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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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6 14:19
2017년 34호 연간집 원고
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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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물빛 34호에 발표할 원고
돌샘 이재영
유리창
땅속 기운이 식물 실뿌리로
흠뻑 스며들 때 마음의 창을 열면,
연둣빛 실록의 영롱한 빛깔이
가슴 활짝 열고 빨려온다
내 마음은 한 마리 제비가 되어
산 넘고 물 건너면서 푸른 하늘 힘차게
솟아올라 불꽃처럼 일어나는
꿈을 펼치고 싶다
우주 만물이 생동하는 빛깔이여
잘 익은 포도 향 같은 계절의 향기여
내 마음을 활짝 여는 푸른 하늘이여
나는 너를 한없이 마시면서 살쪄간다
내 첫사랑 같은 계절아··· ···,
거울
활처럼 굽은 등엔
한 아름 고독을 지고
한 줄기 불빛은 꺼지지 않고 탄다
날아갈 듯 깡마른 할머니
전신은 두 지팡이에 의지하고
한 자국 걷고 쉬며, 산을 오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매일 오시는 할머니
눈인사 한 번 마주하면, 언제나
먼눈으로 보아도 손 흔들고
포근한 미소 보낸다
절룩거리는 내 삶 위에
용기를 주던 삶의 거울인 할머니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안 보이다가도
산 넘어가면 저만치 가고 있는 할머니
이젠 날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
들꽃
빨간 장미꽃보다도 요염한 꽃
한 포기가 번화가에 피어
아름다움, 눈길 사로잡는다
짙은 향기와 고운 빛깔에
벌 나비 떼 모여들어
꿀 따려 함부로 덤벼들면
감추어 둔 비장의 무기로
마구 독을 품는다
다가갔던 벌 나비 떼들
혼비백산 뜨거워라, 도망가면
요염한 자태는 봄눈 녹듯··· ···,
가면의 탈 벗어 던지고
새롭게 태어난 흰 백합꽃 한 송이
고고한 멋 풍기면서 활짝 핀다
십자가
여름날 동쪽 소나기가 까맣게 몰려온다
벼락 치는 불꽃이 달리는 차 옆에 떨어진다
길에 물이 차올라 가는 길이 묻힌다
운전기사 차 세워놓고
가슴에 십자가 긋고 두 손 모으고 합장한다
차 안엔 모두 숨죽이고 두 손 모은다
쥐죽은 듯 고요함 속에 나도 합장한다
마음이 편안하다
위기는 순간, 꿈꾼 듯, 세찬 비바람 멎고
환한 동쪽 하늘에는 무지개 솟아올라
놀란 가슴 아름답게 어루만진다
열린 서쪽 하늘엔 타오르는 저녁놀
마지막 만난 친구
누가 이 길 가고 싶어 가는가
누가 이 길 가기 싫다 아니 가는가
한 번은 꼭 가야 할 길
임종 직전에 선 나의 친구
나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
“눈물짓지도 말라”
“내 좋은 곳으로 가니, 웃어 달라.” 하고
죽음을 초월한 듯 미소 짓던 고향 친구여!
이틀 더 살면 가족들 좋다 하고
죽는 날 시간까지 정해놓고
정신력으로만 버티더니
끝내 그 소원 이루고 떠났구려··· ···,
이틀 후 고향에서 만난 친구
꽃가마 타고 먼 길 떠나던 날
상엿소리 슬픔 속에
나는 이젠, 통곡한다
마지막 본 그 날
바람 앞에 촛불처럼 깜박이던 벗에게
“나도 뒤 따라 감세”
“내 먼저 가서 좋은 자리 맡아둠세··· ···,”
끝내 미소로 작별했던 친구여!
여기 양지바른 선산(先山)에 고이 잠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