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이 야 기
2010-08
커 튼 콜, 헹 가 래, 거 덜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모든 사람이라고 말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하는 일 안에서 혹은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극중의 주인공이 되고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은 앞을 내다보고 자기개발을 열심히 해가면서 늘 준비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거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쓰여 질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학교과정을 마쳤는데도 또 다른 학과 과정이나 아니면 이수한 학과과정 중 한 분야를 선택해서 더 깊이 공부들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처럼 더 해나가고 있는 학교 공부를 말할 때에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너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면서 열심히 배워놓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에 대한 대답의 건더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지금도 나의 아버님은 어쩌면 속으로 그런 말씀을 하실 것이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더니, 목사가 된 지금도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네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얘기가 말이나 되는 얘기냐?” 나는 그저 눈이 좀 어둡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그래서 책보다는 테레비을 통해서 세상사는 모습을 더 보기를 좋아하는 쉽게쉽게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즐겨보는 것은 다른 날도 아닌 주일 아침에 방송에서 보여지는 퀴즈프로그램이다. 그곳에서 미처 몰랐던 많은 지식의 정보를 접하게 된다. 팔월 초순에 테레비를 통해서 와 닿았던 세 가지의 낱말을 여기에 이야기하면서 살아가야할 방식을 나 나름대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거의 행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나의 희망사항이 되기도 할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 속에서 언저리에 자리하기 보다는 한 복판을 거닐기를 좋아한다. 나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내가 이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5학년 봄 혹은 가을에 있었던 학교 운동회 때의 일로 기억이이 된다. 운동회의 후반부에 벌어진, 학교 운동장을 몇 십 바퀴 달리는 소위 마라톤 경기라는 것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매년 운동회 때마다 그 경기가 열리면 항상 1등을 도맡아서 하는 먼 이웃마을 선배 형이 있었다. 여러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이 운동장 둘레의 모퉁이를 돌때에 선 안으로 들어서지 않도록, 모퉁이 선을 엉덩이 뒤에 놓고 원 안에서 둘레를 이루어 앉게 되는데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운동장 둘레선 안쪽에 앉아 있었다. 몇 십 명의 아이들이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여 달리기가 시작이 되었다. 예상대로 6학년, 바로 그 형이 몇 바퀴를 돌아 달린 직후부터 앞서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선배 형은 계속해서 앞서기만 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둘레선 모퉁이에 앉아있던 나에게 이상한 생각이 불끈 솟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도 뛰어나가서 저들과 함께 달려야겠다는 야릇하고 엉뚱한 생각이었다. 달리는 모든 대열의 아이들이 내가 앉은 모퉁이를 지나쳤을 때,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 들을 뒤 따라서 달려가기를 시작하였다. 많이 달려와서 지쳐서 느리게 달리는 아이들을 나는 등 뒤로 보내며 앞서 나가기를 시작하였다. 앞서고 앞서서 바로 하나 밖에 없는 그 선배 형의 뒤에 다다랐다. 그런데 면목 상 차마 그 형을 앞설 수는 없었던지 그만 2등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 엉뚱한 결과로 노트 한권을 선사받았다. 어떻게 해서 내가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셨던 오 선생님께서 몸이 불편한 내가 막판에 불끈 일어나서 달려 나가는 그 모습이 가상해보이셨는지 열렬하게 환호를 보내셨던 것이 잊혀 지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 형들로부터 여러 번 비난 섞인 이야기를 들어야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신앙의 생활을 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작금에도 이런 반칙의 생활을, 아니면 변칙의 생활을, 편법의 생활을, 그것도 아니면 억측의 생활을 가끔 벌리어 가며 살려 하고 있으니, 성서 가운데 바울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서 7:7-25). 하여튼 우리는 무대의 중심에 나서기를 좋아한다. 무대에서 공연이 훌륭하게 끝이 나고 막이 서서히 내리면서 그와 함께 그것을 보던 모든 관객이 일제히 찬사를 보내기 시작 한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성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계속해서 천정을 찌른다. 그 들뜬 대 관중 소리는 급기야는 무대 뒤로 물러간 출연자들을 그만 무대 앞으로 다시 불러내고서야 서서히 멈추게 된다. 이런 관경을 순화어로는 “부름갈채”라고 하며, 다르게는 커튼콜(curtaincall)이라고 한다. 성서는 그렇게 얘기 한다.잔치에 초청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오지 않자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누가복음 14:21). 성서에서 말하는 그 무대는 환대받는 자들보다는 도리어 홀대받는 자들이 밟고 올라 설수 있는 자리이다. 가끔 끌어오는 성서의 이야기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야고보서 1:27).
지금도 농사일이 힘이 드는 일이라고 말들을 한다. 논밭 일을 하는데 기계의 뒷받침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던 예전에는 낫, 호미, 삽, 괭이가 주된 농기구로 사용이 되었다. 삽이나 괭이를 가지고 땅을 파서 일구어야 하는 일이 사람이 하기에는 힘이 드는 일이기에 소의 힘을 빌려 쟁기를 끌게 하여 밭갈이를 많이 했다. 한해가 지나면 여러 논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좁아져서 도랑을 터주기 위하여, 그 물을 함께 이용해가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날을 정하여 같이 모여 어른들 표현으로 보메기라는 것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보메기라는 말은 보막이의 쉬운 소리 표현인 듯하다. 그때에는 가래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삽과 그 모양이 같으나 그것보다는 그 크기가 더욱 커서 굵은 줄을 두 가닥으로 매어, 한사람이 가래를 잡고 다른 두 사람은 몇 발자국 앞에서 줄로 잡아 당겨 가며 땅을 파거나 자갈돌을 퍼내는 일을 하였다. 또 다른 밭이나 논 등을 파헤치는 일을 할 때에도 힘을 모아 그런 가래질을 하였다. 두 세 사람이 함께하는 이 가래질에서 헹가래라는 말이 연유 되어 나오게 되었다. 헹가래라는 그 말은 여러 사람이 가래를 이용해 땅을 고르기 전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 했던 동작에서 연유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은 헛가래질을 연습 삼아서 몇 번씩 해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본 따서 헹가래는 여러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올렸다 내렸다 하게 된다. 그 헹가래는 바로 어떤 사람의 노고나 행적을 축하할 때 흐뭇하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몇 년 전까지 사람들에게서 많이 불려졌던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사랑 지금도 받고 있지요.....”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헹가래와 같은 갈채와 찬사를 받을 바로 그들이다.
여기 “거덜”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거동 하게 될 때 앞뒤 양쪽에 서서 가마가 흔들리지 않도록 끝을 잡아서 눌러가며 채를 붙잡고 따라 다니던 사람을 바로 거덜이라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곤경에 빠졌을 때 “거덜이 나다”라고 한다. 혹은 “거달 나다”라고 그렇게 말을 한다. 어느 사람을 부축해주거나, 어느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임금의 나아가는 행차를 도왔던 거덜처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들러리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성서에서도 중풍병을 앓는 친구를 도와서 그를 그 아픔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네 명의 동료들이 그를 들것에 들어 예수께로 가고자 하였으나, 많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그분을 만나러 들어갈 틈이 없어 결국에는 그 집의 지붕 위로 올라서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다고 하였다(마가복음 2:1-12).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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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10년 7월 23일에 희망의 언덕(회장:류상현 선생님)에서 주최한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여름바다 나들이가 경남 고성군의 공룡박물관과 곁에 있는 바닷가에서 있었는데 공동체에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금산읍교회 김철우 목사님께서 차량 운행봉사로 수고하여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충전교회.최선희.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이은주.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5인).최성재.김기홍.양오석.채윤기(박현실).충청지방통계청.유성반석교회.동춘교회6여전도회.대전노회남부시찰회(주영현외5인).그리스도의집(옹인숙.3회).한윤형외1인.대덕교회.신영숙외3인.신평교회아동부(8인).이원교회.진명구.수영교회.금왕교회(전수현외4인).동춘교회221목장(김봉숙).진주문교회(3인).공주원로원교회.임정순.성남교회(한영선).주식회사EG(이광형).살림교회(박상용외25인).대성교회여전도회(3인).오정교회6남선교회와6여전도회(8인).대한적십자사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정인구).금산군모란회(5인).추부파출소(2인).두란노교회(박종덕.한백현외2인).김용환(최정숙외2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