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바꾸기/ 이 령
신을 믿지 않아 좋은 점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라서 지금 가슴과 머리는 둥근 사각입니다 내 방은 열쇠가 없고 방향도 없지만 비교적 안전 합니다
모서리는 모서리를 만나 벽이 됩니다 모서리를 등지면 방이 되기도 하지요 더러는 절망이 출몰해 잠시 잠겼을 테지만 주관적으로 비밀번호를 거듭 호출하면 됩니다
밤새 기억을 편집하느라 어지럽지만 탄성이 충분한 나의 믿음은 당신에게 오래 깃든 주술 입니다
셈을 익히고 책장과 방의 평수를 넓히는 동안 내가 익힌 좌표는 탄력적으로 길을 인도하지만 슬프게도 이 방향은 초지일관 창조적이진 않습니다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껌을 씹으면 왜 눈물부터 나는 건지 시간을 재편성하듯 단물이 빠지는 건지 수시로 출몰하는 감성은 어느 지점에서 서성이던 기도 인가요
오래 품은 의문이 자라는 나의 방은 덕분에 왁자합니다 오늘아침엔 씹던 껌으로 메꾼 깨진 화분 사이 보춘화가 만향(萬香)입니다 당분간 응답은 잊어 야죠 당신의 겹창을 흔드는 바람이 오래 스민 나의노래를 복제 중이거든요
철새 무리가 주문처럼 딱 딱 딱 허공을 박음질하고 있습니다
길을 따라가는 것도 벗어나는 것도 먼저 방을 벗어나야 하니까, 열쇠는 잊고 군데군데 구름 방석도 깔아 둔거지요
느닷없이 방과 하늘이 주문처럼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