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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례 소설수상작품
달이실 신화神話
날씨는 덥고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모기, 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추석 명절 전이라 벌초하는 때였다. H는 식구들이 벌초하고 난 후라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미영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다가오며 물었다.
“일 다 마치셨시유?”
“어서 와요. 밀린 숙제한 것 같아 개운하네요. 그 집도 벌초했어요?”
“예 했시유. 지난주말에 아들들이 와서 했시유, 근데 난 안 갔어유.”
“왜…? 저기 뒷동산에 남편 묘 있잖아요.”
의아해서 되묻는 나에게 미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지는 요. 그 인간 묻힌 거기 쳐다보지도 않아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찌끈거려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는 누가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하거나 칭찬하는 사람과 싸우고 싶다고도 했다. 왜냐하면 미영네 부부의 깊은 속사정도 모르는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하나의 예의로 말하는 것뿐인데 그런 것을 이해 못하는 미영이는 아니지만 괜히 화가 치밀어 올라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미운 감정이 뼈에 사무친 것 같아 H는 측은지심으로 늘 미영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보통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의견이 엇갈려 싸우기도 하고 대립할 때도 많다. 때때로 원수 같아 보기 싫다고 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살지만 막상 죽고 나면 좋은 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부부관계라고 H는 생각한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때론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 일반적인 심사인데, 미영은 남편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흔드니 속내에 얼마나 많은 원망이 고인 것인지 H는 궁금하기도 했다.
미영의 남편을 잘 알고 친했던 사람들은 미영에게 모질게 대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집에 같이 살지 않는 이상 남의 부부간의 내밀한 관계를 어찌 속속들이 알 수 있겠는가?
평소 약골이었던 미영의 남편은 겉으로는 온순하고 마음이 착해보였다. H가 보기에는 인사성은 밝은 편이었고 예의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죽기 한 일 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H의 집 아래층 차고에서 동네사람 네 명이 술을 먹고 있었는데, 미영의 남편이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동석하게 되었는데 술을 권하자 그 남자는 수줍어하며 술잔을 받았다. 한쪽에 앉아 주는 술만 받아 마시고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었다. 옆 사람에게 술을 권하거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에 끼어들거나 참견하지도 않았다. H가 보기에는 내성적이고 얌전하며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미영이 했던 말을 기억해보면 술을 많이 먹어 취하기만 하면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고 했다.
미영의 남편은 아홉 살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사람과 내무서에서 일하다 공산당원으로 몰려 처형당하고, 그는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다 괴롭힘을 당해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생활고와 지병으로 실명을 했고, 여린 청소년기에 기가 죽어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열심히 품팔이를 해서 근근이 살아갔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그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했기 때문에 군대에 입대했다. 현실에 적응을 못한 그는 열 번이라는 획기적인 탈영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갈수록 마음과 육신이 황폐한 상태가 되고 십년이라는 긴 시간을 군대 생활과 영창을 오갔다고 전해 들었다. 제대하던 해에 그는 29살이 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서둘러 미영과 혼사를 치렀다.
그녀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그런데 미영은 호적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무학자였고 자매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버렸다. 그녀의 언니는 15살이었고 그녀는 10살이었다. 언니도 그녀도 남의집살이가 시작되었다. 학교에 가본 일도 없고 언니도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몰랐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9년 후에 언니가 찾아왔다고 했다. 언니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언니는 남의집살이 보다는 낫겠다 싶어 동생을 지금의 이 남자와 선을 주선했고 얼마 안 있어 구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미영의 언니는 남의집살이 할 때 주인 부부의 배려로 호적에 양녀로 입적하여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영이 결혼하고 혼인 신고를 하려고보니 호적이 없어 혼인 신고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녀의 형부는 미영이를 안타깝게 생각해서 동생으로 입적시켰는데 졸지에 형부와 처제가 오누이 지간이 되고 말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호적을 만들었으니, 그녀는 지금까지 김미영으로 살던 19년의 성을 버리고 형부의 성씨인 정미영이가 되었다.
미영은 독특한 가족사를 얘기하면서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H는 미영의 얘기를 들으며 동정을 해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신분이나 가족사는 말하려하지 않는 것이 통념이라 생각했던 H는 미영의 성격이 너무 솔직한 것인지 아무 말이나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찌 보면 묻지도 않는 말을 속없이 하는 여자로 보였지만 속상한 속내를 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타지인인 H에게 하는 게 속편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불쑥불쑥 내뱉을까하고 미영의 말을 들어주고 이젠 가끔 맞장구 쳐주기도 했다. 억울하고 가슴에 쌓였던 한 같은 것을 누군가가 들어준다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신건강에도 좋을지 싶었다. 그러다보니 미영은 무슨 말이든지 진지하게 들어주고 사려 깊게 받아주는 H가 편한 모양이었다. 어떤 땐 골치가 아플 정도로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것이었다.
정미영에 대해 외모부터 살펴보자. 키는 남자 같이 크다. 적어도 170cm 정도는 되어 보이고 손발도 남자같이 큰 편이다. 몸집도 큰 편이어서 첫인상이 여장부 같다. 얼굴은 큰 편은 아닌데 유난히 이마가 좁다. 눈, 코, 입은 여성스럽게 예쁜 편이다. 색깔에 대한 취향은 붉은 색을 좋아하는지 사시사철 붉은 계통의 옷을 즐겨 입었다. 마음씨는 덩치만큼 넓어서인지 누구에게나 주는 것을 좋아했다. H가 집 지을 때에도 커다란 주전자에 약차를 다려와 집짓는 사람들과 H의 식구까지 한잔씩 먹게 하는 덕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H는 칠팔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마울 뿐이었다.
어느 날 미영은 H가 쑥개떡과 모시잎떡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떡을 만들어 가지고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형님 나 왔어유. 안에 계셔유”
계면쩍게 씩 웃으며 플라스틱 사각통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형님 오시는 것 보고 쑥개떡 만들어 쪄왔어유. 지난번 개떡 잘 잡수시길래 쪄 왔시유”
“어머! 고마워요. 일부러 새로 개떡을 만들어 쪄오다니…. 잘 먹을 게요.”
H는 그 마음이 고마워 미영을 들어오라고 권하면서 식탁에 마주 보고 앉기를 권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H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커피 마실까요?”
“좋아하지요. 제가 물 끓일게요.” 하며 미영이 벌떡 일어났다.
“아우님 가만히 앉아 있어요. 손님인데 내가 대접해야 해요.”
미영은 누구에게나 대접받아 본 일이 없어서인지 쑥스러워하더니 H를 바라보며 밝게 헤 웃었다.
그날도 H의 남편과 미영은 매실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거나하게 취한 미영이 말문을 열었다.
“두 분이 오손도돈 사시는 걸 보니 참 보기 좋구먼요. 지는 복이 없나 봐유.”
그녀는 술 탓인지 눈물을 질금질금 짜더니 말을 이었다.
미영이 시집 왔을 때는 시동생도 있었고 시어머니도 함께 살았는데, 아무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 사람이 없었단다. 갓 시집온 새색시가 밥 지을 나무와 군불 땔 나무가 없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 했다. 구정 명절이 지나면 양식이 떨어져 봄이 오는 때만 기다리며 남의 부엌일과 허드레 일을 해 주고 먹을 것을 얻어와 끼니를 때우기가 일쑤였다.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그녀는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미영은 시어머니 모시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식구들과 남편이 멀어지게 된 것은 이런 일이 있고 부터였다.
어느 날 아침나절 잡곡을 팔아오겠다고 장에 간 남편은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릴 때는 화가 나기 시작하더니 한편으로는 불길한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안절부절 걱정이 되었다. 기다리다 지쳐 조금씩 걸어 나간 것이 달이실 초입에 있는 주막집 앞까지 가게 되었다. 지금은 그 주막이 낡은 집이 되어 세월의 누추함만 껴안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지만 예전에는 술 장단 맞추는 작부소리도 흘러나왔다. 그녀는 다정하게 작부를 끌어안고 젓가락 장단에 노래 부르는 남편을 발견하고 화살처럼 날아 들어가 작부와 남편을 한꺼번에 떠밀어버렸다. 뒤로 발라당 나자빠진 남편과 작부의 얼굴은 막걸리와 붉은 김치 국물이 뒤범벅이 되었다. 그런 뒤로부터 시어머니와 남편의 구박이 시작되었다. 어디 여편네가 남정네 하는 일에 간섭하고 다니냐는 질타와 협박으로 매일매일 괴롭힘을 당했다.
그 일을 계기로 시어머니는 미영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면서 부모 없이 자란 년이라 배운 것이 없다고 구박을 했다. 부모 없이 자란 것도 서러운데 시어머니의 그런 질타를 들으면 하루 종일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놈의 전쟁이 원수지 누군들 부모 없이 자라고 싶은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말로 해서 가슴을 후비는지 미영은 원통하기만 했다. 시어머니께 더 잘 해드리려고 했던 마음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서운하고 미워졌다.
하루 종일 품팔이로 몸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도 웃으며 살갑게 대하던 남편이 이젠 아니었다. 벌어온 돈으로 술을 사오라고 떼를 쓰기 일쑤였다. 화를 낸다거나 우물쭈물 하면, 멱살을 잡고 윗방으로 끌고 가 따귀를 때리고 발로 엉덩이를 차고 깔고 앉아 목을 누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말리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음성으로 남편의 매질과 합세했다.
“저런 년은 맞아도 싸다 싸. 실컷 때려 주랑께! 남편 말 무시하는 년은 죽어도 싸당게, 싸지 싸. 내 귀한 아들한테 함부로 하는 년은 싸당께, 부모 없이 자란 년이라 다르다니께, 분 풀릴 때까지 실컨 때리랑께”
미영은 남편의 구타보다도 시어머니의 그 말이 더 서운했다. 머리를 얻어맞고 목을 졸려 비몽사몽하는 날에는 임신이 되곤 했다. 요즘 같으면 성폭력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아니 벌써 이혼 사유가 됐을 법하나 배운 것이 없고 본 것 없이 자란 순박한 미영은 세상 물정 모르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H는 그녀가 문맹자라는 것을 요 며칠 전에 알고 놀랐다. 금요일이면 그녀가 집에 없어 예전대로 돈벌이 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봉 초등학교에서 문맹자를 위한 초보 교육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을 모르니 무엇이든 읽을 수도 없고 자기방어도 못하고 남에게 주눅 들어 살았는데 미영이 글을 알게 되면 최소한의 자기방어는 하고 살 것 같아 H는 그녀의 소식을 듣는 순간 내 일같이 기뻤다. H는 그녀가 너무 대견해서 ‘초보한글교육표’와 H의 작품 세권도 함께 주었다. 종종 만나면 한글 다 깨우쳤냐고 하면 시원하게 대답을 못하는데, 한해가 다 기울도록 한글 해독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아침부터 내리더니 오후가 되자 눈발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추며 땅에 떨어졌다. 이제 김장도 끝났으니 농촌에서는 한가한 때였다.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있을 때였는데, 미영의 남편은 군밤이 먹고 싶다고 했다. 빨리 갖다 주었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미영은 남은 밤은 제사 지낼 것 밖에 없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더니 방 빗자루를 들고 그녀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매가 무서워 부엌으로 피신했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다. 토방에 내려오는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는 뒤란으로 남편을 피해 나와 서 있자니 오금이 떨리고 추워 참을 수가 없었다. 신을 신을 사이도 없어 맨발로 뛰쳐나와 서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 초라함보다도 우선 매질이 무서웠다.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잡히면 매 맞아 죽을 것 같아 한걸음에 옆집으로 숨어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그 집 식구들은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부엌으로 숨어들어 부뚜막에 등을 대고 쪼그리고 앉아 밖을 쳐다보니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가슴 위로 쏟아져 내려 눈물만 흘러 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잠이 쏟아졌다. 세상에 무엇이 가장 무겁냐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다. 연탄 때는 부뚜막은 따스하기만 했다. 잠결인지 꿈속에서인지 시어머니의 욕설이 멀리 아득하게 들려왔다. 조금 전의 슬픔은 아득한 옛날처럼 까맣게 잊혀지고 포근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 집 아주머니가 부엌문을 열며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들었던 미영이도 함께 놀라 깼다.
“아주머니 지에요”
그제야 옆집 미영인 것을 알고 아주머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제저녁 여기에서 밤 샌 거여? 또 지랄 났었구먼!"
부엌문을 닫고 미영의 옆에 앉으며 아주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다섯 명씩이나 낳았어요?”
H가 얼굴을 찡그리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변명인지 사실인지 미영의 대답은 이러했다. 낮에는 남의 집 품팔이로 저녁에는 아이들 육아로 몸은 지쳐 피곤해서 저녁만 먹으면 아랫방 시어머니 방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는데 늘 그런 아내를 남편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영은 말하기 쑥스러운 듯 머뭇거리다 말을 했다.
“형님 말하기 부끄러운데요. 노상 술이나 먹고 술 냄새 풍기는 게 싫었구유. 더욱 싫은 이유는 밤새 나를 괴롭혔시유. 더듬고 젖꼭지를 비틀고 깨물며 잠을 못 자게 해유. 그러니 부부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유.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어유. ‘저년이 샛서방이 있으니까 저러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마다하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 했시유. 나중에는 때리기 시작해요. 나를 깔고 앉아 목을 졸라 반 가사상태에서 제 욕망을 채웠시유. 그럴 때 마다 아이가 생겼시유.”
‘동물의 왕국’이라는 영화를 보면 수놈이 암컷에게 살갑게 애무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춤도 추고 때로는 노래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장면을 아주머니는 떠올리며 측은히 바라보았다.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땐 부드러운 손길과 눈빛으로 교감해야 하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는 평온한 마음으로 교접을 해야 한다. 그녀의 남자는 그런 기본적인 수칙도 모르는 무식한 남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H는 미영의 남편의 무지無知에 모골이 송연해왔다. H는 억울한 인생을 산 미영이 가엽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초여름의 하늘에는 해가 유난히 밝고 맑았다. 농사경험이 없는 H와 그녀의 남편은 어느 때 씨를 뿌리고 거둬들여야 하는지 몰라 이웃에게 물어 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미영에게 물어본다. 아래 밭에 흰 감자와 붉은 감자를 심었다. 하얗게 감자 꽃이 핀 것이 엊그제 같았다. 미영은 감자밭을 보면서 순들이 군데군데 시들은 것이 감자 캘 때가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H는 땅속에 감자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호미로 살며시 감자 밑동을 파자 주먹만 한 감자가 얼굴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H는 감자를 캐려고 창고에서 삽과 곡괭이, 쇠스랑을 가지고 와서 흙을 뒤집고 한손으로 감자 줄기를 들자 주먹만한 감자와 자잘한 감자들이 한꺼번에 주렁주렁 줄을 타고 올라왔다. H와 남편은 함성을 질렀다. 이른 봄에 감자 씨눈 두어 개씩을 오려서 심었는데 주먹만한 감자가 여섯 일곱 개가 한 줄기에 매달린 것이 경이로웠다. 흰 감자 심은 데는 흰 감자, 붉은 감자 심은 데는 붉은 감자, 감자 무더기를 보면서 H는 속담에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심은 양보다 몇 배로 늘어나 무더기로 쌓여 있는 감자를 보면서 농사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때 미영이 H의 밭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형님 감자 많이 캐셨네유.”
“어서 와요. 한쪽씩 심었는데 이렇게 많이 달렸네요. 농사는 참 신기해요. 하늘과 땅에게 고마울 뿐이네요.”
H는 미영이 말고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감자를 양손에 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H는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일 장갑을 끼고 있던 것을 벗으면서 밭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손짓으로 미영을 오라고 불렀다. 이어 H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여보 물 좀 드시고 잠시 쉬었다 합시다.”
H의 남편이 물을 마시고 다시 밭으로 가 감자를 캐고 있었다.
“두 분이 같이 감자 캐는 모습이 보기 좋아유.”
미영은 H부부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남편을 생각했다. 왜! 그녀는 남편을 생각하면 진저리쳐지는 것만 생각나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안 했던 말을 이상하게도 H에게는 하게 되는 것이었다. H는 감자 캐기가 힘들어 그늘에 잠시 쉬면서 미영의 말을 들고 있었다. 미영은 무슨 말이라도 H에게 말하면 언니처럼 들어주는 것이 고맙고 가슴에 꽉 막힌 출구가 뚫리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H는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는데 미영은 바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혼자 떠들어댔다.
“성님 바쁘신데 지 말 좀 들어 봐유, 그놈의 인간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 아세유?”
나무그늘에 털썩 주저앉으며 미영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나야 모르지. 또 무슨 일인데, 말해 봐요”
미영이 입을 삐죽이며 남의 말을 하듯 시작했다. H는 미영의 말을 들으면 비현실감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끼곤 했다. 괴기 영화의 스토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잘못 들은 것 같아 왼손 검지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내기도 했다.
미영은 서른다섯에 여섯째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음력 십이월 초순이 해산 예정일이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 십일월 어느 날 미영의 남편은 저녁 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있었다. 시골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겨울이면 어둠이 내리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고 초저녁부터 잠을 자기 일쑤였다. 미영이네 집도 예외는 아닌데 그녀의 남편도 저녁만 먹으면 일찍 자곤 했다. 전깃불도 없던 미영이네는 남폿불을 밝히면서 저녁밥 먹는 것을 조심했는데, 더욱이 저녁을 일찍 먹는 이유는 석유를 많이 소비한다는 시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밤이 깊어지면 속이 출출할 때가 있다. 간식으로 고구마를 삶아 먹거나 무 같은 것을 먹어야하는데 미영은 만삭의 몸으로 하루 종일 동네잔치 집에서 일을 돕고 왔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시어머니 방에서 이불속에 발을 넣고 있으니 포근하게 잠이 왔다. 남편은 미영을 기다리다 아랫방에 내려와 보니 미영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화가 있는 대로 나서 눈을 번득였다.
“무얼 하기에 잠자러 오지 않는 거야, 왜 여기서 졸고 있어.”
뇌성병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귀를 한 차례 때리고 미영의 멱살을 끌고 윗방으로 넘어갔다. 남편은 욕정이 발동하면 미영이 윗방으로 들어올 때까지 초저녁잠을 참으며 자지 않고 기다린 것이었다. 그러기에 지레짐작으로 윗방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미영의 남편은 아내의 입장이나 생각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몰염치한 인간이었다. 만삭 임산부에 대한 예의나 남편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그저 수컷에 불과한 무례한이었다. 낮에는 품팔이, 밤이면 눈먼 시어머니와 다섯 아이의 보살핌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그런 사내였다.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술만 먹고 주정하는 동물인간이었다. 열 살이 어린 아내를 위하지는 못할망정 늘 말로 괴롭혔고 손찌검도 예사였다. 일하고 온 아내를 이해해주지는 못하고 욕정이 발동하면 밤새 끌어안고 더듬으며 잠을 못 자게 했다. 미영은 그런 남편에게서 마음을 열지 못했다. 여자들 대부분이 마음의 문이 열려야 제대로 부부생활을 부드럽게 할 수 있지만 마음의 문이 닫히면 따라서 몸의 문도 닫고 만다.
미영은 일어나 나오려고 하면 남편은 다리를 잡고 못 나가게 했다. 정말 싫어 뿌리치면 그때부터 구타가 시작되었다. 주먹으로 등을 때리고 발길로 엉덩이를 차고 따귀를 때리고 머리를 얻어맞고 나면 정신이 멍해져서 쓰러지고 만다. 수시로 얻어맞은 따귀 때문인지 작은 말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고 H에게 고백했다. 말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소리의 구분이 어려워 입술을 보고 대충 알아듣는다고 했다. 미영의 그런 말을 듣는 H는 가슴이 울컥하며 속이 답답해 왔다.
H는 신부전증을 앓은 병력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거나 남의 속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전이가 되어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의 증상이 옮아와 같이 고통을 받았다. H는 몇 년 전 TV에서 살인자 지강헌이란 자가 단독주택 개인집에 침입해 그 집주인을 인질로 삼고 실랑이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생중계방송한 일이 있었다. 그런 광경을 시청하고 가슴에 통증이 생기고 숨이 가빠져서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었다.
미영은 한숨을 간간이 쉬어가며 말했다. 미영의 남편은 자기의 욕정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하는 것이 일쑤지만 그날은 좀 더 심했다.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설과 함께 발길로 옆구리를 찼다. 다시 발길로 배를 찼다. 미영은 정신을 잃고 혼절하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말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정신이 들었다.
“이년이 기절한 시늉을 하는가?”
미영을 흔들다 아무 미동이 없자 아들을 향해 악을 쓴다. 끈적끈적한 것이 시어머니 발에 밟혀 손으로 방바닥을 더듬었다.
“아! 이건 피가 아니어? 아이고! 이놈아! 혼내주려면 시늉만 해야지, 미련한 것 같으니라고. 쌍 초상났다. 한 달 있으면 애를 낳는디, 어쩌자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놔. 못난 놈 같으니라구. 에미야! 일어나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 정신 줄 놓으면 안 된다.”
미영은 시어머니 악쓰는 소리, 엄마! 엄마! 하며 입에 찬물을 넣어주는 큰 딸애의 울부짖음과 막내아이의 한없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다 가까이서 들다 했다. 미영이 간신히 정신은 돌아왔는데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는지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아픈 강도는 높아왔다. 뱃속에 아이는 뭉쳐 있고 아래에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이따금씩 주먹만한 핏덩이가 뭉클뭉클 빠져나왔다. 손가락 한 개도 움직일 수 없이 기운이 없어진 미영은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큰딸을 시켜 옆집아주머니를 모셔오라고 했다. 평소 미영에게 언니 같았던 이웃이라 지금의 위험을 알리고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이게 웬 일이냐며 집으로 뛰어가 따끈한 숭늉 한 사발을 갖고 와 미영에게 먹여 주었다. 혼미했던 정신이 차츰 회복하기 시작했다. 따듯한 물 한사발이 미영의 해산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돕고 있었다.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옆집 아주머니가 남편보다 시어머니보다 의지가 됐다. 두 손을 불끈 쥐어졌다. 아이가 나오려는 것이었다. 한 겨울인데도 전신에 구슬 같은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 낳을 때보다는 힘들었지만 다행히 순산을 했다. 아기는 울지도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산을 한 것이었다. 아기를 품에 앉고 미영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울음소리가 아닌 맹수의 울부짖는 그런 소리 같았다. 독한 시어머니도 바보 같은 미영의 남편도 감히 뭐라 못하고 멍청하게 서서 쳐다볼 뿐이었다.
미영은 생각했다. 이 아이는 애비가 죽인 자식이다. 저 놈은 살인자가 아닌가? 미영은 살이 떨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몇 날을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에 잠겼다. 우선 이 집을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열개의 눈동자가 가슴에 박혔다. 모두 에미의 손이 필요한 어린 것들이었기에 에미의 도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시 남편과의 불화도 시어머니의 냉대도 참고 견디며 아이들 돌봄에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도 도무지 남편이라고 믿고 의지할 수 없었다. 남편은 미영에게 보호막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자에다 몸은 약골이요, 성격장애에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낡고 초라한 셋 칸 집에서 이대로 살다가는 아이들 양육과 교육은 어떻게 하나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남편과는 일체 말도 하기 싫고 더욱이 싫은 것은 한 집안에 같이 살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기는 더욱 싫었다. 아니 진저리가 났다. 미영은 생각하고 생각한 나머지 집을 나가 종무소식을 끊고 삼년만 묻혀 살면 수중에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 돈으로 땅도 사고 아이들 양육비 마련도 할 수 있겠다는 신념이 생기자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굶지는 않을까? 누더기를 걸치고 울며 거리를 헤매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조바심쳐졌다. 결심하기까지 몇 날 밤을 새우며 궁리했지만 어떤 것이 최선인지 도무지 대안이 서지 않았다. 엄마로써 이것이 최선책인지, 미영은 아이들만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책감으로 몸부림쳤다. 잠든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보고 또 보며, 먼동이 트기를 뜬눈으로 기다리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새벽에 집을 나섰다. 큰딸이 중학교 2학년이니 밥은 할 줄 아니까 할머니와 아버지 동생들 끼니는 해결해 주리라 믿고 싶었다. 앞을 잘 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계시니 조그마한 위안을 삼고 싶었다. 떠나기 전날 큰딸에게만은 말하고 싶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이해해 주지 않을 것 같고 엄마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말을 하지 못했다.
미영은 누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은 환청에 자꾸만 뒤돌아보며 빨리 걸었다. 막상 동네 초입을 벗어나자 그 자리에 멈추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정신을 차리고 고산 쪽으로 갈까? 여산 쪽으로 갈까? 문드레미 재를 넘을까? 솔티 재를 넘을까.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갈 곳이 없었다. 대전언니네로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하나 망설였다. 이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언니 하나뿐인데 언니는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보듬어 줄 거라며 막연히 의지하고 싶어졌다.
“그래 언니한테 가는 거야.”
문드레미 재를 넘으면 여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여산에서는 대전가는 버스가 고산보다는 많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미영은 문드레미 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드래미 재를 달이실 사람들은 맨드래미 재라고 부른다. 맨드라미 꽃술처럼 꼬불꼬불하다고 그렇게들 불렀는데, 그곳은 산길이 구불양장같이 지형이 꾀나 험난한 곳이다. 그러나 그쪽으로 가면 여산이나 논산, 대전으로 가는 차편이 고산보다는 자주 있을 것이니까 언니한테 가는 게 수월할 것이었다.
미영은 대전 언니네 집 앞까지 왔지만 선뜻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언니네 식구 누군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미영은 건강 체질이지만 며칠 전 남편에게 맞은 곳이 욱신거렸고 사산死産으로 몸조리도 못해 몰골이 수척하고 온몸에 부기가 있어 초췌했다. 그때 언니네 옆집 아주머니가 미영을 알아보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누구여. 이 집 동생 아닌겨? 몰골이 이상하구먼. 왜 들어가지 않고 쪼그리고 앉은 겨? 빨리 들어가유.”
그때 아주머니의 떠드는 소리에 언니가 밖으로 나왔다.
“미영아. 왔으면 들어오지 그랬어. 최 서방한테 또 맞은 기여. 아니 그런데 배는…. 왜 벌써 홀쭉한 기여. 애는 어떻게 된 거여, 말 좀 빨리해 보라니께.”
언니는 미영의 손을 잡고 동생의 말을 듣고 이 말 저 말을 물었다. 언니는 동생을 일으켜 부축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것아! 속 시원히 말 좀 해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들은 언니는 이를 악물며 벌떡 일어나 옷걸이에 있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이 독하디 독한 최가 놈을 그냥두지 않겠다. 내가 달이실에 가서 물골을 내야겠다. 기집한테 호강은 못시킬망정 뱃속에 아이까지 사산을 시켜? 뱀만도 못한 놈. 인간의 탈을 썼으면 인간답게 살아야지, 제자식도 죽인 놈, 미물만도 못한 놈 같으니라구”
언니의 손과 다리는 후들거리고 입술은 씰룩거렸다. 미영은 이러다가는 언니가 쓰러질 것 같아 언니를 끌어안았다. 자매는 서로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울었다. 실컷 울고 나니 머리도 개운해지는 것 같고 마음도 평정을 서서히 찾아지는 것 같았다.
“언니 그냥 날 봐서 참아요. 나 집 나온 것은 그 인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 집에서 그냥 살다가는 아이들 공부도 못시키고 매일 그날이 그날일 것 같아 일자리를 구하려고 언니 찾아 온 거유, 나를 조금만 도와줘. 내 몸이 좋아지면 어디에라도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유. 한 3년만 모으면 밭을 사서 아이들 배 골리지 않게 하고 싶어유. 언니만 알고 있어유, 달이실에서 누가 와서 날 찾거들랑 모른다고만 하세유.”
언니는 미영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산으로 피를 많이 쏟은 미영의 부석한 얼굴을 만지며 언니는 보고 또 보고 울고 또 울었다. 언니는 우선 미영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영양제를 맞히고 한약으로 몸을 보신해 주었다. 언니의 지극한 정성에 미영은 혈육의 포근한 정을 오랜만에 받아들이며 언니가 엄마 같다는 감정에 울고 또 울었다.
밤이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에미로써의 죄책감과 의무감 때문에 울었고, 이 세상 천지에 자매만 남겨 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고, 그립고, 원망스러워서 울었고, 언니와 뿔뿔이 흩어져 남의집살이의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울었다. 남편에게 모든 것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었고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와 남편, 내 아이들과 화목하게 살고 싶었던 소망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은 허망감에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팽창했던 풍선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상실감이었다.
언니는 온전히 미영의 편이었다. 언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고 말 한마디도 포근하게 해주었고 미영에게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언니네 집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남편이나 아이들이 찾아올 수도 있기에 서둘러야했다.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했던 미영은 몸이 조금 좋아지자 언니네 집을 떠나 대전 모음식점에 취직을 했다. 막상 언니네를 떠나야하는 마음이 괴로웠다. 눈만 뜨면 떠오르는 아이 다섯 모두 보고 싶었지만 그중에 세 살짜리 막내가 제일 눈에 밟혔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과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이 맞물려 서로 갈등했다. 그렇지만 삼년만 꾹 참으면 마음 작정한대로 될 것 같은 생각이 우선이었다.
대전 한식집은 규모가 큰 한식집이었다. 다행이 숙식 해결이 가능한 곳이었다. 미영은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홀 청소, 그릇 닦기, 채소 다듬기 닥치는 대로 일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타고난 건강한 체력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자 주인의 신망을 얻어 칭찬을 자주 들었다. 월급은 받는 대로 꼬박꼬박 은행에 적금을 부었다.
일 년이 넘어 이년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거의 매일 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이들이 거지꼴을 하고 울면서 거리를 헤매는 꿈이거나 막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숨이 넘어가고 있는 그런 꿈들이었다. 아니면 시어머니가 나타나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욕을 해댔다. ‘요 독한 년, 너만 잘 먹고 편히 있으면 되는 기여?’ ‘삼년을 채워야 달이실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미영은 속을 끓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미영은 사장에게 며칠간 휴가를 얻어 언니네 집으로 먼저 갔다. 미영은 마음 독하게 먹고 그동안 언니와도 왕래가 없이 지냈는데, 소식을 듣고 싶기도 했다. 언니는 언제나 반색을 하며 미영을 맞이해 주었다. 미영이 떠나고 큰딸, 둘째딸이 두 번이나 와서 엄마 찾아달라고 애원했다고 언니는 전했다. 그때 언니는 모른다고 모질게 잘라 말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영을 위하고 조카들을 위하는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고 했다.
미영은 달이실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앉을 자리를 정하고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에 잠시 눈을 돌렸다. 큰딸애가 울면서 엄마를 보고도 못 본 척 울면서 그냥 지나치던 어젯밤 꿈이 머릿속에 멈추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버스가 느릿느릿 가고 있는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미영은 마을 입구에서 내려 1.5km를 뛰다 시피 내달았다. 어느덧 해는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미영은 선뜻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먼저 옆집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옆집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미영의 손을 잡더니 부엌으로 들어가자고 잡아끌었다.
“유미엄마 잘 왔네, 새끼들은 에미가 없으면 큰일 일어나! 아니 그보다도 어디 있다가 왔능가?”
미영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글쎄 유미가 학교도 작파 했잖아, 그리고 면사무소까지 매일 걸어갔다 왔잖아,”
“어째서유, 왜 학교는 안 감나유”
“말도 말어, 아침에 식구 밥해주다 보면 늦어서 못가고, 동생들 누구 아프면 못가고 그랬잖아, 그리고 유미 아버지가 말 안 듣는다고 욕하고 때려, 그러니까 집나가지”
미영은 딸애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에 마침 올 곳이 왔구나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시름에 잠겼다. 그 외에도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더 듣고 말았다. 면소재지에 사는 군인이 있었는데 그 총각을 좋아해서 매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동네 소문이 좋을 리 없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좋지 않은 소문은 있는 그대로 보다 몇 배 더 부풀려 떠돌기 마련이었다.
미영은 에미가 사춘기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기가 막혀 눈앞이 캄캄했다. 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두 다리를 쭉 뻗고 땅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 유미는 할머니, 아버지, 동생 셋, 여섯 식구의 식사 해결하기가 힘들었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욕하며 때리는 아빠가 더 무서웠다. 욕쟁이 할머니와는 말하기도 싫고 동생들은 엄마를 찾으며 징징대고, 모두가 싫었다. 엄마를 찾으려고 이모네도 가 보았지만 엄마의 행방을 모른다는 이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유미는 힘들고 지쳤다. 사춘기 소녀였기에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대부분 사춘기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유미도 현실에 대한 불만, 자기의 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 특히 부모에 대한 불만, 현재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 유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었다.
영리한 아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양을 쌓고 운동을 하며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하는데 반해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거나 사고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자기를 버리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유미는 현실을 타계하려는 의지보다는 현실에 잠수하는 유형의 아이었다.
미영은 어둠을 틈타 마당을 가로 질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바닥에 네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는 방으로 밥상을 차려 드리고 사남매가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남폿불 아래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거지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인지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낯설어 하며 누구도 ‘엄마’하고 달려드는 아이가 없었다. 상위에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된장국물 뿐이었다. 그림 속 풍경 같은 한 장면이 미영의 목을 콱 메이게 했다.
혹독한 댓가를 치루고 딸애 유미는 서울로 갔다. 어느 의류공장에서 재봉틀 일을 배우며 열심히 공장을 다녔다. 의지가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유미는 함께 일하는 남자가 유난히 친절히 대해주는 것이 사랑인 줄 착각하고 말았다. 그 남자는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었는데 그만 그 남자의 아이를 낳고 말았다.
딸아이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으니 기를 수도 없고 해서 아이는 남자에게 주고 헤어졌다고 하며 미영은 울었다. H는 얼른 일어나 나무 아래 쟁반위에 놓여있는 물병에서 물을 컵에 가득 따라 미영에게 건넸다.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미영은 자기의 잘못으로 딸이 불행해졌다며 고개를 숙였다. H도 가슴에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미영은 한숨을 쉬더니 망설임도 없이 터진 봇물처럼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기 내면의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심리가 잠재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지금 미영은 자기의 이야기를 H에게 말하면서 자기의 위안을 얻으려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H는 생각했다.
둘째 딸아이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대전에 있는 방직공장에 취직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회사에서 세운 야간고등학교에 다녔다. 그곳 공장에서 성실한 청년과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전주에서 잘 산다고 할 때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셋째 딸도 작은 언니와 똑같이 같은 공장에 다녔고, 야간고등학교도 졸업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청년을 만나 동거하고 있다고 하며 봄에 결혼식을 올릴 거라며 좋아했다. 그런 말을 듣고 H는 방안으로 들어가 부조금을 봉투에 넣어 미영의 손에 쥐어줬다.
작은 아들도 지금 동거하고 있는데 큰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짠했다.
미영은 큰아들 얘기는 마지막에 했다. 말인즉, 큰아들은 대전에 살고 있으며 우체국 택배 일을 하는데 5살 먹은 손녀가 재롱이 많고 예쁘다는 얘기며 할머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며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며느리가 아들한테는 지극정성이며 미영에게도 잘해 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아들보다 아홉 살이 더 많다고 하며 약간 창피하다고 했다. H는 미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옛날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하며 위로해 주었다.
미영은 봄부터 가을까지 품팔이를 하면서 지금 자신의 생활비를 번다고 했다. 그리고 조그만 여유라도 생기면 큰아들에게 갖다 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나는 못 먹고 안 입어도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이 모든 어미의 마음인 것을…….
어느 봄날 H는 벚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있었다. 벚꽃은 한 잎 두 잎 얼굴을 간질이며 놀자고 한다. 산바람이 불면 꽃잎은 소리 없이 하르르 춤을 춘다. 하늘에는 종달새 노래 소리가 청아하고 옆 산에서는 멧비둘기 우는 소리 간간이 들려왔다. 나뭇잎들이 뾰족이 올라오는 모습이 꽃봉오리처럼 예쁘다. 마당 귀퉁이에 보라색으로 피어있는 야생화가 곱고 앙증맞다. 여기저기 노란 민들레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햇살이 곱게 퍼지면 민들레도 별처럼 빛난다. H는 민들레꽃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다 꽃 한 송이 따서 머리에 꽂는다. 하와이안 여인들이 머리에 꽃을 꽂은 그림 생각이 났기에 따라 해본 것이다. 한결 젊어진 기분이 든다. 그때 미영이 어린 남자 아이의 손을 잡고 마당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성님 뭐 하세유?”
“나 지금 망중한입니다.”
“어머, 머리에 꽂은 노란꽃 성님과 어울리네유.”
하며 H가 앉은 옆자리에 스스럼없이 와서 앉는다.
H는 조금은 쑥스러워 머리에 꽂았던 꽃을 슬며시 빼낸다.
미영과 H는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마당에 피어 있는 민들레를 꺾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미영이 며칠 전부터 남자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H는 웬 아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오늘은 누구의 아이냐고 참았던 궁금증을 내보였다. 미영은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가 첫째 딸 애 예유, 다섯 살 이거믄유, 제 에미가 마트에 캐셔로 일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돌봐 달라 하네유, 지도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어떻게 하것시유, 내가 고생스러워도 그러기로 했시유. 그렇지만 저것이 있어 집안이 적적하지 안어서 좋아유.”
그동안 큰 아픔을 겪고 난 후 큰딸이 결혼하여 낳은 손자라고 했다. H는 생각했다. 미영의 일생, 아니 여자의 일생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부모의 사랑과 남편의 사랑, 자식과 부모의 사랑을…. 그중에서 자식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미영의 일생은 어떠한가?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라,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어 시집을 왔건만 남편에게도 외면당한 미영이었다. 남의 집 품팔이 소작인으로 아이들을 길렀는데, 아이들은 미영에게 생활비를 보태주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일구월심으로 남의 하우스에서, 품팔이로 조금씩 돈을 벌어서 먹고, 쓰고 남으면 아이들 보태주는 미영이가 H는 측은해 보였다.
옛말에 여자의 일생은 부모의 덕이 없으면 남편 덕도 없고, 자식 덕도 없다는 말도 있지만 H는 부정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미영을 보면서 옛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미영이 살아갈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그녀의 자식들이 부디 잘되어 미영의 노후는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빌어주고 싶었다. 다행이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서 제 밥벌이는 하지 않는가. 그래도 미영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끝나지 않아 보였다. 이제는 편히 살겠다했는데 또다시 손자를 기르게 되었으니 그녀의 산은 다시 오르막으로 보였다. 산을 넘으면 시내가 앞에 나오고 먼 산길을 향해 걸으면 다시 강이 나오고 그 강을 건너면 또다시 산이 나오는 것이 인생길이라고 누가 말했나. 아직 미영이 넘어야 할 산이 몇 개나 남았을까. 우리가 넘어야 할 인생의 산은 모두 몇 개를 안고 태어나는 것일까.
작품평
인간의 극한적 비극을 침착하게 다루고 있는 수작
가정문제를 다루겠다는 애초의 의도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덤으로 이익을 남기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단순한 가족관계의 갈등을 넘어 한 개인에게 닥치는 불행이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는 뜻이다.
하나의 연극무대로 본다면 황작가는 주인공에게 극한의 비극이라는 소도구를 캐릭터 소재로 운명처럼 선택하도록 구도를 짰다.
주인공은 사회적 공격에도 방어할 수 없도록 무식할뿐더러 더구나 사고무친의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으니, 마치 ‘인간의 비극은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소설 같다.
황옥례의 ‘달이실 신화神話’를 천거하는 이유는 인간의 극한적 비극을 다루면서도 함께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서술하고 잇다는 장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솜씨 또한 심상치 않다. 부디 한국 작단에서 대성하기를 빈다.
당선소감
오늘날 컴퓨터만 열면 원하는 것은 모두 볼 수 있는 지식정보사회의 시대에 살면서 소설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 소설을 쓰는 이유는 우리네 삶의 근원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단 한 분만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소설은 호흡이 길어야 쓰는데 늦게 데뷔하면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숨을 다하는 날까지 작품으로 독자들을 울려보고 싶습니다.
데뷔하기 부끄러운 작품이라 생각하여 여러번 망설였는데 신문예사의 하옥이 주간님이 적극 추천해주시고, 심사위원님께서 좋은 평을 주시어 격려해 주신 것으로 알고 열심히 집필에 노력하겠습니다.
시인․ 수필가․ 화가. 명지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한 송이 바람꽃』『시간의 거울』 수필집『거울 속 세상으로』등.
현재, 에세이문학진흥회 운영위원, 월간신문예 시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