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오늘도 고생을 많이 했다. 서울에서 11시에 한국수필가협회(이사장 권남희) "이사회"가 있기에 8시 15분 itx 표를 화요일에 예매했는데 창가쪽은 아니라도 자리가 있었다. 원래는 아침에 차를 운전해서 남춘천역까지 가서 부근에 주차해 놓고 갈 계획이었는데 오늘이 바로 풍물시장 장날이라 주차장이 포화상태일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걸어 가기로 했는데 거기다 눈까지 왔으니 더욱 차를 이동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일찍 집을 나서 풍물시장으로 들어서 걸어가는데 부지런한 상인들은 벌써 상점 문을 여느라고 분주하다. 풍물시장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큰 길 횡단보도를 빼고는 눈을 밟지 않고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전철을 두 번 갈아탔지만 지하도라 큰 걱정은 없었는데 지하 입구에서 호텔까지 가는 짧은 길에는 눈과 얼음이 있어 조심 조심 걸었다
춘천에서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어도 별로 추운줄 몰랐는데 서울은 엄청 추웠다. 문제는 집에 올 때 생겼다. 화요일 표를 예매할 때 왕복표를 예매했는데 예매 시간이 있고 인사동에 들려올 일이 있어 인사동에 갔는데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수강생이 부탁한 민화지를 사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대합실로 들어가는 짧은 거리지만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려고 해서 붙잡고 가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모자를 잡고 뛰어간다.
시간을 보니 바로 앞차가 있기에 표를 바꾸어 줄 수 있느냐고 창구에 물었더니 좌석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잘하면 자유석에 앉아야 하고 지난번처럼 청량리역에서 춘천까지 서서와야 하니 37분 itx니 25분에 또 와보라고 하더니 취소한 사람이 없어 좌석표가 없다고 하여 원래 예매한 표 시간대로 4시 15분 차를 타기 위해 4시부터 4번 홈에 가서 기다리는데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날씨가 추워 청량리역과 팔당역사이에 정전사태가 생겨 열차가 지연되니 어느 노선은 다른 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한다.
하나 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기다리는 사람은 나처럼 춘천행 itx를 타려고 서있나 보다. 춥다고 대합실로 올라갈 수도 없어 언제 올지도 모를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방송이 흘러 나오는 중에 4시 15분 춘천으로 가는 itx 청춘열차를 이용하는 고객님은 그 자리에서 조그만 더 기다려 달라며 계속 죄송하다는 멘트도 함께 나온다.
그렇게 기다린 게 42분을 덜덜 떨면서 기다려 기차를 탔을 때는 기차를 타고 42분을 기다린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3시 37분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 춘천까지 서서 올까봐 표를 바꾸지 않았는데 내 꾀에 내가 넘어간다고 말하듯이 거의 그 시간을 기차를 기다리며 떨어야 했으니 표를 바꾸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됐으니 생각해 무엇하랴
남춘천역에 도착하자 이것도 진 풍경이다. 개찰구를 통해 여러 줄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직원 두 명이 양쪽에 서서 비상문으로 승객을 차례로 내보내는 것이다. 물로 표를 받지 않고 말이다. 그 광경을 보고 웃으며 "너무 많이 기다렸다고 특별대우 하나요" 했더니 직원이 멋쩍게 웃는다. 1층에 내려오니 빈 택시가 몇 대 있기는 한데 집이 빤히 보이는데 택시 타기도 그렇고 고생하는 길에 실컷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풍물시장을 경유해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