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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 歷史와 逆史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에 유급생이 한 사람 있었다. 번번이 함께 청소당번을 했는데 짓궂은 장난을 잘했다. 청소는 도통 안중에 없고 빈 물통만 들고 다니다가 잽싸게 누군가의 머리에 뒤집어 씌운다. 그러면 마루를 쓸던 패들이 비를 거꾸로 잡고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통을 두드려댔다. '물통치기' 라고나 할까. 청소 때면 가끔 벌어지던 촌극이었다. 한 번 당하고 나면 귀가 울리고 정수배기가 욱신거렸다. 일본 말에는 '후꾸로 다다끼' 라는 말이 있는데 억지로 번역하면 '자루치기'가 되는 셈이다. 물통 대신 그들은 자루를 씌워놓고 뭇매를 두드렸던 것 같다.
무엇을 씌우던지 그것이 단순한 청소시간의 장난 정도라면 대수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서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목숨까지 바친 역사적인 인물에게 물통이나 자루 아닌 무고한 허물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다. 그것도 겹겹으로 씌워놓고 동네북 치듯이 짓궂게 두드려대고 있으니 이것은 비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성직자는 말한다. "우리의 삶의 자취는 선악(善惡)을 가려서 어김없이 하나님의 장부에 기록이 된다"라고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선(善)을 악(惡)으로, 직(直)을 곡(曲)으로 바꿔치기 하는 따위는 역사라고 내세우기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는 '정신문화연구원' 에서 보내온 설문지를 한 통 받은 일이 있다. 여러 문항 가운데는 '본 연구원 설치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 인가 하는 항목도 하나 들어 있었다. 나는 그곳의 기능을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 정신문화의 원천이라고 말할수 있는 역사를 바로 잡으려면 이런 연구기관이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설문지에 그런 요지를 대강 적은 다음 말미에 그 본보기로서 원균장군의 경우를 들었다.
"충성으로 일관했고 나라를 위해서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인물을 사실(史實)을 왜곡 날조하여 부도덕한 겁장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귀 연구원에서는 이 나라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지 않는다면 설치의 의의도 별 것이 아닐 것이다"라고
오래 전부터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신념이 투철한 몇몇 인사들에 의해서 왜곡된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원균은 당쟁의 제물로 무고한 필주를 당한 것이라고 한다. 왜곡 날조의 장본인은 대제학인가를 지낸 이모(李)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역사드라마를 보면 권모술수와 모함을 일삼던 지난날의 벼슬아치들의 한심한 작태가 자주 나온다.
파당의 비정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역사의 왜곡 날조쯤은 식은 죽 먹듯이 쉽게 해치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
다. 그리고 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정실록(修正實錄)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붙였다니 한심스럽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인명사전(人名事典)에는 한 술 더 떠서 이 사람을 '당대의 이름난 학자 운운' 하고 추켜세우고 있으니 궁합이 맞는다고나 할까 '그 위인 (爲人)'에 그 '위인(爲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설문지가 무기명인 것을 기화로 엉뚱하게 '정신문화연구원' 쪽을 향해서 언성을 높인 셈인데, 이 때가 마침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보도되어 여론이 비등하던 때라서 이참저참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문화연구원에 대해서는 대단히 미안하게 된 일인데, 역사의 연구는 그쪽의 기능이 아닌지 아니면 왜곡이 이미 시멘트 굳듯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당에 긁어 부스럼을 자초할 까닭이 없다고 판단했음인지 아직껏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몇 분의 귀중한 저술들이 나왔는데, 울산공대의 이정일(李貞一) 교수, 실록연구가 이재범(李在範)씨, 전 육군대학교 부총장 어태우(魚台愚) 장군 등이 원균에 관한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는 저술을 했다.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던 전 서울신문 사장 손도심씨도 사실(史實)의 왜곡을 지적했고, 그 왜곡을 분별 못하고 지각 없이 떠들어 대는 사이비 학자들의 작태를 개탄했었다. 나와는 중학입시 동기생(?)이 되는 손형은 직접 나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이런 사이비 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던 터에 그런 자극도 가세해서 몇 해 전에 나는 지방 신문에 '역사(歷史)와 역사(逆史) 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실은 일이 있다.
"임진왜란의 논공행상이 오늘날의 복권 추첨처럼 요행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균 장군은 실적(實積)과 공의에 의해서 일호의 사심도 없이 일등공신으로 책록된 경위가 기록에도 밝혀져 있다. 소설이 아닌 '역사(歷史)'는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사실 이하로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歷史)'가 '역사( 逆 史)'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졸문을 한 구절 인용한 것인데, 이 글을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원균 장군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는 데 다소나마 보탬이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고위층 인사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눈치 빠른 사람들은 원균 장군을 매도하는 것이 고위층에 대해서 아부하는 결과가 된다는 엉뚱한 계산을 한 것인지 서로 앞을 다투어 공(公)을 매도했다. 내가 직접 읽고 들은 것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충무교육원의 모 강사가 강의 중에 원균이 마치 매국노인 것처럼 험담을 하다가 수강생의 추궁을 받고 경망한 실언을 솔직하게 사과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아나운서는 현지 탐방 프로에서 설익은 지식을 과시해서 원균을 헐뜯었다가 뒷날 호된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다. 어떤 중학교 교장은 이순신 장군 탄신기념일 행사에서 시종일관 원균 장군을 매도하는 훈화(?)를 했다니 그 행사는 결국 원균 매도기념식이 된 느낌이었으리라.
모 만화영화사에서는 왜곡된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문제된 부분 1백피트를 자진 삭제해서 문공부에 반납했다. 또 어떤 영화사에서도 촬영 도중에 시나리오에 왜곡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잡고나서 재촬영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성만 대면 누구라는 것을 알만한 아부의 도사(道士), 모씨가 텔레비전에서 장군을 천박하게 깎아내렸다. 모 대학의 총장인지 학장인지는 모 일간지에 공(公)을 호되게 꾸짖는 글을 실었다. 고위층의 점수라도 따야 할 어떤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용이 지나쳤다. 혹시 그들의 조상이 장군에게 참수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의 필적을 보건대 그와 같은 황당한 글을 쓸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펜 습자책이라도 착실하게 베끼는 편이 더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인용한 사람들은 모두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무지(無知)한 소치로 돌릴 수도 있지만, 식자층에 드는 사람들이 분별 없는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 해 5월 모 일간지의 칼럼에는 역사학자 김모 씨가 또한 원균 장군을 '소인(小人)들의 무리 중에서도 시기와 질투, 모략과 중상의 선수'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그는 또 다 른 저술에서는 원균을 한 등급 높여서 '모략과 중상의 일등선수라고 호칭하고 있다. 일등공신이 지하에서 들으면 쓴웃음을 지을는지도 모를 일인데, 김씨 자신은 또한 원균 매도의 '일등선수'가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첫째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매도하는 것처럼 원균이 부덕한 소인배요 또 도주하다 참살당한 겁장 •용장이라면 그를 일등공신 '좌찬성'에다가 '원능군까지 추봉한 어전회의의 구성원들이 한심스러운 사람들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왜곡된 자료를 가지고 짓궂은 유급생이 청소하는 학생을 물통이나 씌우고 다니듯이 무고한 허물을 씌우고 두드린다면 이 또한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김씨에게 독후감이라도 적어 보낼 셈으로 서울시의 전화번호부를 꺼내어 주소를 찾았다. 그런데 같은 이름이 59명이나 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숫제 신문사 편집부로 편지를 띄웠다. 칼럼에 실었던 나의 글 '역사(歷史)와 역사( 逆史)'도 한부 복사해서 넣고 필요하면 공부할 만한 다른 자료들을 보내겠다고 덧붙였었다. 회신을 기다렸지만 함흥차사였다. 제대로의 주소가 아니어서 도중에 증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데 김씨의 글이 발표된 지 2주일이 좀 지나서, 그러니까 1984년 6월 5일자의 같은 신문의 '민중의 소리' 난에 앞서의 실록연구가 이재범(李在絶)씨가 김씨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그 글가운데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는 방법은 적어도 학자라면 정 확한 사실(史實)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다' 라는 구절도 들어 있었다.
김씨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경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 꽃 튀는 논쟁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오늘까지 논쟁이 오고간 흔적은 없다. 김씨가 쥐죽은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헤밍웨이의 작품 가운데는 어린아이가 화씨 체온계로 잰 1백 2도의 체온을 섭씨로 착각하고 생(生)을 체념하는 절망적인 심정을 잘 묘사한 글이있다. 뒤에 그는 착오인 것을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만일 의사가 엉터리 체온계를 가지고 환자를 다스린다면 희극일는지 비극일는지 언뜻 짐작이 가지 않는다.
비유가 적절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원균의 경우 수왜실록인지 수악실록인지 하는 '엉터리 계기'를 가지고 애매한 사람을 매도하는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의 독후감 속편은 1년만에 다시 이어진다. 이번에는 김씨가 교수로 복직한 뒤였기 때문에 대학교 주소로 편지를 띄웠다.
・・・・・ 작년 5월에 동봉한 편지와 신문의 칼럼 복사물을 신문사를 통해서 보낸 바 있는데 받으셨는지요? 그 뒤 1984년 6월 5일자
'민중의 소리' 난에 실록연구가 이재범 선생이 김 선생의 칼럼 가운데 원균 장군에 관한 내용이 그릇된 것임을 밝히고 말미에 '역사에서의 교훈을 얻어 내는 방법은 적어도 학자라면 정확한 사실(史實)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다' 라고 끝을 맺은 것을 김 선생도 읽어서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선생이 해명하지 않는다면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어 그 뒤 몇 곳의 지면을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지를 않았습니다. ・・・・・・ 만일 학자가 발표한 글에 대해서 모욕적인 반박을 받고도 해명을 않고 쥐죽은 듯이 침묵만 지킨다면 이는 학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선생은 또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속에도 원균 장군을 혹독하게 헐뜯는 내용을 적었는데 동봉한 본인의 글역사(歷史)와 역사( 逆 史)'도 한 번 읽어 보시고 이재범 선생의 반박에 대한 해명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씨를 위시해서 그동안 전공과목처럼 의기양양하게 원균을 매도하던 학자(?)들이 모두 이재범 씨의 반박을 외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끝내 침묵만 지킨다면 앞서의 어떤 친구(?)처럼 그들도 차라리 펜 습자책이나 베끼는 편이 더 낫다는 야유를들어도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청탁받은 분량을 초과하면서 쓴 글이 유급생에서 시작해서 사이비 학자까지 들먹이게 되니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소생도 차라리 괜습자책이나 베끼는 것이 더 유쾌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김동길 선생의 원균 장군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모르겠다. 많이 달라졌기를 희구한다.)
1985, 11
첫댓글 이 글을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라도 읽게되어 고맙습니다.
나도 예전에 아산현충원(?)에 갔을 때,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세 사람 중
권율과 이순신, 원균이 나란히 함께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어요.
해서 원균을 찾아보고 휼륭한 장군인데,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우리가 달리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수필 <잡념속의 하루>에 그 부분을 간단히 썼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역사상 최고의 이분법적 사고로 혼란한 지금 이 시기에 이 글을 읽게되네요. 참 걱정되는 세상입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가운데는 어린아이가 화씨 체온계로 잰 1백 2도의 체온을 섭씨로 착각하고 생(生)을 체념하는 절망적인 심정을 잘 묘사한 글이있다. 뒤에 그는 착오인 것을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만일 의사가 엉터리 체온계를 가지고 환자를 다스린다면 희극일는지 비극일는지 언뜻 짐작이 가지 않는다.... (본문 부분 발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
그 시대의 맥락을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해요.... 그러하기에 후대의 입맛에 띠리, 이익에 따라 역사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고요....
원균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디. 이글을 읽고.
늘 감사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