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압수수색 부른 3.2억 대납 핸드크림 차액 10억, 비자금 의혹 신설법인 145억, 심사 없는 신용대출 자회사 자금 흡수하는 농지비 통로
그래픽=Gemini 생성 이미지
사법당국이 연이어 농협을 들여다보고 있다. 회장 개인 수사와 회사 시스템 수사 두 갈래로 동시 사법 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13일에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농협중앙회 본관을 압수수색했다. 이튿날인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협 정상화를 직접 주문했다. 농협의 사법리스크는 다른 금융지주사와 다르게 거버넌스에 관련이 깊다는 특징이 있다. /편집자주
지난 13일 농협중앙회 본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임직원 변호사비 3억2000만원 공금 대납 사건을 향한 강제수사다. 같은 시기 농협 그룹 자회사에서도 같은 유형의 사법리스크가 잇따라 외부에 드러났다.
농협생명에서는 20억원 규모 핸드크림 수의계약 비자금 의혹이 금융감독원 검사 대상에 올랐고 농협경제지주가 요청해 농협중앙회가 집행한 145억원 신용대출은 부실 심사가 정부 합동감사반에서 적발됐다. 세 사건은 모두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 지분 100%를 보유한 단일 모회사라는 구조 아래에서 발생했다.
◇ 단일 모회사 구조와 외부 견제 봉쇄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농협 그룹 지배 구조는 농협중앙회가 정점에 있고 그 아래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가 각각 100% 자회사로 자리한다. 농협금융지주 산하에는 농협은행·농협생명·농협손해보험·NH투자증권이, 농협경제지주 산하에는 농협하나로유통 등이 들어가 있다. 비영리 재단인 농협재단도 농협중앙회 통제 아래에 있다.
시중 4대 금융지주가 국민연금·외국인 투자자 등 분산된 주주 아래에 있는 구도와 다르다. 농협은 단일 모회사가 그룹 전체를 100% 지배한다.
단일 모회사 구조는 외부 견제 메커니즘을 사실상 봉쇄할 수 있다. 시중지주 사외이사는 기관투자가의 견제 압력 속에서 선임되지만 농협 자회사 사외이사는 농협중앙회 의지가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해 반영된다.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는 농협중앙회 출신 비상임이사와 농협중앙회 측 사외이사가 참여하며 회장 영향력이 자회사 인사에 직접 미친다. 감사위원회 독립성도 같은 한계 안에 있다. 외부 감사가 들어오지 않는 한 자회사 거래의 내부 결재 라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확인할 외부 통로는 없다.
반면 KB·신한·하나·우리 시중 4대 금융지주는 모두 소유 분산 구조다. 기관투자가와 일반 주주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며 사외이사 비중과 감사위원회 독립성이 농협과 다르다.
시중지주에서도 회장이나 임원 비위는 발생하지만 외부 감독 당국 검사나 시장 공시 의무가 발견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농협 사건들은 모두 회사 자체 감사 또는 정부 합동감사가 들어간 뒤에야 외부에 드러났다.
◇ 자회사 거래·모회사 신용 차입·내부 회전
농협생명 핸드크림 사건도 농협의 거버넌스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첫 번째 증거다.
농협생명은 2024년 12월 31일 농협하나로유통 산하 삼송농산물종합유통센터와 핸드크림 3종 세트 10만개를 20억원에 사들이는 수의계약을 맺었다.
농협금융지주 자회사와 농협경제지주 산하 법인이 농협중앙회 지배 아래에서 만난 거래다. 결재선에는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었던 박병희 현 대표 이름이 있었다. 일반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었던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단가 2만원짜리 핸드크림의 생산 단가는 1만1000원, 인터넷 판매가는 3만7000원이었다. 납품 기한인 2025년 2월 28일까지 농협생명에 실제 들어온 핸드크림은 발주의 절반인 5만개에 그쳤다. 나머지 5만개는 농협금융이 자체 감사를 시작한 8월 28일 이후에야 들어왔다.
차액 10억원의 행방이 사건의 핵심이다. 삼송센터는 받은 발주를 다시 에이오·라인플러스 등에 재하청했고 그 재하청이 전남 완도의 피부숍 '지현살롱'으로 이어졌다. 지현살롱은 농협생명 3급 직원의 여동생이 운영한다.
이에 대해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 10월 27일 정무위 종합국정감사에서 "농협생명 대표가 내부감사에서 '나는 챙긴 게 없고 11층(농협중앙회)에 갖다줬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은 "비위 혐의가 굉장히 짙다"며 "형사 절차, 압수수색 등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농협금융지주는 이튿날인 28일 입장자료에서 박 대표가 내부감사에서 그런 진술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발언의 진위보다 논란인 점은 이 거래에서 견제가 작동했어야 할 지점이 모두 한 곳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대상은 농협생명 이사회, 농협하나로유통 이사회, 농협금융지주 감사위원회 세 곳이다. 세 곳 모두 농협중앙회 영향력 아래에 있다.
회사 내부 제보가 농협금융지주 자체 감사를 거쳐 금감원 검사로 이어지기 전까지 외부에서 거래를 들여다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부당대출·변호사비 유용 등 통제없는 거버넌스 문제
농협경제지주 145억원 부당대출도 자회사가 모회사 신용을 끌어다 쓴 거래다.
정부 합동감사반은 3월 9일 발표한 농협 특별감사 결과에서 농협경제지주가 2022년 신설법인(냉동식품 제조)에 대한 신용대출을 농협중앙회에 요청했고 농협중앙회가 사업계획·시설투자소요자금·상환능력·채권보전조치 전반에 대한 심사 없이 145억원을 집행했다고 적시했다. 대출은 2025년 2월부터 연체됐고 잔액 139억6000만원이 남아 있다.
농협경제지주는 자체 자금 조달 능력이 없는 사업지주다. 자체 자금이 필요하면 농협중앙회 신용을 빌리는 구조가 정관에 따라 가능하다. 농협경제지주의 요청을 농협중앙회 신용대출 심사 부서가 거절할 수 있는지가 외부 견제의 마지막 지점이지만 두 법인 모두 농협중앙회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 거절 권한의 독립성에 한계가 있다고 정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번에 문제가 된 농협중앙회 변호사비 3억2000만원 대납 사건은 자회사를 거치지도 않는다. 자금 흐름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모두 농협중앙회 내부였다.
직원 형사사건 변호사비를 회사 공금에서 빼내려면 회사 차원의 고발 여부를 인사위원회 심의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농식품부 감사 결과 2022년 이후 발생한 직원 범죄 혐의 6건 모두에서 인사위 심의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내부 통제 절차가 작동하지 않은 결과 결재 라인 다수 임직원의 협력 아래 회사 공금이 사적 변호 비용으로 지출된 정황이 만들어졌다.
◇ 농지비, 또 다른 자금 이전 통로
자금 흐름의 또 다른 통로는 농지비(농업지원사업비)다. 농협 명칭을 사용하는 영리법인이 농협중앙회에 매년 납부하는 사업비로 농협금융지주가 2025년 1분기에만 1732억원을 냈다. 자회사가 번 돈이 매년 수천억원 단위로 모회사 농협중앙회로 흘러간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2024년 농협금융 정기검사에서 농지비와 관련해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농협금융이 자회사 농지비 부담의 재무 영향을 별도 분석하지 않았고 대주주 농협중앙회와의 배당 협의에서도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자회사 자금이 모회사로 이동하는 구조가 자회사 주주와 채권자의 견제 없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감독 당국도 짚은 셈이다.
농협중앙회를 둘러싼 세 갈래 의혹과 농지비 자금 이전은 모두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농협경제지주를 100% 지배하는 구조 아래에서 일어났다. 자회사 간 거래가 발견되려면 외부 감사가 들어와야 하고, 자회사가 모회사 신용을 끌어다 쓸 때 그 요청을 거절할 독립성이 모회사 안에 없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모회사가 자회사 자금을 농지비 명목으로 매년 가져가도 자회사 주주가 견제할 통로가 없다"며 "그래서 매번 회장 한 사람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농협 그룹 차원의 구조적 사법리스크가 같은 시기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