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29.
뒷방 노인의 말은 들어주려는 사람이 없다.
불평불만에 잔소리고 집안이 여전히 자기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듯 헛위세를 떨기 때문이다. 만만한 맏며느리만 고역이다. 나머지 가족들은 귀를 닫은 지 오래다.
10여일 후에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 문재인이 어느 사이 뒷방 노인이 되어 있었다. 마이크를 잡으면 (많은 국민들이 그의 실정에 질려 있음에도) 자신의 선정(善政) 자랑하기 일쑤고 미워하는 사람 흠 잡는 데 한 치의 인색함도 없다.
멍석을 깔아준 ‘언론인’은 손석희다. 아나운서 출신으로 잘 생긴 얼굴에 노조 활동 등 시대를 잘 타 수십 년 동안 앵커 인기를 누렸다. 과거 어느 외진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손석희 하면 젊은 여자 앵커와 차 안에 동석해 있던 사건이 먼저 떠오르지만, 퇴임 직전의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주는, 영향력 센 인터뷰어가 됐다.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인 김정숙 옷값 문제는 질문 항목에서 빼고…….
이 값진 멍석을 문재인은 예의 뒷방 노인 ‘구시렁거리기’로 활용했다. 지난 5년 동안 청와대의 대국민 ‘쇼’ 연출 총PD 역할을 한 의전비서관 탁현민은 ‘세계 최고의 대담’이라고 했다지만, 들어주기 참 민망했다. 일개 비서관인 그는 대국민 쇼를 넘어 대국민 협박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퇴임 후에는 (정치권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걸고넘어지면 물어버릴 것이다.”
물어버리겠다니……. 그는 과연 충견(忠犬)이다. 필자는 방송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볼 시간도 없어서 시청하지 않았는데, 신문에 기사가 나서 읽어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우리 상승 폭이 가장 작은 것에 속한다.”
정말 그런가? 통계의 왜곡이다. 저 시골의 논두렁 밭두렁 가에 있는 아파트들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니 ‘가장 작은 폭’으로 나온 것이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서민 아파트 가격이 4년 사이에 3억원에서 8억원으로 뛰어 젊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 꿈을 접은 사실은 모른 척한다. 국정을 이끌 실력은 없고 선전선동 솜씨 하나는 탁월한 586 운동권 출신들 하는 짓이 늘 이런 식이다.
문재인은 그들이 꾸며대는 연출 뒤에 숨어서 ‘바르고 어진 임금님’ 이미지를 잘 유지해온 사람이다. 아마 저 말도 누군가가 만들어준, 자기들 필요에 맞게 산출한 통계를 가지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원고대로 ‘대담’한 결과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첫 번째 실정(失政)이 부동산이라는 건 동네 할머니도 알고 노인정 할아버지도 분개하는 사실이다. 소위 대깨문이라고 하는, 문재인 열혈 지지자들 중에서도 그의 자화자찬에 쓴웃음을 지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아파트 값 폭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실정을 치적(治積)으로 돌리는 건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아주 잘못하진 않았다고 변명을 하는 모습에 인간적으로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에 대한 속 좁은 ‘앙금 공격’은 보기 흉하다. 윤석열 대변인 말마따나 품격의 문제다.
“검찰총장으로서 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중도에 그만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다른 당 후보가 돼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이러니를 유발한 사람은 바로 그다. ‘우리 총장님’ 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가 막상 윤석열과 한동훈이 그 권력에 칼을 대니 추미애 망나니를 시켜 이들을 쫓아내려고 난리를 폈지 않았나?
그 망나니 칼춤은 추미애를 국민이 가장 혐오하는 ‘장관 아줌마’로 찍히게 했고, 윤석열을 일약 대권 주자로 키워주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 3인은 추미애와 조국, 문재인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잘못된 일이었다고? 그는 윤석열이 검찰총장 사퇴-대선 출마의 길을 가지 않고 작년 7월까지 검찰에 남아서 임기를 마친 자신의 충직한 부하였기를 바랐다. 그랬으면 퇴임 후도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었을 터이기에…….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은 어그러져버렸다. 윤석열은 더 이상 부하가 아니고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새 대통령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그가 밉고 또 밉다. 사실은 무섭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잽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은)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정말 위험하다……. (선제타격론) 외교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보수 정권에서는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 등 군사적 충돌이 잦아 군인들 희생이 많았으나) 내 재임 기간엔 충돌이 한 건도 없었다. 진보 정권에서 평화와 안보가 지켜졌다.”
평화 구걸, 굴종 외교 등으로 인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사실상 확보에 대해서는 침묵이다. 그러면서 현재 초미의 현안인 검수완박에 대해서는 엉뚱하게 검찰이 덮는(수사를 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검찰이 수사할 권리를 완전 박탈하려는 법안과 결과는 똑같은 중재안에 대해 “아주 잘된 일”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힌 건 그럼 뭔가?
“검찰의 정치화가 일단 문제다. 검찰이 덮고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길이 없다.”
뒷방 노인 스타일의 옹졸한 언급도 사양하거니와 품격은 놔두고라도 이런 궤변, 내로남불은 제발 그만 듣고 싶다. 그는 자신의 국정 과오와 법 위반 의혹 사건들로 인해 이재명과 함께 윤석열 정부 초기 거의 매일 도마 위에 오르는 전직 공무원이 될 것이다.
그의 마지막 책무는 위헌적이고 나라를 거덜 낼 검수완박 법안을 거부하거나 그대로 놔두고 퇴임함으로써 다음 대통령에게 자동 인계, 윤석열이 거부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법으로 주어진 법안 거부 또는 공포 기간은 15일이다.
“잊혀지고 싶다”고 한 대통령 문재인은 남은 시간을 이 책무와 함께 깊이 성찰하는 일로 보내다 조용히 나가는 게 본인과 국가를 위해 좋다.
정기수 /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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