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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국어 번역은 역자가 추가한 것임. |
(사진) 인도의 마댜 쁘라데시(Madhya Pradesh) 주에서 발견된 10세기경 조성된 압사라상 ☜ 대형확대사진보기
압사라(Apsara)는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에 나타나는 한 무리의 여신들이다. 영어로는 종종 "요정"(님프, nymph) 혹은 "천상의 요정"(celestial nymph), 그리고 "천녀"(天女, celestial maiden)로 번역되곤 한다. 압사라는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처녀들이다. 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숙련된 무용수들이기도 하다. 압사라들은 인드라(Indra, 제석천[帝釋天]) 신의 궁정에서 시종을 담당하는 "간다르와들"(Gandharvas, 건달바[乾達婆 혹은 楗達婆])의 아내이다. 이들은 항상 신들의 궁정에서 자신의 남편들인 간다르와들이 음악을 연주하면, 신들을 즐겁게 하고 영웅들을 함몰시키기 위해 춤을 춘다. 이들이 영웅들을 무너뜨리는 임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보면, 종종 고대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등장하는 발퀴레들(valkyries)에 비유해 볼 수도 있을듯하다. 압사라들은 특히 게임이나 내기를 할 때, 그 행운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대로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우르와시(Urvasi), 메나까(Menaka), 람바(Rambha), 띨롯따마(Tilottama) 같은 존재들이 가장 유명하다.
한편 인드라의 궁정에서 공연이 행해질 때, 26명의 압사라들이 각각 다른 측면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의 뮤즈들(muses)과도 비견할만하다. 또한 물(水)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의 님프들(nymphs), 드라이어드들(dryads: 나무, 숲의 요정), 그리고 나이아드들(naiads: 물의 요정)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풍년제"와도 연관이 있다. 힌두교 신화에서는 하급의 압사라가 남성을 홀려 죽음으로 몰고가는 정령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슬라브 신화의 루살카들(Rusalki)이나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들(sirens)과도 비교할 수 있다.
(사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회랑에 새겨진 압사라 상들(12세기).
1. 고대 문학에 등장하는 압사라들
1.1. 리그웨다
<리그웨다>(Rg Veda)에서는 간다르와의 아내였던 한 압사라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압사라가 한 명이 아니라 복수일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리그웨다>가 거론한 특정한 압사라의 이름은 "우르와시"였다. 찬가 전반적으로는 우르와시와 그녀의 운명적 연인이었던 뿌루라와스(Pururavas) 사이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주1) 후대의 힌두교 문헌들은 수많은 압사라들을 등장시키고, 이들의 역할을 인드라신의 천상 궁전에서 수발을 드는 시녀 혹은 무희들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주1) Rig Veda, 제10권, 찬가 95. |
1.2. 마하바라따
힌두교의 성전 <마하바라따>(Mahabharata)와 관련된 이야기들에서는 압사라들이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 서사시에는 주요한 압사라들의 이름들이 거론되는데, 그 명단이 언제나 일정하지는 않다. 신들의 천상 궁전에서 압사라들이 주인과 손님들 앞에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관해서는 다음의 인용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따치(Ghritachi), 메나까(Menaka), 람바(Rambha), 뿌르와칫띠(Purvachitti), 스와얌쁘라바(Swayamprabha), 우르와시(Urvashi), 미쉬라께시(Misrakeshi), 단다가우리(Dandagauri), 와루티니(Varuthini), 고빨리(Gopali), 사하자냐(Sahajanya), 꿈바요니(Kumbhayoni), 쁘라자가라(Prajagara), 찌뜨라세나(Chitrasena), 찌뜨라레카(Chitralekha), 사하(Saha), 그리고 마두라스와나(Madhuraswana). 이들과 여타 수천의 압사라들이 그 눈은 연잎과 같으니, 그들이 지금 근엄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곳에서 춤을 추었노라. 갸냘픈 허리와 균형잡힌 볼륨을 가진 둔부들, 그들이 지금 천만 가지로 모습을 나투나니, 그 풍만한 가슴을 흔들면서 그들의 주위를 사로잡나니, 그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마음을 뺏길만한 다른 많은 매혹적 자태들을 뽐내고 있도다."(주2)
(주2) Mahabharata, 제III권: Vana Parva, 제43절. |
1.3. 개별적인 압사라의 등장
<마하바라따> 문헌에서는 개별적인 특정한 압사라들이 등장한다. 가령 아수라(asura) 형제들의 난동에서 세상을 구해낸 띨롯따마라든지, 영웅 아르주나(Arjuna)를 유혹하려 한 순다(Sunda), 우빠순다(Upasunda), 우르와시가 바로 그들이다.
1.4. 요정과 현자에 관한 주제
(사진) 자바의 보로부두르 사원에 조각되어 있는 천상의 시녀 상.
<마하바라따>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현자나 영적 스승이 수행 중일 때 한 압사라가 그에게 다가가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려고 시도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주제가 구체화된 이야기 한 편이 바로 영웅 서사시 <샤꾼딸라>(Shakuntala)에 등장하며, 이 이야기에서 샤꾼딸라가 자신의 태생을 서술한다.(주3)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현자인 위스와미끄라(Viswamitra)가 고행을 통해 그 에너지가 너무 강력해지자, 심지어는 인드라 신조차 두려움을 느겼다. 그리하여 인드라는 압사라인 메나까를 그에게 보내, 그 심기를 산란케 하려 하였다. 메나까는 그 강력한 고행의 에너지에 마음이 저어되었지만, 신의 명령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위스와미뜨라에게 다가가자, 바람의 신 와유(Vayu)가 폭풍을 일으켜 그녀의 옷을 날려버렸다. 그녀의 나신을 본 현자는 결국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현자와 요정이 한동안 성교를 나누게 되자, 현자의 도력은 중지되고 말았다. 이윽고 메나까는 딸을 하나 낳았지만, 아기를 강둑에 버리고 만다. 바로 그 딸이 샤꾼딸라 자신임을 이 서사시는 읊고 있다.
(주3) Mahabharata, 제I권: Adi Parva, 제71-72편. |
1.5. 나땨 샤스뜨라
산스끄리뜨 희곡의 전형적 모델인 <나땨 샤스뜨라>(Natya Shastra)는 다음과 같은 압사라들의 명단을 기록했다.
만주께시(Manjukesi), 수께시(Sukesi), 미쉬라께시(Misrakesi), 술로차나(Sulochana), 사우다미니(Saudamini), 데와닷따(Devadatta), 데와세나(Devasena), 마노라마(Manorama), 수다띠(Sudati), 순다리(Sundari), 위각다(Vigagdha), 위위다(Vividha), 부다(Budha), 수말라(Sumala), 산따띠(Santati), 수난다(Sunanda), 수무키(Sumukhi), 마가디(Magadhi), 아르주니(Arjuni), 사랄라(Sarala), 께랄라(Kerala), 드리띠(Dhrti), 난다(Nanda), 수뿌스갈라(Supuskala), 수뿌스빠말라(Supuspamala), 그리고 깔라바(Kalabha)이다.
2. 시각예술에 등장하는 압사라
2.1. 고대 자바, 발리 및 인도네시아 예술 속의 압사라
(사진) 자바와 인도네시아에서 유행한 마자빠힛(Majapahit) 양식으로 조성된 9.2 cm 높이의 황금 압사라. ☜ 대형확대사진보기
자바에서는 사일렌드라(Sailendra) 왕조 시대부터 마자빠힛(Majapahit) 제국 시대 사이에 건축된 몇몇 사원들에서 압사라 상들이 발견된다.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 멘둣(Mendut) 사원, 쁘람바난(Prambanan) 사원, 쁠라오산(Plaosan) 사원, 그리고 뻬나따란(Penataran) 사원에서 볼 수 있듯이, 압사라들은 장엄용 조각이라기보다는 회랑에 새겨진 이야기들에 통합된 한 부분으로서 나타난다. 보로부두르 사원에서는 압사라들이 아름다운 천상의 시녀들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들은 서 있거나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항상 연꽃 모습의 볼록한 가슴을 지니고 있다. 또한 꽃잎을 날리는 모습인가 하면, 마치 날아갈듯한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서 있기도 하다. 보로부두르 근처의 멘둣 사원에는 일군의 데와따들(devatas)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데, 그들 중에 압사라들도 섞여 있다.
전통적으로 압사라들은 "인드라 신의 천상"(Kaéndran)에 살고 있는 천상의 시녀들로 묘사되어 왔다. 특히 인간계의 성자가 도력이 높아져 심지어는 신들을 능가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 현자를 유혹하기 위해 파견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바의 전통 속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아일랑가(Airlangga) 왕의 치세인 1030년에 므뿌 깐와(mpu Kanwa)가 저술한 <까가윈 아르주나위와하>(Kakawin Arjunawiwaha)이다. 이 이야기는 아르주나가 거인 니와따까와짜(Niwatakawaca)를 물리칠 힘을 얻기 위해 명상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그를 유혹하기 위해 인드라 신이 압사라를 그에게 보낸다는 줄거리이다. 하지만 아르주나는 가까스로 정욕을 억제하여 신들로부터 궁극의 무기를 획득해 거인을 물리친다.
후대의 자바 전통에서는 "압사라"를 "합사리"(Hapsari)라고 부르거나 "위도다리"(Widodari)라고도 불렀다. "위도 다리"는 산스끄리뜨어 "위댜다리"(Vidhya-dhari)에서 방언화된 말로, "위댜 다리"는 "지혜"를 의미하는 "위댜"(Vidhya)와 "소유한", "가진", "소유자"를 의미하는 "다랴"(dharya)가 합쳐진 말이다. 최종적으로 현대 인도네시아어에서는 "비다다리"(Bidadari)가 되었다.
(사진) 천상의 시녀들을 표현한 발리의 전통춤 레공 무용
자바인들의 힌두교-불교 전통은 발리(Bali)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리 전통춤에서는 천상의 시녀들이 종종 그 테마로 자리한다. "산걍 다리"(Sanghyang Dedari)나 "레공"(Legong)과 같은 전통춤은 천상의 시녀들을 자신들의 고유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16-18세기의 마타람(Mataram) 술탄 왕조의 궁전에서 보존된 천상의 시녀를 묘사한 춤들은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베다야"(Bedhaya)와 같은 자바 궁정무용도 압사라를 표현하고 있다.
2.2. 캄보디아의 예술과 건축에 나타난 압사라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시대 사원들의 석조 회랑들에서 압사라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이곳의 사원들에 조각된 여성 천신들의 형태는 2가지로 나눠진다. 먼저 춤을 추는 형상을 지닌 조각상들은 "압사라"라고 불리고, 반면 그냥 서 있는 조각상들은 "수호신"을 의미하는 "데와따"(Devata: 신장)라고 불린다.(주4)
(사진) 앙코르유적군의 바이욘 사원의 석주에 새겨진 12세기경의 압사라 조각상. 춤을 추는 모습이다. ☜ 대형확대사진보기
특히 가장 규모가 큰 앙코르 시대 사원인 앙코르와트(Angkor Wat)에서 압사라 조각상들은 매우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12세기에 조성된 이 유적에서 학자들은 1,860기 이상의 조각상들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석주나 담장, 혹은 탑의 곡대기에도 조각되어 있었다. 1927년 삽포 마르샬(Sappho Marchal)은 이에 대한 카탈로그를 출판했는데, 이곳의 압사라들이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 자세, 보석과 화관 등을 얼마나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마르샬은 이러한 모습들이 사원 조성 당시의 일상적 모습을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일부 압사라들은 상호간에 무기를 겨눈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부 압사라는 보는이로 하여금 인사를 받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마르샬은 "이 데와따들은 세련된 우아함의 모든 요소를 갖춘 전형"이라고 적었다.(주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