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이유가 단순히 발음을 완벽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어 유치원에 보낼 정도가 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장하면서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함이라고 하더라구요." 방학 중에 만난 지인이 해 준 말이다.
지인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는데 사석에서 지도 교수의 발언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논의할때는 어릴 때부터 언어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지도 교수가 편안한 자리에서는 반대 의견을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다.
사실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어 교육학자를 포함한 교육학자들이 학문을 논할때와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 정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나는 지인의 얘기 속에서 오히려 다른 점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굳건하게 하는 통로로 영어 유치원이 활용된다는 것이 씁쓸함을 넘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의 공동체에 들어가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은 당연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고자 함이 아닌가.
그들만의 공동체는 그 자체가 이미 다른 공동체를 거부하거나 은근히 차별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다른 공동체 사람들과 다르다는 특권 의식을 자연스레 갖게 되고 우월감마저 갖기 쉽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들의 말과 행동은 일상에서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작 5~7세 밖에 안 된 아이가 생활에서 은연중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 혹은 '나와 내 친구들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라는 것을 익힌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누구나 노력한만큼 성공하고 보상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곱씹어볼수록 그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하고 오히려 계층간 벽만 더 두터워지는 느낌이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대신 우리 사회 뿌리 깊게 밖혀 있는 계층간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은 남에게 뽐내기 위해 배우하는 것이 아니다. 배운 지식을 통해 '나'부터 달라지고자 노력해야 세상과 교육이 그나마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학자의 어깨가 무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에게만 진정한 의사 모습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전공 불문 교육학을 공부하는 교육학자들도 진정한 학자의 모습이 요구된다.
강의실에서 교육학 지식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 심층적으로 배운 지식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학자들에게 훨씬 중요하다. 교육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학문임을 교육학자들이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