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0】 4
<6> 회향의 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修習如是諸善根時에 得智慧明하야 爲善知識之所攝受하며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든 선근을 닦을 때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선지식의 섭수하는 바가 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선근을 닦아 회향하면 무슨 이익이 있을까. 지혜의 광명을 얻어 선지식의 섭수하는 바가 된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선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선지식의 섭수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그 선지식의 섭수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허공 가득 보물이 쏟아져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더라도 중생들은 모두 그 그릇을 따라 이익을 얻는다.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일은 곧 선지식의 섭수(보살핌)를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如來慧日이 明照其心하야 永滅癡冥하며
“여래 지혜의 태양이 그 마음을 밝게 비추어 어리석음의 어둠을 영원히 소멸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선근을 닦아 회향하여 얻는 이익은 또 여래 지혜의 태양이 그 마음을 밝게 비추어 어리석음의 어둠을 영원히 소멸한다. 실로 10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인의예지를 닦는 것은 곧 여래 지혜의 태양이 밝게 빛나는 일이다. 무슨 어리석음이 있겠는가.
勤修正法하야 入諸智業하며
“바른 법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지혜의 업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선근을 닦아 회향하고 얻는 이익은 달리 정법을 닦는다고 설명할 것이 없다. 선행을 닦는 일이 곧 정법이며 지혜의 업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善學智地하야 流布善根하야 充滿法界하며
“지혜의 지위를 잘 배우고 선근이 흘러 퍼져 법계에 충만하니라.”
▶강설 ; 선행을 닦아 회향한 이익은 그대로가 지혜의 지위를 잘 배우고 선근을 법계에 충만하게 하는 이익이다. 이보다 더 큰 이익이 무엇이겠는가.
以智廻向하야 盡諸菩薩善根源底하고 以智深入大方便海하야 成就無量廣大善根이니라
“지혜로 회향하여 모든 보살의 선근의 근원까지 다하고 지혜로 큰 방편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 무량하고 광대한 선근을 성취하느니라.”
▶강설 ; 10바라밀 등 온갖 선행을 행하여 그것을 다시 세상에 회향하는 것은 보살의 선근의 근원까지 다하고, 지혜로 큰 방편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 무량하고 광대한 선근을 성취하는 일이다. 보살이 달리 무슨 이익을 바라겠는가. 보살은 자신이 하는 선행을 더욱 널리 할 수 있는 것이 곧 보살의 이익이다.
<7> 상을 떠난 실제(實際)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此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不着世間하고 不取衆生하야 其心淸淨하야 無所依止하며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런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라. 이른바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취하지 아니하며, 그 마음이 청정하여 의지할 데가 없느니라.”
▶강설 ; 보살이 선근으로 세간에 회향하고 중생에게 회향하지만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중생을 취하지도 않는다. 그 마음은 텅 비어 청정하며 그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正念諸法하야 離分別見하며 不捨一切佛自在慧하야 不違三世一切諸佛正廻向門하며
“모든 법을 바르게 생각하여 분별하는 소견을 여의며,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신 지혜를 버리지 않고, 삼세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르게 회향하는 문을 어기지 않느니라.”
▶강설 ; 모든 법을 바르게 생각[正念]하면 일체 존재의 연기성과 공성으로 관찰하므로 분별과 차별을 떠나게 된다. 그것이 존재를 바로 보는 지혜이다. 존재를 바로 보는 지혜가 있으므로 삼세 일체 부처님의 회향과 하나가 되어 어기지 않는다.
隨順一切平等正法하며 不壞如來眞實之相하며
“일체에 평등한 바른 법을 수순하고, 여래의 진실한 모습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강설 ; 불교를 배워 불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법을 수순하는 것이다. 그 정법은 일체 존재에 평등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래의 진실한 모습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를 믿고 불교를 따른다고 하면서 오히려 여래의 진실한 모습을 파괴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상을 떠난 진리[實際]에 회향하는 것은 일체에 평등한 정법을 수순하는 것이다.
等觀三世하야 無衆生相하며 善順佛道하고 善說於法하야 深了其義하며
“삼세를 평등하게 관찰하매 중생에 대한 상이 없으며, 부처님의 도(道)를 잘 따르고 법을 잘 설하며, 그 뜻을 깊이 아느니라.”
▶강설 ; 상을 떠난 진리에의 회향은 삼세가 공하여 평등함을 관찰한다. 또 중생이라는 것도 공하게 관찰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으로까지 관찰한다. 이러한 이치를 잘 설법하고 그와 같은 깊고 깊은 이치를 깊이 아는 것이다.
入最勝地하야 悟眞實法하며 智慧圓滿하야 信樂堅固하니라
“가장 수승한 경지에 들어가며, 진실한 법을 깨달아 지혜가 원만하고 믿음과 좋아하는 마음이 견고하느니라.”
▶강설 ; 상을 떠난 진리에의 회향은 가장 수승한 경지에 들어가며, 진실한 법을 깨달아 지혜가 원만하다.
<8> 실제회향의 행(行)
雖善修正業이나 而知業性空하야 了一切法이 皆如幻化하며 知一切法이 無有自性하며
“비록 바른 법을 잘 닦지마는 업의 성품이 공(空)함을 알고, 일체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알고, 일체 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아느니라.”
▶강설 ; 실제회향의 행이란 존재의 실상과 같은 회향이다. 존재의 실상은 바른 업과 선한 업과 부처의 업과 보살의 업을 잘 닦으나 그 업의 성품이 텅 비어 공적한 줄을 안다. 부처의 업과 보살의 업까지 공적한데 하물며 중생의 악한 업인들 공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일체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알고, 일체 법이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안다. 이것이 실제에 회향함이다.
觀一切義와 及種種行하야 隨世言說호대 而無所着하야 除滅一切執着因緣하며
“모든 이치와 갖가지 행(行)을 관찰해서 세상을 따라 말하나 집착할 것이 없어서 모든 집착하는 인연을 소멸하느니라.”
▶강설 ; 또 실제회향은 일체 세상사가 천변만화로 펼쳐지고 그것을 따라서 다 설명하지만 일체 집착할 인연들이 텅 비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知如實理하야 觀諸法性이 皆悉寂滅하야 了一切法이 同一實相하며
“실상과 같은 이치를 알아서 모든 법의 성품이 다 적멸함을 관찰하여, 일체 법이 실상과 같은 줄을 안다.”
▶강설 ; 또 실제회향은 일체 존재가 실상과 같은 이치를 알아서 모든 법의 성품이 다 적멸함을 관찰한다.
知諸法相이 不相違背하며 與諸菩薩로 而共同止하야 修行其道하며
“모든 법의 모양이 서로 위배되지 아니함을 알고 모든 보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도(道)를 닦느니라.”
▶강설 ; 모든 법은 법이 저절로 그러한 이치가 있다. 즉 그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알아 성현들과 함께 있으면서 성현들의 가는 길을 함께 따라 수행하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며 존재의 실제에 회향하는 일이다.
善攝衆生하야 入去來今一切菩薩廻向之門하며
“중생을 잘 거두어서 과거·미래·현재의 일체 보살의 회향하는 문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보살은 언제나 중생들을 잘 섭수하여 일체 보살이 행하는 요익중생의 길인 회향의 문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於諸佛法에 心無驚怖하야 以無量心으로 令諸衆生으로 普得淸淨하며
“모든 불법(佛法)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무량한 마음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청정케 하느니라.”
▶강설 ;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 한마디에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청담스님과 성철스님 등이 봉암사에서 살 때의 이야기다. 청담스님이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떤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어서 당시로서는 큰돈을 보이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을 부르면 이 돈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걸인이 “내가 어떻게 그것 부르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그것 부르겠습니까.”하면서 물러앉으며 끝내 부르지 못하여 돈을 주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성철스님의 법문 녹음에 올라 있는 실화다. 모든 불법에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사람이 지금 그대로가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화엄경을 대심중생(大心衆生)이 공부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한량없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훌륭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