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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9세기에는 이중기단과 단층기단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두 사찰 석탑의 양식 비교
항목성주사지 삼층석탑 3기도천사지 삼층석탑 3기
| 기단 | 이중기단 | 단층기단 |
| 양식의 뿌리 | 7~8세기 정형석탑 전통 | 9세기에 확산된 새로운 형식 |
| 후기적 요소 | 별석 탑신받침·문비 표현 | 높은 초층 탑신·자유로운 삼탑 배치 |
| 추정시기 | 통일신라 말기, 대체로 9세기 | 통일신라 후기, 대체로 9세기 |
| 확실한 선후관계 | 현재로서는 확정 어려움 | 현재로서는 확정 어려움 |
성주사지 삼층석탑들은 이중기단을 사용했지만, 기단 위에 별도의 탑신받침을 놓고 동탑 몸돌에 문비(門扉, 문 문·사립문 비: 문짝 모양)를 새기는 등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국가유산청도 세 삼층석탑을 통일신라 말기에 같은 장인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국가유산청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설명
도천사지 석탑도 단층기단, 높은 초층 몸돌, 옥개석 받침 등의 특징으로 통일신라 후기, 대체로 9세기 탑으로 평가됩니다.
가장 적절한 판단
친구야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다듬으면 학술적으로 매우 안전합니다.
“기단 양식의 계통만 보면 이중기단을 채택한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단층기단을 채택한 도천사지 삼층석탑보다 앞선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찰의 석탑은 모두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조성으로 추정되므로, 이중기단과 단층기단이라는 차이만으로 성주사지 석탑이 먼저 건립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굳이 가능성을 비교한다면,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조금 앞설 가능성은 있지만, 두 삼탑군이 9세기 후반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이것은 추정입니다. 정확한 선후관계를 밝히려면 기단뿐 아니라 옥개석 층급받침, 탑신 비례, 별석받침, 결구법(結構法, 맺을 결·얽을 구·법 법: 돌 부재를 짜 맞추는 방법), 출토 기와와 지층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야 합니다.
요점 정리
친구야, 네. ‘탑의 양식 계통만을 놓고 보면’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도천사지 삼층석탑보다 앞선 양식을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양식의 선후’이지, 곧바로 ‘실제 건립연도의 선후’를 확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단 양식의 발생과 전개 과정만 보면, 이중기단을 갖춘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단층기단을 갖춘 도천사지 삼층석탑보다 앞선 석탑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단정하면 근거가 부족합니다.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도천사지 삼층석탑보다 실제로 먼저 건립되었다.”
왜냐하면 이중기단은 9세기에 단층기단이 등장한 뒤에도 계속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주사지 삼층석탑에도 별석받침과 문비 조각 등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이 나타나며, 도천사지 석탑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9세기 석탑으로 평가됩니다.
요점: 성주사지 삼층석탑은 도천사지 석탑보다 앞선 형식의 전통을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건립시기도 반드시 앞선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안전한 결론은 “성주사지가 먼저일 가능성은 있으나, 두 삼탑군 모두 9세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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