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341)땅딸보와 꺽다리 (하)
“방어 뱃살 회 한점에 청주 한잔. 캬∼ 지금이 제철인데 말이야. 변 노인 당신은 무슨 회를 좋아해?”
“회가 무엇이여? 바다를 본 적도 없어.”
“푸하하하하∼” 조 대인의 올챙이배가 푹 꺼질 듯이 웃음보가 터졌다.
허구한 날 같은 방에서 마주 보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 하다보니 입맛 다시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튿날, 조 대인네 집사가 달려와 부음을 전했다.
조 대인의 숙부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막내 숙부님은 나하고 친구처럼 살아왔는데. 아이고, 아이고∼.”
조 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황 의원에게 고했다.
“숙부님은 자식이 없어 제가 상주가 돼야 하는데
소생은 큰일 치른 적이 없어…. 변 노인이 도와주겠다 합니다요.”
황 의원이 선뜻 허락했다.
“변 노인, 조 대인이 술을 못 마시도록 꼭 붙어 감시하시오.”
이튿날 점심나절, 조 대인과 변 노인은 진보약수터 주막집에서 녹두백숙에 청주 잔을 기울이며
킬킬거리다가 나와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딸그락딸그락 황장재를 넘었다.
이튿날 저녁나절, 두 노인네는 바닷가에 다다랐다.
“저게 바다라는 거야.”
생전 처음 바다를 본 변 노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네.” 감격에 겨워 백사장에 발이 붙어버렸다.
조 대인이 변 노인의 팔을 당겨 바닷가 횟집으로 들어갔다.
청주 한잔 마시고 방어 뱃살 회 한점을 입에 넣은 조 대인은 눈을 감고 자지러졌다.
바닷고기라고는 간고등어 구워 먹은 적밖에 없는 변 노인은 방어회를 처음 입에 넣자
씹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부어라 마셔라 알딸딸해진 두 노인네는 주막집으로 들어가 뜨끈뜨끈한 특방을 잡았다.
변 노인이 벽에 기대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 대인, 돈 많이 썼지? 돌아가면….”
“시끄러워∼ 이 영감탱이야! 돈 걱정하지 말랬잖아!”
버럭 화를 내던 조 대인이 히히 웃으며
“그렇다면 당신도 돈을 써” 하더니 전대 하나를 변 노인에게 건넸다.
“이 돈은 저승에서 갚으시오.”
조 대인이 금방 코를 골자 변 노인은 살짝 문을 열고 나가 바닷가 모래밭에 퍼질러 앉아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입원과 동시에 끊었던 연초를 깊이 빨아들였다.
이튿날은 대게를 실컷 먹었다.
“우 서방,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세.”
마부가 이끄는 대로 두노인을 태운 마차는 만추의 낙엽을 맞고 킬킬 웃음을 날리며
쉼 없이 굴러 백암으로 갔다.
온천을 하고 송이산적을 먹고 강릉으로 갔다가 조 대인도 첫걸음인 금강산으로 갔다.
사인교 두대를 빌려 금강산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기생집에 가 진탕 술을 마셨다.
“황 의원 골방에서 십년을 더 살면 뭣 하나. 이렇게 일년 사는 게 낫지. 안 그래?”
조 대인이 술잔을 들자 변 노인이 술잔을 쨍그랑 부딪쳤다.
내친김에 한양으로 가 남대문 경복궁 오만 군데를 다 돌고 안동으로 돌아오니, 석달이 지나
고래등 같은 조 대인의 기와집이 눈을 덮어쓰고 있었다.
“게 있느냐∼” 대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허∼억!” 조 대인의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하늘아∼ 으흐흐흑.”
“아부지, 보고 싶었어요.”
5년 만에 다시 만난 부녀는 얼싸안고 울었다.
대청에 올라 조 대인이 정좌하자 덩치가 산만 한 하늘의 신랑이 한쪽 다리를 절며 다가와 큰절을 올렸다.
조 대인의 가슴이 찢어졌다. 6년 전 조 대인이 하인들을 시켜 딸과 만나는 씨름꾼 건달을 잡아와
곳간에 묶어놓고 몽둥이찜질을 한 탓에 무릎이 부서진 걸 조 대인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굴러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사위가 둘러댔다.
손자 둘이 조 대인에게 큰절을 올리자 양팔에 두 손자를 꼭 껴안고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그날 밤 늦도록 두 노인과 조 대인의 사위가 사랑방에서 술을 마셨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고?”
조 대인의 물음에 사위가 말했다.
“충청도 황간에서 가을이면 감을 사다가 곶감을 만들어 김천 장에 내다 팔고 겨울이면 가마니 짜고….”
조 대인이 또 물었다.
“진즉에 돌아오지 않고 왜 이제야 돌아왔는고?”
사위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돌아올 생각을 못했는데 웬 보부상이 찾아와 조 대인이 애타게 기다린다며
딸과 사위를 설득했던 것이다. 그 보부상은 바로 변 노인의 맏아들이었다.
변 노인의 명을 받고 몇달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조 대인이 변 노인의 두손을 움켜잡았다.
이튿날, 변 노인이 예천 집으로 떠날 때 마차를 대령하고 나서 조 대인과 변 노인이
“받아라” “못 받겠다” 서로 싸우다가 결국 변 노인이 졌다.
안동과 예천 사이 풍산 들의 논 서른세마지기!
두둑한 논 문서를 품에 안고 예천 집으로 돌아가는 변 노인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이듬해, 변 노인의 부고를 받았지만 병석의 조 대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석달 후 조 대인도 평온한 얼굴로 변 노인을 따라갔다.
첫댓글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좋은 목요일 되시고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