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후 49일 (23)
천인들과 보살들의 찬탄을 받은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칠 일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마지막 밤이 끝날 무렵, 부처님은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는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그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으로 인해 행(行)이 있다.
의욕을 일으키고 조작하는 행으로 인해 식(識)이 있다.
분별하는 인식 작용인 식으로 인해 명색(名色)이 있다. 과념과 물질인 명색으로 인해 육입(六入)이 있다.
외부 대상을 받아들이는 육입으로 인해 촉(觸)이 있다.
외부대상과 만나는 촉으로 인해 수(受)가 있다.
좋고 싫은 느낌인 수로 인해 애(愛)가 있다.
애타는 욕망인 애로 인해 취(取)가 있다.
고집하고 집착하는 취로 인해 유(有)가 있다.
삼계를 윤회하는 존재인 유로 인해 생(生)이 있다.
태어남인 생으로 인해 노사 (老死) 늙음, 죽음, 슬픔, 고통, 근심, 갈등이 한꺼번에 있게 된다.
이와같이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두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던 것에서 탐착을 떠나 어리석음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끊임없이 일어나던 의욕과 조작이 사라진다.
의욕과 조작이 사라지면 분별하던 인식 작용이 사라진다.
분별하던 인식작용이 사라지면 관념과 물질은 사라진다.
관념과 물질이 사라지면 외부대상을 받아들이던 기능은 사라진다.
외부 대상을 받아들이는 기능이 사라지면 외부 대상과의 접촉도 사라진다.
외부 대상과의 접촉이 사라지면 좋고 싫은 느낌 등이 사라진다.
좋고 싫은 느낌 등이 사라지면 애타는 욕망이 사라진다.
애타는 욕망이 사라지면 고집과 집착이 사라진다.
고집과 집착이 사라지면 삼계를 윤회하던 존재가 사라진다.
삼계를 윤회하는 존재가 사라지면 내어남이 사라진다.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 죽음, 슬픔, 눈물, 고통, 근심. 갈등이 모두 사라진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두 번째 칠 일, 자리를 옮겨 아자빨라(Ajapala)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을 누릴 때였다.
한 바라문이 다가와 웨다의 시구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거만하게 물었다.
“고따마, 어떤 사람이 바라문이고, 바라문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스스로 악을 멀리하고, 신분을 뽐내는 콧노래를 부르지 않으며, 번뇌에서 벗어나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그가 바라문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며 웨다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 그가 바라문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바라문이라 할 수 있고, 세상 어디를 가도 비난받지 않을 것입니다.”
네 번째 칠일, 마라가 다시 나타나 부처님에게 속삭였다.
“세존이시여, 길고 긴 세월 고행하다 부처님이 되셨으니 이제 편히 반열반에 드소서.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부처님, 반열반에 드소서, 부처님, 반열반에 드소서.”
부처님이 마라에게 말씀 하셨다.
“마라여, 그대는 열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대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을 열반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마라여, 일체중생이 아직 나의 법 가운데서 이익을 얻지 못했는데 그대는 왜 나에게 반열반에 들라고 합니까?”
다섯 번째 칠 일, 무짤린다(Mucalinda)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을 누릴 때였다.
때 아닌 폭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자 나무에 의지해 살던 무짤린다(Mucalinda)용왕이 나타났다.
무짤린다는 자신의 몸으로 부처님의 온몸을 감싸고 머리를 부채처럼 폈다.
거센 비바람과 추위도 철갑 같은 무짤린다의 비늘은 뚫지 못했고, 빈틈없이 살피는 매서운 눈매에 짐승과 벌레들이 얼씬도 못했다. 이레 동안의 폭풍우가 그치자 무짤린다는 부처님을 감쌌던 몸을 풀었다.
여전히 염려와 경계의 눈빛을 놓지 않는 무짤린다에게 부처님이 따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법을 깨달아 마음이 기쁜 자는 홀로 있어도 행복하단다. 이 세상 어떤 생명에게도 적의를 품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자는 행복하단다.
모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라는 교만한 마음을 던져버릴 때, 그 누구보다 행복하단다.”
여섯 번째 칠 일, 다시 자리를 옮겨 라자야따나(Rajayatana)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을 누릴 때였다.
땁뿟사(Tappussa)와 발리까(Bhallika)라는 두 상인이 소 수레에 물건을 싣고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오백 대의 수레를 앞장서 이끌던 두 마리 소가 갑자기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황하여 주위를 살피던 두 상인은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햇빛처럼 찬란한 성자를 발견하였다.
두 상인은 양식으로 사용하던 곡물 가루와 꿀을 존경의 뜻으로 바치며 귀의했다.
“성자시여, 저희가 올리는 곡물 가루와 꿀을 받으소서.”
부처님은 수자따의 우유죽을 드신 후 처음으로 두 상인의 공양을 받으셨다.
일곱 번째 칠 일을 다시 아자빨라나무 아래에서 보내시던 그 때,
범천의 권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