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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포기의 심리학 옌스 푀르스터 Jens Forster (1965 ~ )
[머리말]
건강이 나빠졌다. 의사로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잠시 쉬라는 권고를 받았다. 집에서 나의 직원이나 다름없는 길이 3미터 책상에 앉았다. 나는 책상의 한쪽에서는 일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을 먹었다. 이제 일하지도 먹지도 않고서 그저 허공을 오랫동안 응시할 뿐이다. 중년의 위기.
사흘 후 나는 대략 6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30개를 채웠다. 나는 사용설명서들과 사진들을 정리했고, 30년 동안 망각 속에 빠져 있던 레코드판들을 문 앞에 가져다 놓았다. 거기에 약 스무 켤레쯤 되는 신발과 다시는 읽지 않을 모든 책이 더해졌다. 건강이 점점 좋아졌다. 그 주가 끝나갈 무렵 집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집이 결국엔 나를 구속하는 족쇄로 느껴졌다.
한 달 뒤 나는 60개의 쓰레기봉투를 버렸고 300권이 넘는 책을 문 앞에 세워 두었고 옷과 신발의 10분의 1만을 남겨두었다. 나는 다른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사직서를 써서 우선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송로 버섯을 찾는 돼지
먼저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정리하던 중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우연히 발견했다.
무엇보다 소유와 존재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하는 질문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20년 동안 나는 사회심리학을 강의했지만 솔직히 말해 소유와 존재라는 주제를 다룬 학술 논문들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 포괄적인 주제에 광범위하게 포함 할 수 있는 산발적인 연구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송로버섯
물질주의에 대한 연구는 소유나 부의 획득에 몰두하는 것이 불행을 초래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반면, 돈의 심리학에서는 부는 모든 가능한 구속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자원이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밖에도 새로운 연구 결과는 삶의 만족도가 가게 수입과 함께 감소하는 대신 상승한다고 증명하고 있다. 알코올이나 니코틴과 마찬가지로 돈에도 중독성이 있다고 하는 생물심리학의 연구 지식은 또한 이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불일치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토론을 위한 포문을 여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반론을 부추길 것이다. 나는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싶고 따라서 독자 앞에 내가 획득한 지식을 펼칠 것이다.
에리히 프롬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독자에게 포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장황한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1장 문제로서의 소유
■ 주관적 관점 : 과연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가?
“너, 자전거 있잖아!” 어린 남자 아이가 바닥에 발을 동동 구루며 엉엉 울면서 엄마의 멋진 가죽 가방을 손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없잖아! 내 건 학교 갈 때 타는 거고 이건 마운틴 바이크잖아!”
-누가 가졌는가, 그가 가졌다.
“ 우린 너무 많이 갖고 있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어디서 묻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 비교라는 심리학적 과정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비교, 즉 우리의 소유를 평가하는 기준이 우리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할지, 더 나아가 뭔가 내놓아야 할지 또는 더 많이 가져야 할지를 결정한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비교는 경쟁을 부추기고 이것은 만족보다는 질투의 근원이다.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소유의 주요 기제를 명예 추구로 설명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사람들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나 인생의 멋진 것들을 향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기 위해서 물질적 안락을 축적한다. 베를린에 따르면 부는 존경과 명예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구별 가능성이 이것의 기초가 된다. 삶의 기준을 실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걱정 없는 삶을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기 가치를 하락시키고 경쟁하게끔 부추긴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하나의 동일한 행위에는 그리고 단순한 구매 행위에는 다양한 동기가 존재한다. 이 동기가 순수한지 불순한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인색하고 심술궂은 사장이 출장 중 불공정하게 제조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기부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 얼마의 돈을 지출했다면 이것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자기중심적인 동기가 실현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관례적으로 이것을 아마도 비도덕적으로, 마침내 비이성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황금 새장 안에서 매일 밤 혼자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면, 그 모든 행위는 결국 비기능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저택을 한 대가족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그로 인해 행복하다면, 저택을 구입한 행위는 주관적으로 볼 때 유용하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한 행위가 목표 달성에 어느 정도 일조하는지에 항상 주목해야 한다. 이 행위가 유용한가? 그리고 누구에게 유용한가?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심지어 공격적인 행동도 그것으로 목표에 도달한다면 기능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기억과 주의
우리가 항상 윤리적인 가치에 주목한다면,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는 재킷도, 딱히 컴퓨터를 능가하는 기능이 없는 태블릿도 아마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도 기억 속에 저장된 모든 목표와 동기를 항상 인지하거나 생각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특정 상황 속에서는 단지 하나의 유일한 목표만이 관심 대상이 되고, 그에 따라 행위가 촉발 된다. 따라서 내가 아웃도어 재킷을 보고 있다면, 관심 대상이 되는 목표는 “멋지게 보여야지”라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멋지게 보여야지” 또는 “이건 거의 거저나 다름없어, 놓치지 마”, “이런 광고에 영향을 받아선 안 돼”,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명심해”,“이제 너 자신에게 뭔가 선물을 해 봐”등이 된다.
우리 모두는 지킬 박사이자 하이드다. 즉, 모두의 장기 기억 속에는 사회적이고 이타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행동양식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자기중심적인 가치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표와 더불어 쾌락주의적 목표, 공격적인 목표. 사랑과 동시에 증오를 느낀다. 이 모든 목표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나타내며, 이로 인해 다양한 행동의 발현이 가능해진다. 결국 어떤 목표가 행동을 유발하는가 하는 문제는 상황 속 활성화에 의해 좌우된다. 로버트 와이어 와 토리 히긴스, 이 두 사회심리학자는 하나의 특정 기억이 활성화 또는 비 활성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를 배터리 또는 시냅스에 비유했다. 예를 들면, 다비드는 오랫동안 플라스틱의 부정적 영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 오물 때문에 많은 물고기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혐오스럽게 여기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천연자원이 낭비되고 유독물질이 배출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다비드는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한다. 다비드의 경우,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표가 항상 활성화되어 있다. 즉, 목표를 위한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는 상태다. 이를 시냅스에 비유하자면, 목표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소진되며 행동을 유발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강력한 기억의 연결고리, 즉 시냅스는 다비드가 쇼핑을 하기 전 배낭 안에 에코 가방(eco bag. 친환경 백)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게 만든다. 한편, 경제적 행위에 큰 가치를 두는 다비드의 친구 칼레에게는 다비드에게 핵심이 되는 그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칼레는 생태학적 목표를 강력하게 활성화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는 가끔 에코 가방을 잊어버리고 비닐봉지를 따로 구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칼레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이 문제는 칼레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한다.
우리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좇고 있고, 그래서 우리 인격의 구성요소가 되어버린 목표들을 장기적인 목표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 목표들은 아주 활동적이고 행동을 결정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정 상황 속에서 목표가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다지 장기적이지 않고, 우리의 인격 구성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이지만, 마찬가지로 행동을 유발한다. 칼레는 공정한 소비에 관심은 있으나, 이 목표에 항상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비드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후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그의 도덕적 목표를 활성화하고,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갈 때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에코 가방을 집어 든다. 이것은 칼레 스스로가 한 행동이다.
친구의 가치가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됐고 그의 행동이 유도됐다. 칼레는 이 목표가 기억되는 특정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렇게 행동한다. 우리는 이러한 비활성화를 상황 속에서 유발되는 상황적 목표 활성화라고 부른다.
목표가 활성화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목표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강도로 활성화 된다. 우리의 기억체계는 부분적으로 불쾌한 갈등의 무의식적 회피를 도와준다. 그러나 두 개의 상반되는 가치가 지속적으로 번갈아가며 관심 대상이 될 때에는 불쾌한 불화가 발생한다.
한번은 이 제품 쪽으로, 한번은 저 제품 쪽으로 기울게 되면 이 갈등이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두 제품을 모두 사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특정 목표가 전면에 나선다. 예를 들어 윤리적 가치가 어딘가 내 장기 기억 속에 조용히 잠자고 있고, 인색함같이 좀 더 쾌락주의적 목표가 윤리적 가치의 방해 없이 실현될 경우, 나는 갈등을 겪지 않는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렴한 닭을 산다. 반대로 윤리적 가치가 활성화 될 경우, 우리는 유기농 닭을 구입할 것이고 아마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값비싼 도덕
잠시 목표 간의 갈등을 고찰해보자. 많은 도덕적 목표들은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저녁에 공연장 가는 길에 노숙자를 돕는다면, 나는 공연에 늦을 것이다. 유기농 제품은 내 주머니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 저렴한 가른 제품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소비를 포기하거나 이를 꽉 물고 고가를 지불한다. 그리고 그 대신에 어떤 다른 것을 포기한다.
목표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목표 가운데 하나를 단순히 포기하는 것이 있다. ~~~~ 반대로 정당화를 통해 비판을 모면하려고 시도한다.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야”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등등.
-악한부자와 선한부자.
목표들은 허공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 내에서 발생한다. 목표들은 가끔 서로 모순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공존한다. 따라서 규범을 거스르지 않고 보내는 밤들도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인생을 즐기려고 파티에서 친구를 만나는 밤들도 있으며, 이때 종종 조용히 지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칸트에 따르면 ,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수적이지 않고, 이성이면 충분하다.
규범들은 변화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나라들이나 다른 사회적 집단에서는 아주 상이한 행동양식들을 규범적이라고 규정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규범이란 주관적이다. 소유 욕구란 주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상이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 나, 롤렉스
브랜드 제품의 경우 품질이 높은 가격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입음으로써 우월성을 과시한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 적어도 그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해주기를 희망한다.
“내가 이 가방을 들고 있으면,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 볼거야.”
브랜드 한 사회에서 그룹의 귭머을 전달하고, 소비자에게 “나 스포티하고 우아한 사람이야 또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각 사회마다 특정 집단이나 관심 집단의 행동지침을 담고 있는, 특별한 집단 규범이 존재한다. 의상과 소지품은 쉽게 인식되므로, 어떤 그룹에 속해 있으며 어떤 가치를 대변하는지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 객관적 관점 : 우리는 문제가 있다.
- 물건들의 폭발
객관적 관점을 허용하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 우리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비참할 정도로 적게 소유하는 반면, 부유한 사회, 대부분의 경우 서양 사회의 중상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비등한 수준의 다른 사회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처럼 많은 물건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하이퍼-나
프랑스 사회학자 리퍼베츠키는 우리 시대를 과소비사회로 묘사하며, 이는 1890년에서 1950년까지의 현대적 의미의 소비자들의 발견 단계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대량 소비 단계, 이 두 단계로부터 전개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상품을 소유한다고 단언한다.
1880년까지 상품들은 멋지지 않았고, 브랜드 표시 없이 포장되었으며, 대량으로 판매되었다. 볼프강 울리히가 잘 묘사한 것처럼, 이때는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를 들어, 푸른 녹은 뭔가 긍정적인 것을 의미했고,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녹이란 냄비와 같은 한 물건의 긴 일생 길이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포장에 의해 상품에 아름다운 외양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광고를 개발했고 물건들에 브랜드명을 부여했다. 욕구 충족에서 욕구 각성으로 변화했다. 즉, 가능한 한 넓은 계층이 소비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하고자 했다.
-어린이 방에서의 자유
리포베츠키는 심리학적 결과에 주목했다. 그는, 모두가 소유함으로써 누군가가 그 사회의 다른 일원들에게 의존하지 않게 된다면 , 초개인주의 의 확대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예측 불허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전의 에르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마르크아손이 다른 사람들과 아무것도 공유할 필요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사회적 행동을 학습하겠는가? 주스를 가지러 주방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한다. 예를 들어 에르빈이 자전거를 빌리기 위해 필요했던 많은 만남들, 동아리 모임들, 친구와의 모임들을 누가 마르크아손을 위해 대신 해주겠는가? 어디서 그가 능숙하게 흥정하는 법을 배우겠는가? 어떻게 그가 열망한 가치가 있는 물건들과 자원들을 가진 사람들에게 손가락만 한 번 까닥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 법을 배우겠는가? 게다가 자신의 바람이나 욕구가 즉시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과연 그가 포기할 수 있을까? 이 물음들은 정말로 말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기주의가 서양의 종말을 야기하리라는 대답을 미리 염두에 두고 수사학적으로 돌려서 하는 질문들이 결코 아니다.
소파에서 여동생과 빈둥거리는 것보다 개인적인 시간 활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원할 때 언제든지 여동생 옆에 앉을 수 있다. 결국 그는 한 번은 이렇게, 한번은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사랑하는 것이다.
맞춤법을 예로 들어보자. 이전에는 맞춤법에 맞게 모든 것을 올바르게 썼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 좋았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쓰고, 아무도 정확한 맞춤법을 알지 못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죽고 서양이 몰락했는가? 아니다. 우리는 맞춤법 실수에 여유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누군가가 ‘das Ganze"의 g를 소문자로 썼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나 교육 수준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컴퓨터 게임과 콘솔 게임이 실제로 아동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점점 더 많은 연구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게임으로 인해 공격적이고 예민해지며, 우리에게 중요한 실용적인 주제들에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고 한다. 사안을 가치중립적으로 관찰하려고 시도한 최신 연구들은 아동들이 비디오 게임에 몰두함으로써 이들이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특정한 인지능력을 더 강력하게 개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현상들을 불가피하게 진보라고도, 새로운 인류의 재앙이라고도 정의하지 않겠다. 답은 어떤 영역에서 얻을 것 또는 잃을 것이 있는 가를 규명하는 데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로서 무엇이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좋고 나쁜지를 말할 수 없다. 마르크 야손이 변화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내게 상담치료가로서의 임무를 부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학자로서 에르빈의 세대에서 마르크아손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특정 능력들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고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다. 반대로 우리는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체에 속하며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감당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성장비판가들이 우려하는 지구의 파멸이다.
-재앙으로서의 소유
사회적. 정치적 관점에서 물건들의 폭발은 물론 재앙이다. 우리의 소유 욕구로 야기되는 생태 영역 비용들은 엄청나다. 우리는 단지 소유 욕구 때문이 아니라, 이를 통해 자유나 독림 또는 자아실현과 같은 고귀한 목표들을 추구하기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다. 많은 성장 비판가들, 이 가운데 독보적인 세르주 라투슈와 니코 페히는 우리가 지구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매우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변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 파괴할 것이다.
간접손해의 대가를 직접 지불한다면, 그 누구도 뉴질란드 산 양고기나 키위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주 생산자인 여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겠다. 이에 대한 페히의 분석은 마음이 매우 아프다. 특히 다른 어떤 재산보다도 여행을 자유와 교육에 연결하는, 휴가의 세계 챔피언인 우리 독일인들에게는 말이다. 우리는 분명 키위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 여행은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여행은 스트레스로 찌든 우리 영혼을 위한 발삼과 같은 치료제이며,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한다. 내가 이 조사 연구를 시작하면서 시도한 자기 실험의 일부는 동부 독일과 서부 독일 간의 여행 수단을 비행기에서 기차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완전히 순조로웠다. 퀼른에선 자동차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자동차 그 자체를 미학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 이것으로 건강하게 되지도 날씬하게 되지도 않는다.
■ 해결책은 무엇인가?
-적은 것이 많은 것
우성 포기는 고루하고 힘들고 칼뱅주의적이고 촌스럽고 영 재미를 모르는 것처럼 들린다. 포기는 흥을 깬다는 이런 편견 대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한다면, 즉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일관성 있는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스스로를 억제해야 하는 열광적인 육식주의자인 나는 정말로 그들에게 감탄한다.
가끔 포기나 거절은 승리다. 기름진 시간을 살고 잇는 우리에게 포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즐거움과 이성에 ㅂ나할 때는 더욱 그렇다. 월터 미셸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은 4세 미만의 아동 중 아주 적은 수만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은 채 그 앞에서 10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포기에 성공할 경우, 그 보상으로 두 개의 마시멜로를 더 주겠다고 제안했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나이가 더 많은 아동들은 이 과제를 쉽게 해냈다. 아동들이 자라면서 자기통제를 학습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특히 무엇인가가 바로 눈앞에 있고 가격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면 아무런 장애 없이 “그것을 획득하자”라는 직접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목표가 활성화될 것이고, 윤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근거는 뒤로 물러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포기와 자기통제는 힘든 일이고, 어느 정도 정신적 자원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통제 능력은 흔히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학습과 자기통제는 흔히 힘든 일이고 배움에 스스로를 바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요구한다. 내 안에 내재한 게으름은 침대에 더 누워 있기를 원하지만, 일찍 일어나야만 하고, 밖에서는 해가 화창하게 웃고 있지만 도서관에 가야만 한다. 이러한 장애물들이 우리 인생 곳곳에 있기 때문에 행복하기보다는 ‘자랑’ 스러워한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기뻐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에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 또는 제어한 것들에 긍지를 가진다. 특히 우리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단지 언제 어디에서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더 좋은 것을 물려주기 위해, 현존하는 우리를 뒤로 하는 것은 동기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공 여부가 매우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가끔 병에 든 요구르트를 산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다. 더 작은 주택, 덜 사치하는 것,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 것, 육식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물리쳤다고 해서 두 개의 마시멜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포기했다고 해서 우리의 증손녀들이 직접 우리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포기에 대한 보상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고수할 것인가?
-요약정리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과 쾌락주의적 소비는 흔히 목표 갈등을 야기한다. 목표 가운데 하나를 의식적으로 결정함으로써 목표 갈등은 해결될 수 있다. 비윤리적인 목표를 선택하면 우리는 이미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사과와 정당화를 사용한다. 이렇게 목표를 소환한다. 따라서 목표들은 상황에 따라 갑자기 변화하는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사고의 형상들이다. 심지어 특정 목표들이 우리 안에 장기적으로 고정되어 있을 때도 말이다.
2장 소유와 존재 - 무엇이 쟁점인가?
-존재의 어려움
결국 우리는 연구를 통해 존재 목표가 흔히 먼 미래에 있는 반면 일반적으로 소유 목표는 즉각적으로 공략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재 목표가 불명확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소망과 실현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 간격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기꺼이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을 수 있으며 미래에 존재하는 모호한 상태보다 우리가 달성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구체적인 목표들이 기본적으로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 구분은 단순하고 진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물질에 대한 욕구가 우세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소유와 존재는 흔히 서로 바꿔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독일어의 경우, ㅅ어격, 우편물, 제목, 직업, 가격과 관련해 소유뿐만 아니라 존재도 사용된다.
-소유 목표와 존재 목표
자동차를 가지다와 마찬가지로 부자이다도 소유에 속한다. 반면 공격적인 부분은 물질적이지 않다. 만질 수도 맛볼 수도 다른 감각을 통해 경험할 수도 없다.
-소유 수단과 존재 수단
소유 수단을 통해 존재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유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소유는 존재를 위해 필요하다. 소유를 하위에 두는 것은 철학에서의 오랜 전통이다.
존재 수단이란 물질적 재산 없이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무엇이다.
물질적으로 걱정 없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선생이 되려고 한다면, 소유 목표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이성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그는 존재 목표를 세운 것이다. ‘전자공학자’라는 존재 목표를 가진 한 학생이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해야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이 학생은 후자를 소유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중요한 경험을 쌓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를 경험의 두 가지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것을 소유 실존양식과 존재 실존 양식이라고 명명했다. 이 둘은 결코 절충됨이 없이 상반되며, 예외란 없다. 프롬에 의하면 존재는 소유의 반대이고 외양의 반대이다. 존재 실존양식은 학습, 기억, 발화, 대화, 지식, 신앙, 사랑을 그 내용으로 하고 물질적 또는 강제적 측면과 절대 중복되지 않는다. 소유 실존 양식은 물질적 재산의 취득이나 소유뿐만이 아니라 친구를 가지기를 원한다. 지식을 가지기를 원한다. 추억을 가지기를 원한다와 같은 것들, 또한 탐욕, 보존, 소유와 관련된 모든 것, 그리고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결국 소유와 존재는 항상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소유 목표와 소유 수단의 선악이 분명하지도 않다. 맥락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난하거나 재산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고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고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무엇인가를 소유해야만 한다. 또한 기본욕구가 충족됐다 하더라도, 화가에게 그림붓이, 학생에게 노트북 컴퓨터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겐 분명 물건들이 필요하다. 자신의 재물을 완전히 없애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이론을 정립했던 에리히 프롬은 견해의 예견 능력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은 사물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며, 특정 행위 보다 선행하는 관점이자 견해다. 당시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견해를 알면 그의 행동을 예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흡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화중 공격적인 어투를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선한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관찰해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흡연자는 금연하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갈등은 무의식적으로 내재하는 공격성에 기인할 때가 적지 않다.
누군가가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존재목표), 순수하게 벌이만을 목표로 일을 하면서 원단을 구입할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소유 수단인 ‘돈벌이’는 이 경우, 자아실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책에서 나는 ‘소유하기 위해 (소유목표) 재산을 취득한다(소유수단)와 그 재산(소유수단)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존재목표)는 구분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프롬의 제한적인 소유와 존재의 대립 관계를 뛰어넘는다. 프롬과는 반대로 나의 분석에서 소유와 존재는 서로 배제하지 않는다. 소유는 많은 경우, 무엇이기 위한 또는 무엇이 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은 왜 소유하기를 원하는지, 존재의 어떤 형태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3장 소유의 양상
사람들은 선물로 받았거나 취득했거나 스스로 생산했거나 유산을 상속받는 등 합법적 범위 안에서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유의 심리학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소유했다고 믿는 경우들도 배제하지 않는다.
-소유 욕구
소유욕구란 물질적 재산을 취득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다. 소유 욕구는 가장 보편적인 소유 목표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동기들이 존재한다.
배고픔과 같은 욕구, 질투의 감정, 욕망, 광고 전략에 의한 영향 등이 여기에 속하며, 존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유 수단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자아실현이나 호기심, 창의성도 마찬가지로 소유 욕구의 동기가 될 수 있다. 볼프강 울리히는 소유 욕구를 소유 의무로 대체했다. 이때 소유 의무는 사는 데 필수적인 모든 것을 다 그 내용으로 한다. 반면, 소유 욕구는 그 외의 사물을 포함한다. 프롬도 기능적 소유(기본 욕구의 충족)와 주로 욕망 안에서 돌변하는 인간 특성에 의해 규정되는 소유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주로 후자에 주력했고, 특히 그 부정적인 결과를 지적했다.
- 탐욕과 낭비
나는 탐욕을 무엇인가를 획득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이해한다. 대량의 물건 축적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위해 물건을 획득하며, 이때 그 물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하는 활동을 탐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매년 천백만 톤의 음식물이 쓰레기가 된다. 그중 3분의 2는 옂너히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 국민 한명 당 내보내는 쓰레기가 82킬로그램에 달한다. 옷의 경우도 전혀 물러섬이 없이 매년 더 고조된다. 10년 전보다 두 배 더 많이 옷을 사들이고, 75만 톤이 쓰레기로 배출된다. 그중의 반은 소각되는데 대부분은 여전히 입을 수 있는 옷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로 필요하지도 소비하지도 않으면서 구입한다. 나는 이러한 소비태도를 탐욕이라고 부른다.
-충동구매
충동이란 계획하지 않은 행동, 조절하기 힘든 행동, 감정적인 자극에 의해 유발된 행동을 말한다.
최근 몇몇 동료 학자들은 직관을 미덕으로 보며, 심리학 범주 안에서는 즉흥적인 행동양식이 평판만큼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 즉흥적인 결정이 본인의 고유한 감정에 매우 근접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병적인 구매 행위
충동구매는 자연스럽게 병적인 구매 행위로 변한다. 병적인 구매 행위의 경우, 구매 당시에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지만 나중에 구매한 물건을 보면 기뻐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략 7퍼센트의 사람들은 병적인 구매자, 다르게 하면 쇼핑 중독자에 해당된다.
- 보관, 수집, 집착, 절약
우리는 여러 물건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진 아널드와 어설라 랭이 2007년에 발견한 이 어이없는 결과에 주목하라. 이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중산층 가정에 ㅅ고한 스물 네 명의 응답자 중 열여덟 명이 불필요한 잡동사니들을 모아두기 위해 두 개에서 세 개의 차고에 해당하는 면적을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보관한다. ~~~ 흔히 탐욕에서 시작돼 보관으로 끝난다. 우리는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버리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버렸을 물건들로 집안이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소유했던 무엇인가를 다시 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애의 합당한 근거
나는 보관을 절약, 저장, 보호, 축적의 극단적인 형태로 본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와해된 통제 불가능한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형식에서는 분명 유용한 행동이다. 긁는 것과 유사하다. 가려울 때 긁을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긁는다면 모든 것이 지나치게 되어 건강을 해친다.
실험에서 이러한 특정 행동을 지시한 이유는 선조들이 흉년 후 겪었던 상황을 상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이미 가을에 창고가 텅 비도록 실컷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는 가난을 의미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제했다. 배고픔을 참고 종자를 보관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그러므로 저장이란 그렇게 나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되면, 그래서 장기적으로 자유를 제한한다면, 가장 궁극적인 목표에 지장을 준다면, 지나치게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면, 정상적인 보관은 극단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결국 비기능적인 것이 되고 만다.
-물질주의
철학적인 전통에서 물질주의는 간단히 말해 사물과 사물의 움직임만이 존재하는 상태로 묘사된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많은 영혼들을 한 가슴속에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최신 연구들은 물질주의적 견해가 모든 나라에서 비난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여러 곳에서 그 무엇도 행복한 구매를 가로막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리히 프롬 외에도 많은 심리학자들이 물질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상대로 양심 없는 태도로 다가온다고 주장하며, 물질주의자에게 어떤 무언가가 신성하다는 점을 거의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나 또한 앞에서 가끔 물질주의를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구매 행위와 동일시했다. 그러나 이 점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나 또한 약간 비이성적인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빗물질주의적 견해와 윤리적인 구매 행위 사이에는 당연히 크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무소유, 빈곤, 결핍
심리학에서 빈곤은 삶에 필수적인 자원의 객관적인 결핍으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결핍의 주관적인 경험으로도 이해된다. 젊은 엄마는 유행되는 고가의 부가부 유모차 대신 할인 매장 유모차를 살 능력밖에 안 될 때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회적 비교가 빈곤의 감정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빗물질주의적인 자원과 연관해서 결핍을 느낄 수 있다. 교제, 자녀, 신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다. 모든 결핍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한, 스트레스 및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된다.
-중복
-소유에 대한 평가
자기중심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평판이 소유를 따라다니지만, 부정적 평가만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더욱이 솔직한 자기 관찰을 통해 소유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돈과 소유가 얼마나 확고한 안심을 주고 독립성을 부여하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지나치게 많이 쓰면, 사치나 탐욕으로 봉니다. 지나치게 아끼면, 보관에 가까워진다. 우리 대부분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지만, 오히려 탄식은 높아간다. 도대체 우리는 왜 즐기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안이란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과 페히, 라투슈와 같은 경제학자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포기인가? 포기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
이성과 도덕, 필수성이라는 관점에서 상품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기본적인 구분은 생필품과 사치품의 구분이다. 이는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이틀 동안 사막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당연히 물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고슴도치 안에 들어 있는 목욕거품이 필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학자의 관점일 뿐 심리학자의 관점이 아니다. 어쩌면 웃고 있는 고슴도치가 우울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기분전환제가 될 수 있다. 주관적으로 더 중요한 물건이 될 수 있고, 게다가 삶에 필수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유령의 손이 벽에서 나와 나란히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림부르크 대주교 관저의 두 변기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이는 확실히 과함과 고가를 반영한다. 독신자 숙소의 일반적인 기준과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도 스물네 명 이상의 사람들을 위해 요리한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니의 24피스로 구성된 고가의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부터 사치라고 말해야 하는가를 ㄱ려정하는 것은 어렵다.
몇몇의 동료들과 함께 나는 더 나아가 삶에 필수적인 것 외에 추가적으로 제공되는 상품, 평균치를 웃도는 고가의 상품, 과도하게 제공되는 상품, 평균치를 웃도는 고가의 상품, 과도하게 제공되는 상품을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윤리적인 상품과 자기중심적인 상품을 구분하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돈은 위급한 경우 , 사회적 교재의 결핍을 상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내가 고립되었을 때, 아무도 내 일상의 해결을 도와주지 않을 때, 돈은 내 외로운 ㅅ람의 짐을 덜어준다. 그러나 돈은 매우 자주 스스로 목적이 된다. 어려운 시기를 위해 절약하는 것이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곧 비 기능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사회학자인 리프 밴 보벤은 재산을 물질적인 것과 체험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물질적인 재산은 우리가 소유하기 위해 구입하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건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것들을 장기간 보관한다. 여기에는 그릇, 자동차, 전자제품, 액세서리, 가구와 같은 것들이 속한다. 체험적인 재산은 경험을 쌓기 위해 우리가 돈을 투자하는 것들이다. 이때 이것을 경험재산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전형적인 경험 재산은 레스토랑 방문, 휴가, 연수, 시내 관광 등이다. 밴 보벤은 연구를 통해 체험적 재산이 물질적 재산보다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구분 또한 관찰자의 눈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산다. 이때 소유는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한 또는 존재를 위한 수단이다. 내가 경험을 위해 사물을 이용하는가 또는 그것을 소유로 간주하는가 하는, 궁극적인 차이가 나는 질문은 사회심리학자들에겐 주관적인 평가이다. 밴 보벤은 ㄱ여험에 대한 추억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사물에 대한 추억보다 더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개념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석 ㄲ초병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경험한 무엇,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다.
4장 존재의 양상
존재 목표는 심리학에서 다양한 세부 분야로 나뉘어 있다. 사람들은 창의적이거나 열려 있거나 지적이기를 원할 수 있다. 더 사회적이고 급진적이고 저돌적이기를 바랄 수 있다. 더 나은 아들, 멋진 지도자, 최고의 주자가 되기를 원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말이나 아메바처럼 무언가 불가능한 것이 되기를 꿈꿀 수도 있다. 물질적인 목표를 내용으로 하지 않는 존재 목표는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상태일 수도 있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학습, 사람, 경험, 추억, 프롬이 전형적으로 존재양식이라고 명명한 것들 또한 여기에 속한다. 프롬과 많은 성장 비판가들의 시각처럼, 소유의 반대로서의 존재를 그 내용으로 할 수도 있다. 물질주의를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포기하는 것, 소유 욕구를 향한 부정, 나눔, 기부, 사회적 삶에 대한 관심 없이 존재는 불가능하다. 소유와 반대로 존재 목록은 정말로 색체가 다양하다. 또한 추상의 정도가 다른 완전히 상이한 상태들과 행동 영역들을 고려한다. 존재는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포기와 자발적 간소함
마하트마 간디는 시계, 안경, 샌들, 접시, 사발, 이 다섯 가지 물건만 소유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블로거 데이브 브루노는 단지 100개의 물건만으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본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인기와 인터넷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아프리카에서 수녀로 살았고 지금은 트리어에서 노수녀님을 돌보고 있는 우리 이모도 역시 소유한 것이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존경을 보낸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포기가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발가벗은 채 숲을 방랑하며 뿌리를 찾아 땅을 파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간적인 단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발적 간소함은 여러 복지사회 안에서는 잘 고갈되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사회적 삶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노동을 적게 하려는 생활양식이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우며 생태계를 좀 더 의식하며 살기 위해 직장과 집을 버릴 각오도 포함된다.
- 나눔, 교환, 대여, 기부
기부는 자기 소유의 일부를 보상이나 답례 없이 필요한 사람에게나 공익단체에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나눔은 보답한다는 생각과 특정 재산을 어떤 집단과 공유하려는 생각을 포함한다. 대여의 경우, 시간을 나누는 것이고, 교환의 경우,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소유를 서로 지속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구의 99퍼센트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중 아주 적은 일부만을 소유했다. 필요에 따라 이웃에게 손수레나 냄비를 빌렸고, 오븐에 구워달라고 빵 반죽을 제빵사에게 가지고 갔다. 80년대 초소비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비로소 거의 모든 물건들이 개인 소유가 되었다.
본래 의미로서의 기부는 나눔이나 교환 또는 대여와 달리 놀랍게도 친사회적 행동이다. 인간에게 완전히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이 관점을 대변한다. 즉, 기부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득을 취함이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랑받고 싶어서 돕는다면, 또는 다른 사람도 위급 상황에서는 나를 위해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려면 나 또한 행동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돕는다면, 이것은 이타적이지 않다. 기부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느 경우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고, 규범과 일치하는 행동은 사회로부터 통상적으로 보답 받는다고 하는 생각에 아주 가깝다. 기부를 미래의 위급한 시간을 위한 선경지명적인 투자로 간주한다면, 내가 네게 무언가를 주면, 언젠가는 확실히 그것을 돌려받겠지 라는 상호성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다면, 기부의 행동에서 대여의 행동으로 바뀐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거라는 의도가 없는 기부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는 심리학자들도 대답하기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 행동의 동기를 우리 자신도 항상 아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거의 비이성적인 일로 보인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헬 지역 아이들을 위해 돈을 모아 기부하기 위해서 당신의 이웃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상상해보라. 그를 별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소한 불합리는 우리가 본래의 의미 그대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치게 가지고 있는 돈을 단지 다른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때 남아도는 것 중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뿌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기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확실치 않지만, 기부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확실히 능력의 성격을 나타낸다. 즉, 우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영역에서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낸 성과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현시점에서의 경험
존재양식은 현시점에서의 삶이다. 그러나 인간의 저주와 축복은 미래 안으로 들어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이고, 과거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인가 하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이 질문을 흔히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묻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에게 존재란 미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을 걱정하는 일이 잦다. 과거 또한 찬란한 햇빛처럼 보이지 않는 일이 많다. 과거의 몇몇 사건들을 불쾌한 마음으로 돌아보니 말이다. 다음을 실험해보라. 무엇보다 집안 행사, 시험, 발표, 면접 등등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지난 며칠 잠을 설쳤는가? 지난 며칠 과거에 한 행동을 곱씹은 적이 있는가? 무언가를 후회하거나 무엇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누군가가 한 말에 화를 냈는가? 미래 또는 과거에 대한 생각은 현시점에 서 있는 우리의 기분을 망쳐놓을 수 있다. 지금 한 번이라도 이 순간에 집중해보라. 책을 잠깐 밀치고 자기 안에 들어가 느껴보라. 자신을 잘 가지고 있는가? 잘 지내는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느끼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이제 정말로 긴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당신을 상상한다. 당신이 편하게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을, 어쩌면 당신은 손에 차 한 잔을 들고 있거나 발아래에 개가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치료 ㄱ여험을 통해 내가 배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이 순간을 스스로 분명히 의식한다면, 즐겁게 ㅇ니식한다는 것이다. 배부르다, 빛이 있다, 따뜻하다, 우리의 기분을 망치는 것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 생각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발로 미래에 서 있고 또 다른 한 발로 과거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대해 소변을 보지요.“ 형태심리학의 괁머에서 볼 때 , 현 시점에 대한 자각은 인격 발달에서 중요한 단계다.
마음 챙김은 명상 기술이다. 요즈음 이 기술은 우리를 즐거운 현재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치료학과를 벗어나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다.
마음 챙김이란 스스로에게 또는 현시점에 있는 하나의 사물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이때 아무 것도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느낌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 특히 사건들을 일단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훈련 목표는 현시점에서 잘 지내는 것과 이러한 상태를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소망들은 마치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서는 당연히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미래에,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을 갑자기 인식하게 된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바나나의 맛을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하고, 이전에는 모두 똑같이 보였던 꽃에 안아 있는 새들 속에서 다양함을 발견한다. 우리는 갑자기 해가 비치고, 감기에 걸릴까 봐 두려울 정도로 비가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격발달, 정체성 찾기, 의미 찾기
-종교와 영성
솔직히 말하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의미가 신앙에 있다고 자판을 두드렸을 것이다. 심지어 신앙인들은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 이미 성서 안에서 구체적인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사회적 삶과 직장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는 달리, 신앙은 좀 더 나이든 사람들에게 닻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생의 의미와 신앙심 사이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
심리학자 마이클 매컬로와 브라이언 윌리비에 따르면 신앙심에서 중요한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자각이나 그 존재와의 상호작용을 인식한 데서 비롯한 인지와 감정과 행동이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인간적인 문제들에서 초의미적인 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제한다. 그 힘이 개입하고 벌을 가하고 도울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앙 단체의 일원이며, 예배, 기도, 성찬식과 같은 다양한 특정 종교 의식에 참가한다.
영성의 경우, 영적인 사람들은 세속적으로 자신에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저편에 있는 초월을 추구하며, 개인적으로 뭔가 신성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적인 맥락 밖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내 학생 가운데 여럿은 자신들은 신을 믿지만 “교회와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상기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교회의 보호가 없는 이러한 신앙이 다른 많은 종교단체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많이 기도하고 믿고 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천국으로 가는 입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인데, 이것은 특히 교회는 몸이고, 몸의 부족한 부분은 전체를 약하게 한다는 바울의 생각에 기인한다. 독주하는 사람들은 자신만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선체의 절단처럼 다른 신앙인들에게도 손상을 입힌다.
신앙심과 영성은 사회심리학 범위 안에서 자세히 연구되었다. 자발적인 신앙심은, 예상한 바대로,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반대로 의무나 사회적 규정으로서의 신앙심은 긍정적인 효과가 적다. 흔히 생활 영역의 과도함은 왜 기능적이지 못하거나 오히려 분명한 단점이 될까? 우리는 소유의 경우에서, 보관은 언젠가는 제약이 될 수 도 있지만 절약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사회적 삶과 노동
-여가, 파티, 취미, 성생활
-자연과 예술
-무 존재, 공허, 지루함, 정신적, 감정적 빈곤
-수단과 목표로서의 존재와 소유
5장 우리는 왜 소유하려 하는가?
-욕망
어떤 행동 뒤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학습된 다른 동기들이 흔히 존재한다.
과거의 어떤 싲머에서는 가족들에게 의미가 있었을 행동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기능없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는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는 행동 양식들은 환자의 출신 가정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탐욕에 대한 몇몇 근거를 이른바 ‘가족성 발현에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자전거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5유로를 벌금으로 내야만 했다. “상상할 수 있어요? 5유로라니! 빵 하나 값이라고요! 완전히 나를 바보로 본 거예요! 그리고 경찰은 정말 개새끼들이예요!” 이 멋진 여성은 물론 비싼 고급 빵을 살 능력이 충분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유로 때문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이 화나는 일이 우리 대화의 반을 차지했다. 본래는 자신을 때리는 남편 때문에 왔지만 말이다. 그녀의 경우, 출신 가정에서 동기를 찾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녀를 움직이는 힘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빈곤과 노숙자로서의 삶, 불안감, 굶고 있는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 등 때문에재산에 집착하게 되었고, 일과 절약, 재산 축적이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 젊은 여인은 모두가 배부르게 사는 현재에 살고 있다.
-질투와 명예 추구
소유 욕구를 부추기는 동기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질투다.
-쾌락주의와 소비 욕구 - 두 개의 기본 동기?
사람들은 물건을 즐기기 때문에(쾌락주의적 기능) 또는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공리주의적 기능) 그것을 갖고자 한다.
이전에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기능적이지 않는 행동양식들이 노인 세대 속에 계속 살아 있다. 우리 몸에 고 칼로리 대신 저 칼로리가 필요하듯, 지금 세상은 생산과 소비의 위안이 필요하다. 이러한 행동양식들은 구매 시 기쁨을 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필요에 의한 소비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동기들이 필요하다. 전쟁 세대로부터 내가 얻은 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본 욕구를 수면에 떠오르게 하는데, 이 욕구는 바로 안전이다.
-안전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 (향상초점형 인간과 예방초점형 인간)
모든 사람들은 안전감이 필요하다. 안전은 에이브러험 매슬로의 유명한 욕구 피라미드 안에서 배 고품, 목마름 등과 같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바로 발현되고 충족되어야만 하는 기본 욕구다.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회적 목표나 자아실현의 목표가 실행될 수 없다.
객관적으로 사람들은 불안에 대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 채 주관적으로 불안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위의 고찰은 아주 비 심리학적으로 느껴진다.
불안감은 오늘날 심리학에서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기본 욕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상태,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상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믿는 상태, 이 모든 발생 가능한주관적인 상태를 포함한다. 강의실에서 한 여학생이 하품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주관적으로 불안해 진다. 마찬가지로 크루즈 여행과 같은 멋진 이벤트를 앞두고도 주관적으로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새로운 상황 속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이 다음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내일은 어떻게 시작할지, 새로운 도시에서 잘 지낼지, 내가 여행할 미지의 나라가 마음에 들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일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옌스 선생, 인생이란 어차피 모르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요” 그럼에도 나는 거절했다. 박사학위 후 2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고, 그 도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음에도 말이다. 콜롬비아 대학에서의 평생 일자리를 수락할 배짱이 없었다. 이 예는 안전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가를 보여준다. 안전은 우리의 경력과 인간관계를 결정한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고 있다. 많은 국제 미디어들은 이것을 비이성적인 독일인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보았고, 그 이후 불안에서 기인한 잘못된 결정의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된다.
불안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결정하는, 매우 많은 서로 다른 행동양식에 광범위하게 동기를 부여한다.
토리 하긴스는 자신의 영향력 있는 조절 초점 이론에서 안전과 성장은 모든 사람들이 충족되기를 원하는 두 가지 기본 욕구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호와 안전, 환경에 대한 확실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 외에도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환경과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욕구들에서 사람들이 초점을 두는 목표들이 깨어난다. 토리 히긴스는 안전에 대한 욕구에서 발생하는 예방초점과 성장을 향한 욕구를 기본으로 하는 향상초점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이 두 가지 초점을 인격적 특성으로 발전시켜나간다. 즉, 많든 적든 고도의 향상초점이나 예방초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향상초점의 인간의 경우, 그들의 목표는 이상과 소망과 희망이 중심이다.
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향상초점형 사람들은 창조적이고, 발생한 사건에 대해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대응하며,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예방초점형 사람들은 반대로 이상보다는 의무를 준수하는 데 신경을 쓴다. 이러한 사람들은 분석적이고, 조심스러우며, 느리다. 또한 두려움이 많고 위험부담을 무릅쓰기를 꺼린다.
그러나 안전과 성장에 대한 욕구는 상황 속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초점은 성격적 특성만은 아니다. 경제 위기와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재난이나 석유파동은 즉흥적으로 예방초점을 유발한다. 직장에서의 불안, 위협적인 실업률 또는 지속적인 비난이나 불안 속에 방치되어 책임을 떠안게 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편,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상황, 특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성과가 나타나는 상황, 위험을 무릅쓴 행동이 보상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이상을 추구하는 향상초점이 발현된다. 매슬로의 관점과는 반대로 안전과 성장은 종종 관찰자의 시점에 놓여 있고, 따라서 객관적일 수 없다. 예방초점형 사람들의 경우, 생일 파티와 같은 멋진 사건에서도 두려움이 생겨날 수 있다. 케이크는 충분히 샀나, 장식이 손님들 마음에 들까, 다 깨끗한가? 반대로 향상초점형 사람에게는 새롭고 낯선 상황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보여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몇몇 이론들에서 안전에 대한 욕구와 물질주의와의 상관관계가 발견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소유란 그릇된 생각이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잘못된 전략이다.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무엇인가를 소유하지만, 이로 인해 실제로는 소유에 의지하게 될 뿐, 그 일부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을 끊임없이 안고 살아야만 한다. “내가 나인 것이 나이고, 내가 가진 것이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고, 나의 안전과 나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없다.” 안전에 대한 욕구의 일부는 소유를 통해 충족된다. 자신의 소유를 알면, 확실히 안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롬의 존재 양식은 움직임을 의미하는 반면, 소유 양식은 정체 상태를 뜻한다. 존재 상태에서는 학습, 경험, 새로운 것의 발견이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따라서 프롬에게는 소유, 지위, 종속 관계를 다 내놓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붓다와 같은 사람이 영웅이다. . 예수 그리스도, 오디세우스,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많은 다른 영웅들은 거의 무에 가까울 정도로 적게 소유함으로써, 또한 새로운 땅을 발견하기 위해 길을 나섬으로써 자아를 실현했다. 이 역시 좋은 삶을 위해 안전하지 않은 지역에 발을 내딛는 위험을 기꺼이 무릅쓴 행동이며, 사람들을 단념시키는 불안이다. 조절초점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것을 환영하는 이런 영웅들은 향상초점형이다.
내 생각에 소유 양식에 대해서는 일말의 호감도 가지지 않는 프롬도 보관에는 열중했을 것이다. 그는 기능적 소유(생존을 위한 소유)와 인간 특성에 의해 규정되는 소유(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그릇된 사회화에 근거한 소유)를 분명히 구분했다. 그러나 주로 후자, 즉 탐욕에 전념했다. 탐욕은 단지 소유를 위한 소유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반드시 보관 또는 낭비에 이르게 된다.
기능적 소유를 안전을 위한 동기와 연관시켜도 무방할 듯 하다. 위기에 처하면, 무엇인가가 정말로 반드시 필요하다면, 음식이나 물 또는 머리 위를 덮을 지붕 같은 것들을 가져야만 한다면, 우선 소유에 의해 기본적으로 안전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최소한의 욕구(기본적인 안전을 흔히 이렇게 부른다)가 충족되자마자, 다른 것들, 즉 자아실현, 도덕 미학과 같은 최고 목표들이 등장한다. 브레히트(독일 시인이자 극작가)식으로 말한다면, 먼저 먹는 것이 오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것이 온다.
우리가 숲과 들판에서 살았던 시절에는 아마도 낯선 사람과 사건에 우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니, 새롭고 낯선 것들을 언제나 불신을 가지고 대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내던져지는 요즘 세상에서 거부하는 경향은 당연히 기능적이지 않다. 새로운 상황들과 제품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계속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서로가 다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에 살지 않는다.
내가 함께한 여구에서 예방초점적인 실험 대상자는 실제로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사건들보다 선호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반면에 향상초점적인 사람들은 후자(새로운 전자제품)를 선호한다. 네오포비아(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 ※편집자)를 관찰해보면, 불안감이 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두려움과 걱정이 적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마음을 빨리 연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궁극적인 불안일 것이다. 최신 연구들은 죽음을 생각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기꺼이 신용카드를 긁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위협적인 상황을 혼란으로 인지할 수 있다.
죽음에 의해 자기 가치가 흔들리면, 나는 단지 동물에 불과하며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 경우, 나를 더 좋게 생각하기 위해 손목에 멋진 크로노미터를 차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 한순간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생물적 존재가 가진 육체적 한계를 부인하기 위해 상징적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적 행동 이면에 숨은 동력이다”라고 안트는 주장한다.
결국 우리의 재산은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한계에 이른 지 한참 후에 우리의 성적표가 된다. 아버지가 내게 쓴 편지들, 내게 선물로 준 바이올린, 우리의 손을 닦아주었던 비누, 이 모든 물건들로 인해 아버지는 내게 불멸의 존재가 된다. 우리의 소유는 상징적으로 말해 이렇게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죽음을 극복한다(※ 작가가 너무 나가는 것 같다.). ~~남겨진 물건들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기 확장으로서의 소유
나는 심리학자로서 고유한 자기 가치와 인간 존엄성의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사치품이 보잘 것 없는 껍데기가 되도록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질주의에서는 지갑과 시계, 목걸이가 발가벗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우리는 소유 재산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이기를 원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좋은 대접을 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우리의 가치 체계에 주목하게 만든다.
- 소속감과 특별함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제
통제력을 가지는 것, 권력을 가지는 것, 일단 이것은 호감이 가게 들리지 않는다.
우울증 연구가 마틴 셀리그먼에 의하면,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이 우울증의 주요 요인에 속한다. 쥐를 가지고 행한 실험에서 쥐들에게서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자 우울증 증세가 유발되었다.
사르트르는 통제를 소유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는 순간, 그것을 우리에게 소유된 것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만든 물건들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소유 재산들을 특별한 정도로 우리에게 속해 있다고 간주한다. 구매와는 달리 스스로 물건을 만들 경우 사물의 형태가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셔먼은 양로원에 가지고 갈 물건이 많은 노인일수록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자극
-요약정리
나는 이 장에서 기본 욕구와 동기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과 연구결과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물질주의와 소비를 유발하는지를 고찰했다. 그 안에 욕망과 질투와 쾌락주의와 같은 자명한 감정들과, 통제와 안전, 자극, 소속감, 특별한, 자기 확장을 향한 사회적 목표와 같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 동기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당연히 중복되며, 원한다면 대부분을 쾌락주의적 동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 쾌락주의란 좋은 것을 획득하고 나쁜 것을 회피하려는 생각이다. 결국 잘 지내기 위한 것이고 재물을 통해 기분을 향상하고 싶은 것이다. 자극과 자기 확장과 소속감과 개인적 특별함의 실현은 소유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행복의 상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불안, 통제력 상실과 자존감과 같은 부정적인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한다.
이때 욕구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불안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를 들면 통제력 상실이 그 원인일 수가 있다. 한 예로 우리가 새로운 나라로 이주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세금, 주거, 직장에서의 행동양식에 대한 통제력을 순식간에 상실한다. 통제력을 획득하면, 불안이 감소한다.
소속감은 물론 통제력을 상승시키고 불안감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이유에서, 또한 외국인들의 경우, 다수가 속한 집단으로 영입되는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주로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결합한다.
6장 우리는 왜 존재하려 하는가?
이 질문은 황당하게 들린다. 당연히 우리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상황의 필요에 따라 여럿의 나 자신 사이를 오간다.
이 장에서는 무엇이 우리를 특정 존재 상태로 이끄는가, 또 무엇이 존재 수단을 사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을 다룰 것이다. 내가 소유에 일치시켰던 많은 동기와 욕구가 또한 존재를 동기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쾌락주의
많은 존재 상태들은 분명 재미를 주고 옳다고 느끼게 한다. 하이킹, 운동,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회 출석, 파티, 섹스, 직원들을 고무시키는 사장 되기,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그 자체로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존재 상태의 가치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재미와 중요성으로 굿어된다. 존재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또는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항상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그 자체로 만족하고, 마치 짐을 던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들거나 자랑스러워한다. 이것은 재미와 다른 것이다. 어떤 것은 분명 중요하고 가치있으며, 그 때문에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노력하거나 행동한다. 그것이 재미를 주지 않아도 말이다. 훈련이나 시험공부는 이러한 활동이다. 가끔 좋은 아들이 되는 것도 이에 속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순종하는 일이라면...). 기부나 자원봉사와 같은 다른 이타적인 행동들도 반드시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옳은 일을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를 행한다.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는 활동은 대부분 사회적인 규범에 의해 결정 된다. 우리는 옳은 것, 좋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정한 후에 가치 체계를 발달시킨다. 또한 사회적인 규율 안에서 움직일 때 좋은 느낌을 받는다.
가치와 그 가치에서 유발되는 행동들이 내재화되었을 때에는 행하기가 귀찮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가 아이인 내게 식탁에서의 예절을 가르쳐주면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강요가 있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배우는 과정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재미도 외재적인 근원과 내재적인 근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신앙을 예로 들어보자. 고든 올포트가 구분한 바에 따르면, 내재적인 신앙은 사람들이 종교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고, 외재적인 신앙은 사람들이 다른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내재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신앙인은 신앙 집단의 목표를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안에서 신과 교재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영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 외재적인 신앙인은 다른 목표를 추구한다. 예를 들면, 교회를 방문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직업적인 이점을 얻기를 바란다. ‘케네스 퍼거먼트‘가 신앙인의 장단점이란 주제를 고찰하고 종합한 바,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신을 섬기기 위해 교회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목표들을 좇는 사람들, 즉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들보다 일상에서 두려움과 우울함이 덜하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예배 뒤 공짜로 제공되는 아침 식사 때문에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예배에서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쾌락적인 본성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이유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외재적인 신앙은 심리학적 건강에 내재적인 신앙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순수하게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교회에 간다면 모든 것이 덜 만족스러울 것이다.
-소속감과 특별함
많은 존재 목표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픈 바람을 포함하며, 이미 언급된 소속감을 향한 욕구들에 의해 움직인다.
신앙심도 사회적 소속감에 의해 동기가 유발될 수 있다. 독일의 교회들은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이것은 노인들이나 많은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다. 찬송, 기도, 헌금과 같은 공동 의식들이 집단에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설교를 통해 초월적 권력이 언급되면서, 사람들은 올바른 집단을 찾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기재는 다른 존재 목표들과 관련된 행동들에 동기를 부여한다. 산책, 음악, 파티, 명상 강습, 운동 등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이런 활동을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그것에 대한 기쁨을 서로 교환한다. 규범에 따라 함께 해야 되는 일들을 혼자 감행할 때에는 때로 사회적인 비난을 사기도 한다.
직업 때문에 나는 종종 혼자서 밥을 먹거나 콘서트에 가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을 받곤 한다. 혼자서 레스토랑 구석에 앉아 먹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집단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집단적 사회에서 더욱 이목을 끄는 행동들이다. 아시아 지역에 갈 때면 가끔 음식을 호텔 방에서 주문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부단스럽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 여기보다 더 중요하고, 모임을 위협하는 규범의 파괴는 엄격하게 처벌받는다.
-자아실현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안에서 자아실현은 중요한 동기다. 철학에서는 이 개념이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개념에서 자신과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소망을 관찰하는 반면, 매슬로와 인간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원래 개인에게 가능했던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꼭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욕구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것은 상당 부분 개인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성공하는 관리자가 되는 바람과 연결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사려 깊은 교사가 되는 바람과 연결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찰 방법은 당연히 어떤 잠재력이 한 사람에게 숨어 있는지를 어떻게 사람들은 알 수 있는가, 또한 개인에게 고유한 재능은 무엇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낳는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하지 못하는 것들, 예를 들면 집중력이 부족하다, 식물 키우는 데 영 재주가 없다, 요리를 못한다, 운동신경이 없다, 음악성이 없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실패를 비웃고 심지어 그로 인해 우리를 처벌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자신의 무능력을 믿게 되고 수행 과제와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자신의 무능을 확신하면, 이 분야에서는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이지 않고, 이러한 노력 부족으로, 결국 이 분야에서 정말로 부족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단지 연습 부족이 원인이기 때문에, 연습을 통해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거대한 보물 상자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상자는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과 나쁜 경험 속에서는 그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깨닫는 순간, 큰 해방감을 맛본다. 항상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한번 시도해보라. 그러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끄집어내는 일을 도와줄 훌륭한 선생님도 잡아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일 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두 번째 문제에 대한 근거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일에는 좀 더 여지를 두어야 한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자기 결정 이론에서 이것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재적 동기가 외재적 동기보다 더 강력하고 더 나은 결과를 초래하며 기쁨과 재미를 생산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그러므로 흔히 우리의 총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는 직업의 경우,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일을 선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된다.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하라. 그러면 인생에서 단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 -공자
사실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대부분의 규범과 기준과 규격은 결국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
데시와 라이언이 주장한 바에 의하면, 내재적 동기는 단지 자기 결정의 주관적인 감정이다. 우리가 이 감정을 가지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행할 동기를 부여하고, 미래 계획을 허락한다. 인간은 본능과, 현시점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증폭 기제에 의해서만 유도되는 동물이 아니다. 내재적으로 느끼는, 무언가를 원하는 욕구와 무언가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이면 충분하다. 새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기후가 되고 보급자리를 짓기 위한 자원이 충분히 주어질 때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 반면, 인간은 집을 짓겠다는 의미잠 있으면 호르몬 분비와는 상관없이, 또한 지금 이 순간 재정적인 수단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건축계획을 세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년 동안 계획할 수도 있다.
진화적으로 보면, 외부적인 유발 인자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큰 장점을 가진다. 우리 인간은 이를 통해 가뭄의 시기를 이해 및 극복하고,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환경을 넘어서 더 멀리 바라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존재 목표 속에서 소위 자신을 발전시키고 내재적인 목표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갈망을 엿 볼수 있다. 우리는 운동을 하거나 채식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인격을 위해 노력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콘서트에 갈 때, 흔히 외부로부터의 가시적인 동기를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낀다. 오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웃음과 칭찬과 동의에 의해 우리는 외재적으로 강화된다. 데시와 라이언에 의하면 이러한 사회적 확인은 돈이나 물질적인 자극에 비해 우리의 동기를 많이 파괴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이 사회적으로 가능할 때,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왔을 때, 강력한 빗물질주의적 힘이 된다.
-불안과 통제
신앙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며, 이러한 생각이 무력함을 줄여준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자기 가치에 유용한 과정으로 이끈다. 이 과정은 인간을 안심시키고 자신들의 지위를 더 좋아보이게 만들 수 있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종교를 영혼의 아편이라고 명명한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뒤이어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정당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이 느낌은 그들에게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빼앗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시간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힘이 있다고 느낀다. 언젠가 그들은 천국에서 지금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그 사람 위에 서 있을 것이다.
종교는 통제력을 회복시키고, 실존의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며,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죽음 뒤에 어떻게 행복하게 될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또한 비신앙인을 상대로 우월감을 제공한다.
명상 기술과 운동도 흔히 통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직업을 발견하는 것도 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한 시도다.
이타적인 행동들을 통제력 장악으로 해석하는 분석들은 흥미진진하다. 사르트르는 선물 행위를 다른 사람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사람들은 또한 선물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란다. 이 또한 엄격히 말하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다.
우리가 자연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재충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잠깐이라도 문명화된 삶의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끔 우리는 야외에 텐트를 치고 자연의 힘에 우리를 내맡길 때 통제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 가정을 이루는 것을 통제력 행사로 이해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확실한 권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나중에 나녀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후손을 통해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여러 존재 목표들은 다르게 동기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욕망과 질투
나는 세라 저베이스와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면서 실제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도구화하고 신체의 일부만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필리프 오치메크와 함께 보훔에서 페이스북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막 끝마쳤다. 이 결과 물질주의자들은 더 자주 페이스북 친구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페이스북 친구들은 한편으로 일종의 디지털적 소유로 간주하고 ,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주의자들의 목표, 예를 들면 금전적인 성과를 달성하게끔 도와준다. 또한 물질주의자들은 자신을 중요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을 매우 자주 이용한다.
내 모델에 따르면 이때 존재 수단이 존재한다. 더 자세히 관찰하자면, 존재 목표가 소유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나는 결국엔 더욱 ㅅ어공하고 더 많이 벌기 위해서(소유목표), 친구를 얻는다(존재목표). 나는 더 많은 강연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소유 목표), 학위와 상(賞)을 모은다(존재목표). 존재 목표들은 달성되자마자 더 큰 물질적인 성과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목표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현상은 동기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존재 목표에서 질투와 욕망은 분명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로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비물질적인 특성을 지닌 욕구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겨난다.
-초월과 삶의 의미
오늘날까지 자주 인용 되는대로 표현하자면, 이전의 매슬로가 자아실현을 최상위의 욕구로 상술한 반면, 세월이 지난 후 매슬로는 욕구 피라미드의 정상을 초월까지 확대했다. 인간이 자아를 실현한 후에는 그 자신이 아닌 누군가와 하나가 되기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하나가 되고, 각각의 두 개인으로 구성된 커플은 우리가 되고, 예술가는 작품과 하나가 되고, 학자는 지식을 일상생활에 통합한다. 매슬로 이러한 목표를 향한 사고방식을 존재적 인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성, 미,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상황뿐 아니라, 개인적인 영역을 벗어난 상태를 예로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큰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것의 결과는 어떤 방식이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개인은 욕구단계에서 욕구 단계로 열심히 성취해나가며, 먼저 안전의 욕구를, 그런 다음 사회적 욕구를, 그런 다음 개인적인 욕구를, 이렇게 자아실현이 이루어질 때까지 성취해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 상태도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ㅇ니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지루함에 빠진 인간은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라는 더 큰 주제를 찾아 나선다.
-인식론적 동기, 사고와 자극을 향한 욕구
뚜렷한 사고의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잘 조정당하지도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실들을 잘 견디지만 편견을 잘 견디지 못한다. 인간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자극에 대한 소망과 연결해봤을 때 지루함이 될 수도 있다. 사고는 내재적인 자극이며, 생각이 많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루함을 모른다. 스스로 과제를 만들고 시를 낭송하는 죄수들은 자신에게 몰두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잘 지낸다.
사람들은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생각에는 많은 사물이 필요하지 않다. 당연히 사물들이 사람들의 사고를 자극할 수 있고 창의력을 고무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비용이 들지 않는 정말로 멋진 즐거움이다.
-포만감
질렸어, 정말 더는 듣기 싫다, 이젠 지긋지긋해,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야. 우리 언어에는 지루함에 대한 다양한 은유표현들이 준비되어 있고, 이것들은 대부분의 은유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상태를 신체적, 생리학적 상태로 전환시킨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도 자주 들으면 신경에 거슬린다.
부(富)는 무서울 정도로 지루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쉽게 든다. 집을 몇 채 구입한 후 장식하고 나면, 과연 그 다음은 뭘까?
내가 프롬을 이해한 바에 따르면, 포만감은 특히 왜 존재 목표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게 유지해주는가에 대한 근거가 된다. 반면, 소유 목표들은 항상 동일한 것이 핵심에 있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없다. 부는 상위에 위치한 존재 목표가 달성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목표들이 수많은 최강 부자들을 정체 상태에서 죽을 정도로 지루하지 않도록 또는 극단의 반대에, 즉 더 많은 소유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흔들어 깨워야 한다.
나는 기부를 하거나, 아픈 이웃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거나, 격려의 말을 해주었던 예전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거나, 공동체나 합창단, 스포츠클럽에서 어떤 식으로든 활동할 것을 권한다. 내 경험상 이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고, 결국 자존감을 높인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ㅎ나다.
-요약정리
소유 목표와 존재 목표를 위한 기본 동기들이나 욕구들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제와 불안감, 정체성, 소속감, 자극과 호기심, 이 모든 동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무엇인가로 존재하도록 촉진한다. 이 점에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두 인생의 선택 뒤에 숨어 있는 동기들의 특징을 구별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중요한 욕구들을 소유뿐만 아니라 존재를 통해서도 충족할 수 있다면, 나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통제력을 갖기 위해, 정체성을 갖기 위해,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불안의 시기에 살고 있다면, 나는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일이나 물질적인 재산의 축적을 통해서 통제력을 회복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영적인 삶을 영위하거나 가정 안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내 앞에는 두 개의 문이 열려 있고,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서 모든 욕구가 같은 강도나 개연성을 가지고 소유나 존재를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미 말한바 욕망은 존재 목표와 관련이 있다. 학위와 수상 경력과 직업적 탁월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놀이 안에 경합이 있다면, 무해한 여가 활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적어도 우리의 물질적인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재빨리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부를 암시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사물들을 이용하는 것 같다. 존재 상태들과 반대로 사물들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이다. 많은 경우, 증식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재산을 획득하려고 한다. 따라서 소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소유 수단이 투입되고, 이것은 다시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한 소유 수단이 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탐욕이다. 학위와 수상과 자격증과 달리, 위로 가고자 하는 이 욕망에 한계란 없다.
소유하기 위해 소유하는 것, 더 많이 갖기 위해 소유하는 것이다. 질투도 소유 목표의 경우 더 개연적이며, 특히 존재 목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소유와 연관이 있을 때 또는 사회적 비교와 일치할 때 등장한다.
소유하기 위해 소유하는 사람은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이다. 시간과 함께(나이가 들면?) 존재 목표를 의식하는 것이 헴스터의 챗바퀴를 멈출수 있을 것이다.
자기 확대는 반대로 오직 물질적인 재산이나 사물을 통해 발생한다.
사람들은 사물을 통해 자신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7장 소유는 행복하게 만드는가?
심리학은 좋은 학문이다. 결국 언제 어떻게 어떤 사람들이 잘 지내는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 원칙을 장애, 문제, 갈등에 대한 관심과 연결하지만 이러한 활동의 더욱 큰 의미는 어떻게 우리가 개인적으로 목표에 도달하며 행복하게 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실제로 내 동료 몇몇은 소유와 동과물질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탐구하고 있지만, 독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의 분석은 선악을 초월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 무엇이 기능적이고 무엇이 비 기능적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언제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써 행복한가, 언제 소유가 만족을 주기엔 그리고 지루함 또는 공허함을 막기엔 무력한 수단이 되어버리는가, 언제 돈이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언제 짐이 되어버리는가, 언제 물질적 재산의 추구가 만족을 주는 활동으로 인식되고 언제 중독이 되는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가, 덜 개인주의화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덜 행복한가, 빈곤층은 어떤 소유 목표들을 발전시키고 부유층은 어떤 소유 목표들을 발전시키는가 하는 질문들에 초점을 둔다.
-물질주의와 행복
물질주의와 만족간의 연관성에 대한 물음에만 초점을 두고 행해진 연구들만 수백 가지가 넘는다. 유감스럽게도 물질주의적 견해를 존재목표와 연관시킨 경우는 드물다. 즉, 소유목표와 비교했을 때 존재목표들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는 연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 연구팀이 2014년에 메타 분석을 실행했다. ~~~~ 전체적으로 이 메타 분석은 물질주의자들이 덜 행복하다는 가정을 확인시켜주었다.
소유가 인생의 성공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더욱 믿게 되면, 자신의 총체적인 삶에 덜 만족하게 되고, 긍정적인 순간들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게 되며, 더 빨리 갑자기 기분이 더 나빠진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가치에 영향을 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물질주의자들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더 강력하게 물질주의적 가치를 주장할수록, 정신적인 문제들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점차 자신들이 목표에서 멀리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부의 문제점이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것은 더 많은 것을 향해 끊임없이 굶주림을 야기한다. 소유는 더 많은 소유를 요구한다. 이것은 물질주의자들의 목표야말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임을 보여준다.
대붑누의 실험이 유복한 미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 그러나 여기서 갈라져 나온 분과 연구는 다른 인구 계층을 조사했다. 디트마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실험대상자들의 출신 ㅅ어별과 사회경제적인 배경, 수입, 연령, 인종, 국적, 직업이 물질주의와 만족 간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가 하는 점을 통계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물질주의자들은 이 모든 구분들을 총 망라하여 덜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18세 이상의 물질주의자들은 미성년자들보다 만족도가 더 낮았다. 물질주의적 확신을 가진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성향을 가진 남성들보다 덜 행복했다. 마케팅이나 영업부서처럼 자본의 증식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전문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물질주의자들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만족이 덜했다.
빈곤국뿐 아니라 부유국에서도 인생에 대한 물질주의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사회에서 물질주의와 연관된 가치들이 특별하게 평가될 때 불만이 가장 크다. 예를 들면 감정적인 자율성과 같은 사회적 규범이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인 덴마크에서 물질주의자들은 더 불행하다. 개인적인 즐거움을 좇아 흥분되고 변화무쌍한 인생을 사는 것(쾌락주의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는 가치들)이 긍정적으로 평가 되는 곳에서 물질주의자들은 잘 지내지 못한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쾌락주의적 가치들이 별로 촉진되지 않는 집단주의 사회인 이집트에서는 물질주의와 만족간의 부정적인 연관성이 적다. 익서은 물질주의적인 사회에서는 무엇을 가졌는가, 무엇을 가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이 참담한 기분을 전파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남성들의 경우 물질주의가 일반적인 것임에 비해, 여성 물질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가치 및 역할 간의 갈등 안에 처하게 된다.
2002년도에 출판되어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제임스 버로스와 아릭 린드플라이시의 연구는 물질주의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 관계에 서 있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물질주의자들의 경우, 가치 갈등은 불만족을 야기하거나 증폭시킨다. 인지부조화 연구에서 나온 전통적인 연구결과를 전제로, 이들은 두 개의 견해, 가치, 생각 사이에서 부조화를 경험하면 항상 스트레스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란 생각은 흡연 시 부조화를 유발하고 그로 인해 경험하는 내적 긴장감이 크면 클수록 기분이 더 나빠진다. 이 긴장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흡연을 포기하는 것이다.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물질주의자는 종교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경우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매주 교회에서 부자인 그는 천국에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설교를 듣는다. 영혼 구제에 대한 실존적 두려움이 그를 괴롭힌다. 헌금을 내라고 강력하게 요구받고, 그가 얼마나 많이 내는가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인색하다고 여기게 되고, 시간 부족으로 교회에서 충분히 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위의 두 저자들은 이러한 부조화가 불만족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물질주의 자체에는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물질주의자들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취하지 않을 때 정말로 만족한다.
물질주의자들이 모든 곳에서 욕을 얻어먹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소유와 유복함은 성공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어찌나 사람들이 확신에 찬 어조로 의견을 내세우는지 여러 번 놀란 적이 있다.
이들의 태도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면, 네덜란드의 정신적 태도는 종교적 가치에 의한 영향을 훨씬 적게 받는다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종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들은 그가 학문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할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17세기에 누렸던 황금기를 회상하곤 한다. 네덜란드는 상업 국가였고, 나라의 부 상태는 상업적 발전에 근거했다. 학교에서는 ㄱ여제를 교과과정으로 가르친다. 나의 모든 동료들은 주식에 정통하며 많은 사람들은 독일의 어린이 예금을 비웃고, 유로화에 대한 견해를 그것이 자신에게 이점을 주는가 아닌가에 따라 재빨리 바꾼다. 따라서 행복하게 먹고 쓰기 위한 길이 마련되기만 하면 네덜란드 사람들 말처럼 “인생은 파티다”.
그러나 여기서 큰 축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디트마의 연구에서 다시금 분명히 제시된다. 강력한 물질주의적 세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냥의 길에 홀로 서 있고, 황홀경이 지나면 언젠가는 기분 나쁜 상태가 이어진다. 특히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ㅅ어공의 영광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더욱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감내해야 했던 경제 위기 시기 동안 분위기가 아주 싸늘했고, 대학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이런 사회에 살게 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이러한 생각의 노선을 따르게 된다. 몇 주 만에 나는 경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떻게 여기서 벗어나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교수로서 보조를 맟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견고하게 설치된 철길을 달리는 기차는 햇살이 가득한 남쪽을 향해 달리는 대신, 계속해서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으리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이때 단지 삶의 만족을 파괴하는 “집단에 맞추어진” 나의 가치들뿐만 아니라 믿지 못할 정도의 과도한 업무가 인생을 위한 시간을 내게서 앗아 가버렸다.
-소유와 삶의 만족도
심리학에 대한 기본 이해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 사실을 확신한다. 1)국가의 경제적인 성장이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2) 한 국가 안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만, 사회적 성장이 개인적인 사람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3) 사람의 만족도는 부유국과 빈곤국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이 주장을 토론의 화두로 꺼냈고, 그의 이론을 뛰어넘는 가치에 대한 논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국제적인 연구팀이 그의 가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빈곤국이 부유국에 비해 덜 행복하지 않다는 세 번째 주장은 부정이었다. 행복한 슬림가의 아이에 대한 신화는 맞지 않다. 텅 빈 배를 안고는 공부를 할 수도 없고 자아를 실현할 수도 없다. 삶의 만족도란 주제에 일가견이 있는 세계적인 위치의 연구자 에드 디너는 이미 1995년 연구팀과 함께, 부유국 출신의 사람들이 삶에 더 높은 만족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주장은 이스털린의 역설로 불린다. 왜 사회 또는 국가의 부의 상징이 삶의 만족도를 직접적으로 상승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스털린은 사회적 비교를 그 이유로 가정했다. 이전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느끼지 않는다. 국가의 부의 증가와 함께 삶에 대한 기준이 상승했고, 따라서 판단의 잣대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요구 수준이 부에 비해 더 빨리 상승한다면,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 사실은 몇 가지 진실을 내포한다. 특히 상위 1만 명만이 새로운 부를 획득한다면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하락할 것이다. 갑자기 더 많은 수입으로 풍족해진 어떤 국가가 남아도는 돈을 국민의 눈앞에서 탕진해버린다면, 이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가 돈을 흥청망청 낭비한다는 느낌을 받을 경우, 흥분하며 이에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중은 더 이상 정치적인 시위에 거의 참여하지 않지만, 슈트가르트21, 엘브필 하모니, 메를린 공항에 관한 일이면, 건축 현장을 폐쇄하고 심지어 구속당하는 일까지 불사한다.
삶의 만족도는 확실히 개인 가구당 수입에 따라 상승했다. 해마다 더 많은 돈을 가질수록, 해마다 수입 증가가 더 높을수록 실험대상자들은 행복해하고 만족해했다.
이스털린은 부와 함께 만족감이 특정 지점까지 선형적으로 상승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행복의 성장은 그 이후 점차 감소한다. 즉, 처음으로 100만을 벌었다면, 만족도는 급속히 높아진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가설에 부합하듯 감각은 무뎌지고, 이어지는 성장에서 느끼는 기쁨은 점점 악화된다.
디너의 연구와 연관시켜보면 이 가설은 더 잇아 존립하지 못한다. 디너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기분이 수입, 특히 개인 가구당 수입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돈과 행복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는 특히 실험대상자가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보았을 때, 가격 상승으로 인해
-빈곤
-자원으로서의 돈 또는 중독으로서의 돈
가진 사람은 부탁을 덜 해도 된다.
돈은 인생을 수월하게 만들고 사람을 독립적으로 만든다.
8장 존재는 행복하게 만드는가?
돈과 소유가 여러 다양한 상황 속에서 분명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존재상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미 존재 목표와 소유 목표가 유사한 뿌리를 가진다는 것을 보았다.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는 것, 창의력을 펼치는 것, 정체성을 소통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소유 목표와 존재 목표의 일반적인 원천이다. 하지만 반대로 소유와 돈과 소비 없이도 또는 아주 적은 소유와 돈과 소비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또는 이 모든 것이 신화라면, 심지어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분을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부자들의 이야기라면, 정신적인 아편이라면?
종교적인 사람들이 정말로 무신론자들보다 행복할까? 마음챙김은 유용한가? 문화와 자연은 정말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가? 더 적음이 더 많음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거의 모든 ㄱ여제 이론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나눔과 포기와 기부가 마음을 쓰리게 하는 일은 아닐까?
-포기와 자발적 간소함
이미 논의한 것처럼, 자발적인 간소함은 미래를 생각하여 절약할 것을 권장하는 운동으로, 상품들을 공정하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유 대신 존재를 원하는 것이다.
-나눔, 교환, 대여, 기부
나눔, 교환, 대여가 만족에 미치는 ㅅ미리적인 효과를 소유와 비교한 실험을 본 적이 없다.
레프베츠키는 나눔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교제하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사회적 능력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현시점에서의 경험
나는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여러 문제점들을 초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종종 미래를 걱정하고 지나간 실수를 후회함으로써 현재를 망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의 상태를 바라보면, 확신컨대 기분이 좋아진다.
신경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신중한 사람들은 감정적인 구성 요소들을 인지적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아주 빨리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들은 “거미는 아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벽에 평화롭게 매달려 있어. 지금 거미는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거미는 질병을 유발하는 파리를 잡고, 거미줄이라는 작품을 빚어내는 유익한 동물이지“라고 말할 것이다.
-인격 발달, 정체성 찾기, 의미 찾기
목표를 이상으로 여기는지, 의무로 여기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한다. “나는 이 언어를 배워야만 해, 그러지 않으면 대학입학시험을 볼 수 없어”처럼 배우는 목표가 의무로 간주된다면, 로레인이드슨과 토리 하긴스가 제시한 것처럼, 목표를 달성했더라도 행복해지지 않고, 단지 부담이 줄고 홀가분해질 뿐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서 더 잘 적응하기 위해서 이 언어를 배우고 있어”라고 목표를 이상으로 간주한다면,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목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광고에서 가능하다고 말한 대로 일주일 안에 30킬로그램을 감량하기를 원한다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때 비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미디어에서의 사회적인 비교 모델들은 위험하다.
부유국보다 빈곤국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사실을 제시한 시게히로 오이시와 에드 디너의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이러한 현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더 종교적이라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유하고 물질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으로 강하게 특정 지어진 국가들에서는 강력한 개인화로 인해 사회적인 목표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이것은 알려진 대로 의미 체험을 감소시킨다. 아마도 모든 것이 자신과 연관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이 무엇보다 자신의 안녕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계속해서 따지는 사람은 골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의미를 찾는 것이 실제로는 심리적인 질병을 일으킬 확률을 증가시킨다. 의미 체험과 만족간의 관계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 종교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은 더 행복한가?
-종교와 영성
케네스 파거먼트와 진 아노가 메타 분석을 통해 종합하고 정리한 수많은 실험들은 내재적인 종교인들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반대로 외재적인 종교성은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인 욕구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만족감이 가장 적게 나타났다. 근본주의자들도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어둡고 편협한 사람들로 보인다. ※ 케네스 파거먼트 :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진보의 역설>의 저자. 볼링그린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그러므로 내재적인 종교인들은 자신이 거대한 총체 안에 속해 있다고 느끼고, 자신들의 인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보다 더 잘 지낸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작용하는 유일한 기제가 아니다.
최신 연구들은 종교성과 영성이 일상의 자기통제를 수월케 한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매컬로와 브라이언 윌러비는, 종교인들은 자주 자기 규율 안에서 자신을 단련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보다 ‘훈련하는 데 장점’이 있다고 추측한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자기통제를 훈련해야만 하는 근육으로 이해했던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모델과 잘 들어맞는다.
유혹에 넘어간 신앙인들을 단지 이 세상의 처벌만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의 이브에게서 본 것처럼, 영원한 저주 또한 그들을 위협한다. 이때 동기심리학을 적용한다면, 이러한 엄격한 처벌은 실제로 자신을 통제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끌어낸다. 세속극인 농민 소극에서는 아내의 국수 밀대로 불륜을 응징하지만, 종교적인 민중극에서의 성 추행범은 영원히 지옥의 불길에 던져진다.
아일릿 피시바크, 론 프리드먼, 에리 크루글란스키는 신앙인들은 유혹의 상황에서 믿음을 상기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종교인들은 성적 욕구나 다른 악마적 욕구에 빠졌을 때, 성경과 하나님과 천국을 생각한다. 이것은 이러한 욕구와 연관된 자기통제의 전략을 기억으로부터 소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쾌락주의적인 욕구들에 저항하기 위해 이 전략들을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에 따르면 종교는 집단의 관심과 반대되는 이기적인 충동의 통제를 도와준다. 그는 공격성과 폭력을 제한하기 위해서 자기통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공격성은 사회적인 규율 없이도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인간의 본래 타고난 욕구다. 일반적인 난폭성이 그 결과일 것이다. 몇몇 진화 생물학자들은 종교가 친 사회적인 규범을 형성하고 자기통제를 의례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간 안에 있는 동물성을 제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말테 프리제와 마카엘라 벤커는 실험대상자들에게 요구했던 단순하고 즉흥적인 기도가 자기통제를 상승시켰다고 기술한다. 기도는 분명히 실험참가자들에게 활력을 주었고, 이 현상은 자신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진술했던 참가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즉, 오랫동안 자기 통제와 연관되어온 의식을 행하는 것만으로 자원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이 시점에서 앤드류 뉴버그 등이 행했던 신경학 실험들이 흥미롭다. 실험 결과는 티베트 승려들의 경우, 명상과 명ㅅ아적인 기도가 자기통제와 연관이 있는 뇌의 영역인 전전두엽피질의 활동을 상승시켰다고 제시한다. 결국 종교인들은 더 건강하고 약물을 덜 복용하며 범죄를 덜 저지르고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어느 한 상태가 지나치면 해로울 수 있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종교의 경우에도 이것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종교 안에서의 자아 상실, 지나치게 강력한 집단 정체성, 경계를 뛰어넘어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아집은 신앙인들을 친사회적인 원칙들에 반하여 ‘ 떨어져 나가게’하고, ‘저 밑’에 있는 사람들, 즉 이단자들을 망각하게 만든다. 십자군 전쟁에서 IS 테러에 이르는 사건들이 종교에 의해 야기됐고, 또한 집단 간의 갈등도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자신의 신앙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역시 중요하다. 이때 신앙심을 내재적인 것으로 인식할 것인가 또는 외재적인 것으로 인식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및 공감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끝으로 종교적인 집단 간의 동격성과 완고한 규율로 인해 신앙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은 신앙 공동체의 계급 구조에서 상위 계급에 위치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완화될 수 있다. 이 세상의 몰라, 랍비, 신부는 종교를 좀 더 인간적인 형태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물론 곳곳에서 이미 행해지고 있다. 쾰론에서 개신교 예배에 참속해보라. 자체 조직이 얼마나 잘 발달되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미디어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지, 상당히 놀라울 것이다. 마이단 광장과의 생방송 연결, 성직자와 심리분석학자와의 인터뷰, 찬송가에 없는 현대적 노래들은 카니발 예배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으로 현대화된 예배의 몇몇 예들이다.
-사회적 삶과 노동
만족스러운 노동은 심지어 치매도 예방할 수도 잇다, 흥미로운 사실은 매달 받는 수입은 질에 있어서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동일한 월수입에 대해 직장인이 실업자보다 더 행복해 한다는 연구 결과를 들 수 있다. 즉, 재정적인 근거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만들지 못한다. 일은 소유 목표일뿐만 아니라 존재 목표이며, 행위가 재미를 준다면 전형적인 소유 수단, 심지어 존재 수단도 될 수도 있다.
- 여가, 파티, 취미, 성생활
- 자연과 예술
흥미로운 사실은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긍정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리처드 라이언등이 실시한 한 실험에서 대학 강의실이 아닌 자연 안에서 질문을 받은 실험대상자들은 수행능력이 더 뛰어나고 의욕적인 것처럼 느꼈다. 외부에서 헬스트레이닝을 받고 난 후에는 동일한 훈련을 내부에서 받는 사람들에 비해 에너지가 더 충만해지고 긴장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 실험실에서 대상자들에게 자연을 보여주었을 경우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회상만으로도 자기통제를 위한 힘을 일깨우는데 충분했다. 즉, 실험대상자들이 잠시 동안 눈앞에 풍경을 상상하거나 자연에서 발생했던 경험들을 회상하고 나면 기분이 즉시 상승했으며, 자연 요소들을 보여주는 사진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했다.
하워드 프럼킨(Howard Frumkin)은 이러한 효과를 결국 우리 모두는 숲에서 왔다는 진화 이론을 배경으로 가졌다는 사실로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즉,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이른바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 바이오필리아(자연에 대한 향수-편집자), 즉, 생물과의 우정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왜 반려동물과 식물을 주변에 두고, 왜 정원을 가꾸느라 수고를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몇몇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바이오필리아를 실현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몇 가지 결과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반려동물이 있는 심장마비 환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발병 1년 후 생존의 가능성이 여섯 배나 높다. 심장 및 혈관 질환 또한 남녀 모두 더 드물게 발생한다. 수감자들도 정원 일이 허용될 경우, 더 잘 지낸다. 벽을 보는 대신 창밖의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면 병에 걸리는 경우가 24퍼센트 감소한다. 심지어 우리에게 이로운 풍경의 종류가 연구되었다. 흥미롭게도 나는 특히 사바나 풍경이 긍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견했다. 넓게 탁 트인 평지, 그러나 나무와 숲이 가득한 사바나는 조망과 광대함뿐 아니라 은신처도 제공한다. 아마도 예전 우리가 나무 위에 앉았던 그 시절, 그것이 분명 장점이었을 것이다.
자연에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은 심지어 창의성에도 연향을 미친다. 창조적인 사고 과정은 특히 긍정적인 환경 안에서 나타난다. 몇몇 연구 및 슈테파니 리히텐펠트(Stephanie Lichtenfeld) 와 동료 학자들의 실험은 단지 초록 색깔만으로도 창조적인 과제를 쉽게 해결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초록색이 잠시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 효과는 나타난다.
열정적인 하이킹족인 나는 이러한 효과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게 자연이란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천이고, 나쁜 일을 겪을 때 자연이 훌륭한 치료사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엇과 비교하여 자연이 이롭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연구 결과들을 조사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많은 실험에서 보여주고 있는 비교 그룹들은 실제로 문제가 있다. 당연히 오스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무 농장이 단조롭게 하얀색으로 칠해진 컴퓨터 외엔 아무것도 없는 나의 심리학 실험실로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이나 궁궐 또는 극장 의자에 앉아 있는 실험 대상자들이 숲이나 광야에 있는 사람들보다 덜 창의적이란 말인가? 실험에서 어떤 비교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험대상자들의 개인적인 관심도 고려되어야 한다. 나처럼 하이킹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열광하는 사람이 베토벤 3번 교향곡을 들을 때보다 숲에 있을 때 에너지를 더 잘 충전한단 말인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행복을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행복, 또는 러닝머신 위에서 걸을 때 느끼는 행복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자연의 총체적인 긍정적 효과를 여러 상황들과 비교하여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가 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 - 책 <무삭제 심리학>의 저자? 하워드 프럼킨 - 책 <건강한 도시 만들기>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 -책 <바이오 필리아> 의 저자
9장 소유와 존재의 자기통제 이론
요약하자면 나의 분석을 통해 소유와 존재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다 또는 나쁘다는 자기 통제 연구가인 내가 거부하는 범주다. 나의 관심은 인간의 행동에 있고, 동기와 과정과 효과를 연구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특정 행동이 얼마나 유용한가, 이 행동이 얼마나 목표로 이어지는가 또는 기능적인가 하는 질문을 제시한다. 기능성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상황 또한 고려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경쟁에 중점을 두는 회사에서 명상을 즐겨하는 사람은 아마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명상 기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마음챙김 훈련을 하찮게 여길 것이다. 무엇인가가 사람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기능적이다.
우리는 앞의 장들에서 대부분의 존재 상태 및 소유 상태가 의도한 결과와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던 것을 이미 보았다. 부정적인 효과들은 대부분 어떤 행동이 도가 지나쳤을 때 발생한다. 즉, 수집은 재미를 주지만, 보관은 병적이 될 수 있다. 신앙심은 도움이 되지만, 근본주의※는 편협하다 등이 그렇다. 또는 가능성이 결핍될 때 부정적인 효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소유나 존재냐?” 하는 질문은 “언제 소유이고 언제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화한다.
-소유하기 위한 소유
- 존재하기 위한 소유
직업과 같은 어떤 존재 목표들은 재산이나 돈의 획득 없이 도달할 수 없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도 존재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소유해야만 한다. 이때 수단과 목표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기 위한 소유 유형은 때로 그들에게 모순되는 어떤 것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만족이 덜하다고 추측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일주일에 하루를 공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학생이 한 예다. 그는 소외된 노동을 체험한다. 그의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아마도 그는 소유 수단에 가능한 한 많은 존재 측면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일을 통해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쌓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현 시기를 언젠가는 끝나게 될 고난의 시기로 보고, 언젠가는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유- 존재 유형은 자신의 목표에 도달했을 때 안정에 도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는 꿈이 실현된 사실에 기뻐하고 이러한 상태를 즐길 수 있다. 그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 사냥놀이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다. 꿈을 많이 꾸며, 이것이 삶을 수월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시점에 집중된 관심은 심지어 기분을 억압할 수도 있다. 좋은 것은 먼 미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음챙김을 배움으로써 소유-존재 유형은 현 상태가 덧없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샤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의 시선이 일상으로 돌려진다면, 구체적인 생각으로 빨리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유연성이 그에게는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유-존재 유형은 더 이상 물질적인 재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존재 상태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도기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긴 시간동안 소유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존재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소유-소유 유형보다 기부를 더 할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는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재산 축적에는 어차피 큰 관심이 없다. 이러한 유형은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나의 예들은 금전적인 비용을 요구하는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부자이기 때문에 존재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거나 교육과 같은 중요한 자원들을 공짜로 제공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이러한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고달품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존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했을 때 가난한 소유-존재 유형에 비해 스스로에게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이 성취한 존재에 대해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커의 분석은 이러한 소유-존재 상태에 집중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존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도구가 필요하다. 존재가 멋진 집이라면, 소유는 집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거쳐 가야 할 마당에 해당 될 것이다.
-소유하기 위한 존재
학습, 인간관계 관리, 소통, 훈련과 같은 존재 수단을 통해 돈과 재산을 획득할 수 있다면, 이때 사람들은 내재적으로 동기 부여가 된 것이 아니며, 몰입을 경험하는 경우도 드물다.
존재- 소유 유형들은 과도기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과 불안이 자주 발생한다.
존재-소유 유형의 경우는 알다시피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물질적인 소유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사고방식도 존 더 구체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고방식은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할 것이고, 그는 분석이 가능하고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제 속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할 것이다.
존재- 소유 유형들은 혼란스러운 불만족과 인생에 대한 의욕 상실의 치료를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올 가능성이 있다.
-존재하기 위한 존재
존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예는 수녀다. 우리 이모 베르타는 수도원에서 물질적인 욕망도 걱정도 없이 지낸다. 지금부터 이모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항상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모는 봉사와 기도에 집중할 수 있다.
교회의 도움 없이 이러한 삶이 허락되기 위해서는 기본 욕구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욕구 피라미드를 제시한 매슬로의 주장이 옳다.
나는 존재-존재 유형의 사람들은 추상적인 것을 더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 따라서 높은 창조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맺음말
나는 자아 실험에서 다음을 시도했다. 파트너와 함께 작은 집으로 이살르 하고, 비행기 여행을 포기하고, 가능한 한 유기농 음식물을 구매하고, 또한 모든 것을 남기거나 버리지 않고 활용하려고 신경을 썼다. 일주일에 두 번 채식의 날로 만들었고, 지금은 그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승용차를 가지지 않고, 친구와 옷을 교환하고, 기부를 더 많이 하고, 운동을 더 많이 하려고 하며, 많이 걷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신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니 실제로 기분이 좋아졌고 건강해졌다. 신발에 대한 광적인 열정도 잦아들었다.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시도가 이 책의 기획을 인생과 함께 아름답게 채워주기 때문에, 이것을 미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자율적으로 포기할 것을 권유한 수많은 응답자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유사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다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큰 집으로 이사를 갈지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다.
환경과 관련해 순수한 양심을 지키고 있으며, 따라서 나 자신에게 떳떳하다.
더 나아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감사함이 생겨났다.
심리학자로서 나는 우리가 왜 행동을 하며, 오늘날 그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바보같이 굴며 지구가 텅 빌 때까지 마구 사들인다면, 지구는 이런 우리보다 더 나은 것을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세대들은 물과 음식을 둘러싼 결핍과 전쟁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시키고 경고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오랫동안 경고를 받았고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지 나는 심리학자 입장에서 우리가 처절한 변화를 겪을 준비가 매우 잘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포기 하더라도 기본 욕구가 충족될 만큼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불길한 예감에도, 안전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또한 창조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위한 좋은 전제 조건이다.
우리가 그 모든 사소한 물건들을 가지고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이미 그에 대한 다양한 이유들을 말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계속 즐길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를 반대로 저어 선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유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다. 그러나 당신과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이해한 사실이다.
용어해설
목표란 인간이 행동을 수단으로 추구하는 소망의 종결 상태다. 목표는 상응하는 행동을 발동할 수 있거나 단지 생각에 머무를 수도 있다.
목표는 수단에 의해서, 즉 대부분 행동이나 생각, 발명 등과 같은 인지적 과정에 의해서 달성된다. 목표들이 다시금 수단이 될 수 있고, 이때 위계 구조가 나타난다.
욕구들은 물론 소망의 종결상태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더 일반적이다.
욕구는 충족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생물들은 고통을 받거나 죽게 될 것이다.
규범이란 규정이나 행동의 최고 범위 또는 행동 원칙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다. 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규칙을 의미한다.
동기는 목표들의 상위 등급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인격적 특성을 특징으로 한다. 동기는 추상적이다. 예를 들면, 임무를 완수하려는 수행 동기는 직업 경력을 쌓고자 하는 목표, 스포츠에서 좋은 능력을 발휘하고픈 목표, 파티를 위해 최고의 샐러드를 요리하고픈 목표 등을 포함한다.
의도란 누군가가 추구하는 의지적인 목표다.
이 계획들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누군가가 목표를 좇으면 활성화 된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목표들이 동시에 의식 안으로 들어오면 이것들은 갈등으로 체험된다. 나는 두 목표 사이에 갈등을 목표 갈등이라고 부른다.
목표-수단 갈등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할 때 발생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절도를 범하는 행위는 목표와 수단 간의 갈등을 나타낼 수 있다.
나는 도입 부분에서 인간들의 커다란 인생 목표를 ‘행복하기’라고 묘사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목표를 물질적인 수단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단이 과연 이 목표에 적합한가, 어느 정도 적합한가, 언제 적합한가의 의문이다. 소유 의지가 만족을 낳는다면, 이것은 기능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비기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사회심리학자 토리 하긴스는 수단과 목표에 적합할수록 더 옳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따라서 행위의 가치가 높아진다.
가치는 인간, 사물, 느낌, 생각, 행동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목표와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목표와 행위는 회피행위를 초래한다. ~~~~긍정적인 목표와 이상은 친화 행동을 초래한다. 가치가 높을수록 동기도 커진다. 가치는 중요성과 재미, 기쁨, 만족과 같은 쾌락의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
[Review]
에리히 프롬은 존재 양식의 인물로 마더 테레사 수녀를 예로 들었다.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으나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더라도 모든 것을 소용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존재의 인물이다. 반대로 소유양식은 오직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돈이 고갈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비축해야만 한다면 그는 소유의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소유와 존재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활 가운데서 삶의 목표가 소유 적인가, 존재적인가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극단적인 존재의 삶과 소유의 삶 사이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복잡한 삶의 양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 선과 악, 쾌락과 기쁨을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복잡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소유와 존재에 대한 상호 배타적 평가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을 정립하고자 시도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혁신적이다. 저자는 수많은 사례 “소유와 소유”, “소유와 존재”, “존재와 소유”, “존재와 존재”유형의 인간상을 들어서 반론을 제기하고, 절충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이라는 표현으로 문제를 꼬치꼬치 따지는 깐깐한 사람처럼, 소유와 존재를 지난날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보다 더 엄격하게 구분하려고 시도한 책이다. 어떤 면에서 골치 아픈 책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이전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더 행복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부의 증가와 함께 삶에 대한 기준이 상승했고, 따라서 판단의 잣대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사실은 더 행복해졌지만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말과 통한다. 병적인 탐욕, 과소비는 분명 스스로 행복의 잣대를 높이는 그래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소유의 극단적 해악이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사람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비 기능적이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작가가 책 제목에서 말한 <포기>는 바로 <자율적인 포기>이며 곧 자기 분수를 아는 절제를 말하는 것이다.
소유에 집착하는 물질주의자들이 덜 행복한 이유는 소유를 좋게 보지 않는 사회적인 평판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불행해진다는 말도 재미있다. 흡연 애호가들이 담배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흡연가를 싫어하기 때문에 결국 그는 흡연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 물질주의자들은 그런 이유로 인지부조화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소유와 존재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별개의 것으로 따로 구분해서 적응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소유에 집착하지만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나누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유와 존재의 개념은 우리의 삶의 방향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며 시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주제이기에 반드시 알아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무소유”, “내려놓음”이라는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우리의 삶 속에 도입하기에는 혼란스럽다.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모르고 하는 일에는 자기 통제가 없다. 그러나 알고 하는 일에는 자기 통제가 작용한다. 이 책은 보다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한 책이다. ■ “소유는 존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소유가 소유 자체로서만 목적이 있다면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 <본문>
“부정적인 효과들은 대부분 어떤 행동이 도가 지나쳤을 때 발생한다. 즉, 수집은 재미를 주지만, 보관은 병적이 될 수 있다. 신앙심은 도움이 되지만, 근본주의는 편협하다 등이 그렇다. 또는 가능성이 결핍될 때 부정적인 효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소유나 존재냐?” 하는 질문은 “언제 소유이고 언제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화한다.“<본문>
“나의 분석은 선악을 초월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 무엇이 기능적이고 무엇이 비 기능적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언제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써 행복한가, 언제 소유가 만족을 주기엔 그리고 지루함 또는 공허함을 막기엔 무력한 수단이 되어버리는가, 언제 돈이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언제 짐이 되어버리는가, 언제 물질적 재산의 추구가 만족을 주는 활동으로 인식되고 언제 중독이 되는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가, 덜 개인주의화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덜 행복한가, 빈곤층은 어떤 소유 목표들을 발전시키고 부유층은 어떤 소유 목표들을 발전시키는가 하는 질문들에 초점을 둔다.”<본문>
“통제와 불안감, 정체성, 소속감, 자극과 호기심, 이 모든 동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무엇인가로 존재하도록 촉진한다. 이 점에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두 인생의 선택 뒤에 숨어 있는 동기들의 특징을 구별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본문>
“나는 도입 부분에서 인간들의 커다란 인생 목표를 ‘행복하기’라고 묘사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목표를 물질적인 수단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단이 과연 이 목표에 적합한가, 어느 정도 적합한가, 언제 적합한가의 의문이다. 소유 의지가 만족을 낳는다면, 이것은 기능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비기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본문>
“존재가 비가시적인 것이라면 소유는 가시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결과가 모호한 존재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소유에 집착하게 만든다.”<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