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한문학 「오비촌 죽지사(烏飛村竹枝詞)」 바닷가 대숲마을을 고상하게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바닷가 대숲마을을 고상하게 읊은 「오비촌 죽지사(烏飛村竹枝詞)」는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 바닷가 대숲마을을, 꿈속의 선경(仙境)에 비견한 민가(民歌)의 시가(詩歌)이다. 제목에서 드러나 있듯이, 까마귀(烏)와 대나무(竹)를 소재로 사용해 대숲의 정경과 신묘한 까마귀(金烏)가 날아드는 바닷가 마을을 고상하게 읊었다.
이 글의 저자인 진사 소금산인(小琴散人) 이용근(李容根)이 바다 건너 거제도 오비촌에 와서, 칠원 제(諸)씨 후손인 제경직(諸景直)의 대숲 속 거처인 오죽재(烏竹齋)를 둘러보고 난 후, ‘오죽재’에 대한 유래를 듣고 '오오(烏烏)'라는 술을 함께 마시면서 「오비촌 죽지사(烏飛村竹枝詞)」를 지은 것이다. 오비촌의 제경직(諸景直)은 임진왜란 때 경남과 거제도에서 맹활약을 떨친 '거제 명가(名家)' 집안이다.
○ [죽지사(竹枝詞) 유래] 우리나라 죽지사는 중국의 악부(樂府) 죽지사를 모방하여 우리나라의 경치·인정·풍속 따위를 노래한 가사(歌詞)였으나,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 고유음악이 되었고,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가창(歌唱)되는 12가사 중의 하나이며 '건곤가(乾坤歌)'라고도 부른다. 악부(樂府)는 민가(民歌)로부터 발전한 중국의 시가 형식을 가리키며, 한국의 민요와 시가를 한시화한 소악부를 모방해서 지은 시와 역사·풍속·민간의 풍정을 묘사한 시 등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민가로 자리 잡았으며,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 있다.
또한 그 지방 민요풍의 가사만을 지칭하는데 그치지 않고 7언절구 양식의 연작으로 지방 특유의 자연이나 인사를, 향토색 짙게 읊은 시가를 모두 〈죽지사〉라 일컬었다. 가사는 통속적이고 음조(音調)는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특정 지역의 민가와 민풍(民風)을 근거로 지어졌다. 그리고 단순히 특정 지역의 토속쇄사(土俗瑣事)를 읊은 작품까지 관습적으로 죽지사라고 하기도 하였다. 거제시에 전하는 죽지사는 「오비촌 죽지사(烏飛村竹枝詞)」와 「기성죽지사(岐城竹枝詞)」가 있다.
덧붙여, 민가(民歌)의 제목을 ‘죽지(竹枝)’라고 명명한 것은 대나무와 관련된 사정이 있다. 순(舜)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가 창오야(蒼梧野)에서 세상을 떠나자 두 부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대나무에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하다가 마침내 상수(湘水)에 빠져 죽었다. 이후 지역민들은 두 여인을 상수의 신(神)으로 받들어 상군(湘君) 혹은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일컫고, 이 지역에서 나는 대나무에 그들의 피눈물 흔적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다고 하여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당시의 동정호일대에서 처량하고 원망 어린 노래, 죽지(竹枝)가 생겨났다.
◉ [연초면 오비촌(烏飛村) 오죽재(烏竹齋) 유래] 연초면 오비리에 위치한 오죽재(烏竹齋)는 임진왜란 선무원공신 칠원 제(諸)씨 형제들의 후손인 제경직(諸景直)이 장수지소(藏修之所, 학문을 통한 수양한 곳)하던 곳이다. 저자 이용근이 오비촌(烏飛村)에 와서 보니, 검은 대숲 집을 일컬어 '오죽재(烏竹齋)'라 호칭하니 의아해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후기, 진사 소금산인(小琴散人) 이용근(李容根)의 글에 따르면, 어느 때 남으로 바다를 건너 기성(거제) 오비촌(연초면)에 왔더니 산은 빼어나게 아름답고, 물은 한결 맑아 고운 것이 내 마음에 흡족했다. 더구나 사람들이 모두 순하고 마음에 맞아 더욱 기뻤다. 어느 날 제경직(諸景直)이 소매 속에서 종이 조각을 끄집어내어 나에게 보이면서 말하길, "내 일찍이 내가 사는 이 좁고 조그마한 집을 이름하여 '오죽재'라 하고, 한 문인의 글을 빌려 자(字)로 하였으니, 자네 또한 여기에서 살지 않겠는가?" 하며 묻기에, 내 이르기를 "이상하다?" "자네 집 이름 '오죽(검은 대나무)'이란? 옛 중국 소상(潚湘)의 대를 반죽이라 하는 것과 기오(淇澳)의 대(竹)가 연죽이라 하는 것은 그것이 푸르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직장(劉直長)이란 자는, 누워서 대를 보니 희게 보여 백죽(白竹)이라 하였고, 문여가(文與歌)는 먹으로써 대를 그려 묵죽(墨竹)이라 하였으며, 그 밖의 풍죽(風竹), 우죽(雨竹), 형죽(炯竹), 수죽(水竹)이란 말은 있으나, 모두 그 이름만 있고 그 실은 없는 것이다. 지금 자네 집을 둘러싼 몇 천개의 정정한 푸른 대(竹)를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이라 부르며, 그 편액에 써 놓아 의아하다.
제경직(諸景直)이 이르기를, "자네 잘 못 보았노라. 내 집이 오비촌(烏飛村) 마을의 죽림(대숲) 속에 있기 때문에 '오죽재(烏竹齋)'라 하였을 뿐이네. 오오지(烏吾誌)에다 '오촌죽(烏村竹)'이라 하였으니 내 집을 이름함에 그 이름과 실이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 웃으면서 "자네 말이 옳다." 하며, 내어놓은 술을 '오오(烏烏)'라 하고 즐거이 '죽지사(竹枝詞)‘를 읊었다.
● 다음 평기식 「오비촌죽지사(烏飛村竹枝詞)」는 첫수(首)가 ‘陽‘ 운(韻)의 칠언절구(七言絶句)이고 이어진 「속운(續韻)」은 ‘虞’ 운자(韻)의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까마귀(烏)와 대나무(竹)를 소재로 사용해 대숲의 정경과 신묘한 까마귀(金烏)가 날아드는 바닷가 대숲마을을 고상하게 읊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 쓸쓸한 늦가을 거제도에, 대숲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까마귀 노니는 선경(仙境)이 꿈속인 듯하다. 대나무 가지는 바람맞아 비파를 울리고 댓잎 사이에 햇빛이 새어 나와 그림을 그린다. 대나무와 함께 늘 술잔을 비우며 시를 읊는다. 벌써 내년 봄 대숲 그늘이 벌써 기다려진다고 노래했다.
*「오비촌 죽지사(烏飛村竹枝詞)」* 이용근(李容根)
岐東秋事慾蒼茫 기성(거제) 동쪽엔 가을 추수가 창망하여
徒倚篁欄愛晩凉 대숲 난간에 기대어 늦가을 즐기누나. (후렴)
任敎金烏飛入定 금 까마귀 들어와 선경(仙境)에 의탁하는데
海山幽夢落魚梁 바다 산, 고요한 꿈속 어량에 떨어지네. (후렴)
속운(續韻)
摩修楣顔愛及烏 얼굴을 문미에 문지르며 까마귀까지 사랑하니
主人幽事竹同孤 주인의 한가한 일에 대(竹)도 함께 외롭다네.(후렴)
枝迎爽籟鏗鳴瑟 가지는 바람맞아 비파를 울리고
曄漏園輪活展圖 잎 사이에 햇빛 새어 그림을 그리누나.(후렴)
不可此君無一日 대나무 없이 하루라도 아니 볼 수 없으니
能令韻士責千觚 시인들로 하여금 수많은 술잔을 비운다네.(후렴)
明春我有重來約 내년 봄에 다시 대숲에 돌아 올 기약하며
留待淸陰曲檻隅 대(竹)그늘 굽은 난간의 구석이 기다려진다.(후렴)
● [오비촌(烏飛村) 칠원 제(諸)] 오죽재 제경직(諸景直)씨는 임진왜란 때 경남과 거제도에서 맹활약을 떨친 '거제 명가(名家)' 집안 출신이다. 특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제조겸(諸祖謙)의 아들인, 제괵(諸漍), 제억(諸億), 제진(諸璡), 제말(諸沫) 형제와 제괵(諸漍)의 아들 제홍록(諸弘祿)은 거제 고현성 전투, 연초 다공전투, 진주성 방어는 물론 이순신 휘하에서 당포 노량 벽파정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충무공 이순신은 "어찌 이토록 제씨 집안에 충의가 많은고?"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경남의 칠원 제씨는 대부분 무관을 지냈으며, 제말(諸沫)의 6,7대손 제경욱(諸景彧, 추증(追贈) 통제사), 제안국(諸安國)은 조선 정조 순조 때 큰 공을 세운 무관이었다. 정조 16년 1792년 진주성에 '제씨쌍충비명(제말장군, 조카 제홍록)'의 비각이 건립되어 현재 지방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뒤 거제 후손들이 장목면 송진포리 후룡산 자좌에 장의하였고, 1793년 하청면 중리에 '경충사(景忠祠)'를 건립, 제씨 충신들을 매년 음력 10월 첫 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거창부 가조현에 따르면, "고려 원종12년(1272년)에서 조선 세종14년(1432년)까지 160년간을 이곳에 "반씨(潘氏), 제씨(諸氏), 신씨(申氏), 옥씨(玉氏)" 같은 성씨들이 이곳에 옮겨 살았는데 환도(還島)하지 않고 남아 산 사람도 있었으며 또 오랫동안 맺어진 인연으로 함께 거제 본도(巨濟 本島)로 옮겨간 성씨들도 있었다."하니 제씨 등의 거제도 처음 입도 시기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