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터키석처럼 빛나는 터키여행
김 순 남
7박 8일간의 짧은 기간, 1만 년의 역사유물을 간직한 터키 땅을 밟았다. 가게 문을 닫고 처음으로 남편과 떠나는 해외여행이다. 일주일을 앞두고 한가하니 여행을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기회를 놓칠세라 서둘러 예약하고 행여나 취소될까 불안했다. 떠나는 당일엔 가슴이 콩닥거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렇게 좋냐’며 너스레를 떤다. 올해 초 남편이 갑작스레 아픈 바람에 두 달 전부터 예약해둔 이탈리아 여행을 취소해 예약금을 날렸다. 스페인에 딸과 갔을 때랑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자유여행이기도 했고 어린 딸에게 여행 일정 및 모든 것을 의지해 부담이 컸나 보다. 남편과 떠나는 여행이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고 동생에게 전화하니 여행의 최고 파트너는 남편이란다.
12시간 넘게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에페소에 도착했다. 잡초가 무성한 벌판에 그리스 로마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대리석 기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편에는 암수 쌍의 황토색 토기 하수도관이 수북이 쌓여 있다. 시민들이 모여 토론을 하던 아고라 광장이다. 의회당과 음악당으로 쓰였던 오데이온도 도로 우측에 있다. 월계관을 손에 쥔 승리의 여신 니케 대리석 상과 키톤을 걸친 두상 없는 조각상, 포도와 올리브를 조각해 놓은 대리석도 있다.
셀수스 도서관 앞까지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 길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손을 잡고 바다를 향해 걸었단다. 미끄러질까 봐 남편 손을 잡고 걷다 보니 함께 손잡고 걸어 들어갔던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앞으로 닥칠 갈등과 시련은 전혀 예상 못 한 채 환희와 기쁨으로 들떴던 순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그러했을까? 상상해본다.
기대했던 셀수스 도서관은 자세히 살펴보지도 못한 채 일행을 따라 원형 경기장에 들어섰다. 조그맣게 이야기해도 소리가 크게 울리는 구조라는 설명을 들으며 원형경기장을 둘러봤다. 고대 로마 시대 지었는데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놀라웠다. 검투사와 사자가 나오던 출구는 쇠창살로 닫혀있다. 네로 황제를 비롯해 이만오천 명의 관중이 무대를 향해 내지르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눈으로 둘러싸인 듯한 하얀 언덕과 네모진 공간에 옥색 빛 물이 찰랑거린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수가 도랑같이 패인 홈으로 흘러내린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진기한 풍경에 홀딱 반한 채 한참을 발을 담갔다. 파묵칼레 옆으로 너무 많아 발굴조차 않고 있다는 옛 도시 히에라폴리스를 걸었다.
짙은 안개 속에 비가 내려 올라가 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올림포스산. 해발 고도가 2365m로 백두산이나 한라산보다 높다.
“위로 올라가면 비가 안 내릴 수도 있고요. 구름 위로 올라가면 구름 아래로 멋진 풍경이 내려다보일 수 있어요”
가이드는 말했다. 케이블카 타는 걸 취소했으면 했는데, 청산유수인 가이드 설명에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다. 정상에 오르니 온통 눈으로 둘러싸여 경계가 없다. 눈바람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대로도 좋다.
안탈리아에 비가 내렸다. 구시가지는 경복궁 옆 서촌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예쁜 찻집과 가게들이 발길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한다. 항구도시를 뒤로하고 카파도키아 가는 길은 또 다른 풍경이다. 토로스산맥이라 굽이굽이 올라간다. 하얀 눈 덮인 올리브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싣고 썰매를 타고 날아갈 것 같다. 실제로 터키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그 풍습이 유럽 전 지역으로 퍼졌다. 이후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우스라는 이름 대신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되었고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맥을 넘으니 끝없는 평지가 펼쳐진다. 셀죽터키 제국의 수도였던 콘야를 지나고 있다. 아파트와 공장 굴뚝이 보이건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여자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자들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도시이니만큼 외출하지 않고 거의 집에서 카펫 등을 짜고 있을 거라고 한다.
‘집안일 하기 싫어하고 걷기 좋아하는 내가 만약 터키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드디어 데린쿠유 지하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 있음 직한 우물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통해 식량과 물을 들여보내고 환기창 역할도 했다. 옆으로 돌아 동굴로 들어갔다. 한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이다. 가다 보면 큰 맷돌이 반 정도 보이는데, 안에서 닫으면 밖에서 절대 열 수 없다고 한다. 땅을 파놓은 식료품 보관소도 있고, 십자가 모양으로 넓어서 함께 예배를 본 장소도 있다. 고해성사했을 법한 굴도 있고 죄인을 묶어두기 위한 구멍도 있었다. 처절한 몸부림으로 올곧이 신앙을 지켜낸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꽃은 열기구를 타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더니. 열기구 띄우는 게 만만치 않다. 지난 일주일만 해도 비가 계속 와서 못 띄우고 우리가 처음이란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며 함께 날아오른 형형색색의 열기구와 땅 아래를 내려 보는 짜릿함과 전율 넘치는 흥분. 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기암괴석, 파파 스머프의 배경이 된 버섯 동굴인 파샤바아를 내려 봤다. 잠시나마 야간 비행을 쓴 생텍쥐페리가 된 기분이다.
머리 위 성화와 양옆 프레스코화가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동굴 교회, 햇빛을 받으면 빨간 장미색과 같다 하여 장미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협곡, 비둘기들이 모여 산다는 귀메르진릭. 보기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신비의 계곡을 지나왔다. 이름처럼 기괴해서 행성을 탈출한 외계인들이 나타날 것 같다. 순수한 창작은 없듯이 누군가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연이 주는 신비함에 감탄이 한없이 쏟아졌다.
비잔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교차한 터키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오스만 튀르크의 수도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서울보다 더 혼잡하고 번화한 탁심 광장에서 배를 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다. 유럽 땅과 아시아 땅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도 보이고 아시아 땅 저 멀리 미나렛이 서 있는 이슬람 서원도 보인다. 밤이나 낮이나 낚시꾼들로 붐비는 갈라타교도 보인다.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역시 웅장하다. 가장 높이 있는 큰 돔 위에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내려다보고 있다. 그 밑에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라브와 설교단 민베르가 있다. 덧칠한 회반죽을 벗겨낸 모자이크 성화에 예수, 성모마리아, 요한이 있다. 특히 예수의 눈빛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상대방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경이롭다. 성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종교분쟁 없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맞은편 블루모스크가 있다. 히잡 대신 가져간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니 잠시 이슬람교도가 된 듯하다. 천장과 벽에 둘러싸인 아라베스크 문양과 푸른 타일이 인상적이다. 이슬람제국의 궁전이었던 톱카프 궁전을 들렀다. 백설 공주에 나오는 성곽 모양도 있다. 성물 전시관을 돌아보다 직접 기도를 올리는 아잔 소리를 듣게 됐다. 은은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터키여행은 하늘빛 터키석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른 여행지에서 느낄 수 없는 오묘한 시간 여행을 했다. 동 서양, 하늘과 땅, 끝없는 평지와 산맥, 바닷가를 넘나드는 공간 여행도 했다. 동화와 낯선 행성까지.
첫댓글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을 하셨군요.
누구와 함께 했느냐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지요. 글쓰기의 초고는 마음으로 쓰고 탈고는 머리로 쓴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하나하나 쓰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터키에 못 가본 궁금함을 풀어 주신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훌륭한 여행 작가로 나가시는 것을 응원 할께요^^
여행기를 보니 못 가 본 저는 참 부럽습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글에 많은 느낌이 담아져 있는데, 모두 깊고 울림이 있는 느낌입니다.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멋진 여행기 계속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에 있는 문장 "터키여행은 하늘빛 터키석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가 빛나려면 도입부에도 이와 같은 은유적 서술이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