며 존경할 것"이란 '결혼서약'을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주례의 성혼선언이 끝난 후 캐서린은 성당 입구에 있는 무명용사 묘비를 지나 윌리엄 왕자와 함께 사륜마차에 올라탔다. 이 마차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빈을 맞이할 때 쓰는 '스테이트 랜도'로 1902년 제작됐다.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빈도 결혼식 후 퍼레이드를 할 때 이 마차를 탔다.
12시 23분 신랑 신부를 태운 마차가 버킹엄궁으로 들어가고 1시간 뒤, 신랑 신부가 버킹엄궁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자 힘찬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첫 키스가 너무 짧다며 사람들이 "다시 한 번!"을 외치자 부부는 좀 더 길게 입을 맞춘 뒤 환하게 웃었고, 결혼식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발코니 키스가 진행되는 사이 영국 공군기들이 버킹엄궁 상공을 축하 비행하는 이벤트로 결혼식은 끝났다.
2014년 미국에서 토네이도가 남동부 6개 주를 강타해 29명이 사망
2020년 인도배우 이르판 칸 세상떠남(53세) ‘슬럼독 밀리어네어’ ‘라이프 오브 파이’ ‘쥐라기 월드’
2021년 일본 정부, ‘징용에 의한 노무는 강제노동 아니다“ 대놓고 부정
2021년 이스라엘 종교축제장 계단 무너져 최소 38명 사망 100여명 부상
ㅡ수만명이 몰린 이스라엘 유대인 성지순례 행사에서 29일 밤(현지 시각) 최소 38명이 압사 당하고 100여명이 다쳤다
이날 사고는 유대정교회 명절인 라그바오메르(Lag B’Omer)를 기념하기 위해 이스라엘 북부 메론산에 수만 명의 초정통파 신도들이 몰린 가운데 일어났다. 이 행사는 약 1900년 전 유대인 랍비 시몬 바 요차이가 사망한 것을 기리는 축제다.
행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무대 앞에서 밤 늦게까지 다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건 발생 초기 현지 매체들은 현장의 관람석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지만 구조당국은 “단순히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생긴 압사 사고”라고 밝혔다.
2022년 미국의 영화배우 마이크 하제티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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