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19. 승가의 조건 ② 결계와 갈마
결계 목적, 갈마로 화합승가 구현
포살-자자 통해 청정성 확인해야
율장에 의하면, 승가형성의 기본 조건은 결계(結界)이다. 사방으로 산이나 바위 등의 표식을 정한 후, 이를 기준으로 그 내부가 하나의 현전승가(現前僧伽)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개개의 현전승가가 바로 율장이 전제로 하는 승가의 실체이다. 결계의 목적은 하나의 승가를 형성하게 될 스님들(비구·비구니)의 범위를 한정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왜 스님들의 범위를 한정하여 승가를 형성하는가? 포살 등과 같은 승가의 갈마를 올바르게 실행하기 위한 화합 승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승가는 최소한 4명 이상이면 형성할 수 있지만, 갈마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인원수에 차이가 있어, 구족계 수여 등 모든 갈마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0명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사람들이 바로 승가를 형성하는 주체이자, 갈마를 실행하는 주인공들이 된다.
갈마란 일종의 승가회의를 일컫는 말인데, 승가에서는 모든 대소사를 이 갈마라는 형식을 거쳐 결정하게 된다. 갈마는 반드시 동일한 경계에 속하는 모든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들의 만장일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사전에 명확한 사유를 전달하지 않은 채 결석하는 자나 그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끼어 있다면, 갈마는 성립하지 못한다. 또한, 안건에 대하여 단 한 사람의 반대자가 있어도 이 갈마로부터 얻어낸 결론은 무효이다.
율장에 의하면, 승가의 화합은 올바른 갈마의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실현된다. 결계를 통해 이루어진 현전승가, 그리고 이 승가가 화합하여 여법한 갈마를 통해 부처님의 법과 율에 근거해서 내린 결론이야말로 최고의 권위이자, 출가자 집단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다.
현전승가 차원의 승가 형성과 이를 중심으로 한 화합갈마의 필요성은, 율장의 규정이 승가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보시 받은 의식주의 분배나 특별한 소임을 맡을 스님의 선출과 같은 일상적인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바라이나 승잔과 같은 중죄를 지은 스님들에 대한 징벌, 그리고 스님들 간에 발생하는 심각한 의견 대립과 싸움 등등, 승가에서도 세속 못지않게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이 모든 일들은 자칫 어설프게 해결하면 구성원들 간에 불만을 만들고 훗날 승가 불화로 이어질 불씨가 된다.
그러므로 율장에서는 경과 율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훌륭한 스님을 포함한 현전승가를 구성하고,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이 승가의 화합갈마를 통해 그때그때 만장일치로 사건의 해결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정기적인 포살과 자자라는 모임을 통해 승가 구성원의 청정을 항상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한정된 인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전승가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막연한 사방승가의 개념 등으로는 풀어갈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불교승가가 승보(僧寶)라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이견이 없지만, 결계와 화합갈마를 기본으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승가의 일원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한국불교승가는 ‘율장에 근거해서 보았을 때’ 진정한 승가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권은 처음 대승불교의 형태로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특수한 사정이 있지만, 대승불교도 역시 전통부파교단의 율에 근거해서 생활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 어느 것도 현재의 한국불교승가의 모습을 합리화시켜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부처님의 법과 율을 신봉·전승하는 출가승단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조계종의 경우, 결계에 의한 화합승가의 구성과 화합갈마에 의한 승가운영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결계·포살 시행을 단호하게 결정하신 배경에도, 바로 율장에 근거하여 올바른 승가상을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계속〉
이자랑
(도쿄대 박사)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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